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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은 바르게 부르고 있는가
1) 찬송의 뜻
찬송(讚頌)의 ‘讚과 頌’은 ‘칭송하다’. 찬양(讚揚)의 ‘揚’은 ‘드날리다’로, ‘훌륭함을 기리어 드러내다’라는 뜻이다. 원래 찬송이나 찬양은 음악과는 관련이 없는 용어이다. 그런데 교회에서 노래의 의미로 쓰이는 것은 교회음악이 하나님을 ‘기리고 칭송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차용하여 쓰고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하나님을 칭송하는 모든 행위는 다 찬양이요 찬송이다. 그럼 찬송가란 무엇인가? 찬송가란 “하나님께 드리는 찬미의 제사로서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로 기도하며, 노래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을 찬송가라 한다.”
(1) 찬송의 대상은 하나님이시다.
찬송가에서 찬양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성부, 성자, 성령 곧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이시다. 삼위일체 되신 이 세 분을 찬양하는 내용이 없으면 이는 찬양이라 할 수 없다.
예1.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 당신의 삶 속에 그 사랑 받고 있지요
(2) 복음송은 찬송이 될 수 없는 것이 많다.
예2.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을 바라보아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 예수 얼굴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주리라.
2) 찬송가의 특징과 내용
찬송가의 특징으로는 수직 상향적인 찬송과 수평적 관계의 찬송이 있는데,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찬양하는 내용의 것은 수직 상향적인 드림의 찬송이 된다. 이 가사 다음에는 아멘이 붙는다.
수평적인 관계의 찬송은 주로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삶을 노래한 것, 전도와 선교, 행사와 절기, 예식 때 부르는 내용 등으로 되어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찬송이 될 수 없으나, 하나님 앞에서 예배 시에 부르는 것이므로 간접 찬송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찬양대들이 부르는 찬송은 수직 상향적인 찬송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물 위에 생명줄 던지어라”(찬송가500장)를 불렀다고 가정해 보자. 이건 찬양대들이 부를 수가 없는 찬송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보고 ‘물 위에 생명줄 던지라’고 명령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찬송은 예배 시에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그 내용도 예배에 합당한 것이 되어야 한다.
내용은 어디까지나 성서적이어야 하며, 곡으로 붙여져 불리어질 때, 모든 회중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개인적인 신앙고백이나 신앙생활의 이야기 또 젊은이들이나 부를 수 있는 내용이나 곡은 모든 회중이 공감하여 부르기 어려우므로 찬송가로는 부적합하다.
찬송은 진실해야 하며, 경건해야 하며, 존엄해야 하며, 아름다워야 하며, 단순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용이나 곡은 밝고, 장중하고, 엄숙하고, 위엄 있고, 경건하고, 은혜스러워야 한다. 또, 탈세속적이어야 하고, 영적 감동에 의해 된 것으로 신앙적 체험에 의해 이루어진 간증과 고백이어야 하며, 회중이 신앙적 공감에 의해 된 이야기여야 한다. 예배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한다면 예배의 일환인 찬송의 내용도 당연히 영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영적 찬양이란 하나님의 보좌에까지 울려 퍼지고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말한다.
3) 예배음악의 기능
벤슨(Lovis F. Benson)은 “성경이 영적인 삶에 관한 계시라면 찬송은 삶의 지침서라고 말하고 있다면서, 찬송의 기능을 기독교 교리의 효과적 매개체의 역할과, 기독교 생활의 효과적인 도움을 주는 역할과, 예배에서 회중을 하나로 묶는 역할이라고 말했다”
(1) 순기능
예배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라고도 말한다. 또 ‘하나님과의 대화요, 하나님께 드리는 것(giving)’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닮아 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①드림의 기능
“예배자의 행위는 드림으로써 나타나야 한다. 수직 하향적인 하나님에 관한 노래보다는 수직 상향적인 하나님을 향한 노래를 더욱 많이 부를 때, 예배에서 드림의 기능이 강조 될 수 있다.” 예배음악의 가장 큰 목적은 우리들 자신을 온전히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찬양곡 중에서 ‘드림’의 기능이 없는 노래는 예배음악으로서 적절치 못하다.
②대화의 기능
말씀은 예배에서 쌍방통행(two way : 수직 하향적, 수직 상향적)의 원리를 잘 말해주고 있다. 예배가 일방적이지 않듯이,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골로새서 3장 16절)에서도 음악의 기능은 찬양의 상호작용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즉 수직상향적인 선포와, 인간이 인간에 대하여 인간에게 말하는 수평적인 교제의 기능으로 나타난다. 예배에서 상호작용적인 대화의 기능이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반응으로서의 응답적 대화이다.
③변화의 기능
찬양의 근본적인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지만, 이로 인해 감사와 다짐 등을 통해 성숙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어지는 것이다. 찬송의 결과는 예배의 모든 과정을 통해 변화됨으로 나타나야 함을 의미한다.
(2) 역기능
적절치 못한 음악을 예배에 사용함으로써, 심각한 상태의 음악적 역기능이 예배 안에서 나타나 오히려 음악으로 인해 예배가 방해를 받을 수 있다.
첫째는 목적주의로 인한 오용이다. 음악이 예배의 본질을 떠나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예배시간을 기다리며 부르는 준비찬송, 자리 정돈을 목적으로 하는 정리찬송, 통성기도를 돕기 위한 배경찬송 등이 그것이다.
둘째, 감상주의로 인한 오용도 있다.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이 아니라 인간이 감상하기 위한 노래로 부르는 경우이다. 많은 찬송곡이 자신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부르는 경우가 있다. 물론 찬송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신의 신앙고백이므로 즐거움을 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즐거움이어야 한다.
감상주의로 인한 오용은 크게 노랫말과 곡조로부터 기인한다. 찬송의 내용은 신학적으로 건전해야 하며 지나치게 감상적이어서는 안 된다.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지어진 노랫말로 된 찬송은 많이 부르면 기복적인 신앙형태를 초래하게 되고, 또 검증되지 못한 음악적 리듬이 사용된다면 자신이 스스로 취할 수 있는 자신을 위하는 위험한 노래로 변할 수가 있다.
셋째, 장식주의로 인한 오용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현대교회에서 음악만큼 예배에 많이 쓰이는 것은 없다. 크리스천들은 음악으로 예배를 장식하기에 이르렀고, 음악 없이는 예배를 드릴 수 없다는 개념으로까지 발전했다. 그래서 음악이 모든 순서 사이에 삽입되어 쓰이기 때문에 ‘찬송가 샌드위치’라는 용어까지 발생하게 되었다. 음악으로 인한 습관적인 장식은 예배음악의 본질을 퇴색시킨다. 예배를 풍성하게 한 것이 아니라 형식적인 의식주의를 강조하는 결과를 낳게 했다. 장식주의의 가장 큰 오류는 음악을 단순히 예배의 보조적 수단으로 보는데 있다. 음악을 순서에 의해 배치할 것이 아니라 예배 내용에 따라 배치함으로 음악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그 자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예배에 있어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커서, 어떤 면에서는 찬양만으로도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이다.
4) 예배음악의 문제점
예배음악의 잘못된 것 중의 하나는 하나님 중심의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예배를 드리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생일 감사예배를 비롯해 회갑 감사예배, 개업 감사예배, 학위취득 감사예배와 같은 개인 축하예배가 감사예배의 성격을 띠지 않고 축제의 예배가 되다 보니 예배 시에 사용하고 있는 음악이 인간을 향한 노래가 되고 마는 것이다. 또 복음송이나 CCM은 예배음악으로 적절치 않은 것이 많은데도, 교회음악이라는 이름으로 검증을 받지 못한 복음송이 예배 시에 함부로 불리어지고 있는 경우가 그것이다.
우리가 CCM이나 복음송을 문제 삼고, 찬송가를 마음대로 편곡해서 부르는 것을 꺼리는 것도 바로 찬송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좋은 음악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5) 교회음악의 유형
(1) 성가곡(Sacred) -교회음악
찬송가(Hymn)
①찬양(Praise) : 성가대나 합창단에 의해 불러지는 합창곡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나님을 향한 수직 상향적인 곡을 말한다. 수평적인 성격의 노래는 찬양곡으로 쓸 수 없다.
②찬송((Hymn) : 수직적이든 수평적이든 예배를 목적으로 쓰인 회중들에 의해 불려지는 것을 말한다. 현재 찬송가공회가 교회에서 부르도록 만들어진 찬송가는 645장 속에 들어 있는 곡들을 말한다. 찬양곡이 비교적 훈련을 받은 성가대들이 부르는 다소 수준 높은 곡이라면 찬송곡은 회중들이 누구나 다 부를 수 있는 비교적 쉬운 노래라고 말할 수 있다.
③송영(recitation) : 성가대에 의해 불러지고, 예배 처음과 끝에 오르간니스트에 의해 연주되는 것을 말한다.
복음송(Gospel-Song) : ①복음송(Gospel song). ②CCM
6) 복음송과 CC.M
(1) 복음송
복음송이란 복음(Gospel)과 노래(Song)가 합쳐진 말이다. 복음송은 주로 전도의 내용을 담고 있다. “복음송은 무디(Mood)와 생키(Sankey)가 부흥운동 중 1873년에 영국 뉴캐슬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무디와 생키가 1875년에 돌아왔을 때에 미국 전도자들과 합동하여 노래 책을 하나 출판했는데, 이 책에서 복음송이 나왔다. 후에 이 책이 복음적 집회에 사용되었으며, 또한 점점 인기가 있게 되어 많은 저작자와 작곡가들이 이것을 보급시키는 데에 함께 노력하게 되었다.”
찬송가와 복음송의 차이는 그 내용과 쓰임에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악이냐 아니냐에 따라 구분된다. 찬송가는,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한 노래로, 대상이 하나님이시지만, 복음송은 복음을 목적으로 쓴 것으로, 들려주는 대상은 복음을 전하기 위한 사람들이거나, 성도들끼리 부르며 다짐하고 위로하고 기쁨을 나누는 노래다.
“복음성가의 특징은 반복이 많으며 후렴구를 갖는다. 그리고 분산 화음적인 반주 형태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복음성가에 대한 견해들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찬송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복음성가는 예배 시 부를 수 있는 장엄하고 위엄을 가진 찬양의 노래가 아니다. 그것은 그 노래를 들음으로 말미암아 감정의 자극을 받아 복음적 결정을 내리도록 꾸며진 것이다.” 복음송은 그 대신 복음의 내용이 주가 되므로, 신앙 간증을 하거나 마음의 결단을 자극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이런 면에서 복음송가는 대중지향적이요, 초신자들에게 잘 호소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복음송은 노래를 들음으로써 감정의 자극을 받아 복음적 결정을 내리도록 꾸며진 것이기 때문에 전도 집회나 부흥회에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2) CCM
CCM은 시대에 유행하는(contemporary) 음악 양식에 기독교적인(christan) 메시지를 결합한 음악(music)을 뜻하는 말로 일반 대중음악 스타일 형식의 오락성이 강한 교회음악이라 말할 수 있다. “CCM은 1970년대 초 미국의 흑인영가와 가스펠을 주축으로 한 전통적인 복음성가와는 차별화된 보다 대중적인 음악을 지칭하는 음악으로 시작되었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 중반 라이센스를 통해 들어온 미국의 CCM 음반들이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고, 1990년대에 들어 본격적인 붐이 일어났다. 이 문화를 적극적으로 이끈 것은 기독교 방송(CBS)으로 독보적인 전문 CCM 프로그램과 콘서트 등을 통해 팬을 양산했다.”
“복음송과 CCM을 구분하기는 어려우나 CCM은 복음송보다 일반 대중음악 스타일 형식의 오락성이 강한 교회음악이라 말할 수 있다.” 복음송의 가사 내지 찬송가에도 대중음악의 곡을 붙이면 CCM이 되는 것이다. 또 복음송이 매우 제한된 (온건하고 절제된) 대중음악 양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반해, CCM은 팝. 록. 댄스. 랩 등 대중음악의 전 장르를 제한 없이 사용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 좀 더 건전하고 은혜로운 것이 복음송이라면, 감각적인 음악성에 의해 연주를 강조한 대중적인 것이 CCM 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가사보다 음악성에 강조를 두면서 비화성음을 사용한다든지 불규칙적인 강한 비트를 사용하거나 멜로디가 없는 불규칙적인 리듬을 사용하는데 그 특징이 있다.
그러나 이 CCM은 기존의 찬송가에만 매달렸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분위기를 가져다주어 쉽게 받아들이고 영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지 하나님을 찬양하면 되지 않느냐는 식으로, 기존의 찬송가를 고집하는 이들을 보수주의자라고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다. 특히 일부 기성인 중에서도 새로운 시대에는 그 시대에 알맞은 새로운 찬송이 필요하다는 주장 아래 이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복음송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교회는 다양한 문화 환경 속에서 성장한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시대에 맞는 문화를 수용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CCM은 신세대 교인들에게 가장 적합한 기독교 음악이다. 특히 오락적 대중음악에 빠져 있는 기독 청소년들에게 오락적인 면을 갖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접할 수 있는 건전한 대용(代用) 음악으로서 가치가 있다. 또 대중음악을 좋아하는 청소년들을 거부감 없이 교회로 인도하는 데 적합한 음악이며, 대중문화적 특성을 활용, 대다수의 비기독교인들이 부담 없이 복음을 접할 수 있는 전도 도구로 이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찬송과 같은 거룩한 주제를 세속적이고 오락적인 양식으로 표현할 수 없다. CCM은 사탄이 교회를 타락시키기 위해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해 사용하고 있는 전략 도구로 양의 탈을 쓴 늑대다. CCM이 세속음악의 대안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오락적 성향으로 인해 젊은이들이 깊이 없는 감상적, 피상적인 신앙 태도에 머무르거나 교회에서 말씀과 기도로 양육된 젊은이들이 CCM을 접합으로써 다시 세속적 오락 문화에 빠지게 되는 유혹의 미끼가 될 수 있어 아름다운 찬송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또 음악에 있어서 형식과 내용은 분리할 수 없다. 즉 록, 헤비메탈 등은 가치중립적인 음악이 아니라, 이미 반항성, 성적인 방종, 비도덕성 등 반기독교적인 세계관을 일체로 하는 악한 음악이다. 특히 CCM은 교회가 아닌 기독교 음반 산업계와 아티스트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어, 대체로 영성보다는 이윤 추구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로 CCM은 처음부터 상업적 목적에서 탄생한 문화다. 또한 미국의 경우 CCM 가수들이 표리부동한 신앙과 문란한 사생활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으며, 가사에 쓰인 용어나 내용이 비신학적인 것이 많고 세련되지 못하고 유치한 것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특히 CCM의 가사에 헤비메탈. 록 등 심지어 대중가요의 곡을 붙여 사용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하나님은 참되신 분인데 세속적인 음악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받아주실 리 없다는 것이다. 록음악은 섹스와 마약과 범죄를 유발하는 음악이라고 한다. 록음악의 많은 내용들이 섹스와 폭력과, 마약, 살인 등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게다가 불규칙적인 리듬과 감각에 호소하는 음색, 비화성음이 강한 비트음을 즐겨 사용함으로써 사람을 폭력과 허탈감과 무기력함을 가져오게 하여 영혼과 몸을 타락시켜 나중에는 자멸을 가져오게 한다는 것이다.
“C.C.M.의 음악적인 출발점이 교회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는 음악이 아닌 이른바 세속음악으로부터 출발하였는데, 그것은 음악적 형식, 음악에 사용되는 악기, 그리고 가사의 내용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인 교회 음악과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특히 록(Rock'n Roll), 헤비메탈(Heavy Metal), 랩(Rap), 뉴웨이브(New Wave), 묵상음악, 뮤직비디오 등으로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있고 유행하는 음악스타일들을 주로 사용하여 기독교적인 음악으로 만들고 있다. 요즈음은 발라드 풍의 음악으로 젊은이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불교의 명상음악처럼 깊은 무기력하고 깊은 수렁에 빠지게 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C.C.M.의 목적은 한 마디로 오락(대중음악)을 통한 선교이다. 즉 정통 교회에서 교회음악에서 말하는 음악이 하나님의 영광(수직적 기능)이라고 한다면, C.C.M.은 대중들을 즐겁게 해 줌으로(수평적 기능) 그들로 하여금 기독교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하거나 아니면 기독교인들의 경우에는 기독교적인 삶을 살도록 하는데 있다고 한다.”
오늘날의 한국교회의 예배는 포스트모던 철학에 영향을 입은 젊은 세대들이 과거의 전통이나 권위를 부정하고, 고정적인 틀에 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풍조에 힘입어 예배까지도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 주로 청소년과 젊은이 계통인 계층인 소비자들의 구매를 촉진시키기 위하여 CCM 속에 팝음악이 가진 오락적 자극적 상업적 요소가 강화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복음의 본질과 순수성이 왜곡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CCM에 대한 의심과 회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부르짖는 한결같은 목소리다. 특히 염려하고 있는 것은 이런 CCM 등에 심취하다 보니 기존의 찬송가를 모른다는 것이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시대가 변했는데 옛날 찬송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고 하나님까지 변화시키려고 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의 예배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하나님 중심의 예배가 아니라, 내가 만들어 낸 예배형식에 하나님 보고 억지로 와서 받으시라고 강요하는 예배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진정한 예배의 갱신은 오히려 성경이 규정하는 옛날의 예배(경건성)에로 회복되어야 한다. 성경대로의 예배란 우리 언약의 백성들이 언약의 주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언약의 왕권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권위 앞에 무릎을 꿇고 그분에게 만 존경과 경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예배는 사람을 교회당으로 모이게 하는 흥행적인 프로그램이 아니다(축제의 예배). 자유를 지나치게 만끽하면서, 현대적인 문화를 지나치게 수용하므로, 예배자의 감성에 호소하여 사람 중심의 이벤트화한 예배, 사람을 기쁘게 하는 예배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예배를 축제로 이끌어 가는 것은 좋으나, 그 축제의 가운데에는 하나님이 계셔야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예배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므로 거룩하고 아름다우며, 경건하며, 진실한 것이 아니면 안 된다. CCM이나 복을 송을 예배 시에 함부로 부르지 말자고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현재 찬송가 공회에서 제작한 645곡은 적은 양의 찬송이 아니다. 우선 목사님들 장로님들은 CCM이나 복음 송을 부르되 젊은이들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선곡을 잘해서 부르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먼저 젊은이들에게 찬송을 많이 부르도록 가르쳐 주어야 할 것이다.
7) 악기 사용 시에 주의할 점
예배에 사용되는 교회음악은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Organ과 기악음악이요, 회중 찬송이요, 성가대 찬양인 것이다. 제사 때 음악이 사용된 것은 율법시대 즉,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명령으로 시행하게 된 것부터이다. 성경에도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고 또 나팔을 불었다고 했다.(대상 13:18, 대상 25:6, 대하5:12 등)
그런데 문제는 다양한 악기를 사용하는 것은 좋으나 어떤 악기를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예를 들면 통기타로 연주하는 것과 클래식 기타로 연주하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악기가 많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몇 개 안 되는 악기라 할지라도 아름다운 화음이 되게 연주해야 한다. 불협화음으로 된 시끄러운 음악은 하나님께서도 시끄럽다고 하실 것이다. 특히 수 십 가지의 악기로 북을 쾅쾅 울리면서 어지러울 정도로 소리높이 연주하는 음악은 자제해야 한다. 악기 소리가 너무 크면 찬송의 내용이 악기소리에 묻혀 전달되지 않아, 악기소리가 위주인지 찬송 내용이 위주인지 모를 때가 있다.
8) 찬송할 때의 주의할 점
(1) 회중들
① 너무 느리거나 빠르지 않게 작곡된 빠르기로 부를 것(Tempo). 너무 빠르면 급한 일이 있어 대충 끝내려는 느낌이 들고, 너무 느리면 힘이 없고 처지기 때문에 억지로 부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② 힘차게 큰소리로 불러야 한다.
③기쁨으로 불러야 한다. 찬송은 “즐거이 노래하자”라고 했다. ④모든 찬양은 수직 상향적이어야 한다. 또 원칙적으로 일어서서 불러야 한다.(아멘으로 화답한다)
⑤찬양대가 찬양을 할 때도 회중들은 비록 입으로는 소리를 내지 않지만 찬양대와 함께 부 르고 있다는 자세로 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⑥찬양이 끝난 후 박수를 치는 것은 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본다. 찬양은 일반 세속적인 노래와는 달라, 회중이 찬양에 동참할 수 있을 때 진정과 신령으로 드리는 찬양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찬양이 끝난 후 박수를 친다든가, 잘 불렀다고 한다면 이는 곧 자기가 평가하는 입장이 되고, 자기가 감상한 입장이 되고, 자기가 부르고 나서 참 잘 불렀다고 자화자찬한 입장이 된다. 찬송은 찬송으로 끝나야 하는 것이지 누가 더 잘 불렀느냐를 평가하는 일은 진정한 의미로 찬송을 드렸다고는 볼 수 없다. 인도자도 찬양이 끝났을 때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칩시다.’ 정도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⑦ 찬양 후에는 ‘아멘’으로 화답해야 한다. 이는 나도 찬양대와 함께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다는 뜻이 된다.
(2) 찬양대
① 통성기도를 돕기 위한 배경찬송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 이것은 찬양으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분위기 조성을 위한 것이 된다. 이것은 입회송이나 기도송, 폐회송과는 다르다.
② 기존 한국 찬송가 공회에서 발간하여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찬송가(645장)를 째즈나 팝 형식으로 편곡해 부르지 말아야 한다. 찬송의 본디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과 거룩함을 떨어지게 하기 쉽기 때문이다. 지금 교회에서 부르고 있는 찬송가는 수백 년에 걸쳐 추리고 추려서 전해 오는 곡들이다. 멋대로 편곡을 하거나 멋대로 코믹하게 부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찬송은 우리가 감상하기 위해서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곡은 작곡된 대로 그대로 불러야 한다.
③찬송을 아무 의미 없이 반복해서 부르는 행위이다. 예를 들면 기도 순서 맡은 자가 도착하지 않아 그를 기다리기 위해 찬송 몇 절을 더 부른다든가, 찬송을 부르면서 좌석을 정리한다든가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④성가대원은 회중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자세로, 또는 회중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불러서는 안 된다.
⑤회중들도 찬양대가 부르는 찬양곡을 감상하는 태도를 들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그 찬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 아니라 일반 음악 감상과 같이 되어 버린다.
⑥외부에서 온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찬송을 불러서는 안 된다. 또 앞에 나와 찬송을 하는 사람이 회중들에게 인사하는 것도 합당치 않다. 왜냐하면 잘 들어달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⑦찬송과 찬양은 가사에서 많은 은혜를 받는다. 가사와 곡이 어우러질 때 은혜가 배가 되는 것이다. 찬송이나 찬양을 부를 때에는 가사가 잘 전달되도록 불러야 한다. 아름다운 음을 고르기 위해 애쓰다 보니 가사는 전달이 안 되고 멜로디만 들리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가사가 없는 찬송이 되고 만다.
10) 잘못쓰기 쉬운 용어들
①찬송이나 한 장 부릅시다. →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시다.
‘부른다’는 말에는 드림의 기능이 없다. 이는 ‘노래를 부른다.’ 등에 쓰이는 말로 수평적인 관계 즉 혼자 위로를 받기 위해 부르거나 누구에게 들려주기 위한 행위 인 것이다. 찬송은 상향 수직적인 드림의 행위이다. 또 ‘찬송이나 한 장 부릅시다.’는 마치 시간이나 때우든지 아니면 심심하니 찬송이나 불러보자는 느낌을 준다. 따라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시다.’로
②준비 찬송하겠습니다. → 예배드리기 전에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겠습니다.
이 말도 자칫 예배를 드리기 전에 분위기를 조성하고, 시간을 때우려는 느낌을 준다. 물론 예배를 드리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고 집중하기 위해 적합한 것이 찬송이라는 데는 누구나 다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준비 찬송합시다.”는 마치 “준비기도 합시다.”와 유사하다고 하겠다. “준비 찬송합시다.”라고 말하기보다는 “예배드리기 전에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겠습니다.” “다 같이 찬송하시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 바른 사용법이라고 본다. 이런 것은 “예배 보러 간다.” 보다는 “예배드리러 간다.”로 해야 옳은 것과 같은 이치이다.
③찬양예배는 주일 저녁예배로
주일 저녁에 드리는 예배를 찬양예배라는 용어를 많이 쓰는데, 이 말은 바른 말이 아니다. 찬양예배란 예배를 드리되 특별히 찬양이 주가 되는 예배를 말한다. 즉 음악이 주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로, 설교나 기타 몇 가지 예전이 생략되거나 축소되고, 주로 찬양으로 이끌어가는 예배를 말한다. 예를 들면 1부는 간단히 예배드리고, 2부에 가서 찬양으로 드린다든지, 아니면 1,2부로 나누지 말고 설교를 짧게 한 후에 찬양을 넣어 찬양이 주가 되게 한 후 축도로 끝나게 하는 예배다. 따라서 찬양이 주가 되지 않을 때에는 ‘수요예배’라든지 혹은 ‘주일저녁예배’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적절하다.
④성가대 → 찬양대
우리 한국 교회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전담한 찬양대를 최근에 ‘성가대’로 많이 부르고 있다. 이 말은 출판사들이 흑인영가와 복음송을 합하여 출판하면서 [성가곡집]이라 부른데서 보편화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1960년대까지 우리 한국 교회는 찬양대라는 이름이 통용되었고 성가대라는 이름은 없었다.
성가라는 말은 불교를 비롯하여 모든 종교에서 부르는 노래를 뜻할 수도 있으므로‘찬양’이라는 용어를 써서 성경의 정신과 우리의 고유한 이름인 ‘찬양대’로 바꾸어 부름이 타당하다.
⑤찬양 한 곡 듣고 → 찬양 한 곡 드리고
TV나 라디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들이 흔히 쓰는 말로 “찬양 한 곡 듣고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라고 하는데, 이 말은 찬양을 라디오 방송을 듣거나 TV를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노래라는 인상을 준다. “하나님께 찬양 한 곡 드리고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로 쓰는 것이 옳다고 본다. 또 찬양을 들려준다고 하면서 복음송을 들려주는 일이 많이 있는데, 이는 찬양곡과 복음송을 구분하지 못한데서 온 것이다.
⑥특송을 부르겠습니다. → 찬양을 하겠습니다.
특송이란 특별찬송의 줄인 말인데, 찬양은 어느 것이나 똑같은 것이지 어느 것은 특별 찬송이고 어느 것은 보통 찬송인 것은 없다. ‘찬양을 하겠습니다.’로 말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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