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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기획연재 -미국의 여성 불교 >
가장자리에 서 있는
서구 여성 불자들의 현대적 시각들(3)
[Buddhist Women on the Edge: Contemporary Perspectives
from the Western Frontier, Edited by Marianne Dresser,
North Atlantic Books, Berkeley, CA. 1996]
서평자: 주 현 (뉴져지 드루대학에서 불교심리학 전공, 현재 스토니부룩 대학에서 불교학 강의)
Part 3-1
이 책은 메리안 드레서(Marianne Dresser)가 삼십 명의 서구 여성 불자들이 쓴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이 책은 필자들 각각의 삶의 이력을 드러내기보다는, 본래의 여성성 안에서는 불교가 어떻게 이해되고 수행되었으며, 또한 그에 따른 문제점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불교의 가르침, 철학, 윤리, 심리, 종교성 등을 거론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의 서평도, 번역의 미흡함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이 책을 직접 읽는 시간이나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작은 배려와 함께, 필자들이 쓴 각각의 글의 핵심적인 내용을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 정리하여 알리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지난 5월호(Part 1)와 6월호(Part 2)에 이어, 이번 호에 세번째의 Part 3를 끝으로 이 책의 소개를 마친다.
(8월호로 이어집니다)
앤 타이히(Anne Teich) - 개척자 불교(Frontier Buddhism)
필자: 앤 타이히는 1975년부터 불교를 배웠고 캘리포니아 보울더 크릭에 있는 타웅풀루 카바-아예 사원(Taungpulu Kaba-Aye Monastery)의 창립 회원이다. 1990년 캘리포니아에 있는 Institute of Integral Studies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녀는 "사막에서 꽃 피우기: 야생화 같은 타웅풀루 사야도 스님의 좋아하는 가르침들"(Blooming in the Desert: Favorite Teachings of the Wild-flower Monk Taungpulu Sayadaw)의 편집인이다.
앤은, 자신의 스승이고 현재 생존하는 가장 뛰어난 여성 불자 중 하나인, 리나 써카(Rina Sircar)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인사말로 이 글을 시작한다. 테라바다 불교 전통이 미국에 정착하게 된 것은 1973년부터 리나의 스승이고, 자신의 법사인 존사 타웅풀루 타우야 카바-아예 사야도(Venerable Taungpulu Tawya Kaba-Aye Sayadaw)의 지속적인 노력과 축복 덕분이었다. 스승에 의해서 비사카
(Visakha)로 불린 수석 여성 불교 수행자인 리나는 십계를 받았고, 교수이자, 명상 교사, 그리고 치유자이다.
*성자를 만나다: 앤은 어렸을 때부터 여러 종류의 종교적인 현상과 신비함에 매혹되었고, 그러한 영적인 도량은 지속하여, 열한 살 때 성 폴 루터학교의 선생님이 오직 루터교 신자만이 사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했을 때 앤은 손을 들고 질문했다. "중국에 있는 모든 사람은요?" 그리고 버스 안에서,
가톨릭 학교 학생들이 오직 자기들만이 천국에 간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 후 해가 갈수록 그녀의 불안감은 점점 더 커지고, 앤은 눈 감고 늘 생각하기를 중국인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이고 왜 하느님이 그들을 천국에서 제외하게 되는지 궁금했다. 대학 졸업 후, 그녀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동양학 학교에서 동양철학, 심리학, 명상, 그 외 여러 전통의 불교와 동양 의학 등을 공부하였고, 1975년에는 리나 써카와 함께 상좌부 불교(Theravada)와 염처선(satipatthana mindfulness meditation) 과목들을 수강했다.
타웅풀루 카바-아예 사원
앤에게 영적 생활이라는 개념은 살아있는 성인을 만나고자 하는 은밀한 염원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나타난 그러한 성인은 바로 미얀마 숲속 비구이자, 그녀의 법사인 존사 타웅풀루 타우야 카바-아예 사야도(Venerable Taungpulu Tawya Kaba-Aye Sayadaw)였다. 사야도를 만났던 누구도 그가 비상한 존재였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의 몸은 아무런 긴장 없이 단련되어 있었고, 자애심을 발산하며 매 순간 염처선 수행을 하고 있었다. 아무도 그가 영적 성취의 절정에 있었고, 이 세상을 초 현세적인 내면세계에서 보고 있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스승 타웅풀루는 우리에게 고통받는 존재의 수레(bhavachakka)를 타고 가지 말고, 진리의 수레(dhammachaka)를 타고 갈 것을 가르쳤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그와 연결하는 방법이었다. 그와 함께하면, 염려가 사라졌고, 시간은 정지했으며, 평화의 향기로운 액체가 전신에 퍼져 나가는 것을 느끼게 했다. 그가 카바-아예(Kaba-Aye, "world peace")라는 명칭을 부여받게 된 것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그는 그 자신의 가르침에 대한 산 표본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평화는 내적인 평화에서 시작하고, 내적인 평화는 관대함, 선행 그리고 명상하는 삶에서 온다고 사야도는 가르친다. 사야도에게 영적 진보의 근본적인 요소는 추진력이고, 추진력을 잘 활용하면 아무리 간단한 수행 일지라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五戒)만을 수지(受持) 하더라도 헌신적인 수행자는 성인의 첫째 반열인 수다원(sotapanna)과에 들 수 있고 천상에 태어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염처선 수행을 강조하며, 심지어는, 아주 조금이라도 염처수행을 하는 삶은 염처수행 없이 100년 사는 것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말한다.
붓다 사후 직후에 시작된 아라한의 이상(理想)과 생사윤회에서 벗어나 마지막 해탈을 이루는 일래과(一來果, 욕계에 한 번만 더 태어날 사다함)의 목표에 대한 비판은 대승의 출현을 예견했다. 불멸200년, 아라한의 이상은 주변의 다른 사람의 고통은 돌보지 않고, 자신의 깨달음만을 구하는 이기적인 것으로 간주하였다; 즉, 열반의 깨달음은 하나의 도피이고, 영원한 평화로운 곳으로 가기 위하여 고통받는 세상으로부터 떠나는 자비심 없는 행로로서 보였다. 탐진치 삼독의 박멸 자인 아라한은 좁은 의미의 깨달음을 찾아 나서는 초기불교의 원형이 되었다. 테라바다 불교 수행을 하는 열정적인 미국 수행자들에게 "바로 이번 생애"에서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이기적이건 아니건, 매우 어려운 일이고, 또한 해탈의 심리적 과정으로 방석 위에 앉는 것이 필수적이기는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도 몇 년 걸리지 않았다. 이것은 새로운 발견이 아니어서 타웅풀루 사야도는 늘 수행자들에게 아라한과(arahatship)가 아닌, 성인의 첫째 단계인 예류과(stream entry수다원)를 목표로 할 것을 권고했다. [필자 주: 이것은 해탈의 네 번째 단계 중 첫 번째인 하위 세계에 더는 태어나지 않는 예류과(sotappana)를 말한다. 이미 이 단계에서는 늦어도 일곱 번의 환생 후에
는 열반의 마지막 성취가 보장되기 때문에 그것을 예견하여 첫 번째 열반이라고 부른다. Ledi Sayadaw, Manual of Insight, Kandy, 1961] 타웅풀루 사야도는, 끝없는 환생의 단계로부터 겨우 일곱 번 생만 남아있는 예류과 단계로 넘어가는 것은 무거운 짐을 지고 가던 사람이 갑자기 파리 크기로 되는 것에 비유된다고 말한다.
타웅풀루 사야도
불교 문화에서 공덕을 쌓는 행위가 많아지고 보살의 이상이 널리 퍼짐에 따라, 위대한 지혜의 화신인 보살은 다단계적인 영적 이상을 나타낸다. 보살의 이상에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대승 전통에서는 모든 중생을 구제할 때까지 열반의 문밖에 머물러, 고통받는 중생들을 오랫동안 도울 것을 보증하는 서원을 한다. 테라바다 전통에서는 보살이 paramis라고 불리는 특별히 열 가지 영적 이상을 완성하여 마지막 환생이 장래의 붓다로 이루어진다. [주: 자타카에 나오는, 불교의 깨달음으로 이끄는 열 가지 이상: 보시(布施 generosity), 지계(持戒 morality), 인욕(忍辱 patience), 정진(精進 energy), 선정(禪定 contemplation), 반야(般若 wisdom), 방편(方便 skillful means), 원(願 vow), 역(力 spiritual power), 지(智 knowledge)] 타웅풀루 사야도를 만나면서 앤은 초기불교 교리의 살아있는 가르침의 본보기를 보는 것 같았다; 깨달음의 상태는 텅 빈 것이 아니고 가득 찬 것이며, 원숙한 수행 인의 마음은 칠각지(Seven Factors of Enlightenment)와 사무량심(Four Illimitables)으로 가득차 있는 것을 알았다. 이러한 숭고한 정신상태는 끝이 없고, 신성한 특성을 발하는 사람은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 마치 햇볕이 대지에 스며들어 땅을 덥게 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서 "무량심”이라고 불린다. 영적 완성의 삼차원적인 상태에서는 산만한 사고나 비판적인 토론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고, 이러한 완성에서 나타나는 시각, 냄새, 소리는 우리 마음의 무한한 경지를 확인시키는 기억으로 영원히 각인된다.
*승가 기반을 건립하다: 미국에는 테라바다 불교의 도래와 더불어 소승, 대승, 금강승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불교의 원리는 생태학, 여성학, 호스피스 사업, 그리고 정치 활동 등 다양한 사회 운동 안에 실재하는 힘으로, 서구과학과 치유 인술(healing arts)에 영향을 주었다. 서구에서의 불교는 다년간, 헌신적으로 공부하고 수행해 온 수천 명의 미국 학생들에 의하여 그 기반이 완성되고 있다. 앤은 그러한 학생 중에 하나로, 다른 불자들과 함께 아주 거창한 방법으로 서구불교의 기반을 세우며 깨달음을 추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들은 집과 건물들을 사서 명상실, 사리탑 등을 만들고, 수련센터를 세웠고, 법문들을 듣고, 용맹정진과 수계식으로 공부를 보강했다. 또한, 독송하는 법도 배우고 의식도 참여하고, 가르치고 출판하고, 기금도 모집하였다. 단기간 내에 많은 것을 이룬 것처럼 보였다. 앤과 수련생들은 불교를 배우면서 깨달음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불교 수행의 창립 세대로서 감격 속에서 미국 불교단체를 창출해냈고, 앤은 이러한 일들이 단지 문화적인 성취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하는 일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수행의 공덕을 쌓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캘리포니아, 보울더 크릭(Boulder Creek, Calif.)에 1981년 건립된 타웅풀루 카바-아예 사원 (Taungpula Kaba-Aye Monastery)은 미국에 있는 서구인을 위하여 세워진 가장 초기 사원 중 하나다. 해가 지나면서, 몇몇 소수의 아시안과 미국 학생들이 비구 또는 비구니가 되어 이곳에 머무르기도 했다. 또한, 매사추세츠, 베리(Barre)에 있는 IMS(The Insight Meditation Society), 캘리포니아, 우드에이커(Woodacre)에 있는 SRMC(Spirit Rock Meditation Center), 그리고 서구 불교 교단 신도회(the Friends of the Western Buddhist Order) 등은 서구 신도들에게 문화적인 개입의 부작용 없이 테라바다 가르침을 전파했다; 재가 스승들이 강의와 함께 수련과 명상을 지도하였고, 때때로 방문하는 승려들도 강의를 함께 분담하였다. 불교 수행자들의 전 세대는 서구 종교역사에 독특한 장을 추가함으로써, 이러한 형태의 진화는 민족지학적 (ethnographic)으로 흥미 있는 광경을 계속하여 연출하였다.
*기반의 추락: 스승 타웅풀루 사야도와 리나의 지도로 그들의 계획은 테라바다 전통의 숲속 사원 건립에 초점을 맞췄다; 상주하는 승려들과 다양한 사람들의 지원으로, 정기적으로 열리는 축제에 많은 방문객이 왔고, 개인적인 명상이나 수계를 받기 위하여 학생들도 찾아왔다. 따라서, 타울풀루 사원은 불교 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기부자들의 기반이 되었다. 11년째 되는 해에, 사원 내에서, 일단의 미얀마 지역 사회 회원그룹이 승려들을 돕겠다고, 미국인들 모르게, 그들만의 그룹을 따로 형성하였고, 그해 가장 큰 축제가 있을 때, 그들의 테이블을 만들고 모금을 시작했다; 그리고, 행사가 끝난 후에도 모금한 기부금을 사원에 돌려줄 것을 거부했을 때, 모든 나머지 사원 멤버들은 미얀마 그룹의 생각이 따로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러한 일로, 주지를 비롯한 연장자 승려들과 젊은 승려들, 그리고 일단의 지지하는 이사회 신도들 사이에서 생긴 혼란과 불신은 노여움과 대결로 치달았고, 마침내 주지는 스승 타웅풀루 사야도를 밀어내는 쿠데타를 시도했고, 그 후 몇 달은 사원 안에서 긴장이 맴도는 여러가지 사건들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이 몇 달 동안 앤의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은 "만들기는 어렵고 부수기는 쉽다"는 것이었다. 기부금은 급감했고 축제행사에 참가자도 잃었다. 이
러한 위기 속에서도, 리나 써카는 흔들림없이 스승 타웅풀루 사야도의 서구 수련생을 위한 숲속 사원 건립 당시의 비전을 제시한다; “미얀마에서 온 승려들은 잠시 머물 뿐 대부분은 미국에 머물지 않고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이 나라에서 미국 승려가 부처님 가르침을 받들어 이어 갈 것이고, 외부의 먼 곳에서 온 사람들은 실제로 많은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이에 이사회는 보수적으로 반응하여, 그들과 일련의 회의를 거쳐 결국 미얀마 그룹은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으로 옮겨갔다.
사원을 괴롭히는 문제는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고,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경우는 미얀마의 정치적 여건 때문에 자기들의 나라로부터 추방되어 미국에 정착하게 된 소수 난민으로서 직면해야 하는 문화, 특히 불교와 관련된 심리적 갈등의 표출이기도 했다. 나라 잃은 좌절감을 안고, 새로 시작하는 미국 땅에서, 그들의 삶이 거의 전적으로 불교 사원에 의존하고 있는 미얀마인들에게, 특히 테라바다 전통의 초심자들인, 미국 백인들이 사원에서 결정권을 갖고, 재정을 담당하고, 불사를 기획하는 것은 그들에게 분명히 뭔가 잘못된 것으로 보였다. 또 다른 이유는, 아시아 사원은 그들의 승가 율법에 명시된 대로, 승려의 지역이고, 매사를 그 율법에 맞춰 운영하는 것이 그들의 특권이다. 따라서, 여성 공동창업자를 포함한 재가 신도 이사회에 의하여 지배되는 이러한 사원 형태는, 마치 “세입자” 같이 느껴지는 승려들이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넘기 때문이라고 앤은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형태의 사회적인 분석도 이 사건에 대한 앤의 반응을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당혹은 격렬한 분노로 변했고, 앤는 자책했다. 권위주의와 목사와 신도단체의 위선적 행동, 종교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물질주의, 교회를 살찌우고, 영적인 모든 것을 타협하는, 종교 조직을 피해 왔던 앤이 아닌가? 그녀에게 제일 극심한 타격은, 지금 자신이 그와 같은 조직의 사무장이라는 것과 이렇게 비도덕적인 사건 뒤에 몇몇 승려가 일을 꾸몄다는 사실이었다. 앤은 탄식한다, “이 같은 가부장제를 다시 만나게 된다니…” 스승 타운풀루 사야도를 처음 만난 후 그의 숭고한 특성을 천진난만하게 모든 다른 승려에게 계속하여 투사하고 있었다. 보통 가부장적인 형태는 균형 잡힌 깨달음의 상태가 없을 때만 나타나는데, 스승 사야도는 항상 그러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그녀는 단지 입고 있는 승복만으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있는 이기적이고, 정치적인 승가의 구성원을 만났을 때의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몇 달에 걸쳐서, 깨달음으로 나아가지 못한 증거인, 자신의 우쭐대던 분개심 그리고 상처뿐인 자부심은 앤 자신에게 말하고 있었다, "개척자여 잘 가시오(Adios, frontier)."
앤은 다시 가르침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생각과 느낌 일어나고 가라앉고…온 세상이 들고 나고...중도의 가르침이 그녀의 가슴속에 리듬으로 두드렸다; 의기양양-실망, 노력-실패, 의심-신뢰, 열망-낙담, "무엇이 일어나는지 한번 보자." 가끔 스승 타웅풀루 사야도가 즐겨 말씀하시던 가르침을 떠올린다; "참을성보다 더 수승한 수행은 없다. 그것은 가장 좋은 백단향 나무(Sandalwood)부터 더러운 악취 나는 시체까지 모든 것을 태우는 불처럼, 이의 없이 아무 말 없이 인내를 수행하는 것이다." 앤은 독백한다; 어찌 되었든 공동체 안에서 영적인 삶과 일은 상호 연관성 있는 삶의 총괄적이고 객관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안다; 만약 비구들과 비구니들이 정직하게 수행하면서 자신들의 후원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면 출가승과 재가 신도 사이에서 강한 영적 공생관계(spiritual symbiosis)가 형성된다. 그것은 이루기도, 유지하기도 어려운 섬세한 균형에 바탕을 두고 있어, 지금 현재 미국의 어느 커다란 수행 단체도 해내지 못하고 있다.
[가르침] 뿌리 내리기: 앤은 불교가 기독교의 서구사회로 들어오면서, 무아와 열반의 철학적 의미가 받아들여 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어서 서구인들은 아직도 무아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본다. 한편 초기 테라바다 불교의 심리-윤리학적인 체계인, 아비담마(Abhidhamma)는 서구 수행자들에게 아직 제대로 연구되지 않은 변형 가능성을 제시하는데, 업 사상, 환생, 그리고 연기 사상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아비담마는 엄격하게 종교적이라기보다는, 마음은 광대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매우 분석적이고 통합된 체계이다. 아비담마의 가르침은 인간의식의 부패한 상태에서부터 숭고한 상태까지의 전체의 모습을 제시한다. 팔리 경전의 세 번째 부분으로 기록되어 있는 아비담마 논장(Abhidhamma-pitaka)은 철학적이고, 심리적, 윤리적, 그리고 영적인 체계이며, 서양에는 비견할만한 인식 체계가 없다. [주: 초기불교의 팔리 경전은 경장(經藏, Sutta Piṭaka), 율장(律藏, Vinaya Piṭaka), 논장(論藏, Abhidhamma Piṭaka)의 삼장(三藏, Tipiṭaka)으로 구성되어 있다]
초기불교 경전에 나타난 붓다의 가르침 사명은 괴로움의 선포이고, 그것에서 벗어나는 방법의 제시이다. 괴로움을 벗어나기 위하여, 붓다는 염처선 수행(mindfulness)과 명확한 해득(clear comprehension)을 통해서 분별하는 마음을 다스리고, 궁극적으로는 삶과 죽음이라는 윤회의 궤도를 완전히 벗어나는 길을 가르쳤다. 그런데도, 붓다는 그의 완전한 열반 후에도, 사십여 년간, 고결한 삶의 표본으로서 이 세상에 더 남아 있었다. 불교적인 견해로 볼 때, 고결한 삶이란 윤리에 바탕을 둔 심리학이다; 이것은 불교 수행의 초석이고, 미국에서 초기불교 운동을 괴롭혔던 상당한 실망에도 불구하고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다. 그 실망은 공(空) 사상과 불이(不異) 사상 등 철학적 가르침을 잘못 유용하여 제자와의 관계에서 자신들의 권위를 남용했던 스승들의 행태에서 비롯되었다. 앤은 불교 가르침이 자기중심적인 목적으로 부당하게 이용되는 두 가지 예를 든다; "열반과 생사는 하나이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하든지 아무 상관 없다”라든지, "스승은 진리의 화신이다; 그러므로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해도 비난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약점을 이용하기 위하여 자신의 권위를 사용하는 것은 가장 오래되고, 흔히 볼 수 있는 착취의 한 형태이다. 초기불교의 심리학은 직접 체험을 통하여 얻어지는 통찰(Insight)이라는 특별한 “앎”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칼라마 경(kalama Sutta)에서 붓다는 단지 전통이나, 경전, 심지어는 믿는 스승에게서 나온 교리라도 액면 그대로 믿지 말라고 충고하며, 다음과 같은 판단의 기준을 제시한다: 탐욕이나, 혐오, 환상, 그리고 어리석음으로 기인한 행동이 행복으로 혹은 불행으로 이끄는가 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올바른 판단은 우리 자신의 경험에 있으며, 개인의 경험은 심리적인 통찰을 얻는 수단으로써 붓다에 의하여 높이 평가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어느 기간 동안 일련의 환경에서 경험해 보면 그 사람의 진실성, 일관성, 지혜, 성격 등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앤은 불교가 다음 세대에 기여하는 것은 품위(grace)가 아니고 자애로움((graciousness)이며, 그것은 독단으로 질식시키는 윤리가 아니고 심리학적인 통찰에 의해서 제공된 윤리이며, 균형을 가진 행동 양식이라고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앤은 불교의 가르침과 그녀의 경험을 통해서 희망하고 있다; 이미 세워져 있는 모든 불교도의 안식처가 수행의 주된 목적인 평화와 절제, 고요함, 그리고 청정함을 수련할 수 있는 명상의 장소이자 치유의 환경으로서의 신성한 공간을 제공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미국에 사는 여성 불교도로서 우리 자신, 가족, 공동체뿐만 아니라 위기에 처한 우리의 대지(Mother Earth)를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우리의 대지가 붓다를 목격한 것처럼 우리가 지금 이 대지를 목격해야 한다; 이야기하는 가운데 침묵을 알아차리고, 움직이는 가운데 고요함을 알아차리며, 그리고, 명상 속에서 관찰하면서…”
쇼산 빅토리아 오스틴(Shosan Victoria Austin) -
“스즈키 여사의 선의 정신”(Suzuki Sensei’s Zen Spirit )
필자: 쇼산 빅토리아 오스틴은 25년간 선 수행을 해 왔고, 그중 20년 동안은 샌프란시스코 젠 센터에서 했다. 쇼산은 젠타쭈 리차드 베이커(Zentatsu Richard Baker)로 부터 비구니계를 받았고, 타싸하라 젠 마운틴 사원(Tassajara Zen Mountain Monastery)에서 소전 멜 와이쯔만 (Sojun Mel Weitsman)로 부터 주지로 임명받았다. 그녀의 수행을 도왔던 스승들로는, 스즈키 선생(Suzuki Sensei) 외에, 텐쉰 앤더슨(Tenshin Reb Anderson), 쉬리 이엔가(Shri B.K.S. Iyengar), 그리고 쉬리마트라 이엔가 (Shrimatra Geeta Iyengar)를 꼽을 수 있다. 쇼산은 현재 젠 센터의 책임자로 요가를 가르치며 법복도 만들고 있다.
쇼산 오스틴은, 1971년 작고한 스즈키 선사의 미망인, 스즈키 여사를 1976년에 처음 만났다. 그녀에게 스즈키 여사는, 오륙십대 정도의 자그마한 여성으로, 아침에 정원에 나가 새나 꽃에 인사하고, 말없이 여기저기 흐트러진 커피컵들을 치우고 하는 정도의 여성으로 보였다. 스즈키 여사는 스즈키 선사를 일본에 있는 그의 사찰인 린소 인(Rinsoin)에서 만나 그곳에서 같이 일을 하다가 결혼하게 되었다.
1959년 스즈키 선사가 샌프란시스코 소토젠 사찰에서 소코지 주지에 임명되었을 때, 그리고 임기가 연장되었을 때에도 함께 있었다. 스즈키 선사는 미국에서 많은 미국 초심자 학생들에게 좌선을 가르쳤고, 1960년대 후반에는 더욱 집중적인 수행을 이루고자, 학생들과 함께 그들 소유의 건물을 마련하기도 했다. 비록 스즈키 여사의 대부분의 가족은 일본에 있었지만, 스즈키 선사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녀는 젠센터에 머물렀다.
쇼산 빅토리아 오스틴
쇼산 오스틴이 스즈키 여사를 만났던 해에, 그녀는 알라야 스티쳐리(Alaya Stitchery)에서 젠 센터에 쓰이는 방석과 법복 만드는 사업을 하고 있었고, 쇼산과 그녀의 학생들은, 특히 전통적인 재봉 기술에 초보자들이었다. 어느 날, 스즈키 여사는 미국사람들은 모두 바느질을 거꾸로 한다고 지적하며, 젠 센터 법당에서 재봉 클래스를 열어 쇼산과 학생들에게 한땀 한땀 교정해 주며, 친절하게 가르쳤다. 스즈키 여사는 1980년 후에는 그녀의 눈이 침침해져서 재봉 클래스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고, 대신, 쇼산에게 다도(茶道)를 가르쳤다. 다도 의식의 세밀하고 완벽한 과정은, 쇼산의 왼손잡이, 어색한 동작, 생소한 예절법규, 그리고 무릎의 통증까지, 외국인으로서 극복해 나가기에는 인내의 한계와 좌절감을 느끼게 하였다. 그런데도, 쇼산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태도를 고쳐나가면서, 18년 동안 스즈키 여사가 얼마나 참을성 있게 그녀를 지도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스즈키 여사가 쇼산에게 다도 원칙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차 의식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평온 그리고 세상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고, 거짓 없는 생각이라고 요약한다. 만남이 있을 때, 주인과 손님은 한 번의 유일한 만남을 성사시키기 위하여 함께 만들어야 한다; 마치 이번 생애에 걸쳐서 다시 또 만나지 못할 것 같은 특별한 만남처럼… 스승은 말하기를 ‘맛있는 차를 만들어라, 숯을 넣어 물을 끓이고, 꽃을 정돈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하라, 다른 비밀은 없다. 다도는 만족을 아는 길이다.”
실로, 이것은 일상의 삶과 다른 것이 아니고, 삶의 의미와 깊이를 더 가져오는 것이다. 이처럼 스즈키 여사는 선(Zen) 정신을 가르쳤고, 심지어 끓이는 물도 가르침의 미묘한 맛을 전해주고 있다. 미소 수프를 끓일 때도 그녀는 단순, 안정 그리고 우아함을 그녀의 매일의 삶에 불어넣고 있었다. 쇼산은 스즈키 여사의 일상을 전한다; 매일 아침 스즈키 선사에게 아침밥 일부를 올리고, 향을 사루고, 종을 세 번 울린 후 아침 식사를 끝낸다. 그리고, 밖에 나가 새와 인사도 나누고, 사람들도 만나고, 꽃도 손질하고, 또한 기공 수련을 하고, 일본 텔레비전 방송도 본다. 그녀의 모든 동작은 단순하고, 주객의 만남과 같은, 삶의 특별한 경우로 만든다. 쇼산은 이러한 정신과 관련된 선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보시오, 운문 선사가 주제를 던진다; 15일 전 일은 묻지 않겠으나 15일후의 일은 어떨 것인가? 자, 한 말씀 일러보시오! 운문 선사 자신이 대답한다; ‘하루하루가 좋은 날이오.”(벽암록, Blue Cliff Records, translated by R.D.M. Shaw, D.D. 1961).
스즈키 여사는 차를 대접하거나, 재봉 일을 하거나, 삶의 순간마다 스즈키 선사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롭게 불러일으킨다; “매일 매일은 그 자체의 과거이며 미래이고, 그 자체로서 절대적인 가치가 있다.” 쇼산은 스즈키 선사의, 외롭거나 단조로움을 의미하는 일본 문화 용어인, 와비(wabi)와 사비(sabi)를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엄격한 의미에서 와비와 사비는 주관적이거나 객관적, 단순하거나 복잡함의 어느 범주에도 속하지 않는 “실재”를 의미한다. 그것은 주관적이거나 객관적인 관찰을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완전하게 만들고, 간단하거나 복잡한 모든 것을 우리의 가슴 가까이 다가오게 한다. 와비사비의 세계에서는 한 방울의 이슬에서도 전 우주를 보게 한다. 그 세계에는 시도하는 것도 없고, 성취, 분노, 기쁨, 슬픔과 같은 형태의 어떤 마음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의 각각의 존재는 주관적으로는 자기훈련의 세계와 객관적으로는 순수하고 직접적인 이해의 세계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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