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게시판에서 병원 또는 대학에서 일하는 데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제가 경험은 별로 없지만 몇 가지 제가 겪었던 일과 주변에서 봤던 일들에 대해 얘기해볼까 합니다.
병원이나 의대에서 통계 관련 연구원 고용 형태는 보통 개인 연구원으로서의 고용, 개인 연구원이지만 소속이 한시적으로 있는 고용, 부서에 고용되어 일하는 경우 등이 있습니다. 박사는 경험이 없는 관계로 학사 또는 석사학위자를 기준으로 말하겠습니다.
우선 개인 연구원으로 고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병원의 의사 또는 의과대학의 교수 또는 연구교수 등이 연구과제를 따왔을 때 이를 같이 수행할 사람을 필요로 하여 뽑는 겁니다. 이런 경우 그냥 외부에서 자기 컴퓨터로 일해야 할 수 도 있고 설령 앉을 자리를 얻는다 하더라도 별도의 소속은 없고 4대보험같은 건 당연히 없습니다. 이런 경우 수행하는 과제에서 인건비를 받은 기록 정도만 자신의 경력이 됩니다. 임금은 사전에 정하기는 하지만 때로 과제에서 책정된 인건비 이상 받기 어려우며 때로는 원래보다 적게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게다가 통계만 하는 경우도 있고 돈관리에서 행사지원, 보고서작성 등 여러 일을 맡아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능력을 인정받고 존중하는 분을 만나면 논문에 이름을 같이 넣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돈을 받고 분석하는 이유로 저자에 포함시킬 필요가 없다 생각하시는 분들도 가끔 계십니다. 그래서 고용형태로는 가장 안좋습니다. 자신이 같이 학위과정을 하면서 학비를 그런 식으로 버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 학사급이면 월 150만원 내외이고 석사급의 경우 좀 챙겨주면 월 200만원이나 그보다 약간 작은 경우도 있고 이래저래 애매합니다. 제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중간중간 해왔던 게 그런 식입니다. 최근에도 비슷하고요. 물론 고용자의 기대치에 못미치면 언제든지 나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
두번째로 개인 연구원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학교 또는 병원 내 센터의 기간제 연구원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고용자가 해당 부서에 속하면서 특정 기간 동안(보통 1년 내외) 인건비를 지급할 과제를 가지고 채용하는 겁니다. 이때 앞에서 말한 경우와 차이가 있다면 산학협력단 같은 곳의 규정에 의해 4대보험(이것도 과제의 인건비에서 떼는 겁니다)을 의무적으로 하게 되고 최소한 과제수행 기간 동안 그 단체에 소속되었다는 경력을 남길 수 있습니다. 이것 또한 돈은 앞에서와 비슷하고 고용하신 분이 잘 챙겨주시는 경우 약간의 인상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보통 중,단기과제를 모아서 인건비를 주는 거라 기대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여러 과제에서 찔끔찔금 모아 받는 경우 참여율 등의 규정 위반사례가 있으면 자신이 일한 것과 상관없이 되돌려주어야 합니다. 단체의 회계처리 문제가 개인의 사정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겉으로는 과제수행을 감안한다고 하지만 일단 돈을 돌려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보통 문제가 생기면 규정을 스스로 찾아보고 대처하지 않은 개인의 책임으로 모는 게 우리나라 연구과제 처리의 현실입니다. 그리고 더이상 인건비 지원이 안되는 경우 과제종료 다음날로 소속이 아니기에 나가야 합니다. 미국 같은 데서도 대부분 이런 식이라고 들었습니다. 이러한 일도 잠깐의 경험으로 하고 1,2년 이상 안하는 게 좋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2015년부터 2017년 초까지 그런 식으로 일했습니다.
세번째로는 병원 또는 의대의 임상시험센터나 연구지원 센터에 고용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봉급이 앞의 경우에 비해 안정적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저는 경험이 없고 주변에 그런 일 하는 사람들에게 들은 게 전부인데 보통 연구지원, 임상시험 지원, 교육 등의 일을 합니다. 보통 1년 단위로 계약하고 계속 재계약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2년을 채우고 해고되고 다시 입사하던지 아니면 다른 길을 찾던지 하는 식입니다. 봉급은 위의 경우와 비슷하거나 더 많은 경우도 있는데 석사급 연구원이 처음 2,400에서 2,500만원으로 들어왔다가 시간이 지나고 연 3,000만원 정도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많이 받아도 월 400씩 받는 경우는 못봤습니다. 보통 그 이하이고 그정도 받는다는 건 일이 웬만한 회사 수준만큼 많다는 얘기입니다.
그외에 별도로 국립암센터나 오송의 질병관리본부에서 연구원을 뽑는 경우가 있는데 두번째와 세번째 형태에 가깝습니다. 이런 경우 자신이 다년간 재계약하면서 과제수행 능력을 인정받는 경우 운좋게 정규직 관리직 자리가 나면 지원해볼 수 있는데 그런 자리는 보통 박사급에 5년에서 10년 정도의 경력, SCI논문 1저자나 교신저자 5~6편 이상 등으로 자격조건이 센 편입니다. 해외에서 박사를 받은 경우 조금 가산점이 있는 것 같은데 그 경우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좀 여유가 있던지 아니면 그냥 저처럼 결혼이나 가정 포기하고 삶을 즐길 생각도 포기하던지 하면 모르겠는데 가급적이면 병원이나 의대에서의 일은 잠시 경험으로 생각하시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유학가기 전 준비를 위한 곳으로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경력이 유학 때 큰 도움이 되느냐 하면 글쎄요, 기본 성적이 좋지 않으면 경력이 있다 한들 별도움이 안될 겁니다. 몇 년 동안 월 200만원 내외로 지내도 그러니까 집장만 생각 없고 차 안타고 여행도 안가고 가정이고 결혼이고 관심없으면 살 수 있겠지요. 물론 우리나라 중소기업에서도 월 200이상 받기 위해 밥먹듯이 야근하고 주말근무하고 그런 곳이 태반일겁니다. 짤리면 갈 데 마땅치 않은 건 마찬가지고요. 그러니 열심히 하면 최소한 고용은 보장되는 공무원에 다들 매달리는 겁니다.
보건의학 통계 쪽에서 요즘 그나마 안정되고 봉급 인상이나 어느정도의 승진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은 심평원이나 공단입니다. 그런데 이 두 기관 모두 강원도 원주에 본사가 있으므로 지방에서 자취하거나 이사하면서 일해야 합니다. 박사급의 경우 자신이 경력이 좀 있다면 공단 빅데이터 운영실 전문위원 같은 걸로 갈 수 있는데 일하시는 분 중 의사 출신으로 입사한 몇몇 분은 연봉 8천 내외라고 들었습니다. 물론 그만큼 데이터분석 경험, SAS/R/DB관리능력, Python? 등에 대해 잘해야 하고 보건의학 쪽 내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제 얘기는 개인적 경험과 주변으로부터 들었던 사례를 기반으로 했기에 주관적이고 더러 틀린 내용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참고로만 하시기 바랍니다. 그 외에 식약청이나 환경 관련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저는 알지 못하므로 넘어가겠습니다.
첫댓글 1997-1998년 1년반정도 개인연구원으로 세브란스 의학통계학과에서 일했었는데 별로 바뀐게 없어보입니다. 저도 유학 경력때문이지요. 학교에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아마 admission 받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을겁니다. 그런데 유학 오기전 경험으로는 괜찮은것같습니다. 잘 모르는 상태에서 통계이론을 공부하는 것하고 데이터를 조금이라도 경험한후 통계이론을 접하는 것하고는 천지차이입니다. 그러나 열심히 일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우받는 만큼만 일하면 됩니다. 물론 거기로 돌아올 생각은 말아야겠죠^^
안박사님은 실력이 있었으니 도움이 되었으리라 짐작합니다^^ 저도 회사 그냥 갈까 하다가 성격에 안맞고 방황하면서 이렇게 되었는데 가늘고 길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ㅠㅠ
잘읽었습니다. 사실 정도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미국에서도 비슷하다고 볼수있습니다. 전에 제가 임상실험경험은 없지만 병원에서 일하던 사람 둘을 채용한적이 있습니다. 둘다 병원일이 싫어서가 아니라 나이가 40세에 가까워지면서 연봉이 일반 제약회사와 차이가 너무 나다보니 할수없이(?) 직책은 높지않지만 새직장을 찾아본거죠. 이제는 둘다 5년이상 제약회사경험이 생겨서 연봉이 괜찮을겁니다. 또 다른 한명은 물리학 박사인데 아인슈타인이 우상인데 40세가 넘도록 너무 연봉이 적어서 아주 초짜로 제가 채용했죠. 워낙 똑똑하다보니 금방따라하고 지금은 잘하고있죠. 진정한 과학자들의 질이좋은 삶의 터전이 있어야 하는데 안타깝죠.
매번 실력이 있다없다를 말씀하시는데 미국에서 자주 쓰는 말이 in the right place at the right time 인데 글쎄요 한국식으로 말하면 "때를 잘만나서 운좋게" 라고 해야하나요? 아니것 같기도 하고. 어쨋던 아무리 훌륭한 지식과 실력이 있어도 그것을 필요로하지않는 시대에 살게되면 불행한거죠. 요즘 교육방송에서 본것인데 과연 2050년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것인가인데, 아마 지금의 잘나가는 직업도 다 없어질 가능성도 많을것 같더군요. 앞으로 빨리 없어질 직업이 의사, 특히 수술전문의. AI가 훨씬 잘할테니까요. 어떤친구가 그러더군요. 미국에서도 앞으로 각광을 받을 직업이 직접 손으로 해야하는 plumber하고 electrician이라고.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세상은 때로 불공평할 때가 있어서 실력 외에 운도 많이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강성찬 한 20년전에 태어나셨으면 달랐을지도 모르지요. 저야말로 통계학 석사후 직업을 못찾다가 잠깐 동네 회사에서 programming을 한다는것이 30년이 넘어버렸는데 SAS회사와 제약회사가 잘되어가면서 제가 필요해진것이지 제가 절대로 잘났다고 생각해본적 없죠.
지방 생활이 답답한 게 단점이긴한데 식약처 통계 심사관도 업무는 잘 맞으실 것 같아요.
식약처 심사관은 박사급 또는 석사후 3년 경력이면 다급 심사관 자격이 되는데 연봉이랑 초과근무 수당 등등 감안하면 세후 삼백 정도 월급이에요.국가기관 계약직인것 생각하면 월급이 박한 수준은 아닌것 같고 인허가 관련 심사업무 하는 거라 나름 개인적으로는 보람도 있어요 ㅎㅎ 몇년 통계 심사관은 아예 공고가 안 났는데 최근에는 계속 공고가 의약품심사부나 바이오심사부쪽에서 나가고 있습니다..
그것도 괜찮네요. 좀 오래 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요.
@강성찬 심사관은 허가심사할 때 민원인이 내는 수수료 수입으로 운영되는거라 국책과제 연구원들보다는
안정적인 것 같아요. 국마다 다를 순 있겠지만 제가 있는 의료기기 쪽에서는 계약연장이 안되거나
잘리는 경우는 못봤어요.대부분 이직하면서 그만두시더라고요. 다음에 식약처 통계심사관 공고가
나면 이 카페에도 정보 공유하겠습니다 ^^
@Saemi 감사합니다^^
경험을 토대로 현실적인 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공부하고 있는 학생인데...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면서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