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예감 외2편
조용미
양귀비출옥 황금목단은 양귀비도 목단도 아닌 겹작약의 이름, 작약의 정체성에 양귀비와 목단이라는 혼란을 덧붙였다
꽃이 지고 나서 씨앗을 얻을 수 없다는 신비로움도 더한다
이런 이름을 붙인 자는 누구인가 작약이라는 공허함과 겹작약의 매혹은 질서가 아니었던 것
작약이 가고
목이 긴 물칸나가 여름을 기다리고 있다 분가루가 많은 보라색 꽃을 피워올리려고
큰가시연은 첫날 흰색의 건축을 세우고, 다음 날은 보라색을, 그다음 날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사흘간의 단호함으로 그 여름으로부터 벗어 난다
자신을 완성한다
여름의 저수지가 있다 물칸나 물수선 물옥잠 물양귀비 왜개연 남개연 물배추 물칼라 물아카시아를 품고 있는
큰가시연의 마지막 날은 곧 알게 될 젊은 여자의 죽음과 겹쳐진다 불행의 예감과 함께 여름이 시작되었다
기이한 풍경들
사막에서 안개가 일어나 공중에 숲 같기도 하고 나무 같기도 한 것이 나타나 가보면 없고, 호수의 섬들이 출몰하고 나무의 그림자가 2백 리에 걸쳐 펼쳐진 듯 보였다는 연행 길에 사로잡힌다
드넓은 평원이 호수처럼 보이려면 얼마나 많은 안개가 필요한 것인가 얼마나 많은 나무가, 아니 얼마나 많은 환상이 필요한 것인가
그곳을 지나간 사람들은 하나같이 환상을 말하였다 환상을 말하지 않은 자는 계주를 지나가지 않은 자이다 연행록의 글과 그림은 환상도 꿈도 아닌 그저 기이한 풍경이라 말할 뿐
기이한 풍경이 역사를 바꾸었다 기이한 풍경이 오래 나의 정신을 점령했다 기이한 것들이 자라나 손발이 되었다 기이하고 기이한 풍경이 우리를 신비롭게 했다 거기서 우리는 문득 태어났다
당분간
지루하고 괴로운 삶이 지속된다
집요하게 너는 생의 괴로움에 집중하고 있다
생의 아름다움에 완전히 매혹당했던 적 있었다
주전자의 뜨거운 물이 손등에 바로 쏟아지듯 고통과 환희를 느끼며 펄펄 뛰었다
여긴 생이라는 현장이다
이렇게 생생하므로 다른 곳일 수 없다
무서운 집중 앞에 미망과 무명이 사나운 개의 이빨 앞에 선 어린 아이처럼 뒤로 물러나기를 바란다
통쾌하다 비명을 지를수록 생은 더욱 싱싱해지고, 생생해지고
지루한 열정이 나를 지치게 한다
이 괴로움은 완벽하게 독자적이고 완벽하게 물질적이다
누구나 완벽하게 평화롭기는 어렵다 그래도
생의 괴로움에만 집중하는 순교자가 되고 싶다 아름답고 끔찍한 삶이 당분간 지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