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숙 시집 {남자들이여 출산하라} 출간
송영숙 시인은 1959년 대전에서 태어났고, 1993년 『시문학』을 통해 등단했고, 시집으로는 『할미꽃과 중절모』, 『벙어리매미』, 『선미야 어디 가니』, 『하마터면 사랑할 뻔했다』 등이 있다. 호서문학상, 시문학상, 올해의 시인상(월간시) 등을 수상했고, 현재 호서문학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충남 계룡산 자락에서 “내 방 책장 맨 위층은 최상급 시인의 자리/ 거긴 공기도 달라서/ 지존만이 오를 수 있는 봉머리다”([당신의 포지션])라는 시구에서처럼 최고의 시인이 되기 위해서 그의 무한한 시적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송영숙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인 {남자들이여 출산하라}는 ‘사랑의 시학’의 소산이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의 변증법을 통하여, ‘순수미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비켜라 바쁘다
뭐 그리 바쁘냐고
밥하고 빨래하고 애 낳으러 간다
숨어서 혼자 노는 남자들이여
우린 여기까지다
이제 그대들의 앞치마가 펄럭일 시간
연꽃무늬 이불 털어 하늘에 널고
나와서 밥하고 빨래하고 출산하라
입은 다물고 공손하게
튼튼한 팔뚝과 장엄한 종아리로
아기를 품어
배가 남산만 해지도록 키우다가
콩나물 사러 나올 때는
배꼽 볼록 나오게
얇은 티셔츠 한 장 잊지 말기를
---[남자들이여 출산하라] 전문
삼포세대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를 말하고, 오포세대란 연애, 결혼, 출산 이외에서도 내집마련과 취업을 포기한 세대를 말하며, 칠포세대란 희망과 인간 관계까지도 포기한 세대를 말한다. 삼포와 오포와 칠포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음화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세태 풍조이자 그 결과라고 할 수가 있다. 더 많이, 더 빨리, 돈에 대한 탐욕이 생산과 소비의 장을 다 움켜쥐고, 이제는 ‘고용 없는 성장’을 외치며 모든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다 빼앗고 말았던 것이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주축을 이루던 산업화의 단계에서 이제는 모든 생산과정을 전산화시키고, 그 결과, 컴퓨터와 로봇과 인공지능이 그 모든 일자리를 장악하게 되었다. 노동집약적인 산업현장에서 ‘고용 없는 성장’으로의 눈부신 발전은 소수의 자본가들에게 모든 부를 독점하게 만들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다 빼앗아 버린 ‘풍요 속의 빈곤’을 안겨주게 되었던 것이다. 오죽하면 우리 젊은이들이 연애, 결혼, 출산, 내집마련, 취업 등을 다 포기하고, 마치 바퀴벌레처럼 숨어 살게 되었단 말인가? 자본주의 사회는 소수의 부자들을 위하여 빈곤을 확대 생산하는 반인륜적인 사회이며, 컴퓨터와 스마트폰과 인정지능 등이 출현할수록 ‘나홀로 족’이 늘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공동체 사회는 붕괴되어가고, 미래의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우리 젊은이들은 어쩔 수 없이 바퀴벌레와도 같은 지하생활자가 되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송영숙 시인의 [남자들이여 출산하라]는 너무나도 과격하고 충격적인 여성해방주의자들의 외침 소리와도 같지만, 그러나 그의 [남자들이여 출산하라]는 시는 모든 꿈과 희망을 잃고 자포자기한 우리 젊은이들을 향한 최후의 경고장이라고도 할 수가 있다. 날이면 날마다가 공휴일이고, 숨어서 혼자 노는 젊은이들에게 일은 우리 여자들이 할 테니, 이제는 애를 낳고 그 아이들을 키우며 집안 살림을 하라는 것이다. 우리 여성들은 “비켜라 바쁘다/ 뭐 그리 바쁘냐고/ 밥하고 빨래하고 애 낳으러 간다”라는 시구에서처럼, 사무실에서, 산업현장에서, 거리에서 일을 하고, “밥하고 빨래하고” “애”까지 낳아 키우고 있으니, 이제 그만 빈둥빈둥 놀지 말고 집안 살림이라도 하라는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도둑질이라도 하라는 말이 있듯이, “입은 다물고 공손하게/ 튼튼한 팔뚝과 장엄한 종아리로/ 아기를 품어/ 배가 남산만 해지도록 키우다가/ 콩나물 사러 나올 때는/ 배꼽 볼록 나오게/ 얇은 티셔츠 한 장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송영숙 시인의 표제시인 [남자들이여 출산하라]는 무시무시한 익살이자 난처함의 유모어라고 할 수가 있으면서도, 소위 ‘나홀로 족’의 우리 젊은이들을 향한 최후의 경고장이라고 할 수가 있다.
결혼 지옥이라는 프로가 다 있지 뭐야 결혼이 지옥이라고 대놓고 말하는 꼬맹이들아 결혼이 우습지 암 우습고 말고//귀 좀 줘 봐 즐거운 결혼 따윈 없단다 놀던 아이들 중 용케도 엑스맨을 골라 곁을 나누어주는 거지 왜 있잖아 쿵 심장 떨어지듯 화끈하게 바닥으로 나동그라지는 거 그래 그것을 지옥이라 치자// 지옥은 새 옷 입고 처음처럼 가는 길// 희망을 가져봐 지루하지 않은 청룡 열차 이제라도 신나게 너의 그 애와 나란히 앉아 소리쳐봐 다 가져봐 찡긋 오늘 어때 ---[찡긋 오늘 어때] 전문
송영숙 시인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통해 그 무서운 복수심을 극복하고,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을 찾아냈고, 이 ‘사랑의 시학’을 통해 ‘순수미의 극치’를 이루어냈다고 할 수가 있다. [남자들이여 출산하라]는 무시무시한 익살이자 난처함의 유모어의 소산이지만, 소위 삼포, 오포, 칠포세대들, 즉, ‘결혼지옥’이라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이 세상에서 꿈과 희망을 찾아주고자 하는 우리 어머니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는 시라고 할 수가 있다. 그렇다. 그의 시, [찡긋 오늘 어때]에서는 “지옥은 새 옷 입고 처음처럼 가는 길”이라고 말하고, “결혼이 지옥이라고 대놓고 말하는 꼬맹이들”에게 너무나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이렇게 말한다. “귀 좀 줘 봐 즐거운 결혼 따윈 없단다 놀던 아이들 중 용케도 엑스맨을 골라 곁을 나누어주는 거지 왜 있잖아 쿵 심장 떨어지듯 화끈하게 바닥으로 나동그라지는 거 그래 그것을 지옥이라 치자”가 그것이고, “지옥은 새 옷 입고 처음처럼 가는 길// 희망을 가져봐 지루하지 않은 청룡 열차 이제라도 신나게 너의 그 애와 나란히 앉아 소리쳐봐 다 가져봐 찡긋 오늘 어때”라고 말한다. 결혼은 지옥이라고 말하지만, “지옥은 새 옷 입고 처음처럼 가는 길”이라는 잠언과 경구는 내가 최근에 읽은 가장 뛰어난 시구이며, 이 세상의 삶의 본능에 대한 옹호이자 그 찬가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옥은 새 옷 입고 처음처럼 가는 길”----. 이 잠언과 경구는 송영숙 시인의 ‘사랑의 시학’의 가장 깊은 핵심적인 주제이며, 그 ‘순수미의 극치’라고 할 수가 있다.
최초의 대서사 시인이자 최후의 대서사 시인이었던 호머의 인생관과 세계관은 무엇이고, 그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할 수가 있는 것일까? 인생관이란 우리 인간들의 삶의 안목을 말하고, 세계관이란 그가 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삶의 방법을 말한다. 호머는 요정 칼립소가 제안했던 영생불사의 삶도 거절했는데, 왜냐하면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유한한 인간의 삶을 옹호했기 때문이다. 또한, 호머는 무사안일 속의 행복한 삶도 거절했는데, 왜냐하면 이 세상의 삶은 어차피 수많은 고통과 그 고통 속의 삶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생불사의 삶은 전지전능한 신의 삶이지 인간의 삶이 아니었던 것이고, 또한, 이 세상의 삶은 고통 속의 삶이지 무사안일 속의 삶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호머는 그의 분신이자 전인류의 영웅이었던 오딧세우스를 통해서 우리 인간들의 삶을 옹호하고, 고통에 고통을 가중시키며, 그 고통 속의 삶을 살다가 갔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교만해질래 자신만만해져서/ 기고만장해져서 천하를 내려다볼래/ 눈은 독사 코는 코끼리 안하무인이 되어/ 이쁜 놈들 나쁜 놈들/ 모조리 후려 한데 부려놓고/ 얼차려 시킬래// 그러니까 내가 종일 웃는 거 같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맨드라미를 심으면 시들시들/ 선인장을 들이면 시름시름/ 풀이 죽었다/ 그래봤자 죽기밖에 더하겠냐만/ 아직은 활화산/ 빨갛게 넘치는 것이 있으니/ 불문곡직하고 다시 피어나고 싶은 거지// 내가 나라서 참 다행이지만/ 가끔은 풍경소리 들으며 뻔뻔하게/ 후리하게 호래자식 감정으로/ 음탕하게 방탕한 느낌으로/ 아무렇게나 화끈하게 끝내주게 ----[화끈하게 끝내주게] 전문
송영숙 시인의 [화끈하게 끝내주게]는 이 세상의 어중이 떠중이들의 한탕주의적인 삶을 노래한 것 같지만, 그러나 그 기고만장한 객기의 이면에는 “맨드라미를 심으면 시들시들/ 선인장을 들이면 시름시름/ 풀이 죽었”던 만고풍상의 삶이 축적되어 있었던 것이다. 시인은, 영웅은 최고급의 인식의 제전의 전사이고, 최고급의 인식의 제전의 전사는 결코 쉽게 한탄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그는 “눈은 독사 코는 코끼리 안하무인이 되어/ 이쁜 놈들 나쁜 놈들/ 모조리 후려 한데 부려놓고/ 얼차려 ” 시킬 힘(지혜)이 있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이고, 따라서 “그래봤자 죽기밖에 더 하겠”느냐고 이 죽음을 더욱더 크게 끌어 안으면 “아직은 활화산/ 빨갛게 넘치는 것”, 즉, 불문곡직하고 삶의 의지가 다시 꽃피어나는 것이다.
시는 낙천주의를 양식화시킨 것이고, 행복한 꿈의 한 양식이다. 시는 이 세상의 삶의 찬가이며, 우리가 시를 쓰는 동안은 그 모든 일들이 다 축제가 된다. “내가 나라서 참 다행이지만/ 가끔은 풍경소리 들으며 뻔뻔하게/ 후리하게 호래자식 감정으로/ 음탕하게 방탕한 느낌으로/ 아무렇게나 화끈하게 끝내주게” 사는 것 같지만, 그러나 이 기고만장한 삶의 이면에는 이룰 수 없었던 사랑, 즉, 그 무서운 복수심을 극복한 자의 삶의 기쁨과 그 환희가 담겨 있는 것이다.
시는 이룰 수 있는 사랑이고, 그 사랑의 기쁨이고, 그 삶의 찬가이다. 지옥을 새 옷 입고 처음처럼 가는 길의 기쁨이고, “정식이 오빠는 죽어서 좋겠네”([정식이 오빠는 좋겠네])의 기쁨이고, “누군가 내다버린 고서 한 뭉치/ 안아 들고 집으로 오는 길”([백중])의 기쁨이다.
내 방 책장 맨 위층은 최상급 시인의 자리/ 거긴 공기도 달라서/ 지존만이 오를 수 있는 봉머리다// 찬물에 눈을 씻고/ 제일로 꼽는 시인의 순서로/ 홍동백서 진설하듯 시집을 모신다/문시인 김시인 이시인 김시인 박시인 허시인/ 그들의 포지션은 계절별로 바뀌는데/ 오늘이 그날// 반절로 합장하고/ 죄송합니다 자리 좀 바꾸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한 칸 오르시겠습니다. 고하면/ 머리를 긁적이며 제각각 나앉으신다/ 그중 보스는 누구니 누구니 해도 문시인/ 가고 없어도 내 마음속의 영원한 캡틴/ 어차피 좋은 시 쓰지 못할 바에야/ 좋은 시 찾아 읽는 것으로/ 밥값을 대신하기로 했다/ 한 폭의 가로 족자처럼/ 노을 색으로 번져가는 책등의 풍경/ 저 아우라 ----[당신의 포지션] 전문
송영숙 시인은 “내 방 책장 맨 위층은 최상급 시인의 자리”라고 말하고, 그 책장의 공간은 “공기도 달라서/ 지존만이 오를 수 있는 봉머리”라고 말한다. 고귀하고 위대한 인물을 존경하고 찬양하면 자기 자신도 고귀하고 위대한 인물이 되지만, 이 세상의 어중이 떠중이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어울려 돌아다니면 이 세상의 어중이 떠중이들이 될 수밖에 없다. 송영숙 시인은 “찬물에 눈을 씻고/ 제일로 꼽는 시인의 순서로/ 홍동백서 진설하듯” 제일급의 시인들을 모셔왔던 것이고, 그 결과, “문시인 김시인 이시인 김시인 박시인 허시인” 등의 “포지션은 계절별로 바뀌는데” 나는 그 자리에 오를 수가 없었다고 한탄을 한다. 아니다. “어차피 좋은 시 쓰지 못할 바에야/ 좋은 시 찾아 읽는 것으로/ 밥값을 대신하기로 했다”라는 시구와 “한 폭의 가로 족자처럼/ 노을 색으로 번져가는 책등의 풍경/ 저 아우라”의 시구는 하늘마저도 감동시키고, 이처럼 송영숙 시인을 최상급 시인의 자리로 등극시켜 놓고 있었던 것이다.
최상급 시인은 ‘시인 중의 시인’이며, 모든 사상과 이론을 정복하고 그 앎을 육화시켜 최고급의 인식의 제전을 펼쳐 보이는 사람을 말한다. 그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과 동시대의 시대정신을 꿰뚫어보고 그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며, [달 달 무슨 달]에서처럼 동시대의 반항아이자 파렴치한의 껍질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난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다. ‘시인 중의 시인’은 전인류의 스승이자 아버지이고, 최후의 심판관과도 같은 사람이며, 송영숙 시인은 그 시인이 되기 위하여, 이 불모의 땅, 충청도에서 그처럼 ‘고통의 지옥훈련과정’을 거쳐왔던 것이다. 송영숙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남자들이여 출산하라}는 지옥을 새 길처럼, 아니 소풍처럼 다녀온 지혜와 용기와 성실성의 소산이며, 그의 아름답고 행복한 소우주라고 할 수가 있다.
그렇다. 시인의 길은 “누군가 내다버린 고서 한 뭉치/ 안아 들고 집으로 오는 길”이고, “새 옷 입고 처음처럼” 지옥으로 가는 길이다.
무사무욕한 시선과 순수미의 극치----. 시는 모든 고통의 만병통치약이며, 시만큼 그 옷자락이 넓고 대자대비한 것도 없다. 시는 부처이고, 예수이며, 우리는 시인들이 있기 때문에 이 어렵고 힘든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송영숙 시집 {남자들이여 출산하라}, 도서출판 지혜, 값 10,000원
송영숙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