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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교회 주일예배 말씀/ 잊지 말고 기억하라
[2022-07-10] 주일예배
오륜교회 김은호 목사
잊지 말고 기억하라
본문 말씀 : 신명기 8:11~18
11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 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12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15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16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17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18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지 말고 기억하라
모세는 이 세상을 떠나기 전 가나안 땅의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언적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설교의 주된 내용은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모세는 유언적 메시지로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말씀을 했을까요? 그것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살아야 마음이 교만하지 않고 언약의 말씀대로 행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잊고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과 멀어질 수 밖에 없고 결국은 타락하여 멸망에 이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19절과 20절에 반복하여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 언제 하나님을 잊어버리는가?
첫째, 마음이 교만하여 질 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언제 하나님을 잊어버립니까? 마음이 교만하여 질 때입니다. (14절a) 하나님은 분명히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을 망각이라 말하지 않고 교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만하면 목에다 힘을 주고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며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교만은 하나님을 잊고 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나의 하나님을 잊고 사는 것은 건망증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교만입니다. 그러면 언제 교만하여집니까? 생활이 안정되고 부요해 질 때입니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12절) 또 소와 양이 번성하고 은금이 증식되며 소유가 풍성하게 될 때 마음이 교만하여 집니다.(13~14절) 사람이 언제 교만하여 하나님을 잊고 떠납니까? 생활이 안정되고 부요해 질 때입니다.
둘째, 나의 능력과 나의 힘을 의지할 때
광야 생황을 하는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재물의 소유라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하게 되면 많은 재물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과수원과 농경지도 갖게 될 것이고 많은 양 떼와 소 떼를 거느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그들이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이 재물을 얻었다”고 말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18절a) 하나님께서 네게 이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갖게 되는 모든 재물은 너의 힘과 능력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자기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 이 모든 재물을 얻었다고 말합니다.자기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 이 모든 성공을 이루었다고 말합니다. 자기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 자수성가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시지 않았어도, 하나님께서 기업을 주시지 않았어도, 하나님께서 좋은 사람들을 붙여주시지 앟았어도, 하나님께서 그런 은사와 능력을 주시지 않았어도 당신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 이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이것처럼 교만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 인간이 언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떠납니까? 하나님이 아닌 내 힘과 능력을 의지할 때입니다.
○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첫째, 구원의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사는 것입니다.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14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00년 동안이나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축복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던 가장 큰 은혜와 축복은 애굽으로부터의 해방이었습니다. 애굽으로부터의 해방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됨을 의미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평생 나같은 죄인을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다른 것은 잊고 산다고 할지라도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만큼은 잊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둘째, 광야의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사는 것입니다.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15절) 광야는 광대하고 위험한 곳입니다. 광야는 끝없이 펼쳐진 사막이기에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불뱀과 전갈의 위험이 있습니다. 물이 없어 농사도 지을 수 없는 간조한 땅입니다. 기온의 차이가 심하기 때문에 생활하기도 어려운 곳입니다. 광야는 외롭고 고독한 곳입니다. “광야를 지나며”라는 찬양의 가사처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외롭고 고독하십니까? 세상 어디를 둘러봐도 기댈 곳이 없습니까? 인생이 너무 힘들어 살아갈 용기마저 잃어버리셨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광야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난 인생의 고난과 역경은 지금 우리가 광야의 한복판에 있음을 말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들고 어려운 광야를 통과하게 하실까요?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10일이면 들어갈 수 있는 지름길을 놔두시고 광야로 그들을 이끄사 40년 동안 광야의 훈련을 받게 하셨을까요? 모세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16절b) 낮추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광야 생활을 허락하신 것은 우리를 낮추시기 위함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알고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광야의 훈련은 언제 끝이 납니까? 낮아질 때 끝이 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낮아질 때까지,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항복당할 때까지, “주님 이제 나는 할 수 없어요. 주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나는 하루도 살 수 없어요”라는 고백이 나올 때까지 훈련하십니다. 하나님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시고 우리를 광야로 이끄십니다.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낮추심입니다. 그런데 왜 낮추십니까?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16절b) 광야를 통괗게 하신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낮추사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해 광야 생활을 통하여 우리를 낮아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낮아짐이 없이 복을 받는다면 우리는 복을 받아도 그 복 때문에 교만하게 될 것이고 나중에는 주신 복마저 빼앗기고 비참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소원은 마침내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복을 주시기 전에 우리를 낮추시는 훈련을 하십니다. 광야 생활을 통하여 철저하게 내가 낮아지고, 깨어지고 항복 당할 때, 마침내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오륜교회 김은호 목사 주일설교] 잊지 말고 기억하라 2022-07-10
https://youtu.be/_WYPacxy_Q8
[2022-07-17] 주일예배
오늘, 너는 알라!
김은호 목사
본문말씀 : 신명기 9:1~5
1이스라엘아 들으라 네가 오늘 요단을 건너 너보다 강대한 나라들로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니 그 성읍들은 크고 성벽은 하늘에 닿았으며
2크고 많은 백성은 네가 아는 아낙 자손이라 그에 대한 말을 네가 들었나니 이르기를 누가 아낙 자손을 능히 당하리요 하거니와
3오늘 너는 알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맹렬한 불과 같이 네 앞에 나아가신즉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사 네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니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는 그들을 쫓아내며 속히 멸할 것이라
4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내 공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차지하게 하셨다 하지 말라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니라
5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라
○ 오늘 너는 알라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늘 너는 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가나안 땅의 정복을 앞두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아니 오늘 치열한 영적 전쟁을 치루고 있는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너희 힘으로는 가나안을 정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라
너희의 힘으로는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의 성읍이 크고 성벽이 견고하기 때문입니다.(1절) 또 그 땅에 거주하는 아낙 자손을 당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2절) 아낙 자손은 네피림의 후손으로 힘이 세고 키가 큰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열 명의 정탐꾼들은 그들과 자신들을 비교하면서 그들 보기에 “우리는 스스로 메뚜기와 같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가나안의 성읍이 크고 견고하며 그 땅 가운데 아낙 자손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너희는 너희의 힘만으로는 절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정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너희의 힘만으로는 그 땅을 차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것을 보여주는 전쟁이 바로 여리고 성 전투였습니다. 어떻게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까? 칼과 창이 아닌 말씀에 순종하여 13바퀴를 돌고 믿음의 함성을 외칠 때 철옹성인 여리고성이 무너졌습니다. 가나안의 원주민을 몰아내는 영적 전쟁에서의 승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할 때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영적 전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힘으론 원수 마귀를 물리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선하게 살고 의롭게 살아도 우리의 의와 선함으로 마귀를 물리칠 수 없습니다. 당신의 인격이 아무리 고상해도 그 인격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 원수 마귀에 대하여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원수 마귀는 하늘에서 불도 내릴 수 있습니다. 세상의 권력자들을 동원하여 여러분을 박해할 수도 있고 목숨을 빼앗아 갈 수도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죄가 무엇인지조차 몰랐던 첫 사람 아담도 사탄의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던 다윗을 충동시켜 인구조사를 하게 하였습니다.(역대상 21:1) 사단은 우리를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유혹하여 무너뜨리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악한 영의 공격을 우리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 보혈, 예수의 이름이 아니면 누구도 마귀와 싸워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나인의 원주민을 몰아내는 싸움을 해야 하는 자들은 아니 지금 악한 영들과 치열한 영적 전쟁을 치루고 있는 우리는 가장 먼저 내 자신의 약함을 알아야 합니다. 내 힘으로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앞서 나아가 싸우시는 하나님을 알라
“오늘 너는 알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맹렬한 불과 같이 네 앞에 나아가신즉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사 네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니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는 그들을 쫓아내며 속히 멸할 것이라”(3절)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보다 앞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보다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보다 앞서가서”(사45:2b) 우리 하나님은 우리보다 앞서가시는 하나님입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뒤에서 몰아가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보다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백성들을 구원하여 내신 다음 그들을 앞장서 인도하셨습니다.(출13:21~22) 하나님은 구원받은 당신의 백성들을 낮에는 구름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으로 앞장서 인도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길에 우리보다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구약의 미가 선지자도 원수의 압제에서 건져주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여호와께서는 선두로 가시리라”(미가 2:13b)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의 인생길에 앞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우리보다 앞서 행하십니까? 그것은 우리를 위해 싸우시기 위함입니다.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신 1:30) 정말 이 약속의 말씀처럼 앞서 나아가 싸워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말렉과의 싸움에서도 승리하게 하셨고 여리고성 전투에서도 승리하였고 가나안 원주민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대상 14:15)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왔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대하 32:8b) 하나님은 우리보다 앞서 행하시며 반드시 우리를 대신하여 싸워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보다 앞서 행하시면 우리를 위하여 싸워주시면 어둠의 영들이 떠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사탄의 견고한 진이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악한 영들이 혼비백산하여 떠나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원수 마귀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수 마귀가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아니 우리의 힘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이 우리보다 앞서 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싸워 주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나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내 공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차지하게 하셨다 하지 말라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니라”(4절) 하나님께서 앞서 나아가 싸워주심으로 그 땅을 차지하게 되었을 때 심중에라도 나의 의로움 때문에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 땅을 차지하게 하셨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기에 스스로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말씀을 4절, 5절, 6절에서 반복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을 보면 끝없이 반복되는 불평과 원망과 반역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땅을 쳐서 멸하여 너희로 그 땅을 차지하게 한 것은 그 땅 백성이 악하기 때문이고 너희 조상과 맺은 약속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순종하여 나아가 싸웠습니다. 하지만 너의 용기나 능력이나 선함이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앞서 나아가 그들을 내어 쫓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너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염려를 읽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염려는 그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원주민을 몰아내고 그 땅을 차지하였을 때 마치 자신들이 남들보다 더 정직하고 의로워서 가나안 땅을 얻은 것처럼 여길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나안 땅의 정복에 앞서 하나님이 가지셨던 하나님의 염려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반복하여 세 번에 걸쳐서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된 것이 너의 공의나 정직함 때문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는 뭔가를 이루었을 때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였을 때 언제나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주님이 승리하셨습니다. 주께서 앞서 나아가 싸워 주심으로 우리가 이길 수 있었습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입니다.
[오륜교회 김은호 목사 주일설교] 오늘, 너는 알라! 2022-07-17
https://youtu.be/Am84mD36E9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