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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제: 환란의 가치
소 주 제: 환란. 인내. 생각
날자 및 분류: 12.08.05설교 창 조 의 말 씀
성 구: 롬5:1-4
전 하 는 자: 정 헌정 목사 http://cafe.daum.net/chang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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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5:1-4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우리는 지금 산상설교를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마태복음 5장43절 이하에서 원수를 사랑하는 지경까지 요구하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의를 예수님의 입으로 전해 듣고 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와 다른 예수 안에서 허락된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의를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결론 부분인 마5장48절에서 그러므로 하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 하는 명령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기꺼이 이 명령을 받으며 그 명령의 귀함을 인정합니다,
1. 신앙의 현실적인 답
그러나 실제로 신앙생활을 해 보면 우리의 소원과 우리의 믿음들을 현실 속에서 맥을 못 추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도 하고 노력도 하고 여러 가지 애를 써 보지만 참으로 우리믿음은 연약하고 우리의 의지는 무력합니다, 하나님은 뭐하고 계실까! 하나님은 내 소원과 울부짖음에 왜 대답하지 않으실까! 우리에게 허락된 신앙적인 요구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성취되는 것일까! 하는데 대해서 현실적인 답을 오늘 롬5:1-4절에 있는 말씀을 통하여 확인하려고 합니다,
1절과 2절에서 보여주시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약속과 승리 속에 서 있다는 것과 그 약속과 승리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목적까지 이르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허락된 신자들의 운명이라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래 놓고 3절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환란은 말하자면 예수로 말미암는 구원에서 그 구원의 영광된 승리 사이에 현재일 것입니다, 허락된 구원이 약속에 승리를 위하여 가는 과정을 성경은 환란을 애기하고 있습니다, 환란이란 우리의 곤고한 현실이며, 이것이 우리를 인내로 이끈다고 합니다. 인내는 환란이 하는 일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인내는 고통과 슬픔을 경험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겪는다는 뜻입니다, 고난을 겪는 것이 인내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인내는 원치 않지만 감내해야 되는 것. 당한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연단으로 이끕니다, 연단의 중요성은 금을 제련해 내는 불순물을 제거하는 일이나 쇠붙이나 금속을 강하게 만드는 일 그것이 환란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현실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신자들의 신앙현실은 환란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만의 비명이 아니라 욥기에 나타나는 욥의 반응에서도 아주 중요하게 나타납니다.
욥은 성실한 사람이며 정직한 신앙인입니다, 그러나 그는 원치 않는 고난에 휩싸이게 됩니다, 고통 속에 있고 자녀를 다 잃고 부인은 떠나고 그 자신은 몸에 병까지 들어 최악의 국면까지 인도됩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울부짖는 비명은 우리 현실 속에서 우리 비명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창조물들을 제대로 돌보시는 분입니까? 이것이 욥에 울부짖음이고 비명이고 질문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마음에 하나님의 약속들과 명령들이 아무리 고귀하고 인정하고 소원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현실을 해결할 방법이 없게 됩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성경이 아주 좋은 예가 있습니다,
요셉의 생애입니다, 창39장에 가보시면 창 39:1-5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굉장합니다, 요셉의 종 생활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고 형통케 하심을 그 주인이 알아봅니다, 그 주인집을 복되게 하십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우리에게 사실 많은 질문꺼리를 던집니다, 요셉은 팔려옵니다, 그는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특별히 사랑을 받은 아들이고 그래서 아버지의 사랑이 너무 극진해서 형들의 미움을 받아 죽게 됩니다, 형들이 그를 죽이기로 합니다. 맏형인 르우벤이 아우들을 말려서 간신히 살아납니다, 죽이는 대신 먼 나라를 왕래하며 사업을 하는 대상에게 그를 팝니다, 요셉은 목숨은 건지지만 팔려서 애굽 땅에 와 종이 됩니다, 우리의 신앙현실보다 더 인생이라는 현실 속에서 기가 막히다 기가 막힌다고 해도 요셉처럼 기가 막히기도 어렵습니다. 형들이 죽이려고 했는데 간신히 살아나서 종이 됐다 목숨을 구했으니 기뻐해야 될지 생전처음 온 땅에서 종살이를 해야 되니 얼마나 자기의 신세가 정말 고통스러웠을까!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를 생각하면 이때 요셉이 십대입니다, 정신이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하셔서 그를 형통케 하십니다, 그러면 금방 이 질문이 나옵니다, 하나님 뭐하고 계시다가 형들이 죽이려 하고 팔려고 그럴 때 가만히 계시다가 종 된 다음에 복은 주고 그러십니까?
2.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의 다름
이것은 우리가 마땅히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요셉의 생애 중요성은 하나님의 일하심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사실 현실적인 문제들도 따지고 보면 하나님이 우리가 원하는 때에 찾아오시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어 주시지 않습니다, 다른 곳을 도우십니다, 고통을 견디게 하시거나 무슨 억울함을 참게 하는 데만 오시고 억울함이나 고통을 면하게 하고 해결시켜주는 문제에는 하나님이 여간해서 개입하시지 않습니다, 어떻습니까? 제 경우는 그러했습니다,
이 문제는 뒤에 19-23절 보시면 창 39:19-23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그는 유혹을 받습니다, 여주인께서 그를 유혹하고 요셉은 거절합니다, 9절에 보시면 창 39: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그는 아직도 깊은 신앙인입니다, 그러나 이 신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문제에 진실을 가려주시지 않습니다. 그는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힙니다, 옥에 갇혔더니 간수장을 통하여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시려면 그 전에 은혜를 베푸셔야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모두의 현실 속에서 우리의 답답함 입니다 억울한 것을 진실을 밝혀서 요셉을 살려주셔야 합니다. 그때는 침묵하시다가 옥에 가니까 그때에 간수장을 통하여 그를 형통하게 하셔서 그의 죄수생활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이 문제를 시편105편에 가면 그때 상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시 105:17-19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그는 처음 죄수로 들어갔을 때 그 죄수들이 받는 고통의 형편에 처하게 됩니다, 족쇄를 채우고 쇠사슬로 묶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에 보시면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몸에 2번이라고 번호가 붙어있습니다, footnote에 보시면 2번이 시혼입니다, 히브리원어로 혼이 쇠사슬에 매였다는 뜻입니다, 직역하면 그 혼을 쇠사슬이 꿰뚫었다. 혼이 쇠사슬이 꿰뚫었다는 건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혼미백산 했다는 뜻입니다, 넋이 나갔습니다, 그는 아직도 신앙을 지키고 있지만 그는 그 신앙에 대하여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어찌하여 이런 일이 내게 생깁니까? 하고 하소연도 했을 것이고 인생이 뭔가! 믿음이 뭔가! 하는 질문 앞에 붙잡혔을 것입니다,
인생에 환란을 당하고 인생이 잘 풀리지 않고 곤고하면 근본적인 질문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계속 살 것이냐! 인생과 인간은 뭐냐? 라는 질문을 합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이 무슨 가치가 있는가? 무슨 이유 때문에 살아야 하는가? 무슨 목적이 있는가? 우리에게 허락된 구원과 영생의 약속이 도대체 어떤 가치가 있는가! 라고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나 라는 사람의 실력이나 내용을 직면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아무리 인생이 뭐냐! 신앙이 뭐냐! 내 삶의 가치가 있느냐고 물어도 두드려도 하나님은 쉽게 답도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도망가고 싶습니다, 도망가는 방법은 많습니다, 우리가 제일 도망가는 것은 술 마시는 겁니다, 심하면 자살을 합니다, 자폭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현실을 감내할 수가 없고 자기라는 존재와 인생이 역전될 가능성도 없고 이대로 평생을 고난 속에서 살아야 된다는 것은 참으로 끔찍합니다,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확인해야 하는 실제적 질문은 현실이 곤고하다와 함께 우리가 실력이 없고 우리는 작고 참으로 보잘것없다. 라는 고백입니다,
이어령선생께서 몇 년 사이에 회심하시고 기독교신자가 되어 글을 내셨습니다, 인간과 인생이 얼마나 무력하냐!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행복을 책임질 수 없느냐하는 애기를 이런 식으로 표현했습니다, 재앙이나 재난은 느닷없이 찾아오는 법이다, 지금 보신대로 요셉을 판 것은 그의 형들입니다, 우리의 옛말에 원수는 집안에 있다. 고 했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팔았습니다. 형들은 선한 이유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 환경이 아니라 나를 변화케 하심
창 45:7-8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이렇게 나중에 깨닫습니다, 우리가 고통스럽고 책임을 져야 하고 나를 붙들고 있다고 생각하는 현실. 환란을 이루는 모든 구성요소들 이 모든 것들을 합하여 하나님이 우리들을 만들어 가시는 손길입니다.
요셉이 그걸 깨닫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리로 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냈습니다, 창세기 50장에 이렇게 한 번 더 나옵니다, 창 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우리는 우리의 신앙이 현실을 고통에서 형통으로 바꾸어 주실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믿음의 보상이 그걸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롬5:3-4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그것을 이루는 과정은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이 그것은 환란입니다, 환경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을 하나님은 이것을 견디게 하십니다,
다시 시편105편으로 돌아오셔서 시 105:17-19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심신을 단련하여 훈련하여 굳세게 하는 그 과정이 하나님이 주인이 되셔서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가지고 그의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개입하여 준비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에 응할 때까지 우리는 이 환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현실은 우리를 괴롭히는 부정적이고 배척해야 될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어내는 신적지혜와 능력에 장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한 영혼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 있어서는 희생과 포기라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시면 요셉은 나중에 이런 자가 됩니다, 시 105:20-22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석방함이여 뭇 백성의 통치자가 그를 자유롭게 하였도다. 그를 그의 집의 주관자로 삼아 그의 모든 소유를 관리하게 하고 그의 뜻대로 모든 신하를 다스리며 그의 지혜로 장로들을 교훈하게 하였도다. 그는 총리 자격이 생깁니다, 실력이 생깁니다, 총리라는 권좌에 권력을 얻고 지위를 얻는 것이 아니라 그만한 실력을 쌓은 자가 됩니다,
요셉이 보이는 보상을 받은 것에 너무 집착하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요셉을 어떻게 영광된 결과에 이르게 했는가가 요셉의 생애에 가장 중요한 성경의 지적입니다, 그가 그의 형들을 용서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그에게 손해가 되지 않았다는 결과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손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그것이 우리 성도들에 사실 현실적 신앙이해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에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겁니다, 이 사람만 없었으면 이 상관 혹은 이 경쟁자 이 원수만 없었더라도 그 때 그 사건만 없었더라도 라고 애기할 수 있는 것은 신자에겐 없습니다. 그 억울했던 사건 그래서 날개를 접은 그 사건. 그 일 누구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능력과 지혜 속에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지 우리를 손해케 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