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 일박이일. 그리고 금요일 학교 출근 토요일 일요일 주말...
목요일 이후 시간이 이렇게 줄줄이 흘러갔는데 지금 쓴다 해도 마치 어제 온 듯 느낌이 오래가는 여행이네요.
목적지 도착하고 정은하샘과 둘이 먼저 만났습니다. 지난 참실 조선대에서의 짧은 만남에 이어
이제 함께 즐거운 여행을 하는구나 반갑고 서로 금방 친해져 마음을 열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는데
안타깝게도 급한 일이 있어 심야에 이별했습니다.
아쉽지만....뭐 괜찮아요. 이젠 우린 세월을 두고 오래오래 볼 사람들이 된 것이니까요. ㅋㅋㅋ
예전 하이텔 페다고지 시절, 사람을 만나는 짜릿함은 온라인에서 텍스트로만 만나는, 글을 통해 나름 깊이있게 친해진 사람들의
얼굴을 확인하는 자리에서 오는 가벼운 흥분이었습니다. 그만큼 글이 우선이었고 그 다음 사람을 만나는 것은 온라인 이후의
잠간잠간의 오프라인 쉼표같은 것이었지요. 그러나 내 나이가 묵직해질만큼 지난 요즘은 그런 전제없이 그냥 만납니다.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는 글로 보다는 직접 만나서 눈과 귀로 만나는 느낌과 대화로 알아가고 기뻐합니다.
예전 창립식 직전 사무실에서 우연히 만나 노래연습을 함께 한 조성실언니 박지희샘 박복선샘이 그러하고
임덕연샘과 낭만샘 배이상헌샘 김춘성샘 박현희샘(이팝님 보고파요!)이 그러합니다. ^^;;
노안 탓으로 피씨를 멀리하게 되다보니 그렇기도 합니다만 이젠 글보다도 사람을 우연히 만나서 알아가게 되는 즐거움도
내 삶의 새로운 가지않은 길입니다. 고맙게도 아직 제게는 호기심, 탐험이라는 좋은 덕목이 죽지 않았나봅니다.
둘레길을 찾아가기 전 내가 떠올린 기억은 젊은 시절 아무런 기대할 것도 없이 모든 것이 다 포기되던 시절
- 학교 짤려, 투신했던 곳 들려가, 대학시절 운동 함께 한 내 단짝이 그만 둔다고 해, 민쯩도 사라지고 내 미래는 안개처럼
무엇이 되려하는지에 대해 뱅뱅 제자리걸음조차 떼기힘들었던 어떤 지점. - 그 친구랑 둘이 도망치듯 달려간 지리산의 추억.
우린 그 산 안에서 현실을 잊고 마냥 행복했고 지리산은 엄마품처럼 우리들의 눈물과 웃음과 응석을 모두 품어주었고 천왕봉은
그 멋진 일출로 우리를 축복해 주었고 다시 하산해야하는 시간 내려가기 싫어서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만 했던 그 시절.
이후로 교사가 되어 한번 더 다녀왔지만 이상하게도 나의 지리산은 그 시절의 장면만이 또렷하게 살아옵니다.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는 싯구처럼 아주 멋진 여행의 추억은 어둠이 바탕이 되어야 제맛일까요?
이후 50이 되어서야 처음 달려간 지리산을, 그것도 천왕봉까지의 하루코스는 내게 무리겠다 싶어 소심하게 선택한 둘레길은
지리산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칭얼거리며 따라다니는 코흘리개 꼬마아이의 장면으로 형상화되어
그렇게 산엄마에게 응석부리고 투정을 부리려 내 맘속 꽁꽁 매어둔 단단한 설움을 싸들고 내려가는 길인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별 것도 아닌 설움들을 괜히 어떤 의미를 만들어볼려고 일부러 과장되이 그렇게 품고 간 것이 아닐까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둘레길에서 내 머리 속 영상처럼 그런 여행을 했을까요?
아뇨! ^_____^
그 놈의 설움이란게 말입니다. 지리산 아랫자락에 풀기도 전에 이미 달마을 민박집 따뜻한 아랫목에 모인 우리 벗님들
-그것도 낭만샘뿐 아니라 거의 초면인 은하샘박옥균샘 정영미샘-께 응석부리다 산길 걷기도 전에 이미 해제!
오랫만에 만난 낭만님, 초면에 만난 푸릇푸릇 산친구들, 웬지 친근하게만 느껴 술김을 빙자하여
마냥마냥 투정을 부린 것입니다. ㅋㅋㅋ
다들 살아오신 연륜이 만만치 않아 마치 그곳에서 영성치료를 받는 사람처럼 난 내 맘 속 소란스러움을 모두 끄집어내어
알콜에 소독하여(^^ ㅋㅋㅋ) 탈탈 털어 다시 장착! 충전 완료!
그렇게 하룻밤 사이 질적 변화를 이루어내고 길 떠난 아침은 뭘해도 좋을만큼 가벼운 느낌이었습니다.
하루 전 이미 지리산에서 눈과 환상적인 만남을 이루고 내려온 세 분들의 발걸음은 굳은 근육을 풀어주려 어슬렁어슬렁이지만
전 그 전날 차만 타고 내려왔죠 한 밤중에 즐거이 나를 다 풀어헤쳤죠(흑...죄송 이런 표현을...^^;;)
뭐 걸릴게 없으니 신나서 돌아다녔지요. 그러다보니 전 지리산 엄마의 치마자락을 노닐지만 눈은 자꾸만 지리산 꼭대기
그 어디쯤 있을 세석과 장터목과 천왕봉을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사진도 자꾸 산을 찍게 되더군요.-
'에이...갈걸... 이렇게 부러워말고 관절이 안 좋아도 하루 걸려 겁이 나도 갈걸. 시작하고 볼걸... '
(다음엔 저지르지도 않고 속계산으로 미리 접는 짓 하지 않을 것입니다. 실패도 즐겁게....)
낭만샘께 그 밝음과 부드러움을 배우고 나의 죄를 모두 용서받고(^^) 무얼해도 아름답다는 그 노래의 가사는
낭만쌤의 사랑하는 아이들에게도 그렇지만, 어른아이에게도 강한 치유의 힘을 발휘해주었습니다. 다시 편해졌습니다. ^_____^
박옥균샘의 맑은 미소는 천상 산사람같은 첫인상을 주었습니다. 캄캄한 새벽에 혼자 추위에 떨다가 어둠 속에서 혼자 산행을
시작한 일과 아침에 오르는 일행을 위해 세석 찬바람 맞으며 찬 얼음물에 쌀을 씻고 카레를 홀로 준비한 그 힘든 일을
전혀 힘들지 않은듯한 환한 웃음으로 말해주는 그 청년이 참....나도 그런 용감함과 밝음을 본받고 싶었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기. 혼자여도 일행을 배려하며 할 일 즐거이 하기.
그곳에서 처음 만나 함께 자며 마음 깊이 좋아진 영미샘도, 천왕봉을 홀로 올라갔다가 내려와 온몸으로 그 느낌을 전해주시던
형근혜샘도 어찌나 맑은지 이분들로 인해 나는 지리산을 안 올랐어도 지리산의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받았습니다.
그것도 눈 내린 지리산을요! ㅋㅋㅋ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어울린 사이로 가르마같은 논길따라 꿈길을 걷듯 정처없이 걸어가네
걸어만 간다..."
지리산 둘레길은 우리 동행들과 나눈 따사로운 감동에 비하면 그저 친근한 고향마을 뒷동산과 돌담길같은 밍밍함이었지만
나는 그 길을 머리에 꽃단 아줌마처럼 노래도 흥얼흥얼 신나게 걸었습니다.
이미 느낌표는 그 전날 무수히 많이 거두었기 때문이었지요. ㅋㅋㅋ
첫댓글 와! 라고만 써놓고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었네요. 그랬었지요. 우린 한신계곡에서 세석에서 장터목에서 신의 얼굴을 보아버렸지만 얼음공주는 다음날 오전 한 나절 한가하게 지리산 자락을 거닐다 뿐이어서 조금은 간이 심심하지 않을까 조바심을 내기도 했었는데 얼공님의 얼굴에서 비치는 행복의 광채 같은 것을 보았을 땐 제 마음이 편했었지요. 생각해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어요. 전날 이불 속으로 발을 넣어놓고 나누던 대화들! 사람들! 그렇다치더라도 이렇게 영감에 넘치는 글로 저를 홀짝거리게 하시다니요? 샘이 글을 올려놓으신줄도 모르고 <오늘의 교육>신년호에 두어 시간 빠져 있었네요.
<오늘의 교육>을 보지 못했다면 상상초자 못했을 십대 청소년들의 주거에 대한 불안과 아픔에 대해서 늦게나마 눈이 떠졌지요. 올해 담임으로 만나게 될 고1 여학생들 중에도 그런 말 못할 사연을 가슴앓이처럼 속으로만 간직하고만 있을 아이들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어떻게 하면 무난하게 학급운영을 잘 할 수 있을 지 제 중심으로만 생각하던 것이 어찌나 부끄럽고 한심하던지요. 맞아요. 별의 배경은 마땅히 어둠이지요. 얼음공주님의 아름다운 글로 인해 이제 어둠이 두렵지 않게 됬네요. 그러니 사랑한다 말하지 않을 도리가 없네요. 사랑하고 사랑합니다. 얼음공주님!
역시 낭만샘 낭만적이세요^^
전 그저 제 느낌만을 나불거렸을 뿐인데 낭만샘은 거기에 더 깊은 사유를 더해주시네요. 정말 오랫만에. 게시판에 주절주절 썼어요.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모자란 빈틈이 보이는대로 가감없이 보이기. 시작.
ㅋㅋㅋ
전 구들장을 지고 지냈는데, ㅎㅎㅎ 눈 내린 지리산도, 둘레길도 가 본 듯하니 이, 뭔 카오스...ㅠㅠ
백문이 불여일견. 글로만 안다고 되는건 아니라구요. 다음엔 정말 기언샘 데불고 가겠습니다^^
ㅎㅎㅎ 막걸리 한잔에 한 걸음씩?
햐. 이렇게 멋진 글을. 청년! 이 말이 멀어졌는데. 쌤 덕에 가슴에 안고 혼자 조금씩 꺼내서 늙지 않게 갈무리 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