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松 건강칼럼 (398)... 첫사랑, 그리고 끝사랑
박명윤(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님을 그리는 ‘참사랑’
독립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My Love, Don't Cross That River)’가 관객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눈물을 흘리게 하고 있다. 이 영화는 흥행을 바라고 만든 상업영화가 아닌 독립영화로 제작비 2억원의 저(低)예산 다큐 장르이지만 기록적인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필자도 아내와 함께 지난주에 이 영화를 관람하면서 몇 차례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특히 할아버지가 저승에 가서 깨끗한 옷을 입기를 바라면서 할머니가 부엌 아궁이에서 옷가지를 태우는 ‘아내의 사랑’, 옛날 의료시설이 낙후된 농촌에서 살면서 낳은 자식 12남매 중 6명이 어릴 때 죽었고, 가난하여 내복(內服)을 입히지 못한 것이 한(恨)이 되어 죽은 아이들 내복을 구입하여 하늘나라에 있는 자식들이 입기를 원하면서 옷을 태우는 ‘엄마의 사랑’ 장면 등이 코끝이 찡해오고 눈물샘을 자극하였다.
이 영화는 강원도 횡성 산골 마을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76년을 연인(戀人)처럼 살아온 조병만(98) 할아버지와 강계열(89) 할머니의 알콩달콩 사는 모습과 노환(老患)으로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내의 이별까지 담았다. 할아버지가 이승에서 저승으로 먼저 가서 슬픈 엔딩 같지만, 사실은 영원한 사랑으로 이어지는 ‘해피엔딩’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지난 76년을 함께 살아온 남편을 막 여의고 무덤이 바라보이는 언덕배기에 쭈그리고 앉아 어깨를 들썩이며 목 놓아 울음을 터트리는 아내의 뒷모습을 비추며 시작된다. 화면은 곧 남편이 사망하기 전에 부부가 함께 살았던 일상의 순간으로 리와인드(rewind)되어 살가운 애정(愛情)을 서로 표현하는 장면들이 펼쳐진다.
백발의 노부부는 봄철에는 아름다운 꽃을 꺾어 서로에게 꽂아주고, 여름엔 개울가에서 물장구치는 개구쟁이가 되고, 가을철에는 마당의 낙엽을 쓸다 말고 서로에게 낙엽 던지기 놀이를 하면서 감성에 빠지기도 하며, 눈이 펑펑 내린 겨울철에는 눈싸움도 하고 서로 닮은 눈사람도 만들고 하는 모습들이 사계절을 신혼같이 보내는 잉꼬부부(夫婦)와 같았다. “옛날에도 예뻤지만, 지금은 더 예쁘다”고 말하는 할아버지의 적극적인 애정표현에 할머니는 소녀처럼 웃으며 좋아했다.
노부부의 아름다운 ‘첫사랑’도, 그리고 첫사랑보다 깊은 ‘끝사랑’도 아름다웠다. 옛날 조혼(早婚)이 성행했던 시절에 시집 온 14살 소녀(少女)를 끔찍이 사랑하는 마음에서 17세 처녀(處女)가 될 때까지 부부생활을 하지 않고 기다린 총각(總角) 남편의 따뜻한 배려는 아름다운 ‘첫사랑’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노부부의 아름다운 ‘끝사랑’도 영원한 사랑으로 이어졌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이렇게 나한테 잘하고 그랬는데 내가 왜 다른 사람하고 살겠소? 난 이 다음에 다시 태어나면 또 할아버지하고 살 거예요.”라고 말했다.
KBS-TV 인기프로인 다큐미니시리즈 ‘인간극장’을 통하여 방송된 ‘백발(白髮)의 연인(戀人)’ 5부작을 진모영 감독이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로 제작하였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작은 영화가 지난 연말 극장가를 흔들어 개봉 29일째인 12월 25일에 누적관객 300만명을 돌파하면서 역대 다큐멘터리 영화 흥행기록 1위인 2009년 <워낭소리>를 제쳤다.
CGV 인터넷 예매 누적 현황(12월 26일 현재)을 보면, <님아>를 관람한 관객의 49.7%가 20대, 그리고 30대가 26.4%를 차지하여 10명의 관객 중 8명이 20-30대였던 셈이다. 또한 포털사이트의 성별ㆍ연령대별 통계에서도 ‘20대 여성’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분석되고 있다. 한편 중ㆍ노년층 연말 모임으로 이 영화 관람이 인기가 있었다.
이는 젊은 관객들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을 동화적 판타지로 받아들여 노부부(老夫婦)가 보여준 이상적인 사랑이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젊은 관객들을 사로잡았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복고(復古)와 향수(鄕愁)라는 시대 모드를 멜로 형식에 담았기에 젊은 층도 호응하고 있으며, 누가 봐도 만족도 높은 가족과 사랑 등 ‘연말연시 코드’의 영화라는 분석도 있다.
요즘 황혼이혼(黃昏離婚)이 증가하고, 연애도 결혼도 힘들고, 결혼 후 행복하게 살기는 더 어려워진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나도 저렇게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함께 감동의 정서를 환기하는 영화이다. 노부부는 서로 존댓말을 쓰고, ‘사랑해요’ ‘예쁘요’ ‘고마워요’ ‘미안해요’를 자주 말했다. 또한 일상생활에서 두 손을 마주 잡는 애정(愛情)표현을 자주 했다.
기네스북에서 최장기 결혼기록과 최고 부부 합산 나이(205세) 기록을 세운 영국인 퍼시 애로스미스(105세)와 플로렌스(100세) 부부는 2005년 결혼 80주년을 맞아 노부부의 금슬(琴瑟) 비결로 ‘미안해(sorry)’와 ‘그래, 여보(yes, dear)’라고 상대방에게 말하는 걸 절대 주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결코 다툰 채로 잠자리에 들지 않았으며, 다툼거리가 생기면 꼭 같이 풀어 나가고 싸워도 다시 친구가 되어 껴안고 토닥거린 뒤 키스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즉 금슬의 비결(秘訣)은 양보와 타협이다.
연애(戀愛)란 평생 함께할 배우자를 만나기 위한 과정이다. 연인 사이에서 키워 나가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德目)은 물론 사랑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우정(友情)이다. 좋은 친구가 될 수 없는 사람은 좋은 연인, 좋은 남편, 아내도 될 수 없다.
결혼(結婚)은 사랑ㆍ양보ㆍ희생ㆍ이해 등 최선의 노력과 온갖 미덕이 필요한 인간관계이다. 각자 자기 방식대로 살아오던 두 사람이 한집안에서 살아가려면 끝없는 인내가 필요하다.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지 말고,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한다면 이해와 사랑의 길이 막히지 않을 것이다. 결혼하여 이루는 가정의 기초는 사랑이며, 가정은 모든 행복의 기초와 핵심이 된다.
결혼식 주례(主禮)를 필자는 지난 1984년 봄 대구파인트리클럽 이규천 시니어회원 결혼예식 때 처음 시작하였으며, 한국파인트리클럽(총재 박명윤) 산하 서울파인트리클럽을 위시하여 지방 파인트리클럽의 많은 회원들의 결혼식 주례를 맡았다. 몇 년 전부터는 클럽 회원들의 아들ㆍ딸 결혼식 주례도 해주고 있다. 필자가 주례사(主禮辭)에서 꼭 언급하는 것은 부부가 매일 정다운 대화를 30분 이상 할 것과 매일 상대방의 좋은 점 한 가지이상을 찾아 칭찬해 줄 것을 당부한다.
매일 상대방의 좋은 점을 찾아서 칭찬하는 것은 부부의 정(情)을 저축하는 좋은 방법이다. 상대방의 좋은 점을 찾다보면 서로를 보는 눈도 달라져서 작고 사소하며 당연한 일이라도 고마움을 표현하면 막혔던 대화의 물꼬가 터진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다. 또한 부모님께 효도하라고 당부한다. 즉 부모를 공경해야 부부도 잘 살고, 자식도 잘 된다.
성경에서는 결혼하는 남녀에게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라’고 한다. 이는 육체적ㆍ정신적ㆍ영적으로 하나가 되라는 뜻이다. 서로를 알아 가고 존경하며, 가쁜 일과 슬픈 일을 함께 나누고, 또한 육체적으로도 한 몸이 되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부부란 반쪽의 두 개가 아니고, 하나의 전체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부부는 모자라는 반쪽을 가져와서 나한테 채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모자라는 부분을 내가 채워야 한다고 생각하여야 한다. 부부간 문제의 해결은 ‘상대가 변화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부부의 사랑이란 아내는 남편의 안식처(安息處)가 되고, 남편은 아내의 안식처가 될 때 비로소 가정은 평화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부부는 이인삼각(二人三脚) 경주와 같이 두 사람이 함께 인내를 가지고 마음과 호흡이 맞아 한 마음이 되어야만 이길 수 있는 경기이다. 아내의 인내는 남편을 살리고, 남편의 인내는 아내를 명예롭게 한다.
연애 시절에는 저 사람과 함께라면 평생 행복할 것 같았는데, 결혼하여 살아가다 보면 많은 갈등(葛藤)이 생긴다. 부부는 살면서 갈등의 소지를 안고 생활하므로 어느 가정이든 문제가 없는 가정은 없다. 이에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나만을 주장하기보다는 상대의 긍정적인 면을 볼 수 있어야만 긍정적인 문제 해결이 될 수 있다. 행복한 가정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잠재능력을 가지고 있다.
부부생활이란 긴 대화(對話)이며, 평화로운 가정을 위하여 부부 사이의 인격적인 대화가 필요하다. 대화를 잘 하는 것이 바로 결혼생활을 성공적으로 하는 것이다. 대화를 잘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잘 들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부부 사이에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선입견(先入見) 때문에 더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귀가 두 개 있고 입이 하나인 이유는 덜 말하고 더 잘 들으라는 창조주(創造主)의 뜻이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며, 갈등은 언어를 통한 대화로만 만족할만한 해결이 가능하다. 언어와 함께 인간은 타협과 양보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양보와 타협이 없는 문제해결은 존재할 수 없다.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 나의 의견을 겸손하게, 상대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표현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능력이다.
인간의 공통적인 욕구는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고, 도움받길 원한다. 특히 배우자에게 관심과 인정을 받는 확신이 있으면 자신감과 의욕이 솟는 것이 공통적인 현상이다. 아주 작은 일 하나에도 고마움을 표시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들어주고, 내가 잘못했을 때는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를 하여야 한다.
따라서 행복한 부부관계에 필요한 세 가지 요소는 ㅿ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 주는 것, ㅿ서로가 인식하고 있는 필요와 욕구를 알아서 채워주는 것, ㅿ서로의 잘못과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해주는 것 등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현실의 상황에 있을지라도 가족의 관계에서 자신을 향한 사랑과 믿음을 확인할 수 있을 때 ‘행복하다’고 말한다. 가족에게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너를 믿는다’이다. 가정의 기초는 사랑이다.
부부 사이에 금이 생기는 원인은 자기를 상대에게 공개하지 않는 데서 온다. 부부 권태기(倦怠期)의 신호는 서로 웃는 일이 사라지는 것, 대화가 줄어드는 것, 잠자리 횟수가 줄어드는 것, 무관심해지는 것 등이다. 이러한 신호가 나타나면 부부가 협력하여 빨리 해결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이 배우자(配偶者)이다. 부부가 매일 포옹(抱擁)하는 연습을 통하여 이혼 직전의 부부가 회복되기도 하는 치료 효과가 있다.
부부가 상대에게 ‘사랑해’라고 말하고 싶으면, 이 말을 마치 영어 단어 외우듯 반복해서 연습해야 한다. ‘사랑해’라는 말을 표현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의 차이는 이 말을 반복해서 자주 할수록 서로 간에 사랑이 증폭된다. 즉, 표현되지 않은 말은 생각에 머물지만, 표현된 말은 현실로 구현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말은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글/ 靑松 朴明潤(서울대학교 保健學博士會 고문, 대한보건협회 자문위원)
<청송건강칼럼(398). 2015.1.5. mypark1939@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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