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낱같은 대한민국
1949년 한국전쟁 직전에 국회부의장 김약수라는 자와 남로당 프락치들은 주한미군 철수를 건의하는
결의안을 상정하였으며, 미군은 고문관 500명 미만을 남기고 모두 철수하였다.
이어서 1950년 1월 20일 애치슨 미국무장관은 한반도는 미방위선 밖이라고 내외에 선포하였다.
이미 스탈린의 내락을 받은 김일성은 탱크와 중포를 은밀하게 38선 일대에 포진시키면서 6.25 새벽 4시를
기하여 일제히 남침하였다. 그 전에도 남한 정부는 낌새를 알아차리고 미국에 공격용 무기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였지만, 미국은 남에서 북침 가능성이 있다고 거부하였다.
실상 신성모 국방부 장관과 채병덕 육군 참모총장은 국회답변에서 만약 전쟁이 발발하면,
“아침은 해주에서 때우고, 점심은 평양에서 해결하고, 저녁은 신의주에서 질탕하게 먹는다.”고 호기롭게 큰소리를 쳤다.
막상 6.25 전날은 전 장병의 1/3이 농번기 휴가를 보냈으며, 2주일 전에는 전후방 사단장의 인사이동에 이어
육군장교회관 낙성식이라는 미명 아래, 밤새도록 댄스파티와 여흥을 즐겼다.
전쟁이 터지자 하루 만에 옹진반도와 개성, 의정부까지 실함되고,
이에 망연자실한 이승만 대통령은 27일 새벽 3시 기차를 타고 대구까지 내려갔다가 대전으로 돌아 왔다.
28일 당시의 유일한 한강 인도교와 철교를 폭파해 가면서 육군본부는 수원으로 이동하기로 하였다가,
맥아더 장군의 지원이 있다고 하자 허겁지겁 시흥으로 되돌아 왔다.
이 대통령은 수원 비행장에 도착하는 맥아더 원수를 마치 구세주 마중하듯이 대전에서 올라와 극진히 영접하였으며,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아예 맥아더에게 양도한다고 선언하였다.
비참하지만 그것이 그 당시 우리의 생생한 역사였다. 실상 국군은 완전히 와해되었으며, 총기와 실탄은 물론
모든 보급품과 식량, 군복 등도 모두 미군이 주는 걸 감지덕지 받아서 지탱하였다.
정부예산은 모두 군사원조와 더불어 민간원조의 달러를 공매해 대충자금이란 항목이 절대비중을 차지하면서
원조물자로 국민을 기아상태로부터 살려낸 상황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우여곡절을 거쳐 이제 좀 먹고 살만 하니까‘갈테면 가라, 양키 고 홈'을 외쳐만 대는
주사파 종북 빨갱이들을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심정은 과연 어떠할까?
아무리 트럼프가 무리한 요구를 할지라도 인간이라면, 사람의 도리를 알아야만 한다.
마치 부모가 소 팔고, 논 팔아 자식을 공부시켜 놓은 후, 출세한 자식놈이 시골에서 가난하게 사는 부모 형제에게
쥐꼬리만한 용돈을 쥐어주면서 생색만 내어 가는 호로자식과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정 그렇다고 한다면 갈테면 가라! 친중 사대파들아! 니들이 원하는 개마고원이나 아오지로 가서 잘 살아라!
베이징으로 가던~ 충칭으로 가던~ 니들이 떠나라~ 니네들이나 다 가버려라~
미군정이 1945년 한반도에 진출하면서 그들은 편의상, 전라도를 하와이, 경상도를 플로리다, 평안도를 텍사스,
함경도를 알래스카, 라고 호칭하였다. 그 중 하와이에 대하여만 별칭으로 남았으며, 호남인들은 하와이 라고
언급하면, 그들은 그만 경기를 일으킨다.
하와이든 알래스카든 그 곳이 좋다면, 거기가서 살면 될 일이다. 더불어 김정은과 만수무강 하라!
- 서울 과학기술대학교 명예교수 김광수 -
<염경섭 교장님이 주신 카톡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