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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45)
말씀: 계 21:1-8. 2025년 3월 16일 오전 11시
성경은 세 가지의 하늘과 땅, 세 개의 세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로 멸망했던 이전 세상의 하늘과 땅(벧후3:5-6),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세상의 하늘들과 땅(벧후3:7), 천년 왕국 이후에 있을 다가올 세상의 하늘들과 땅입니다. 이것을 새 하늘들과 새 땅이라고 합니다. 대언자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은 [보라, 내가 새 하늘들과 새 땅을 창조하노라. 이전 것은 기억나지 아니하며 생각나지 아니하리라.](사65:17)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새 것을 좋아합니다. 새 차, 새 옷, 새 집, 새 책, 새 상품 등 온통 새 것을 찾습니다. 그러나 정작 새 몸, 새 사람, 새 창조물과 같은 더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는 무지합니다. 이들은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과 같이 우리가 장차 살게 될 것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없습니다. 지금 있는 하늘들과 땅이 없어지고 새 하늘들, 새 땅이 창조된다는 사실은 어떤 천문학자나 물리학자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만들 새 하늘들과 새 땅이 내 앞에 남아 있을 것 같이........”(사66:22)라고 하셨는데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새 하늘들과 새 땅 역시 창조하십니다. 이단들이 말하는 선천지벽, 후천개벽은 주체가 없습니다. 세상의 종말 역시 주체가 없습니다. 성경은 그 일의 주체가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지금 영원의 시작 부분에 와 있습니다.
우리는 계20장에서 천년 왕국을 다 보았습니다. 큰 환란이 끝나고 천년 왕국이 끝나고 영원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이 보입니다. 현 세상의 통치자요 왕이었던 마귀가 결박되어 천년 동안 갇혔다가 잠시 풀려나 반역을 꾀했지만 불 호수에 던져지고 말았습니다. 사탄에게 속아서 성도들의 진영과 어린양을 대적했던 사람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불로 한 순간에 소멸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불로 하늘과 땅의 원소들을 해체해 버렸고 처음 있던 하늘과 땅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하늘과 땅이 없어질 때까지”라고 한 말씀이 정확히 이 때까지입니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에서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마침내 다 성취되리라.](마5:18). 이 말씀의 핵심은 율법의 성취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 일 점 일획도 남김없이 다 성취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땅에 율법을 성취하러 오신 주님께서 그 성취의 시점을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그 날이 언제인지 계시록 20장을 통해 정확히 볼 수 있습니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주님의 이 약속은 무의미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또 율법의 일획이 떨어져나가는 것보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는 것이 더 쉬우니라.](눅16:17)고 하셨고,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눅21:33)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하늘과 땅이 없어진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말씀(말들)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시작된 하늘과 땅이 아직 없어지지 않았는데 주의 말씀은 없어졌다는 주장을 태연하게 하는 신학자들, 원어 학자들이란 사람들은 사실은 거짓말쟁이에 불과합니다.
최초의 원본이 없어지고 이 땅에서 주의 말씀이 없어졌다가 최근에 사본들이 무더기로 발견되어 성경이 좀 더 정확하게 복원되고 있다는 주장 역시 완전히 헛소리요 거짓말입니다. 주의 말씀은 역사에서 사라지거나 소멸되거나 없어지거나 땅 속 어딘가에 매장되어 있다가 최근에 고고학자들의 노력으로 부활한 것이 아닙니다.
주의 말씀이 없어지는 것은 하늘과 땅이 사라지는 것보다 더 어렵고 하늘과 땅이 없어져도 없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의 말씀은 언제나 이 땅의 성도들의 입에 있고 마음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세상과 현재 있는 하늘들과 땅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천년 통치가 끝나고 잠시 풀려난 사탄의 반역과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의 반역과 더불어 하늘에서 내려오는 불에 다 녹아 없어지고 맙니다.
이 사실은 만화나 영화나 신화나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입니다. [지금 있는 하늘들과 땅은 주께서 같은 말씀으로 보관하여 간직하사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에 불사르기 위해 예비해 두셨느니라.](벧후3:7).
여러분들은 이런 말씀을 읽을 때에 이 말씀이 언제 성취되는지 정확히 성경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언과 성취를 공부하는 일은 성경 신자들에게 큰 즐거움이요 기쁨입니다. 지금 있는 하늘들과 땅은 주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본문에 따르면 “같은 말씀으로 보관하여 간직하고”계십니다.
주님은 권능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떠받치시고 계십니다(히1:3). 그러나 이것이 영원무궁토록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심판과 멸망의 날에 불사르기 위해 예비해 두신 것입니다(벧후3:7).
여기서 말하는 심판과 멸망의 날이란 천년 왕국이 끝날 때 사탄의 반역에 동참한 민족들을 심판하고 멸하는 날입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순식간에 삼키는 날(심판과 멸망의 날)에 주님께서 보관하고 간직했던 하늘들과 땅이 불살라집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밤의 도둑같이 오리니 그날에 하늘들이 큰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원소들이 뜨거운 열에 녹으며 땅과 그 안에 있는 일들도 불태워지리라.](벧후3:10).
성도들의 진영과 사랑받는 도시를 에워쌌던 민족들은 그 날이 멸망과 심판의 날이며 또한 하늘들이 사라지고 원소들이 뜨거운 열에 녹으며 불태워지는 날입니다. [그런즉 이 모든 것이 해체되리니 너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겠느냐? 모든 거룩한 행실 속에서 하나님을 따르는 가운데 [하나님]의 날이 오는 것을 기다리고 서두르라. 그 날에 하늘들이 불이 붙어 해체되고 원소들도 뜨거운 열에 녹을 것이나](벧후3:11-12).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우리가 보고 있는 이 하늘들이 다 해체됩니다. 이 일은 큰 환란 때의 심판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아예 하늘과 땅이 불이 붙어 해체되고 녹아 버리는 엄청난 일입니다. 이것들을 창조하신 분께서 친히 멸하십니다.
[또 하늘의 온 군대는 해체되며 하늘들은 두루마리같이 함께 말리리니 곧 하늘들의 온 군대가 포도나무에서 잎사귀가 떨어지는 것같이 떨어지고 무화과나무에서 무화과가 떨어지는 것같이 떨어지리라.](사34:4).
하늘들의 온 군대가 해체되고 두루마리 같이 함께 말린다는 말씀은 지금 있는 하늘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증해 줍니다. 우리는 창세기에서 하늘과 땅의 창조에 대해 배우지만 동시에 하늘과 땅의 해체, 소멸도 함께 배웁니다. 주의 말씀으로 창조된 하늘들과 땅이 사라진다는 사실은 놀라운 말씀입니다.
[너희는 하늘들을 향해 눈을 들고 아래 있는 땅을 살펴보라. 하늘들이 연기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같이 낡아지며 그 안에 거하는 자들이 그와 같이 죽을 것이나 내 구원은 영원히 있겠고 내 의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사51:6). 하늘들이 연기같이 사라진다는 구약의 예언의 말씀이 요한계시록에서 정확히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본문 1절입니다.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으니 이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졌고 바다도 다시는 있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더라.](계21:1).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십니다. 없어진 것은 “처음 하늘, 처음 땅”입니다. 창세기 1:1에는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창1:1)고 했습니다. 2절의 깊음의 물들은 하늘과 땅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보낸 것입니다. 그 때 있던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했습니다(창1:2, 벧후3:6).
성경에 무지한 이들은 베드로후서 3:6절 말씀을 창세기 1:2의 물이 아니라 노아의 홍수로 연결 지음으로 오류를 범합니다. 지금 본문에서 다시는 존재하지 않는 것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늘, 땅, 바다”입니다. 이것은 처음에 있던 것입니다. 창세기 1:1-2에서 우리는 “하늘, 땅, 바다”의 조합을 본 그대로입니다. 창세기 1:1-2절 말씀에 나온 하늘, 땅, 물(바다)이 계시록 21:1절에서 사라졌고 다시는 있지 아니합니다. 성경의 처음과 끝이 완벽하게 호응하는 구조로 되어 있음에 주목하십시오. 여기서 말하는 바다는 땅에 있는 태평양, 대서양, 지중해와 같은 바다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땅에 있는 모든 바다나 모든 물은 땅에 속한 것으로 땅이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집니다.
계21:1절에서 말하는 바다는 땅과 하늘들 사이의 윗물(창1:7)을 말하며 궁창위의 물로 하늘들 위에 있는 물들(시148:4)입니다. 이를 깊음이라 말하며 그 깊음의 표면이 단단히 얼어 있는 바다요, 용들이 거닐고 노는 바다요, 수정 같은 유리 바다라고 하는 그 바다입니다. 큰 흰 왕좌 심판 때에 사망과 지옥과 바다가 각기 자기들 안에 있던 죽은 자들을 내어 놓고 난 후 사망과 지옥은 불 못에 던져졌고 바다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질 때 함께 사라졌습니다.
지금 있는 땅은 사람들의 죄로 인해 저주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하늘들은 무엇 때문에 멸망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6일 창조 과정에서 매일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시지만 6일 중 어느 한 날은 그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창세기 1:4절에 첫째 날 빛을 보시고 “그 빛을 보시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셋째 날(1:10,12) 넷째 날(1:18), 다섯째 날(1:21), 여섯째 날(1:25,31)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뭔가 일을 하시고 그것을 보신 후에 아무 말씀이 없는 하루가 있었습니다. 둘째 날 물과 물을 나누시고 궁창을 만들고 하늘이라 부르신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그 저녁과 아침이 둘째 날이니라.](창1:8). 8절에서는 다른 날들과 달리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둘째 하늘은 마귀들의 거처이기 때문입니다. 욥기에 [보라, 그분께서는 자신의 성도들을 신뢰하지 아니하시나니 참으로 하늘들이라도 그분의 눈앞에서 깨끗하지 아니하거든](욥15:15)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하늘들은 깨끗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늘들과 땅은 모두 불에 타서 녹아 버리는 멸망의 심판을 받고 의가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십니다. 더러운 것이나 더럽게 하는 것이나 깨끗하지 못한 것들은 더 이상 없습니다(21:27).
2절입니다. [나 요한이 보니 거룩한 도시 새 예루살렘이 신부가 자기 남편을 위해 단장한 것 같이 예비하고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더라.] (2). 계시록에서 “나 요한이...”라며 자신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며 하는 표현은 이곳이 마지막입니다.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고 새 예루살렘을 봅니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해 준비한 도시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신랑이신 어린양과 그의 신부인 교회가 살게 될 도시입니다. “거룩한 도시 새 예루살렘”이라고 했는데 이는 그 도시가 다른 모든 도시와는 구별되는 도시이며 주님이 친히 거하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한 도시가 내려옵니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도시입니다. 로마 캐톨릭은 로마를 신의 도성이라고 불렀지만 그 도시는 이교도들의 도시일 뿐 하나님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로마는 땅에 있는 것이며 영원하지 못하고 더러운 곳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큰 도시를 예술의 도시, 경제의 도시, 금융 도시, 역사의 도시, 교육 도시, 군사 도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지만 하나님의 도성(도시)이라 불리는 도시는 없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 하나님의 도시입니다.
[이기는 자는 내가 내 [하나님]의 성전 안의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다시는 나가지 아니하리라. 또 내가 내 [하나님]의 이름과 내 [하나님]의 도시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그 사람 위에 기록하고 나의 새 이름을 그 사람 위에 기록하리라.](계3:12).
계시록의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에 새 예루살렘이 어떤 도시인지 말해 줍니다. 새 예루살렘은 사람들이 건축한 도시가 아닙니다. 땅에 있는 도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건축하시고 신부가 자기 남편을 위해 단장한 것 같이 예비해 두셨습니다. 세상에 어떤 도시도 이와 비견할 만큼 아름다운 도시가 없습니다. 큰 음녀로 불리는 신비의 바빌론이 땅의 온갖 보물로 치장을 했지만 새 예루살렘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3절입니다.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성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고 그분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시리라. 그들은 그분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리라.](계21:3).
영원에서도 하나님의 성막이 있습니다. 이 땅에 있던 성막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이었습니다. 모세가 만든 성막이나 솔로몬이 지은 성전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입니다.
[이 제사장들은 모세가 성막을 만들려 할 때 [하나님]께 권고 받은 바와 같이 하늘에 있는 것들의 본보기와 그림자를 섬기나니 이는 그분께서 이르시되, 너는 조심하여 산에서 네게 보여 준 양식에 따라 모든 것을 만들라, 하시기 때문이라.](히8:5). 땅에 있는 성막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본보기와 그림자”입니다. 레위 제사장들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본보기와 그림자를 섬긴 것입니다. 실체는 하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들에 있는 것들의 모형들은 이런 것들로 깨끗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의 것들 그 자체는 이런 것들보다 더 나은 희생물로 해야 하나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참된 것의 모형들인 손으로 만든 거룩한 처소들로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이제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려고 하늘 그 자체로 들어가셨기 때문이라.](히9:23-24).
성경은 땅에 있는 성막, 성소를 일컬어 “하늘들에 있는 것들의 모형들, 참된 것의 모형들”이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인들이 거룩한 성소라고 주장하고 경배하는 성전은 모형이지 실체가 아닙니다. 요한이 본 것은 “하나님의 성막”으로서 이것은 땅에 있던 성막, 구약의 유대인들이 율법에 따라 섬겼던 성막의 실체였습니다. 모세가 이것을 보고 성막 제작을 명했고 다윗이 이것을 보고(대상28:11,12) 성전 건축을 준비했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영으로 받은 모든 것의 양식”(대상28:12)을 자기 아들 솔로몬에게 주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하나님의 성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습니다. 이 성막은 하늘에 있던 참 성막으로 사람들이 지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치신 것입니다. [내 장막(my tabernacle)도 그들과 함께 있으리니 참으로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겔37:27).
새 땅에는 주님의 장막이 있습니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에는 성막이나 성소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성전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있는 하늘과 새 하늘이 다르며 지금 있는 땅과 새 땅이 다르며 예루살렘과 새 예루살렘도 다릅니다.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을 분별해야합니다.
새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집은 성도들입니다. [그분 안에서 온 건물이 꼭 맞게 함께 뼈대를 이루어 [주] 안에서 하나의 거룩한 전으로 자라 가고 그분 안에서 너희도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거처로 함께 세워져 있느니라.](엡2:21-22). 하나님은 사람들의 손으로 만든 전에 거하지 아니하십니다(행17:24).
4절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며 다시는 사망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없으며 또 아픔도 다시는 없으리니 이는 이전 것들이 지나갔기 때문이라, 하더라.](계21:4).
신구약 성경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이 나옵니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눈물을 흘리셨고 울부짖으셨습니다. 대언자들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밤낮 눈물로 훈계하고 가르쳤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침상을 적실만큼 눈물을 흘렸고 전도자들은 울며 씨를 뿌렸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과 자녀들로 울게 됩니다.
자, 눈에서 눈물이 없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저 하늘에서도 눈물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로 올라간 성도들의 눈물을 봅니다(계7:17).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입니다. 천년 왕국이 지난 이 시점에도 성도들의 눈에 눈물이 있습니다.
큰 흰 왕좌 심판에서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이 불 호수로 떨어지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내가 아는 사람들이 있고 친구나 친척, 가족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더라면 충분히 구원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의 혼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게으름, 혼에 대한 열정이 없어서 지옥에 있는 혼들을 볼 때 우리는 울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십니다(21:4). 하늘에서 성도들이 흘리는 두 번의 눈물에 주목하십시오. 한 번은 우리 자신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요(계7:17), 한 번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흘리는 눈물입니다(계21:4).
“.......다시는 사망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없으며 아픔도 다시는 없으리니...”(4). 로마서가 더욱더(much more)에 관해 말하는 책이라면 계시록은 “다시는 없으리니”(no more)에 관한 책입니다. 계시록에는 반복해서 “다시는 없으리니”를 반복합니다. 다시는 사망이 없습니다. 다시는 슬픔이 없습니다. 다시는 울부짖음이 없습니다. 다시는 아픔이 없습니다. 다시는 저주가 없습니다(계22:3). 사탄도 없고 사망도 없고 죄도 없습니다. 계시록은 말하기를, “다시는 없고, 없으며 ...없으리니”라고 합니다.
“이전 것들이 지나갔기 때문이라.”(4). 이 말씀은 이미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번 적용되었습니다.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passed away-사라졌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후5:17)란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며 옛 것들은 지나갔습니다. 우리의 옛 사람은 죽었고 옛 사람에 속한 모든 것이 지나갔습니다. 옛 창조에 속한 모든 것이 지나갔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면 옛 것들(아담 안에 있던 것들)은 다 지나갔습니다.
성경의 핵심 표현 중 하나가 “그것은 지나가기 위해 온다.”(it came to pass)는 표현으로 무려 452 구절에서서 453번이나 나옵니다.
우리 말 성경에는 거의 번역이 되지 않았는데 음미할수록 절묘한 표현이며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함으로 이전 것들은 다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 사라지는 것들.
1. 이 세상의 외형. [이 세상을 이용하는 자들은 남용하지 않는 자들같이 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사라지느니라.](고전7:31).2. 대언, 타 언어들, 지식. [사랑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나 대언들은 있다 해도 없어질 것이요, 타 언어들도 있다 해도 그칠 것이며 지식도 있다 해도 사라지리라.](고전13:8).3. 옛 언약. [그분께서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첫 언약을 낡은 것으로 만드셨으니 이제 쇠하고 낡아지는 것은 곧 사라지기 마련이니라.](히8:13).4. 외형의 아름다움, 부유한 사람들. [해가 뜨거운 열기와 함께 돋자마자 풀을 말리면 그것의 꽃이 떨어져 그것의 외형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유한 사람도 자기 길들에서 이와 같이 사라지리라.](약1:11).
5. 하늘들, 땅, 그 안에 있는 일들. [그러나 [주]의 날이 밤의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 하늘들이 큰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원소들이 뜨거운 열에 녹으며 땅과 그 안에 있는 일들도 불태워지리라.](벧후3:10)6. 세상과 그것의 정욕. [세상도 그것의 정욕도 사라지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토록 거하느니라.](요일 2:17).
7. 모든 섬, 산들. [또 모든 섬이 사라지고 산들도 보이지 아니하더라.](계16:20).8. 사망, 죄, 슬픔, 고통, 울부짖음, 저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때로 과거를 생각할 때 “다 지나간 일이다.”라고 합니다. 세상에는 과거를 붙잡고 사는 이들이 있고 과거에 붙잡혀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들에 붙잡히는 것은 가장 바보 같은 일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곧 뒤에 있는 그것들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그것들에 도달하려고 나아가”(빌3:13하)라고 말합니다. 이미 지난 것들, 뒤에 있는 것들을 붙들어 두지 말고 거기에 붙들리지도 말아야 합니다.
5절입니다. [왕좌에 앉으신 분께서 이르시되,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내게 이르시되, 이 말들은 참되고 신실하니 기록하라, 하시며](계21:5).
왕좌에 앉으신 분께서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하노라.”고 하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창조도 하시고 새롭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거기서 왕국을 새롭게 하자.”(삼상11:14)고 했습니다. 마음의 회개, 돌이킴을 통해 백성들은 왕국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주님께 회개하고 기도하기를, [오 [하나님]이여, 내 안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속에 올바른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51:10)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마음, 양심, 생각을 새롭게 하실 수 있고 영을 새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은 신선한 기름으로 기름 부어 주실 수 있습니다(시92:10). 죄를 자백하고 시인하며 주께 돌이키는 회개는 새롭게 하는 방법입니다.
[오 {주}여, 주께서는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돌아가리니 우리의 날들을 옛날같이 다시 새롭게 하옵소서.](애5:21)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동족 유대인들을 향해 [그러므로 너희는 회개하고 회심하라. 그러면 새롭게 하는 때가 [주]의 앞으로부터 올 때에 너희 죄들이 말소될 것이요,](행3:19)라고 합니다. 회개와 새롭게 함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새롭게 되었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되었지만(딛3:5) 이 땅에서 우리는 여전히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하며(롬12:2), 생각의 영속에서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너희의 생각의 영 속에서 새롭게 되라.](엡4:23). 크리스천들은 보수주의자, 수구 세력이 아니라 언제나 자신을 새롭게 하는 혁신주의자들입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우리의 생각, 우리 자신의 영, 우리 자신의 변화를 추구합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이런 까닭으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썩어 없어져도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는도다.](고후4:16).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하노라.”(5) 주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이 말들은 참되고 신실하니 기록하라.”(5)고 하셨습니다. 요한이 받은 마지막 명령은 받은 말씀을 책에 기록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기록은 성령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6절입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다 이루어졌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라. 내가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의 샘에서 값없이 주리라.](계21:6). 주님은 요한에게 “다 이루어졌도다.”(It is done)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졌도다.”(It is finished-요19:3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계시록에서 두 번 나오는 이 말씀은 주님께서 완성자, 성취자이심을 확증해 주십니다. 주님은 시작이시며 끝마침이십니다.
큰 흰 왕좌 심판에서 성경에 기록된 예언, 약속의 말씀들이 모두 성취되었습니다.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하나도 남지 않고 다 이루어졌음을 선포합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라.”(6)는 말씀은 주님의 영원성을 말씀하시며(계1:8) 처음과 마지막(계1:11), 시작과 끝을 말합니다(계21:6, 22:13). 말씀이신 주님은 자신을 글자(알파, 오메가)로 계시하셨습니다. 생명의 말씀, 살아 있는 말씀은 기록된 말씀으로 계시됩니다.
“내가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의 샘에서 값없이 주리라.”(6). 주님은 물을 주시는 분인데 그 물을 마시면 우리 안에 샘(우물)이 됩니다. [누구든지 내가 줄 물을 마시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그에게 줄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솟아나는 우물이 되어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라.](요4:14).
주님이 주시는 물은 한 번의 갈증만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주시는 물을 마시는 자는 그 사람 속에서 ‘솟아나는 우물’이 됩니다. 더 이상 물을 구하기 위해 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샘이 그 속에 있어 솟아나기 때문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기록이 말한 것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라.](요7:38). 예수님을 믿는 자들 속에는 생수의 샘이 있고 거기서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옵니다. 주님이 주시겠다는 물, 생수의 샘, 생수의 강들이 무엇입니까?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으니 곧 그들이 생수의 샘인 나를 버렸고 자기들을 위해 물 저장고들 즉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저장고들을 팠느니라.](렘2:13). 생수의 샘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신약에서 생수는 성령님인데 성령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오 {주}여,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여, 주를 버리는 모든 자들은 수치를 당하겠고 나를 떠나는 자들은 땅에 기록되리니 이는 그들이 생수의 샘이신 {주}를 버렸기 때문이니이다.](렘17:13). 이스라엘은 생수의 샘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의 샘에서 값없이 주십니다.
“값없이”란 말은 주님께서 아담에게 에덴의 동산에 있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freely) 먹으라고 하셨을 때 사용하신 말씀입니다(창2:16). 처음에 주님은 사람에게 마음대로(freely) 먹도록 하셨고, 성경의 마지막 부분에 주님은 사람에게 값없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값이 없습니다.
7절입니다. [이기는 자는 모든 것을 상속받을 것이며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라.](계21:7).
큰 환란 때 이기는 자는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고 표를 받지 않고 끝까지 견디는 자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예수님의 증언을 가지고 지키는 자가 이기는 자입니다.
교회에 적용하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기는 자입니다(요일4:4, 5:4). 이기는 자가 받는 것이 무엇인지 보십시오. “이기는 자는 모든 것을 상속받을 것이며...”(7)라고 합니다. 믿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이기는 자는 상속을 받습니다.
※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계15:2).
⚫ 생명나무에서 나는 것(계2:7).⚫ 둘째 사망의 해를 입지 않음.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입지 아니하리라.”(계2:11).⚫ 감추어진 만나를 먹게 하고 흰 돌을 주심(계2:17).⚫ 민족들을 다스릴 권능을 줌(계2:26).⚫ 흰 옷을 입고 생명책에서 이름을 지우지 않으심(계3:5).⚫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둥이 되게 하시고 이름을 기록하심(계 3:12)⚫ 주님과 함께 왕좌에 앉는 것을 허락함(계3:21).⚫ 모든 것을 상속 받고 하나님의 아들이 됨(계21:7).
8절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과 가증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을 일삼는 자들과 마법사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쟁이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호수에서 자기 몫을 받으리니 이것은 둘째 사망이니라. 하시니라.](계21:8).
우리는 이미 앞에서 누가 불과 유황으로 타는 호수에 던져지는지 그 대상을 배웠습니다. 짐승과 거짓 대언자는 산 채로 불 못에 던져졌습니다(계19:20). 사탄 역시 불 못에 던져졌습니다(계20:10). 사망과 지옥도 불 호수에 던져졌습니다(계20:14).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드러나지 않는 자는 불 호수에 던져집니다. 이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합니다.
지금 본문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불 호수에 던져지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두려워하는 자들, 믿지 않는 자들, 가증한 자들, 살인자들, 음행을 일삼는 자들, 마법사들, 우상 숭배자들, 거짓말쟁이들입니다. 이 구절을 볼 때 불 못에 던져질 사람들이 많겠구나, 구원 받는 이가 별로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말씀을 주의해서 보고 오해가 없어야 합니다.
이런 일을 행한 사람이 아니라 이런 사람입니다. 살인자와 살인을 행한 사람은 같습니까? 거짓말을 한 사람과 거짓말쟁이가 같습니까? 성경은 모든 사람이 다 거짓말쟁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다 간음한 자요, 살인자라고 합니다. 나는 평생 훔친 적도 없고 누구를 죽인 적도 없다고 해도 성경은 그 사람이 그 행위를 하기 전에 그 속에 그것이 있는 것을 봅니다.
거짓말쟁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거짓말을 할 수 있습니다. 살인자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누군가를 죽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지 않아도 자신 속에 있는 것들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는 자, 믿지 않는 자, 가증한 자, 우상 숭배자, 살인자로 분류됩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우리가 이런 일을 행하면 그는 불 못에 던져지는 것이 아니라 상속을 받지 못합니다(고전6:9,10 갈5:21, 엡5:5). 그리스도인이 육신을 따라 살면서 죄를 지을 때 우리는 징계를 받고 심판을 받아 병이 들거나 죽을 수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잃어버리는 영적인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a. 하나님의 구원의 기쁨(시51:12) b. 하나님의 증거(고전15:33-34) c. 하나님의 치유(고전11:30) d. 하나님의 보상(고전3:13-15) e. 유업의 상속(눅19:15-26) f. 육신의 생명(롬8:13, 고전 11:30)
하늘에서 자기 몫을 받는 사람과 불 못에서 자기 몫을 받는 사람들의 차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구원 받은 성도는 모든 것을 잃는다 해도 혼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자신의 몫(lot, 부분)을 잃어버리는 일은 있어도 생명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습니다. 둘째 사망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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