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란 무엇이기에
몇 십 년 만에 난산초등학교 동창들이 모두 모이는 행사가 있었다. 나도 그 학교를 졸업했고 교사로 20년간 근무한 학교라 기대를 가지고 참석했다. 나보다 선배는 나오지 않고 모두 후배들이라 나는 사제관계로 만나게 되었다.
일찍 갔더니 시작 전이다. 준비하는 곳으로 가니까 심 전북부지사가 쫓아와 인사를 했다. 3학년 때 담임을 한 제자다. 회장을 만나 수고한다 하고 같이 교장실에 가서 기다렸다.
조금 있으니까 어떻게 알고 한 제자가 찾아왔다. 오래되어 누구인지 얼른 알아볼 수 없었다. 누구냐 하니 영신이라 한다. 얼마나 반갑든지 안아주고 싶었다. 저의 엄마는 나와 동기동창이고 저의 언니와 동생도 담임을 한 친한 집 딸이다. 그의 남동생은, 작년에 3백만 원을 모교에 기증하여 복사기를 사도록 한 공로자다. 성격이 밝고 서글서글하며 활발하니 교장실까지 찾은 것이다. 정다운 모습이 보기 좋다며 옆에 있는 후배가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시간이 되어 운동장으로 나갔다. 본부석에 앉아 기다리니 다른 제자들이 달려왔다. 졸업한지 46년이나 된 사람들이다. 학교 옆에 살아서 자주 볼 것 같아도 소식이 없던 최0순이가 이름을 말하며 인사했다. 얼굴을 보니까 옛날 모습이 남아 있어 알아 볼 수 있었다. 손을 맞잡고 반가워했다. 같이 온 이0민. 김0숙, 박0순도 이름을 밝히고 반기니 알아 볼 수 있었다. 박군은 작년에 동생을 만나 소식을 물어본 일이 있는데 오늘 만나서 기뻤다. 옆에 나란히 앉아 지난 이야기를 하며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모두 웃자 하여 활짝 웃는 표정을 지었다. 저절로 미소가 띄어졌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이어 헤어진 뒤 52년 된 제자들이 몰려왔다. 옆 동네 살았던 고0숙, 내가 학교 근처로 이사한 뒤에 뒷집에 친정이 있던 이0화, 옆집에 살았던 김0희, 동생 보느라고 결석을 많이 한 박0희, 익산에 사는 강0천, 키가 작았던 김0준 등 그리운 얼굴들이다. 그 중 김군은 정말 소식도 몰라 궁금하였는데 갑자기 만나니 어리둥절했다. 행여 자기를 기억하지 못할까 봐 저는 알지요. 하기도 하였다. 사실 오래 되어 얼굴은 변하여 몰라보더라도 이름은 모두 기억하고 있다. 고향이라 저의 부모도 알고 한 학교에 20년이나 있어서 졸업 뒤의 이야기도 많이 들어서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들이 학교에 다닐 때는 보릿고개도 아직 넘기지 못했던 때였다. 졸업해도 중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 농번기에는 동생을 돌보느라 학교에 나오지도 못하는 여학생이 많았다. 점심에는 도시락을 가져오지 못해 굶는 아이들도 있었다. 오늘도 선생님과 같이 도시락을 먹었다고 이야기 하며 웃었다.
그들이 학교 다닐 때는 1960년대라 어렵게 자랐지만 지금은 살만하니 이번 행사에 협찬하는 제자들이 많았다. 영농조합법인 대표가 쌀 5kg 들이 200포대. 자연농원 대표가 상품 50여점, 성삼기업 대표가 욕실화 100켤레, 신기코리아 대표가 상품 250여점, 초록나래 로컬푸드영농조합 대표가 상품 50여점, 동창회장의 기념수건 300점 등 1천여점이 넘었다. 참석한 200여명이 게임을 한 뒤 몇 가지씩의 상품을 받아 갔다.
끈끈한 인정으로 모여 하루를 즐기며 갖가지 게임도 하고 웃었다. 프로그램이 다양하여 쉽게 참여하고 즐거움은 많은 내용들이라 같이 즐길 수 있었다. 2인3각, 꽃바구니 터트리기, 줄다리기, 막춤추기, 상대편 발목의 풍선 터트리기, 기원을 담은 풍선 날리기, 머리 위와 옆, 발사이로 공 옮기기 게임 등으로 어우러졌다. 나도 막춤추기, 풍선 날리기, 꽃바구니 터트리기. 줄다리기 등을 같이 하며 웃었다.
그들은 무엇에 이끌려 나에게 모여들었을까. 그게 바로 어렸을 때의 곰삭은 정이다. 1년 또는 2년 교실에서 같이 생활하며 쌓인 정이 이끈 것이다. 내 모습이 보이자 그들의 마음속에 간직했던 조그만 정이 발동한 것이다. 끼리끼리 모여 이야기를 하다가 번개처럼 스치는 인정이 일어서게 한 게다. 그들의 공통 된 말은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다정했었어요.’였다. 어려운 시절이라 조금만 그들의 마음에 고마움을 느끼게 했어도 잊지 않았던 것 같다. 꾸중을 듣고 벌도 받아 좋지 않은 감정이 남아 있는 제자들도 많을 것이다. 그래도 옛정을 넘어서지는 못하는 것 같다. 지금도 아쉬운 것은 그 때 좀 더 잘 해 줄 걸이다.
수도권과, 충청, 전라도의 각 지역에서 모여든 동문들이 옛정을 느끼며 즐긴 하루였다. 오래도록 같이하고 싶지만 내일은 각자의 일터로 가야할 상황이라 아쉬운 작별을 했다. 무엇인가 좀 더했으면 하는 미련을 남기고 내년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으로 헤어졌다.
제자들을 많이 만났고 오래도록 보고 싶었던 얼굴들도 보게 되어 뜻 깊은 하루였다. 제자들 건강하고 하는 일들이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빈다. 돌아오는 길에 햇빛이 한 없이 쏟아진다.
( 2015. 10.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