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땅이름
(토박이 땅이름을 중심으로)
과천문화원 유튜브용 220621
안녕하세요?
전 국가지명위원이면서 현재 한국땅이름학회 회장인 배우리입니다.
아시다시피 오늘 과천 얘기를 들려 드릴 텐데요.
우선 저기 과천시가지를 배경으로 한 땅이름들을 보아 주세요.
선바위 배랭이 향교말 새술막 ... 더러는 들으셨으리리 믿습니다. 이들을 중심으로 해서 제가 오늘 과천의 토박이 땅이름 이야기를 해 드릴까 해요
1970년대 무렵 과천시 모습이에요.
길이 하나 길게 가로로 지나고 있죠? 그 도로를 중심으로 해서 과천시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저 위쪽을 보시면 관악산이 울타리처럼 쳐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죠.
그 아래쪽에 향교가 있고요. 향교 아래 향교말도 보이고 있습니다.
그 향교말에서 아래쪽으로 쭉 남동쪽으로 내려오면 새술막이라는 마을이 보입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조금 가면 두집매라는 작은 마을이 있고 다시 더 가면 과천읍내입니다.
남태령으로 이어지는 큰길을 보실 수가 있습니다. 큰 길이 나 있지만 옛길은 아닙니다. 옛 사람들이 다니던 길은 그 오름쪽 골짜기 밑으로 나 있죠.
과천시 근처의 <대동여지도> 모습입니다.
빨간 테두리를 한 부분이 관악산이고 그 아래 동그라미 부분이 과천고을입니다.
저 위 북쪽 지점에서 남쪽으로 쭉 뻗은 길이 있지요. 옛날에 많이들 다녔던 남도길이에요. 그 남도길 한양 문턱에 있는 고을이 바로 과천이지요.
과천 하면 관악산을 빼 놓을 수가 없고요 그 관악산 남동쪽으로 형성된 시가지가 지금의 과천시가 되겠습니다.
과천시가지를 중심으로 해서 관악산 맞은편 쪽에 있는 것이 바로 청계산인데 지도에서는 일부만 보입니다.
옛날 마을 이름들이 보이지요. 다음 화면을 보면서 설명해 나갈께요.
동사힐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셨는지요? 과천의 삼국시대 이름입니다. 동사힐, 이 이름은 고구려 때의 과천 지명입니다.
이 동사힐을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음차이기 때문에 그 음을 잘 풀어야 됩니다. 학자들이 많이 풀어본 걸 여기 적어 봤는데요, 이 동사홀을 돋골 도사골로 보는 겁니다. 언덕이나 작은 산, 이런 쪽으로 해석하면 좋을 거 같아요.
높은 지역임을 나타낸 것으로 보여요. 즉, 동사홀은 높은 지역임을 표시한 것을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동사힐과 함께 쓰인 이름이 바로 율목 또는 율진입니다. 역시 삼국시대 지명인데 신라에서 사용한 이름입니다.
이 율목이란 이름을 가지고 여러가지로 해석들을 합니다. '밤'이니 '과일'이니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런 쪽보다는 지형적으로 풀어야 될 것 같아요.
율목을 밤나무로 해석하는 것은 좀 생각할 부분이 있습니다. 율목 또는 율진 등은 받나미를 그렇게 표기한 것으로 봅니다. 산을 넘는다의 뜻으로도 보기도 하니깐요. 그러니까 과천은 산이 높은 고을이다 이렇게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신라 경덕왕 때 와서는요 과천고을이 율진군이 됩니다. '율'자 지명이 그냥 계속 이어지는 거지요.
고려 초에 오면 과주군이 되고요. 그 다음 조선 태조 때에 과천이라는 이름이 처음 나옵니다.
그 뒤로 옆의 고을 금천과 합해서 하나의 고을을 만드는데 그게 금과현이에요. 금천의 '금'자와 과천의 '과'자를 따서 지은 겁니다.
과천시 토박이 땅이름들이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는 이름들이 보일 것 같아요.
향교말이라든가 갈현동의 찬우물이라든지 저 남태령고개 옆의 선바위라든지 ... 이런 이름들은 여러분들이 많이 접하셨을 거라고 믿습니다.
청계산 쪽으로 가면요 막개 배랭이라든지 삼부골 등이 보입니다.
과천시내를 중심으로 한 현재의 지도를 보여 드리고 있습니다.
북서쪽의 관악산, 남동쪽의 청계산 그 사이에 과천시가 보이고 있습니다.
화면 중앙 왼쪽이 과천 시내 아파트 지역인데 거기에 새술막이라든지 향교말이라든지 이런 게 보이고 있습니다.
그람을 보면서 설명을 드릴까요?
보시기 전에 이걸 잠깐 얘기하고 싶어요. 일본인들이요 우리나라에 와서 토지 조사를 하면서 전국적으로 행정구역을 마음대로 조정했고 이 과정에서 땅이름들이 많이 훼손됐습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이 부르던, 토박이 어름들이 부르던 이름들을 카타카나로 표기를 했더라고요. 그걸 보면 그 당시에는 이런 이름으로 불렀구나 하는 것을 지금의 우리들이 알 수가 있어요. 예를 들어 갈현동에 가루개 같은 거 보면 카타카나로 가루개 이렇게 쓰여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그게 당시 사람들이 주로 부르던 이름임을 알 수가 있는 거죠. 그 무렵에 일본 사람들이 토지 정리를 하면서 토박이 땅이름들을 많이 적어 놨어요. 당시 많이 불렀던 땅이름들을 알 수 있으니 그나마라도 다행이라 해야 할까요.
저는 이 지도를 보고 땅이름 연구에 큰 도움을 보고 있습니다. 연구하는데 큰 보탬이 됩니다.
과천을 알기 전에 먼저 관악산부터 아는 것아 부여하죠.
서울에서 남쪽 수원쪽으로 이어지는 길에 과천이 았죠 옛날 길이에요. 상당히 중요한 길입니다.
그래서 춘향전에 그 내용을 보면 이도령이 전라도 남원으로 가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 여정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읽어 볼깨요. 고사당에 하직하고 전라도로 내려갈 제 청파역졸 분부하고 숭례문 밖 내달아서 칠패팔패 이문동 도제골 청파 배다리 돌모루 거쳐 모래톱지나 동작이 바삐 건너 승방뜰 남태령 과천 인덕원 중화하고 ...
그 중에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남태령 과천 인덕원 ... 여기서 인덕원 중화하고 .. 이것은 인덕원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런 뜻이 되겠습니다.
과천에 관악산 하고 우면산 사이에 그 옛길 그 길이에요. 옛날 모습인데 지금은 인적이 거의 없습니다.
옛날 사람들 지나던 길인데 ...
남태령옛길... 빛돌과 함께 안내문도 적어 놨습니다.
새술막이 나오죠?
제가 과천에 살았거든요. 한국전쟁 피난시절 여기 향교말과 홍천말에서 살아서 당시의 따잉름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 향교는 시흥향교라고도 불렀었죠. 과천이 한때는 시흥군에 속해 있었으니까.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 문원리. 제가 산 곳이 바로 문원리 중에서도 향교말이거든요.
당시 사람들은 향교말을 생겻말이라고 불렀어요. 향교말의 옛날 모습이 보입니다.
향교말 향교골이 이렇게 엄청 많아요.
<한국지명총람>에 나오는 이 이름들 일부를 사진 찍어서 올려 본 건데요. 한자로는 교동 교리 교촌이라고도 불러요.
새술막은 한자로는 신주막이라고 그러죠. 여기는 조선시대에 술을 파는 집들이 있었죠. '술 파는 집들이 있는 새 마을.이란 뜻에서 새술막입니다.
여기는 과거길 손님들이 지나다가 술 한잔씩들 했다고 그래요.
이 그림은 어느 술집에서 한 선비가 술을 마시는 모습입니다.
새술막에서 읍내쪽으로 가다 보면 비석거리, 거기에 효자각과 과천현감 공적비들이 길가에 줄지어 있었어요. 이 비석들은 나중에 과천 개발 때 옮겨졌어요. 효자각은 아예 없어졌구요. 비석거리의 공적비는 온온사 뜰에 전부 옮겨 놨어요.
1970년 무렵 과천에서 홍촌말 모습 일부입니다. 남양홍씨 친척들이 모여 살았던 동네죠.
홍천말에서 안양쪽으로 가다 보면 가루개라고 하는 마을이 있는데 지금의 갈현도이죠. 거기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지금도 느티나무가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나 주택 사이에 끼어 찾아보기가 좀 어렵게 되어 있더라구요.
과천시 청계산 인근 지역으로 가 보겠는데요. 거기는 지금 보다시피 오른쪽에서부터 막개 배랭이 새터말 사기막골 이런 마을들을 볼 수가 있어요.
청계산에 골짜기 그 방향으로 가 볼까요. 1979년 무렵 모습을 보여 드리고 있는데 1970년대 말에 여기에 어린이대공원이 들어서는 거예요. 그 때 이곳의 마을들이 다른 데로 옮겨 갔죠. 당이 이곳의 마을 사람들이 조상묘부터 옮겨야 한다 해서 그 작업들을 해야 했어요. 그림은 옮기려고 막계리 사람들이 그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곳에 여러 마을이 있었는데 그 마을들이 전부 이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막개 마을은 두 뜸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위와 아래로 되어 있는데 하나는 양지쪽에 있어서 양지말이고요, 위에 사진입니다. 하나는 음지쪽에 있어서 음지말입니다. 전체를 아울러서 그냥 막개로 불렀지만 따로 부를 때는 양지말 음지말 이렇게 불렀던 겁니다.
막개에 대해서 조금 연구를 해 본 내용인데요, 막개, 이것은 맑은내의 뜻이에요. 한자로는 청계입니다. 맑다는 뜻의 맑을 청자, 내라는 뜻의 시내계자(계곡이라고 할 때의그 한자)입니다.
청계산이란 이름도 이것이 바탕이 되었다고 보는 겁니다.
우리 땅이름들을 살펴 봤죠.
토박이 땅이름들이 사라져 갈 위기에 있어요. 누가 불러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요. 마을들이 사라지니까 아예 그냥 마을 흔적도 땅이름도 함께 사라져 가는 겁니다.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 언어 유산인데 이런 이름이 자꾸 사라져 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이야기 잘 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