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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운전 중에 조금 허전한 생각 허무한 허탈감 이런 생각이 좀 저를 이렇게 찾아왔어요.
여러분도 경험했던 것처럼 좋지 않은 생각이나 마음이 이 머리에 자리 잡는 걸 막기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여러분 나쁜 생각이 들 때 여러분 그게 쉽게 떨쳐버릴 수 있던가요? 잘 되지 않죠? 저도 마찬가지로 좋지 않은 생각이 마음과 머리에 자리 잡지 않는 것을 막기는 어렵습니다. 제 머리와 마음에 자리 잡은 것은 생각이라기보다는 어떤 장면이었어요? 어떤 장면 어떤 장면이냐 하면 농부가 해질녘에 빈 지게를 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었어요.
여러분은 지혜가 어쩜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촌 사람이라서 어려서 이게 지게를 저본 경험이 꽤 많이 있습니다. 하루에 일을 마치고 지게에 수확물들을 가득 지고 이렇게 돌아가면 일단 가족들이 수고했다고 하기도 하고 물론 같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수고했다고 하기도 하고 또 남편들은 아내에게 칭찬을 듣기도 할 것이고, 그리고 설령 그런 칭찬이 없어도 마음은 되게 뿌듯할 거예요.
그런데 하루 종일 일을 했는데 별 수확이 없이 빈 지게로 돌아가면 아주 허전해집니다. 그러니까 그 허전함이 운전하고 있는 저를 잠시 찾아왔어요. 아마 이런 거겠죠 지금의 저의 모습이 빈 지게를 지고 돌아오는 비어 있지는 않지만 아주 조금 수확물을 거두어서 지게 지고 돌아오는 농부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 빈지개는 수확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아마 제가 이제 50대 후반에 들어섰는데 들어서면서 교회나 또 제 개인적인 삶을 봤을 때 그리 열매가 많지는 않구나라는 이런 생각을 아마 하게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빈지게를 진 농부가 경험했던 그 약간 허전함이, 그리고 빈둥지를 경험하는 빈둥지를 경험하는 그런 허탈함이 저에게 잠깐 찾아왔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여러분 이 허탈감과 허무 또 허전함은 잘 살고 있는 인생들을 이렇게 흔들어 놓아요. 그러니까 열심히 살고 있는데 어느 날 이곳이 찾아와서 우리의 삶을 송두리처럼 이렇게 흔들어버리는 거예요. 요즘은 청년들도 아마 우리가 50 60대가 느끼는 그런 감정을 느끼며 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은 들어요. 워낙 시대가 청년들에게 넉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저는 목회자니까 고민을 하게 되겠죠. 그럼 어떻게 하면 이런 감정에 내가 휩싸이지 않을 수 있을까 이 감정에 내가 재물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생각을 깊이 한 것이 아니라 아주 간단하게 정말 그냥 단답형으로 한번 해봤어요. 그냥 답을 길게 고민한 게 아니라 그냥 정말 간단하게 바로 생각나는 답을 그냥 한번 내려봤어요.
제가 정말 바로 생각한 답이 뭐였냐 하면 이런 감정에 휩싸이지 않으려면 먼저 열매를 맺어야 된다. 그러니까 열매가 없어서 갖게 된 감정이기 때문에 열매를 맺으면 이런 감정은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에게 아주 잘못된 습관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에 열매가 없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리고 또 그런 사람들을 위로하고 위로받으려는 경향이 있는 거예요. 목사님이 열심히 일했으니까 목사님이 열매가 없어도 하나님 나라에 가면 하나님이 목사님을 칭찬하지 않을까요?
여러분 이런 말이 그런 감정이 찾아온 저를 위로하지는 못했어요. 왜냐하면 그래도 저는 이렇게 생각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위로하고 현실은 다른 거예요. 위로할 수는 있지만 열매가 없는 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허탈함과 허전함을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면 무조건 열매를 맺어야 됩니다. 왜냐하면 생각보다 열매의 힘이 아주 강력해요. 열매의 힘이 아주 강력해요.
우리 가정교회 목장 사역을 하는 목사님이 대표적으로 이렇게 두 분이 계셔요. 이제 두 분 다 한 분은 이제 완전히 은퇴하시고 또 한 분도 이렇게 은퇴하시고 근데 한 분이 그러니까 이분은 그러니까 은퇴도 조금 일찍 하셨어요. 하신 이후에 자기의 제자들이 있는 사역들을 이렇게 돌아보고 다니면서 설교도 하고 또 교육도 하시면서 이렇게 다니시는 거예요.
그분이 올린 사진들을 가끔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정말 열매가 많구나 정말 열매가 많구나. 여러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세상에 열매 맺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예요. 열매 맺는 교회도 많고 열매 맺는 목회자도 많고 열매 맺는 성도도 많아요.
근데 우리가 환경을 핑계로 열매 없음에 대해서 서로 위로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 말은 잠시 나를 위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진짜 내 마음 깊숙하게 찾아드는 이 허탈함이나 이런 것들은 극복하지 못해요. 왜냐하면 열매가 있어야 돼요. 열매의 힘이 아주 강력하기 때문인 거예요.
왜 교회가 열매를 맺어야 하느냐 여러분과 제가 수고해서 땀을 흘려 맺은 열매들은 그 힘이 아주 강해요. 우리가 인생에 왜 열매를 맺어야 되냐 우리가 맺은 열매의 힘이 너무 강력하기 때문인 거예요. 내 속에 순간순간 찾아오는 이 허탈함과 공허함들을 순식간에 물리칠 만큼 열매의 힘은 아주 강력합니다. 특별히 좋은 열매의 힘은 위로하는 힘이 더 커요. 그러니까 우리는 열매를 맺어야 돼요. 하지만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하는 거죠.
두 번째로 제가 생각한 답은 튼튼한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입니다. 반석 위에 지은 집을 지으면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그래서 그 집에 그것들이 부딪혀도 무너지지 않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위기가 와도 흔들리지 않는 거예요. 내 삶의 기초가 든든하면 내 신앙의 기초가 든든하면 어떤 생각이 나를 공격해 오고 어떤 삶의 현실이 나를 공격해 와도 내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여러분 생각보다 우리의 마음은 아주 약해요. 여러분 사람이 이렇게 등치가 크다고 마음이 강한 건 아니에요. 이게 마음이 강함은 등치와도 아무 상관이 없더라고요. 등치가 저보다 훨씬 더 커도 마음이 약한 사람들은 여전히 인생에 문제가 오면 쉽게 흔들리고 요동침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약하기 때문에 쉽게 시험에 들고 쉽게 포기하고 쉽게 좌절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삶의 근거를 흔들리는 곳에 두면 안 되는 거예요. 흔들리는 곳에 삶의 근거를 조금 더 지금보다는 든든하고 훨씬 견고한 곳에 둬야 돼요. 우리의 마음을 지금보다는 훨씬 더 든든하고 훨씬 더 경고한 곳에 둬야 됩니다. 흔들리지 않는 것에 삶이 자리 잡고 마음이 거처를 삼으면 결국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겁니다.
지혜롭지 않은 사람의 특징이 뭐냐? 흔들리는데 삶의 근거를 두고 산다는 거예요. 흔들린 것을 인생의 기초로 붙잡는다는 거예요.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의 차이는 지혜로운 사람은 절도로 흔들리는 것들을 자기 삶의 기반이나 기초로 삼지 않는다는 겁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흔들린 거를 붙잡고 함께 흔들리면서 고통스럽고 괴로워하는 것이지, 지혜로운 사람은 결코 흔들리는 것을 붙잡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그 내용이에요.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두 가지 고민을 좀 던져줍니다. 질문이라도 해야 될 것 같아요. 두 가지 질문 오늘 본문을 자세히 읽으면 어떻든 두 개의 질문이 크게 이렇게 대두가 돼요.
첫 번째 질문은 나는 좋은 나무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좋은 나무입니까? 물어보세요. 나는 좋은 나무일까라고 물어봐야 돼요. 좋은 나무인지가 왜 중요하냐 하면 예수님께서 좋은 나무는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기 때문이에요. 17절과 18절의 말씀입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왜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하냐 하면 나쁜 열매들이 우리를 궁하게 만들고 허전하게 만들고 허탈하게 만들기 때문인 거예요. 그리고 나쁜 열매는 우리 인생을 괴롭혀요. 여러분 인생에 괴로운 일들이 많잖아요. 그 대부분 괴로운 일들은 나쁜 나무가 만든 거예요. 좋은 나무는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를 만들지가 않아요. 그 나쁜 나무가 자기를 괴롭히는 문제를 만드는 거예요.
나쁜 나이 모이게 나쁜 열매가 맺어지고 이 나쁜 열매들은 우리 인생을 괴롭힙니다. 성도들이 나쁜 열매를 맺으면 그 나쁜 열매가 교회를 괴롭히고, 여러분이 나쁜 열매를 맺으면 그 나쁜 열매가 여러분의 가정도 괴롭히고 여러분의 자신도 괴롭혀요.
여러분 나쁜 열매에게 공격을 당하면 인생이 정말 힘들어요. 허탈하고 공허할 뿐만 아니라 그냥 힘들어요. 자기가 맺어놓은 이 나쁜 열매들로 인해서 자기가 고통을 당하면 정말 힘이 됩니다.
그럼 왜 우리는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되지 못할까요?
분명히 말씀은 우리에게 좋은 나무가 되라고 했어요. 좋은 나무가 돼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라고 했는데, 왜 그러면 우리는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가 못 됐을까요?
정말 단순한데 이 이후에 이렇게 좀 나오지만 그러니까 순종하지 않기 때문인 거예요. 순종하지 않는 성도는 좋은 나무가 될 수 없어요. 순종이 우리를 좋은 나무 되게 합니다. 좋은 나무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좋은 열매를 우리가 맺지 못하는 거예요.
우리가 빈지개와 같은 인생의 허탈함을 경험하지 않으려면 좋은 나무가 돼야 돼요. 이 좋은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겁니다. 17절에 보면 아름다운 열매라는 단어가 있어요. 이 단어는 어떤 의미냐 하면 선한 열매, 가치 있는 열매, 아름다운 열매, 좋은 열매라는 의미인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열매들을 맺어야 우리가 공허하거나 허탈하거나 또 자괴감에 빠지지 않게 된다는 거예요.
근데 이런 열매들은 여러분 어떤 나무가 맺어요? 좋은 나무가 맺는 거예요. 우리를 허탈하게 하고 공허하게 하는 것은 나쁜 나무가 맺는 것이고, 우리를 힘 있고 또 영향력 있게 살아가게 하는 열매는 좋은 나무가 맺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도가 좋은 나무가 되지 못하면 아름다운 열매를 못 맺어요.
교회도 좋은 나무가 되지 못하면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나쁜 나무가 나쁜 열매를 결국 맺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교회가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교회를 좋은 나무로 가꿔야 돼요. 교회를 좋은 나무로 여러분의 가정이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여러분의 가정을 좋은 가정으로 가꿔야 돼요.
여러분의 삶이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여러분의 삶을 좋은 나무로 가꿔야 돼요. 여러분 가꾸지 않는데 좋은 열매는 맺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가꾼 나무와 가꾸지 않는 나무는 엄청난 차이가 나요.
이제 부모님이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설교 준비에 정말 도움이 많이 될 때가 많아요. 저희 시골에는 과수나무가 많이 있는데 종류가 많아요. 그러니 따 먹으려고 심은 거라서 수확해서 이렇게 판매용이 아니니까 종류가 많아요.
근데 어떤 해는 이 나무들을 잘 이렇게 키워요. 다듬어 놓고 전지를 하면 그 해는 과일이 잘 열려요. 어떤 때는 좀 바빠서 그냥 이 과수나무를 잘 가꾸지 않고 그냥 좀 손을 이렇게 놓아둬요.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열매의 차이가 그전에보다 수십 배의 차이가 나요. 어떤 해는 아예 열매가 없을 때도 있어요. 아예 없어요. 가꾸는 거냐 가꾸지 않느냐는 이런 큰 차이를 만들어요.
교회가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교회를 좋은 나무로 가꿔야 하고, 여러분이 자신이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여러분의 자신을 가꿔야 돼요. 여러분의 가정이 좋은 결실을 원한다면 가정을 바꿔야 돼요.
근데 우리가 가정을 그렇게 가꾸고 있나요?
여러분이 자신을 그렇게 바꾸고 있습니까? 좋은 나무로 가꿔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로 자기를 가꾸는 방법이 하나 등장해요.
뭘까요? 조금 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말씀에 순종하는 거예요. 여러분 성도는 말씀이 있어야 좋은 나무로 가꿔야 돼요. 말씀이 영양분이 되고 말씀이 방향이 되고 말씀이 능력이 돼서 좋은 나무가 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결코 좋은 교회도 될 수 없고 좋은 나무도 될 수 없는 거예요.
자신을 좋은 나무로 가꾸려면 오늘 선포된 이 말씀에 순종해야 되고, 여러분이 묵상하고 있는 말씀을 또한 순종해야 돼요. 그 말씀에 순종 없이는 가정도 좋은 가정으로 개인도 좋은 성도로 가꾸어질 수는 없는 거예요.
우리를 좋은 나무로 가꾸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말씀이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의 태도인 것입니다. 우리를 좋은 나무로 가꾸는 것은 말씀입니다. 말씀이 여러분과 저를 또 교회를 좋은 나무로 성장하게 돼요. 말씀에 순종할 때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로 성장하게 됩니다.
두 번째 질문 다 우리가 유추할 수 있죠. 그럼 나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나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인가 나는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인가 또 이 질문을 좀 더 간추리면 나는 지혜로운 사람인가 나는 어리석은 사람인가 반석 위에 집을 지으면 허탈하거나 허무한 감정이 쉽게 우리를 찾아오지 않아요. 왜냐하면 흔들리지 않기 때문인 거예요. 25절 말씀입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오.
삶의 근원이 경고하지 않으면 작은 문제에도 인생은 쉽게 흔들립니다. 문제는 흔들리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인생에는 문제가 많아진다는 거예요.
여러분 지진이 많은 나라는 한 번 이렇게 집이 지진이 오면 집이 이렇게 흔들리잖아요. 두 번째 지진이 오면요. 이미 이 집들이 한 번 흔들렸기 때문에 더 쉽게 폭삭 이렇게 무너져버려요. 인생이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최악과도 같아요. 왜냐하면 자꾸 문제를 만들어요. 흔들릴 때 한 문제가 하나 만들어지고 흔들릴 때 또 하나가 만들어지고 흔들릴 때 또 하나가 만들어져요.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지진을 경험하거나 어떤 충격을 경험한 집들은 그다음에 충격이 오면 쉽게 이렇게 무너져 버립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지어야 흔들리지 않게 되는 거예요.
흔들리지 않는 곳에 내 삶의 근원을 둬야 돼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인생이 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문제나 위기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인생이 될 수 있을까요?
답은 첫 번째와도 같아요. 말씀에 순종하는 거예요. 말씀에 순종하는 노력이 우리를 반석 위에 자리 잡게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우리의 신앙, 우리의 믿음, 우리의 삶은 든든해지고 튼튼해져요.
반대로 우리는 흔들릴수록 문제를 점점 더 많이 갖게 돼요. 여러분 집이 한 번 흔들리고 나면 곳곳에 문제가 발생해요. 누수가 되고요. 단 전선이 끊어진 곳이 있고요. 흔들릴 때마다 문제가 만들어지는 거죠.
여러분 인생에 문제를 없는 인생을 살 수는 없지만 막으려면 문제를 좀 적게 하려면 흔들리지 않아야 돼요. 왜냐하면 흔들릴 때마다 문제가 하나 발생하거든요. 어떤 사건이 생겼어요? 가정이 흔들려 그럼 가정에 또 문제가 하나 발생해요.
어떤 사건이 생겼어요? 그럼 또 그 때문에 흔들려요. 그러면 내 삶에 또 또 문제가 생겨요. 흔들린 거에서 내가 끝나는 게 아니라 문제가 자꾸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반석 위에 흔들리지 않는 곳에 집을 지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순종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인 거고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원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인 거예요.
순종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사람이고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나쁜 열매를 맺는 사람인 거예요.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서 모래 위에 집을 지으면 어떤 결과가 날까요?
여러분이 말씀을 거역하고 거절하면 여러분은 자꾸 반석인 여러분의 집을 모래 위로 옮겨 짓는 것과도 같아요.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27절입니다. 같이 읽습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힘에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여러분 말씀은 아주 강력해서 말씀을 순종할수록 인생은 든든하고 견고해져요. 반대로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수록 인생은 흔들리게 되고 경고하지 않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씀 힘이 강력하기 때문에 말씀에 순종하는 자의 삶도 아주 강력해지는 거죠. 힘 있어지는 거예요.
히브리서 4장 12절 말씀입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자위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흥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느니라
왜 말씀이 이렇게 강력할까요?
여러분 말씀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4장 12절에 기록해 놓은 거예요. 왜 이렇게 말씀이 강력할까요? 성경에는 말씀이 왜 이렇게 힘이 강한지에 대한 설명을 여러 군데 해놨어요. 가장 먼저는 말씀이 곧 그리스도이기 때문인 거죠.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이잖아요. 그래서 말씀이 강력한 거예요.
두 번째 이 말씀은 영원하기 때문인 거죠. 단위적이거나 이례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하기 때문에 강력해요. 또한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말씀의 힘은 아주 강력한 것입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말씀이 하지 못할 일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씀에 순종하면 그 순종하는 것 때문에 인생이 든든해지고 견고해지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거예요. 말씀이 너무 힘이 있기 때문인 거예요. 주인님 말씀을 순종하면 인생이 단단해진 건 순식간에 일이라는 거예요. 말씀에 순종하면 인생이 튼튼해지고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해지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거예요. 그만큼 말씀의 힘이 강력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려면 말씀의 길을 걸어야 하고 말씀과 함께해야 돼요. 그래서 시편 기자가 말하기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렸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 119편 50절입니다. 같이 읽습니다. 시작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처럼 강력해서요. 위로하지 못할 것도 없고요. 그 어떤 것도 다 해결할 수 있는 게 말씀의 강력인 거예요. 모든 것을 위로할 수 있는 힘이 말씀에게 있습니다. 고통도, 말씀은 고통도 위로할 수 있고요. 말씀은 가난도 위로할 수 있고요. 말씀은 비참함도 위로할 수 있어요.
여러분 우리는 말씀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잘 몰라요. 그래서 말씀과 동행하려고 하지 않는 거예요. 말씀과 동행하면 이 말씀이 여러분의 삶에 다가오는 고통이나 허전함이나 이 모든 것들을 다 위로할 수 있어요.
근데 우리가 말씀과 어떻게 해요? 동행하지 않는 거죠. 그래서 이 말씀의 강력을 경험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장 37절입니다. 같이 읽습니다. 시작
대접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할렐루야
하나님 말씀에 불가능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좋은 나무를 만들고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단석 위에 집을 짓는 짓게 한다는 거예요. 그만큼 말씀이 강력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말씀은 성도들을 좋은 나무 되게 합니다. 말씀으로 좋은 나무가 된 성도들을 통해서 아름다운 열매가 맺어지는 거예요. 이 아름다운 열매가 맺어져야 인생에 찾아오는 허전한 허무함을 이겨낼 수 있고요.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영광스럽게도 할 수 있어요.
여러분은 좋은 나무입니까? 좋은 나무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계십니까?
좋은 나무여야 좋은 열매를 맺고 좋은 열매를 맺어야 인생의 위기 때마다 찾아오는 이 나쁜 감정들을 이겨내서 위기를 쉽게 극복해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과 동행하고 또한 말씀은 성도의 삶의 터전을 경고하게 합니다. 삶의 터전이 경고해야 흔들리지 않아요. 말씀이 이미 강력하기 때문에 어떠한 삶의 위기도 이 말씀은 다 잡아줄 수 있는 거예요. 말씀이 위로하지 못한 아픔이 없고요. 말씀이 함께하지 못할 어려움이 없어요.
근데 문제는 우리가 우리가 이 말씀과 함께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 말씀을 생명처럼 여기거나 이 말씀을 목숨처럼 여기거나 이 말씀을 순종해야 내가 산다는 생각을 못하고 살아가는 거예요. 그냥 은혜 좀 받으면 도전 좀 받으면 좋다. 이게 전부인 것이지 말씀이 나를 살린다는 생각을 못하는 거예요.
한번 따라가겠습니다.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립니다.
할렐루야 말씀이 우리를 살려요. 말씀이 말씀과 함께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의 터전 영적인 터전인 모래 위에 자리 잡게 됩니다. 지금 이 땅의 교회들이 쉽게 흔들리는 것 바늘석 위가 아니라 모래 위에 집을 지어서 그래요. 모래 위에서 집을 지은 이유는 우리가 말씀과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인 거죠. 이 땅에 교회들도 쉽게 흔들리고 성도도 흔들리고 목회자도 흔들려요.
요즘은 진짜 과관입니다. 옛날에는 교회가 어려우면 목사가 흔들리면 또 성도들 중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있어서 교회를 꽉 잡고 있고, 저는 성도가 흔들리면 목사가 교회를 딱 잡고 있어서 그래도 교회가 살 길이 있는데 요즘은 어떠냐 목사도 성도도 다 흔들리는 거예요.
이런 일이 왜 벌어졌을까요? 우리가 말씀의 능력을, 말씀의 힘을 몰라서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말씀과 함께하지 않아 우리가 모래 위에 우리의 집을 신앙의 집을 지었기 때문인 거예요.
그래서 요즘은 다 흔들립니다. 그래서 요즘은 어떻든 가정이든 교회든 무조건 흔들림이 없게 해야 돼요.
제가 교회 일을 할 때 미적미적하는 것 같고 늦추는 것 같은 느낌이 여러분도 꽤 들 거예요. 예전에는 교회 일들을 좀 그렇게 하지 않고 해도 그걸 잡아주거나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좀 있었어요. 이젠 저희 교회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교회들도 그런 교회는 없는 거예요. 조금만 뭔가 잘못된 것이 일어나면 사람들이 떠나거나 아니면 교회가 막 또 분란이 일어나거나 이게 그냥 이제 일상이 됐어요.
일상이 근데 지금도 여전히 힘 있는 교회는 어떤 교회였느냐? 성도들이 말씀을 붙잡고 있는 교회예요. 여러분은 주의 말씀을 붙잡고 계십니까?
말씀을 잡고 계셔야 됩니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게 돼요. 말씀을 잡고 있어야 돼요. 여러분 가정에 정말 힘든 일이 생겨서 그 가정이 힘든 게 아니라 그 가정을 붙잡고 있는 말씀이 없어서 힘든 거죠.
여러분 인생이 진짜 힘든 게 아니라 여러분의 말씀을 붙잡고 있는 말씀이 없어서 여러분의 인생이 힘든 거예요. 왜 위기 중에 자초하느냐 그 인생을 붙잡을 만한 말씀이 그에게 또 교회와 성도들에게 없기 때문인 거죠.
한번 따라가겠습니다.
말씀은 위대합니다. 말씀은 영광입니다.
할렐루야 주의 말씀은 위대합니다. 이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이 말씀이 여러분의 말씀 되게 하십시오. 말씀과 동행하십시오.
우리 청년들이 말씀 학교를 열어서 제가 그 제목을 잊어버렸어요. 청년들 인스타에서 봤는데 뭐죠? 하씨 보 하나님과 뭐죠? 하나님과 시간 보내기 하시오 이렇게 말씀 묵상 팀들을 만들어서 하시보라는 네이밍을 하고 청년들이 이제 기수별로 계속 말씀 묵상을 하더라고요. 청년들이 언제 세상에 빛과 영향력이 될까요? 말씀이 저들의 삶을 이끌 때죠.
여러분이 세상에 언제 언제 빛과 영향력이 될까요? 말씀이 여러분의 삶을 이끌 때예요. 여러분 말씀은 뭐든 다 할 수 있습니다. 위로도 할 수 있고 이겨내게 할 수도 있고 극복하게 할 수도 있고 낫게 할 수도 있고 고칠 수도 있어요. 이 말씀의 능력을 믿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