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하늘, 푸른 바다, 짙은 녹음이 어우러진 8월 하순의 사귀포는 지는 노을처럼 아름답지만 쓸쓸했다. 그러나 나는 피서객들이 떠난 뒤의 그 고요함이 좋았다. 만선을 위해 떠나는 배가 하루를 여는 포구에서 그 앞에 펼쳐진 광활한 바다를 바라보며 묵주의 9일기도중 감사기도 24일째의 기도를 바치고 있었다. 이 때 실로 형용키 어려운 감격이 파도처럼 밀려 왔다.
이번 나의 묵주의 9일기도 지향은 승무원인 딸이 불규칙한 비행스케쥴 때문에 주일미사를 거르다보면 언젠가는 냉담을 할 것 같다는 불안감에서였다. 그러기에 평생 냉담 자는 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지향을 가지고 기도를 시작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청원기도 사흘째 되는 날 며칠 병가를 낸 딸이 주일미사대신 평일미사라도 다녀야겠다며 병원을 나오면서 절두산 성지 미사를 가자는 것이었다. 미사 전 고백소에서 나오는 딸의 얼굴이 그렇게 밝을 수가 없었다. 주일을 얼마나 거룩하게 지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신부님 말씀에 힘입어 그 후 국제선을 탈 때마다 쇼핑이나 관광보다 호텔 방에서 책이라도 읽어야겠다며 가방에 책을 챙겨 넣곤 했다.
동병상련이련가? 서귀포의 절경인 허니문 하우스에서 벼랑에 홀로 앉아 있는 물새가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 사람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아이들 고생을 많이 시켰다. 엄마가 걱정할까봐 과 친한 친구 경아가 그렇게 가자고 조르던 제주도 수학여행을 포기 했더니, 하느님께서 세상을 두루 구경하라고 스튜디어스의 직업을 주셨나보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순간 가슴에 고여 있던 슬픔이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처럼 산산이 부서져 흩어지고 지고 있었다. 환희로 요동치는 영혼의 울림, 바로 성모님께서 딸과 나에게 주시는 선물이었다. 이는 54일간의 묵주기도 중 감사기도 3일을 남겨 놓고 계획도 없이 딸과 나를 제주도로 불러 온갖 좋은 것을 맛보게 하신 하느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가톨릭 신자로서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든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성모님을 어머니라 부를 수 있는 이 은총을 생애 최대 행복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인생이 삶의 감각을 잃을 정도의 고해만 아니라면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이런 신앙생활에서 묵주기도는 나무에 흐르는 수액과 같은 것, 절망에 몸부림 칠 때는 희망의 등불이 되고, 그리움에 목이메일 때는 아름다운 노래가 된다. 그러기에 성모님께서 가르쳐 주신 로사리오의 기도야 말로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성스럽고 거룩한 분위기를 창출해 내는 기도라 아니 할 수 없다.
이런 묵주의 9일기도 유래가 극심한 고통을 격고 있는 나폴리의 한 소녀의 가족이 성모님께 도움을 청했고, 그 응답으로 성모님께서 이 기도를 가르쳐 주신데서 비롯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후 로사리오 모후께서 성 도미니코 복자 알라노에게 주신 약속이 무려 15가지나 된다. 그 중 우리 마음에 가장 빠르게 와 닿는 것은 11번째 약속이다. ‘우리가 청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다 얻게 된다.’는 말씀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무엇이나 다 얻게 된다는 이 말씀 때문에 그동안 많은 갈등을 겪으며 살아왔다. 다른 사람들은 청하는 대로 잘 들어 주시는 것 같은데, 유독 내 기도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우리의 조급증을 해갈해 주시는 데에는 그분의 고심도 많이 따른다는 것을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무조건 우리의 청을 다 들어주겠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그 기도의 응답을 받기에 합당한가를 먼저 물으시는 것이다. 먼저 하느님 나라의 의를 구하라는 것이다.
- 동인지 아침 장미 7집 -
단행본을 준비하는 중 위 수필을 다듬다, 며칠 전 오랜만에 가깝게 지내던 동인을 만났습니다. 성당은 잘 다니느냐고 물었더니, 혼기를 놓친 딸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묵주기도를 바쳤는데 안 들어주셔서 요즘은 성당도 잘 안 나간다고 합니다. 하느님께 단단히 삐졌다는 것입니다. 순간 실소를 금치 못하면서도 그녀가 참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너나없이 우리 모두는 그렇게 나약한 존재입니다.
펌글~이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