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감영에서 만퇴당께서 관찰사재임시 건립하신 봉래각을 순례하고 남원공파종회장 따님 결혼식 때 못 찾은 판서댁(홍판서길 107)을 찾아 나섰다.
도로명이 홍판서길로 명명되어 있으니 명성을 알만하다.
풍산건축자재백화점 간판이 눈에 띈다.
풍산이란 명칭을 사용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사장님이 풍산홍씨란다.
주인이 부재중이라서 정익공파 유물전시회 도록을 선물로 내놓고 판서댁을 찾으니 집안을 수리 중이다.
풍산홍 씨14世 중효(重孝)는 13世만퇴당과 당숙질간 이다.
1740년(영조 16년) 증광문과에 장원 급제, 아들 수보(秀輔)는 1756년(영조 32년) 정시문과에 병과 급제, 손자 의호(義浩)는 1784년(정조 8년) 정시문과 병과 급제로 3대가 내리 대과(大科)에 급제한 후 모두 예조판서를 역임하여, 이를 ‘삼세연입예판가(三世連入禮判家)’라 부르는 명문가로 유명하다.
이러한 유명세로 원주시 단구동의 홍판서댁은 이인직의 신소설의 소재와 모티브로 채택되어 〈치악산〉 상편이 저술되었고, 〈치악산〉 하편은 김교제가 지어 수많은 독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도 했다.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집안을 둘러본 뒤 아쉽지만 아산을 향해야 했다.
다행히 우리 종친께서 이 집에서 기거하신다고 한다.
좋은 터의 기운으로 발복 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