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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경 제 73강>
유마경 지금쯤 많이 지루하시죠?
읽어도 잘 모르겠고, 이해도 잘 안되고....
책 읽어주는 사람. 책 읽어주는 라디오.....가 있듯이 한문책 해석해 주는 사람. 한문책 해석
해주는 SNS정도로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아니면...그냥 오늘의 5분 경전읽기. 정도로 생각하셔도.......
아이를 키워본 사람만이 이해하는 말들, 먹어본 사람만이 이해하는 말들이 있듯이...경전
해석도 그 맛을 아는 사람만이 이해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니 억지로 이해하려고 애쓰지
마시고. 평생 한 번도 볼 일 없었던 유마경에 이런 말들도 있구나...하고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라훌라존자와 그의 출가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라훌라존자는 엉겁결에 출가를 합니다. 그 이야기입니다.
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루시고, 처음 고향땅을 밟으셨을 때, 출가해버린 남편만을 기다리던
아내 야소다라는 아들 라훌라에게 처음 보는 아버지에게 인사를 시켜야하기에 어색해 할
아이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뭔가 좀 부처님 격에도 맞고 부자간의 그럴 듯한 인사와 대화거리를 고심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시킵니다. “아들아. 저 분이 아버님이시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의 가장 거룩한
스승이시고 세상의 존경받는 성인이 되셨다. 나의 남편, 너의 아버지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인사는 드려야 하지 않겠니? 그래서 내가 인사말을 준비했단다. 가서 이렇게 여쭈어
보렴. ‘거룩한 스승이시여. 저의 아버님으로서 제게 남겨줄 유산이 무엇입니까?’라고.
사실 이 인사는 상당히 외람되어 보이기도 하지만, 많은 의미가 내포된 것입니다.
제가 유추하는 의미는 이렇습니다.
1. 이 아이가 당신의 유산입니다. 라는 아내의 심정
2. 이제 출가해서 세속과는 인연을 끊었으니 왕위를 인정해 달라는 의미
3. 일반인이 아닌 아버지에게 뭔가 좀 철학적인 인사를 시키려고 한 마음
4. 아버지가 아닌 부처님으로서 가르침을 달라는 의미
5. 나라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부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려는 의미
6. 부처님이 좋아하실만한 인사말로 아들과 친숙하게 하고픈 마음
채 10살도 안된 아들 라훌라는 부처님께 다가가 공손히 인사를 올리고, 당당히 아버지에게
요구(?)를 합니다.
“거룩한 스승이시여. 저의 아버님으로서 제게 남겨줄 유산이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는 잠자코 바라만 보시다가, 당신의 바루를 들게 하십니다. 그리고는 당신이
머무시는 숲 속으로 천천히 걸음을 돌리십니다. 그러자 발우를 든 라훌라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다가 하는 수 없이, 발우를 드리기 위해 뒤를 따르게 됩니다.
그렇게 당신의 처소에 이르자, 사리불, 목련존자와 더불어 모든 제자들이 모여와 법을
청합니다. 그 자리에서 부처님께서는 제일 큰 제자인 ‘사리불존자’에게 아들 라훌라를
삭발시켜 출가시키게 하십니다. 영문도 모른 채, 삭발을 하고 가사를 입게 된 아들에게
부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라훌라여. 이것이 나의 유산이니라.”
오늘날까지도 남방에서는 어릴 때 ‘단기출가’ 혹은 ‘출가경험’을 시키는 문화가 남아
있습니다. 바로 라훌라의 이런 출가를 의미하며, 그 안에는 ‘나는 부처님의 아들이다.’라고
하는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한 의미심장함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하튼 이렇게 출가한 라훌라는 부처님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혜택을 받거나 대우를 받는
일은 없었습니다. 모든 대중과 똑같이 먹고, 똑같이 생활했습니다. 오히려 부처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힘든 일도 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나이 많은, 형, 아저씨 같은 수행자들과
함께하는 일은 버거웠을 것입니다. 더욱이 그가 남들보다 더 잘하거나, 못해도 ‘부처님 아들’
이라는 이유로 불편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밀행제일’이 됩니다. 즉 남이 보지 않게, 남의 눈에 보이지 않게 수행을 잘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짐작이 가십니까?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과 인내가 없으면 안 되는 일일 것입니다.
드러내 보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칭찬 듣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데...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수행한다는 것. 그것이 결국 부처님 10대제자 중에 한 분이 되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빛나는 보석은 아무리 감추어도 빛이 보이고, 향기로운 꽃은 아무리 숨겨도 향기를
맡게 되는 법입니다. 라훌라 존자의 경우일 것입니다.
그런 라훌라존자 이야기입니다.
佛告羅睺羅하사대 汝行詣維摩詰問疾하라
불고라후라 여행예유마힐문질
羅睺羅가 白佛言하사대 世尊이시여 我不堪任詣彼問疾하나이다
라후라 백불언 세존 아불감임예피문질
所以者何오 憶念하니 昔時에 毘耶離諸長者子가 來詣我所하여 稽首作禮하고 問我言하대
소이자하 억념 석시 비야리제장자자 래예아소 계수작례 문아언
唯羅睺羅여 汝는 佛之子라 捨轉輪王位하고 出家爲道하니 其出家者는 有何等利고
라후라 여 불지자 사전륜왕위 출가위도 기출가자 유하등리
我卽如法하야 爲說出家功德之利러니 時에 維摩詰이 來謂我言하대
아즉여법 위설출가공덕지리 시 유마힐 래위아언
唯羅睺羅여 不應說出家功德之利니 所以者何오 無利無功德이 是爲出家니
유라후라 불응설출가공덕지리 소이자하 무리무공덕 시위출가
有爲法者는 可說有利有功德이어니와 夫出家者는 爲無爲法이라 無爲法中에 無利無功德이니라
유위법자 가설유리유공덕 부출가자 위무위법 무위법중 무리무공덕
羅睺羅여 夫出家者는 無彼無此하며 亦無中間이라
라후라 부출가자 무피무차 역무중간
離六十二見하고 處於涅槃이니 智者所受요 聖所行處라
리62견 처어열반 지자소수 성소행처
降伏衆魔하며 度五道하고 淨五眼하며 得五力하고 立五根하야 不惱於彼하고 離衆雜惡하며
항복중마 도오도 정오근 득오력 입오근 불뇌어피 리중잡악
摧諸外道하고 超越假名하며 出淤泥하야 無繫着하며 無我所하고 無所受하며 無擾亂하며
최제외도 초월가명 출어니 무계착 무아소 무소수 무요란
內懷喜하야 護彼意하고 隨禪定하야 離衆過니 若能如是면 是眞出家니라
내회희 호피의 수선정 리중과 약능여시 시진출가
於是에 維摩詰이 語諸長者子하대 汝等이 於正法中에 宜共出家니 所以者何오 佛世難値니라
어시 유마힐 어제장자자 여등 어정법중 의공출가 소이자하 불세난치
諸長者子가 言하되 居士여 我聞佛言하니 父母不聽이면 不得出家니다
제장자가 언 거사 아문불언 부모불청 부득출가
維摩詰이 言하사대 然하다 汝等이 便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면 是卽出家며 是卽具足이라
유마힐 언 연 여등 갱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시즉출가 시즉구족
爾時에 三十二長者子가 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일세 故我不任詣彼問疾이니다
이시 32장자자 개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고아불임예피문질
“라훌라여. 그대가 유마거사에게 문병을 가지 않겠는가?”
“부처님. 저도 갈수가 없사옵니다. 그 이유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때는 성안의 상류층 자제들이 저를 찾아와 “라훌라 존자시여. 존자님은 부처님의 친아들
이십니다. 친아들로서 나라의 왕위를 이어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왕이 될 수도 있었는데,
그것을 버리고 출가를 하셨습니다. 왕이 되는 것과 비교해서 출가한 것이 훨씬 이익 됨이
있습니까”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법함"을 갖춰 출가공덕의 이익 됨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때 유마거사가 나타나 제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라훌라존자시여. 출가공덕을 그렇게 이야기 하지 마십시오. 출가란, 공덕을 따지거나 이익
됨을 따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눈과 말로 생각(有爲法)으로 이야기를 하자니 ‘
공덕이니 이익이니’하는 것입니다.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은 세상의 모든 학문, 견해, 언어와
표현의 한계를 넘어선 것(無爲法)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어찌 세상의 잣대로 보겠습니까?
라훌라존자시여. 출가한 사람은 세속과 탈속의 경계를 두어서도 안 되며, 그렇다고 그 가운데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세상에 말하는 모든 세상의 잣대들(62見 - 당시 학문, 논리,
사상, 철학을 대표하는 62가지 학설)을 버리고, 모든 번뇌가 없는 고요한 상태(涅槃)에 머무는
지혜 있는 성인들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 출가한 사람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유혹의 마구니들을 물리치고, 다섯 과보의 세계
(5度 - 地獄界, 鬼神界, 畜生界, 人間界, 神界)를 벗어나며, 다섯 가지 안목을 (5眼 -肉眼, 天眼,
慧眼, 法眼, 佛眼)을 얻고, 다섯 가지 기본기(5根 – 신근, 정진근, 염근, 정근, 혜근)을 갖춰서,
다섯 가지 능력(5力 - 信力, 精進力, 念力, 定力, 慧力)을 갖추어야 합니다.
또 출가한 사람은 자신의 생계를 위해 타인에게 부담이나 수고로움을 끼쳐서는 안되고,
세상의 모든 악하고 옳지 못함도 끊어서, 출가의 삶을 비방하는 무리들을 제압 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거나 하는 세상의 먼지와 잡다함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또 출가한 사람은 ‘나는 출가자다’하는 자만심과 ‘나는 응당 공양 받아 마땅하다’하는 오만심을
버려야 마음에 요란함이 없게 되고, 그래야 스스로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도 이해하게
됩니다.
이렇게 바르고 고요함으로 잘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바로 출가의 참 뜻입니다.”
그러고는 유마거사가 상류층 자제들에게 말하기를 “여러분들은 지금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이
살아 있을 때 출가하셔야 합니다. 부처님이 계시는 세상을 만나기란, 참으로 어렵고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들은 자제들이 유마거사에게 묻기를 “거사여. 부모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면, 출가 할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러자 유마거사가 대답하기를 “ 그렇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면 그때가 이미 출가인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낸다면 그것이 이미
구족계를 받은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니 부모님 허락을 받은 자는 출가를 하고, 허락을
받지 못한 분도 모두 출가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 말은 들은 32명의 상류층 자제들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습니다. 이런 분이니
저는 문병가기가 어렵습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해석해볼까요?
한자로 해석하면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입니다.
이것을 한글로 풀면 [더 이상 비교 할 수도, 능가할 수도 없는 부처님의 완전한 깨달음]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은 무슨
뜻일까요? [더 이상 비교 할 수도, 능가할 수도 없는 부처님의 완전한 깨달음’을 나도
이루고 말겠다는 다짐]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유마거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출가를 했던, 안했던 간에 [더 이상 비교 할 수도, 능가할 수도 없는 부처님의 완전한
깨달음’을 나도 이루고 말겠다는 다짐]을 세운 사람은 바른 출가를 한 사람이 된다. 라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이런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서원하셨습니까?
라훌라존자 이야기에서의 키워드는 무엇일까요?
한번 적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되뇌어 보십시오.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이 말은 뇌새김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반드시 알고 봐야하는 유마경 핵심주제>
첫째. ‘현실의 국토가 불국토(정토)’라는 것입니다.
불국토라는 것이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현재 살고 있는 이곳이라는 것입니다.
「불국품」에서 “직심(直心), 심심(深心), 보리심(菩提心)이 보살의 정토이다.” “이 마음이
청정하면 불국토도 청정하다.”라고 하여 정토(불국토)라는 것은 그것을 실현하고자 하는
보살(사람들)의 마음에 내재되어 있으므로 실천하고 표현해서 마음과 행위를 같게 한다면
현실국토(고통의 땅)가 바로 정토(불국토. 행복의 땅)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둘째. 자비정신의 실천입니다.
「문질품」에서 “어리석음과 탐욕, 성내는 마음으로부터 내 병이 생겼습니다. 모든 중생들이
병에 걸려 있으므로 나도 병들었습니다. 만일 모든 중생들의 병이 나으면, 그때 내 병도 나을
것입니다.”라는 유마거사의 말은 중생과 고통을 함께하는 보살의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즉 보살(우리들)의 병은 자비로운 마음에 의해서 생긴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보살
(우리들)의 병은 이 자비를 실천하여야 치유되며, 타인의 치유에 의해서 보살(우리들)도 함께
치유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번뇌에 싸인 중생(병든 중생)들을 깨달음(치유)에로 인도하는 것이 보살입니다.
그러므로 중생의 병을 치유해주기 위해서는 5무간죄. 지옥, 아귀, 축생의 3악도. 탐, 진, 치의
3독에 몸을 던지면서도 주저하거나, 망설이거나, 피하려하거나, 무서워하거나 하는 마음 없이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옥을 갈지언정, 이것이 자비로 누군가를 치유해 줄 수
있다면, 그 길을 가겠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보살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셋째. 평등과 존중의 불이사상(不二思想)입니다.
출가, 재가. 부처와 중생. 정토(행복의 땅)와 예토(불행의 땅). 보리(깨달은 즐거운 마음)와
번뇌(힘들고 지친 중생마음)와 같은 이분법적 구분으로는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이분법적 사고를 버리는 불이(不二)사상을 통해 절대 평등의 경지에
들어가야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장 이상적인 ‘진리’는 사실
볼 수도, 말로 표현할 수도, 글로 적을 수도 없는 것이어서 오직 자신의 확실한 신념과 의지에
달려 있다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넷째. 중생들에게 모두 깨달음의 가능성이 있음을 말합니다.
유마거사는 현실의 인간이 비록 번뇌를 가지고 악을 행하고 있더라도 그것이 악 인줄 알고,
번뇌인줄을 알아서 바꿀 수만 있다면, 궁극적으로는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일체의 번뇌가 곧 부처의 씨앗이다.”라고 하여 부처님 가르침은 이러한 중생의 번뇌에
기인하고, 그것을 고쳐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마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