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조참판(廷喆) 심양왕환일기 관련 내용 ◇
필자는 병조참판공(廷喆)의 12대손이다. 2013년 전남대 신해진 교수가 "심양왕환일기"를 국역하기 前부터 판서공파종택에서 소장해온 3대 즉, 호조판서공(德和), 병조참판공, 상원군수공(東峑)의 교지 등 중요 유품을 사진촬영 후 학습과 고증을 거쳐 장흥위씨 밴드, 종보 등에 게재하여 설명해왔다. 또 종손 형님(향산 성렬 96세)에게 3대 할아버님의 훌륭한 행적을 알려야한다면서 설득하여 100여점 이상의 유품을 방촌유물전시관에 기탁하게 하는 등 후손으로서 일정 역할을 해오고 있다.(장흥위씨 밴드에서 판서공, 병조참판공 또는 심양왕환일기, 상원군수공을 검색하면 다수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음.)
특히 지난 날 설, 추석 명절 아침 때 종택에 모여 사당 제사를 마치고 식사시 여러 당숙들께서 하신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다. "철피리, 옥피리 등은 영흥할아버님(병조참판공)께서 심양 회답사로 가시어 후금의 왕에게 받아온 유품이다, 일제 때 일본 놈들이 철피리에 장식된 금(金)을 떼어갔다"고 등 여러 내용을 들어었다.
<심양왕환일기, 파란색 책은 2013년 신해진 교수 국역>
2013년 전남대 신해진 교수가 심양왕환일기를 국역하였다. 이때 국역본 2권을 원산(정철)丈께서 위성 방촌유물관명예관장을 통해 신해진교수로부터 받아 1권은 원산丈이 소장하고, 1권을 필자에게 주면서 종손 형님에게 전달해달라고 하여 전달한 사례가 있다. 필자도 책이 필요하여 신교수에게 전화하였더니 국역한 책은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다고 하였다. 이에 서울 양천구 목동 CBS방송국 지하에 위치한 교보문고에 들러 책을 구입(2만원)했었다. 이후 책을 정독하고 심양 회답사 사행에 대해 상세히 알게 되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후 2020년 1월경 장흥신문에 장흥출신 박형상 변호사가 "방촌유물관의 ' 퉁소,(심양일기)"라는 주제로 기고하였다. 1631년 심양 회답사 사행 후 116년이 지난 1747년에 편찬한 장흥 정묘지를 근거하면서 예단 품목에 철피리, 옥피리가 없다.. 평안도 가도(椵島)를 방문하는 길에 명나라(모문룡)에서 받은 철피리, 옥피리..
황제 하사품으로 보기에는 그 장식 재질 문양 등이 여러모로 소박하다 는 등.. 이러한 기고 내용에 대해 필자는 매우 불쾌하여 박형상 변호사에게 연락, 내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서 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사실, 고증한 자료, 신해진 교수가 국역한 내용을 항의 전달한 사실이 있다.
현재 무곡 위상환님이 장흥위씨 밴드에 게재한 내용은 원산丈께서 신해진 교수가 국역한 심양왕환일기 중, 다수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후손에게 전해져 온 역사적인 일기를 늦게나마 2013년 신해진 교수가 국역하여 내용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2022년 5월 장흥위씨 대종회에서 발행한 종보(81~85p)에 박형상 변호사가 장흥신문에 기고한 내용을 사전 검토 없이 그대로 실어 훌륭한 선조의 역사 사실을 왜곡한 내용을 장흥위씨 문중에서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2022년 종보에 이 내용을 빌려 편집한 종원은 이에 대한 적절한 해명을 요청한다.
첫댓글 ▶종보 제28호(2022.05)는 제가 모집을 담당했습니다. 감수는 호산(신복)께서, 편집은 성동 만화가가 했습니다. 편집위원은 오환, 윤기, 성진, 이환, 현동 총 5명이었습니다. 백강의 해명요청에 아래와 같이 댓글로 세번에 걸쳐 답변합니다. 내 답변에 대해 백강의 답변을 요구합니다./ 벽천
답변 Ⅰ
1. 한자원문
二十三日 전략 贈物分授,
1) 만회재공이 받은 예물
✔鞍俱馬一匹, 貂皮十令, 銀子五十兩,
2) 군관과 역관이 받은 예물
軍官驛官等, 則貂各四領, 銀子各六兩,
3) 하인등이 받은 예물
下人等, 則銀子各四兩是白齊
2. 한글역문
이와 같이 운운하거늘, 臣이 말하였습니다.
"칸의 뜻이 거듭 이와 같으니, 감히 끝내 사양하지 못하나 마음은 참으로 편치 못하다."
그들이 예물을 가져와 나누어주었다.
1) 만회재공이 받은 예물
臣에게는 안구를 갖춘 안구마(鞍俱馬) 1필, 담비가죽 10령, 은자 50냥, ✔(옥소(玉簫), 철소(鐵簫)),
2) 군관과 역관이 받은 예물
군관과 역관 등에게는 담비가죽 각 4령, 은자 각기 6냥,
3) 하인 등이 받은 예물
하인등에게는 은자 각기 4냥
▶한자원문 어디에도 옥소, 철소가 없고 한글번역에 슬거머니 ✔옥소, 철소가 들어가 있네요./ 벽천
답변Ⅱ
▶박변호사의 글은 두량, 이환, 윤기 세 명이 박변호사의 약수동 사무실을 방문해 종보의 취지를 설명하고 기존 장흥신문에 실은 내용을 박변호사가 일부 수정하여 이멜로 보내와 정상적안 절차를 거쳐 게재했음을 알려드립니다.
2023.06.05 오후 5시 박형상 변호사께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해왔습니다. 박변호사는 누구 의견이 맞다 틀리다가 아니고 어느 것이 더 객관성에 부합한 전거를 지녔느냐에 대한 견해입니다./ 벽천
1. 방촌유물관 퉁소 유물에 대한 네 가지 입장
1) 백강 위성록
"청(淸) 심양에 '위정철'이 회답별사로 갔던 때에 淸 태종에게 받은 옥피리 철피리 하사품이다"
2) 방촌유물관
"방어사 위정철이 북방을 통치할 때 위무를 잘하여 여진으로부터 철퉁소와 옥퉁소를 받았다고 전한다."
3) 나주 박물관
"위정철은 1636년 영흥대도호부사 겸 함남방어사 등 북쪽 여진인을 상대하는 직책을 수행하는 중에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4) 박형상 변호사
“신해진 교수의 심양왕환일기에 소개된 선물목록내역 원문에는 퉁소나 피리에 대한 언급이 없다. 장흥 정묘지에 가도에 머물던 만회재공께서 명나라 모문룡 세력한테 철적을 받은 기록이 있다. 위 네 입장 중 장흥읍지 정묘지 기록이 실제사정에 합당할 가능성이 높다”/ 벽천
답변Ⅲ
▶종보에 실린 박변호사 글 원문과 제 견해를 밝힙니다.
①박변호사 글 어디에도 선조의 씨족사를 왜곡한 사실이 없으며, ② 어느 누구도 박변호사의 견해를 맞다고 인정한 사람도 없고, ③자신의 글애 反하는 견해를 밝힌 박변호사의 글을 실었다고 박변호사의 견해를 문중에서 인정했다니 너무나 反지성적입니다. 엄연한 편집권의 침해요, 종보편집팀을 자신의 하수인으로 깔보는 오만방자한 처사입니다.
결국 박변호사와 저를 흠집 내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씨족차원에서 전체 과정을 점검후 결론을 내립시다. 문중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으니 어느 쪽이든 해명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문중출입금지 책임을 집시다./ 벽천
2020년 1월10일자 장흥신문 기고문(http://www.jh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0044)과 동일내용의 2022년 장흥위씨종보(2022년 5월 발행) 박형상변호사가 쓴 '방촌 유물관의 ‘퉁소’, 두 <심양일기>(p81~p85 https://jhwi.or.kr/journal/22475)'/ 박형상변호사 기고문/ 링크
성록아. 이젠 어떡할 거니. 적당 것 해라./ 야운
남 글 써놓은 거 지적질이 말이나 되냐!!!/ 야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