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뢰(萬里瀨)--朴誾(박은)
눈은 봄 여울의 물을 보태고 / 雪添春澗水
새는 저문 산의 구름 뒤쫓는다 / 鳥趁暮山雲
맑은 이곳에서 취기가 깨어 / 淸境渾醒醉
새 시 지어 다시 군을 생각노라 / 新詩更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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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里瀨[만리뢰] 2수 -1 朴誾[박은]
만리나 되는 여울.
雪添春澗水[설첨춘간수] : 눈은 봄 계곡 시내의 물을 보태고
鳥趁暮山雲[조진모산운] : 새는 저무는 산의 구름을 뒤따르네.
淸境渾醒醉[청경혼성취] : 맑은 경계에 뒤섞이니 취기가 깨어
新詩更憶君[신시갱억군] : 새로운 시로 더욱 그대를 생각하네.
萬里瀨[만리뢰] : 南袞[남곤,1471-1512]의 집은 인왕산 골짜기
三淸洞[삼청동] 깊숙히 대은암 바위 밑으로 시내가 흐르는데
朴誾[박은]이 집 주인인 남곤을 조롱하느라 그 시냇물을
만리뢰라 이름하였고 남곤 집 뒤의 바위도 이름을 짓기를
알지 못하게 숨었다는 隱[은]자를 써서 大隱岩[대은암]이라 함.
이유는 집 주인 남곤이 벼슬살이 하느라고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 늦게 돌아오니 만날 수가 없는지라
시내 이름을 만나지 못하는 만리 먼 여울이란 뜻의
萬里瀨[만리뢰]라 이름 지었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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挹翠軒遺稿卷二[읍취헌유고2권] 五言絶句[오언절구]
萬里瀨[만리뢰] 2수 - 2 朴誾[박은]
만리나 되는 여울.
鵝飛右軍宅[아비우군택] : 거위는 우군(왕희지)의 집에서 날고
草滿惠連池[초만은련지] : 풀은 가득 아름다운 못에 이어졌구나.
有客來空立[유객애공립] : 친한 손님이 공허하게 돌아와 서보니
無人和此詩[무인화차시] : 이 시구에 화답하는 사람들도 없구나.
右軍[우군] : 王羲之[왕희지,303-361]의 직함인 右將軍[우장군].
왕희지는 거위를 좋아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山陰[산음] 땅에 사는 한 도사가 거위를 길렀는데,
왕희지가 한번 가서 보고는 너무 좋아 사례로 그 도사를 위해
도덕경 한 벌을 써주고 거위를 데리고 왔다는 고사를 인용.
惠連池[혜련지] : 南朝[남조] 宋나라 謝靈運[사령운]이 그의 族弟[족제]인
謝惠連[사혜련]을 보면 좋은 구절이 떠오르곤 하였는데,
한번은 시구를 생각하다 종일토록 시상이 떠오르지 않다가 꿈에 혜련을 보고
‘ 池塘生春草[지당춘샌초]지당에 봄풀이 돋아난다’란 구절을 얻었다 한다.
南史 卷19[남사19권] 謝惠連傳[사혜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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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誾[박은, 1479-1504] : 자는 仲說[중열], 호는 挹翠軒[읍취헌].
4세에 독서할 줄 알았고 8세에 대의를 알았으며
金宗直[김종직]과 崔溥[최부]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493년(성종 24) 15세에 이르러서는 문장에 능통하였으며,
당시 대제학이었던 申用漑[신용개]가 이를 기특하게 여겨 사위로 삼았다.
1495년(연산군 1) 17세로 진사가 되었고, 이듬해에는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 正字[정자]가 되었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때에 동래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의금부에 투옥되었지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6월 15일 “거짓 충성으로 스스로의 편안함을 구하고
신진으로서 장관을 업신여겼다[詐忠自安 新進侮長官].”
라는 죄목으로 梟首[효수]되니, 그의 나이 26세였다.
죽은 뒤 3년 후 1507년(중종 2) 신원이 되고 도승지로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