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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15일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길 (역방향 / 초당 - 바우길 사무국) 초당 주민센터 앞에서 ...(09:46)
‘학이시습지’는 공자의 논어 첫머리에 나오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를 우리나라 최초로
대학교와 지역 트레일 단체가 합심하여 탐사한 이 길은
강릉원주대학교 옆 강릉여행자플랫폼 강릉수월래에서 출발하여
오죽헌과 선교장, 매월당 김시습기념관, 허난설헌 생가 마을을 지난다.
죽헌저수지의 물버들 숲길도 그림 처럼 아름답지만,
강릉의 자연과 역사와 미래를 함께하는 우리나라 선비문화의 종합 선물세트와 같다. / 바우길
초당동 사진 (펌)
草堂洞
강원도 강릉시에 속하는 초당동·강문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조선 시대 광해군 때에 초당 허엽은 당파 싸움에 휘말려 화를 입을 때
산수가 수려하고 풍경이 좋은 현 안초당 연화지 자리인
강원도 강릉시 난설헌로 193번 길 1-16 [초당동 475-3] 지역에 기거하였다.
여기서 조선 시대의 유명한 여류 시인 허난설헌과 최초의 한글 소설을 쓴 허균이 태어났다.
마을이 번성하자 허엽 선생의 호를 붙여 초당이라 칭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후에 초당동은 강릉 최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살게 되었는데,
강릉 최 씨는 이곳 초당동이 최 씨 선조들이
“초당(草堂)”을 짓고 살았다 하여 초당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조선 시대 선조 때 공조참의를 지낸 유동양(柳東陽)이
이곳에 초당을 짓고 후진을 가르쳤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이와 같이 ‘초당’의 명칭 유래는 여러 가지로 전하고 있으나
일반인들이 가장 널리 받아들이는 유래는 초당 허엽과 허균, 허난설헌 등 허씨 집안과 관련된 것이다.
자세히 보니 이사님 선글라스 착용한 모습 오랜만에 본다...
바우길을 사랑하는 The 초당펜션 사장님께서 바우님들에게 정성 어린 선물을...
(누구신지 허브님에게 전화로 물어봄)
사무국 요정 신시아 님과 국땅님...구간지기 수정님.
또 다른 구간지기 선유심님의 부재로 낭만주객님이 봉사한다 (구간 지기 대타 전문으로 열심히 봉사하는 주객님)
강릉대학 홍보관 앞에서 스탬프를 찍으면서...(10:08)
에셈님과 새치미님
'학이시습지길'.... 자~ 슬슬 출발해 볼까...
초당 강릉고 옆을 지나 간다.
허난설헌 기념관 앞 건널목에서 기다리고 있던 캡님...
누님들의 신나는 댄스 타임...
지구의 경포호가 좋아 살며시 내려 앉은 달...
가운데 옥연 회장님과 주위의 경호원들...
오늘 우리는 저 눈 덮힌 높은 산을 넘어 가야 한다...(죽었다고 봐야 한다)
추워도 조금만 참자...곧, 봄이 온다.
경포 습지 상륙 작전...
경포 습지 전망데크에서 잠시 휴식...(10:49)
블루님과 미수기님...
2023년 4월에 경포에서 발생했던 산불로 인해 황폐(荒廢)해 진 시루봉...
시루봉
강원도 강릉시 저동에 있는 산의 봉우리.
시루봉[甑峰]은 그 생김새가 떡을 찌는 시루를 엎어 놓은 것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경포지역에서 제일 높은 봉으로 서쪽에는 태장봉이 있고,
동쪽으로 이어진 줄기 끝에는 경포대와 경포호, 경호정, 금란정, 방해정 등 정자가 있다.
동쪽으로 모새골, 서쪽으로 행정말, 남쪽으로 서지, 북쪽으로 안고개를 접하고 있다.
시루봉은 경포의 4주산, 강릉의 4주산 가운데 하나이고,
경포팔경 가운데 하나인 증봉낙조(甑峰落照)에 해당된다.
(강릉을 떠받치고 있는 네 개의 산봉우리인 모산봉, 월대산, 땅재봉, 시루봉을 4주산이라고 한다.)
뒷바대
강원도 강릉시 운정동에 있는 습지.
뒷바대는 경포호 동쪽에 있는 초당동 사람들이 경포호 주변의 넓은 밭(현 경포호 습지지역)을
‘마을 뒤에 있는 밭’이라는 뜻에서, ‘뒷밭에’가 ‘뒷바대’로 변하여 생긴 이름이다.
뒷바대는 운정천과 경포천이 합친 하류지역에 있고, 운정동의 해운정과 경포호 사이에 있다.
뒷바대에서 조금 내려가면 깨밭둔지·경포대가 되고,
운정천을 따라 서쪽으로 가면 배달이가 되고, 남쪽으로 가면 포남동·교동이 된다.
뒷바대는 죽헌천과 운정천이 합쳐져 경포호로 들어가는 지역으로 땅이 기름져 벼 수확량이 풍부하다.
경포천 운정교 다리 밑을 지나간다.
鏡浦川
강원도 강릉시 경포호로 흐르는 하천.
경포천은 성산면 위촌리 골아우에서 발원하여 죽헌동 북평촌[뒷뜨루]의 넓은 들을 지나
7번 국도가 지나가는 군정교 쪽에 와서 홍제동 개실 저수지에서 흘러온 물과 만나
운정동의 해운정 앞으로 흘러 이곳에서 성산면 송암리에서 흘러온 운정천(뒷내)과 만나 경포호로 흐른다.
경포천(鏡浦川)은 경포의 중심지로 흐르는 내여서 생긴 이름인데, 죽헌천·앞내(前川)·정동천(丁洞川)이라고도 한다.
경포천은 경포 지역으로 흐르는 물줄기 가운데 제일 큰 물줄기로
성산면 위촌리 골아우 안쪽에 있는 사실이재와 멍애재에서 발원한다.
이 물줄기가 위촌리의 옥천폭포, 방학교, 수붕구, 유천동의 느릅내, 죽헌동의 원퉁이[죽헌 저수지],
핸달, 지변동의 못올 등을 지나 죽헌동의 넓은 들로 온다. 죽헌의 넓은 들을 지난 경포천은 경포호로 빠진다.
경포천의 상류에는 죽헌 저수지와 못올의 넓은 들이 있고, 하류에는 7번 국도가 지나가고,
그 아래쪽에는 경포호와 못안이 등의 넓은 들과 초당의 숲, 죽도봉, 강문포구가 있다.
경포천 하류 주변에는 사람이 걷는 산책로와 자동차가 다니는 경포로, 난설헌로가 있다.
강릉 해운정 (江陵海雲亭)
강원도 강릉시 운정동(雲亭洞)에 있는 조선 중기의 정자.
해운정은 1530년(중종 25) 어촌 심언광이 강원도감찰사로 있을 때 건축한 상류 주택의 별당이다.
자연석 초석 위에 25㎝의 네모기둥을 세우고 초익공의 포작을 얹은 후 팔작 기와지붕의 해운정을 완성하였다.
강릉 해운정은 1963년 1월 21일에 보물 제18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海雲亭詩
조선 중종조 문신인 어촌 심언광의 별당에 걸려 있는 시문 현판.
해운정에는 명나라 사신인 공용경(龔用卿), 이이(李珥), 송시열(宋時烈), 박광우(朴光佑),
김창흡(金昌翕) 권숙(權潚), 심순택(沈舜澤), 이헌위(李憲瑋), 한정유(韓廷維),
윤봉구(尹鳳九), 채지홍(蔡之洪), 이민서(李敏叙), 일완(日暖) 낙중(樂仲), 조경망(趙景望),
김진상(金鎭商), 송규렴(宋奎濂), 송익필(宋翼弼) 등 유명 인사들이 지은 시 40수가 현판에 새겨져 있다.
[창작경위]
공용경은 사신으로 왔다가 어촌공에게 해운정의 경치를 읊은 시를 지었고,
이이는 외향으로 자주 강릉에 와 어촌공과 교류하면서 지었으며,
송시열·김창흡 등의 경우도 강릉 해운정에 와 어촌공의 행적과 주변경치를 시로 읊었다.
[내용]
첫째, 해운정 주변의 경치를 읊은 시,
둘째, 어촌 심언광의 행적을 기리는 시,
셋째, 해운정을 방문했었던 유명 인사들의 시를 차운한 시,
넷째, 명나라 사신과 그가 지은 시를 차운한 시 등이다.
대표적인 한시는 다음과 같다.
해운정 승지에서 술잔을 드니 勝地逢盃酒
흥겨운 이 자리 싫지를 않네 斯遊也不嫌
그 누가 알았으랴 천리밖에서 那知千里外
어진 주인 훌륭한 손 함께 얻을 줄 得値二難兼
안개는 서서히 걷히어 가고 海色初收霧
솔바람 사르르 더위 삭히네 松風不受炎
한퇴지 옛 일을 생각하면서 何須韓吏部
갸냘픈 찻잔을 살며시 드네 茗盌捧纖纖 ― 이이(李珥) ―
거울같이 해맑은 평평한 호수 湖水平如鏡
아스라히 바다로 흘러 들어가 冥冥滄海通
호수빛 되비치어 언덕 뿌옇고 潮光迷岸白
고기잡이 불빛은 파도를 타네 漁火射波鴻
난간에 의지해 새들을 보고 依檻看歸鳥
기슭에 다다르니 기러기 나네 臨磯數去鴻
시골에 머물며 얻는 것 많아 村居原自得
갈매기야 늙은이의 뜻을 알테지 知是對鷗翁 ― 공용경(龔用卿) ―
임영이라 부르는 신선땅에는 臨瀛爲號是仙城
세상을 등저도 정만은 살아 掉脫平生在世情
발 아래 별이 있고 천상에는 글 脚下有星天有句
안중에는 흙도 없고 땅도 없어라 眼中無土地無成
잔잔한 물결위엔 가을 머물고 波光瀲灩秋長住
나그네 물에 비쳐 거꾸로 가는 듯 橋影橫斜客倒行
이곳에서 개벽의 뜻 깨치고 나니 到此始知開闢意
인심과 물색이란 허명뿐인걸 人心物色總虛明 ― 송익필(宋翼弼) ―
농사짓는 궁벽한 시골이지만 稼穡村居僻
고기가 뛰노는 바다와 이웃해 魚蝦海市通
가까이엔 맑고 푸른 호수가 있고 近臨湖水碧
곁에는 우뚝솟은 정자도 있어 高起畵堂紅
구름처럼 산허리 감돌고 싶고 欲與雲歸峀
기러기 사모하는 마음 알고파 寧知弋慕鴻
한평생 계획을 못다 이룬 채 未成終老計
이내몸 늙었음을 슬퍼하노라 悲殺主人翁 ― 박광우(朴光佑) ―
듣건데 해운정이 뛰어 났다지 聞說湖亭勝
그 언제 사절들과 서로 통했나 何年漢節通
별들은 바다에서 반짝거리고 星從少海耀
구름은 해를 안아 붉그레 하네 雲擁太微紅
남긴 글 있어서 더욱 즐겁고 賸喜留珠唾
치렁한 물가에서 읊조려 보네 還敎咏渚鴻
그 어찌 사신을 다시 볼건가 黃華那復見
한세상 다 보냈을 늙은 일텐데 天地一衰翁 ― 송시열(宋時烈) ―
궁궐앞 별들이 반짝거리고 紫極前星耀
신선이 노닌 땅 사신이 밟아 靑丘使節通
정자에 다다라 바다를 보니 亭臨滄海碧
무지개 타고서 신선이 오네 仙降霓雲紅
북녘에는 봉황이 날아 내리고 北落空施鳳
동산에는 몇 번이나 큰 글 지었나 東山幾賦鴻
사선의 발자취 아득도 한데 皇華今寂寞
글하는 늙은이 세월 슬퍼해 千古泣騷翁 ― 송규렴(宋奎濂) ―
해운정이 영동에 있음을 아는데 亭在嶺東表
사신과의 인연은 어찌 맺었나 何緣華使通
청수한 시문과 호수의 달빛 淸詞湖月白
편액에는 바닷구름 붉게 비치네 彩扁海雲紅
세상은 어지럽기 짝이 없는데 天地今胡羯
소식이 끊어진지 몇 해 이런가 星霜幾塞鴻
비통한 마음을 누를 길 없어 摩挲悲慨意
제일 먼저 우암을 떠올려 보네 先獲有尤翁 ― 김진상(金鎭商) ―
학동에서 여장을 준비한 지가 鶴洞雙巾屢
어느덧 네 해가 흘러 갔구나 居然四歲違
바닷구름 가린 곳서 옛 집 찾으니 海雲尋舊舘
호수에 비친 달 산넘어 가네 湖月送新輝
등불을 밝히고 정담나누며 敍濶靑燈灺
늙음을 논하자니 흰 머리 뿐이네 論衰黑髮稀
돌아 갈 기약하니 꽃이 지잖아 廻期桃未落
살이 오른 붕어떼만 외로이 쫓네 好趁鯽魚肥 ― 김창흡(金昌翕) ―
어촌 심언광과 그 후손들의 인적 교류의 대체적인 윤곽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강릉 지방에서 하남서원 건립 과정에서 빚어진 재지사족간의 시비(是非)에 대한 실상을 파악하는데 자료적 가치가 있다.
우리 곁으로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는 봄...
창덕사 彰德祠奉安九公實記
강릉김씨 한림공파 관련 아홉 인물들의 위패를 창덕사(彰德祠)에 봉안하며 기록한 기문(記文).
강릉김씨 한림공파 후손들은 1965년 선조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해
강릉시 홍제동에 창덕사를 창건하고 선조 9명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이후 1994년 도시계획으로 사우를 현재의 위치인 강릉시 운정길 107-11[운정동 292번지]로
이건하면서 9명의 위패도 함께 옮겨 봉안하였다.
[내용]
9명의 행적, 출사 및 관력 등을 순서대로 기술하였다. 김영견(金英堅)은 신라대나마한림랑(新羅大奈麻翰林郞),
김견웅(金堅雄)은 고려조에 호(戶)·예(禮)·병부상서(兵部尙書), 김징우(金徵祐)는 고려조에 간의병부상서(諫議兵部尙書),
김양(金陽)은 고려조 예부상서(禮部尙書), 김원걸(金元傑)은 고려조 병부상서(兵部尙書),
김상기(金上琦)는 고려조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김인존(金仁存)은 형부평장사(刑部平章事),
김영석(金永錫)은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은 단종조 생육신 중 한 사람이다
매월당 김시습 기념관 현판(懸板)
기념관 안에는 김시습의 매월당 5언율시 유필이 새겨져 있다.
一鉢卽生涯(일발즉생애) 바랑 하나에 생애를 걸고
隨緣度歲華(수연도세화) 인연 따라 세상을 살아가오.
笠重吳天雪(입중오천설) 삿갓은 오국 하늘의 눈으로 무겁고
鞋香楚地花(혜향초지화) 신발은 초국 땅의 꽃으로 향기롭소.
是山皆有寺(시산개유사) 이 산 어디에나 절이 있을 터이니
何處不爲家(하처부위가) 어디인들 내 집이 아니겠느냐.
他年訪禪室(타년방선실) 다른 해에 선실(禪室)을 찾을 때에
寧禪路岐賖(영선로기사) 어찌 길이 멀고 험하다고 탓하겠느냐.
활래정 活來亭
선교장 정원의 인공 연못 가운데에 세워진 누각 형식의 정자.
경포호수가 현재와 같지 않고 그 둘레가 12㎞였을 때 배를 타고 건너다녔다고 하여'배다리'라는 택호를 가지고 있다.
'활래정'이란 이름은 주자의 시 「관서유감(觀書有感)」 중 ‘위유원두활수래(爲有源頭活水來)’에서 집자한 것으로,
‘맑은 물은 근원으로부터 끊임없이 흐르는 물이 있기 때문’이라는 의미이다.
선교장은 17세기 초 효령대군 11대손 무경 이내번(李乃蕃)이 저동에서 이곳으로 옮겨와 개기하였다.
활래정은 선교장의 사랑채인 열화당을 건립한 다음 해인 1816년(순조 16)에 오은거사 이후(李垕)가 건립하였다.
[형태]
활래정은 겹처마 팔작 기와지붕의 형태로 방과 마루로 구성되었다.
외부의 벽면이 모두 분합문의 띠살문으로 구성되어 있어
장지문을 지르면 한쪽은 온돌방이 되고 다른 한쪽은 대청이 된다.
활래정 외부는 전부 창호로 되어 있어 여름을 지내는 별당 건축임을 알 수 있으며
방지의 가운데는 노송이 있는 봉래선산이 있다.
예전에는 목조 보교가 있어 안으로 통행이 가능하였으나 지금은 다리가 없어졌다.
활래정은 1967년 4월 18일에 중요민속자료 제5-4호로 지정되었다.
활래정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다실이 방과 누마루 사이에 있어 한국 건축 양식을 잘 보여 준다.
강릉 선교장( 江陵 船橋莊)
강원도 강릉시 운정동에 있는 고가(古家). 국가민속문화재이다.
1967년 4월 20일 국가민속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다.
이 지방 명문으로 알려진 이내번(李乃蕃)이 처음으로 살기 시작하여 대대로 후손들이 거처하는 집인데,
열화당(悅話堂)·안채·동별당(東別堂)·활래정(活來亭) 등 모두 4채가 있다.
가장 오래된 안채 주옥(住屋)은 당초에 주거를 정한 때의 건물이라고 전하나 확실하지 않다.
사랑채인 열화당은 1815년(순조 15)에 오은거사(鰲隱居士) 이후(李后)가 건립한 것이며,
활래정은 그 이듬해 세운 것을 증손인 이근우(李根宇)가 현재의 건물로 중건하였고,
동별당은 약 50년 전에 새로 건립한 건물이다.
안채는 동편에 있으며 주옥의 평면구조는 ㄱ자형으로서, 동쪽 끝이 부엌이고 건넌방은 서쪽에 있다.
안채와 행랑채 사이에는 담을 쌓아서 막았으며,
행랑채는 남쪽에 있고 서쪽으로 사랑채에 출입하는 솟을대문이 있다.
사랑채는 높은 석축 위에 서있고 동별당은 안채의 동쪽 전면에 있는데 2층으로 된 높은 석축 위에 서있고,
맞은편에 서별당이 있었으나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활래정은 대문 밖인 선교장 입구에 있는 큰 연못 옆에 세워진 정자로서,
연못 속에 돌기둥을 세워 주위에 난간을 돌렸으며, 팔작지붕에 겹처마의 납도리집이다.
배다리마을
강원도 강릉시 운정동에 있는 자연 마을.
배다리(船橋)는 마을 앞 경포호 가에 배가 닿는 다리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예전에는 경포호가 넓어서 마을에서 호수 동쪽에 있는 초당이나 강문으로 다닐 때는 배를 타고 다녔는데,
이 때 배를 타거나 내릴 때 편리 하도록 하는 다리가 있었다. 이 다리가 있어 마을이름이 배다리로 되었다.
마을 앞으로는 운정천과 경포의 넓은 들이 펼쳐지고,
뒤로는 시루봉과 태장봉에서 내려온 줄기가 이어지는 배산임류형 마을이다.
배다리에서 동쪽으로 가면 창덕사·해운정·경포호, 서쪽으로 가면 통안에 있는 황산사[강릉최씨 최필달의 사당]와 날밀,
남쪽으로 가면 경포천, 북쪽으로 가면 서지, 사우골이 된다.
배다리에는 창덕사[김시습과 그의 선대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 매월당기념관과
조선시대 양반가옥인 선교장[중요민속자료 제 5호]과 부속건물인 안채, 동별당, 서별당, 열화당, 활래정, 행랑채 등이 있다.
아직은 겨울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가는 옥연님의 뒷 모습...상당히 시크(chic)하다
메타세쿼이아(Metasequoia 또는 dawn redwoods) 길...
엄청 튼튼해 보이는 새 집...
신시아님은 만세 하는 것 같고...몽키디님은 항복하는 것 같다.
경포생태저류지 (鏡浦生態貯留池)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에 있는 경포호 수량 조절을 위해 조성한 생태 저류지.
경포생태저류지 조성은 녹색 도시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경포 습지가 조성되면서
경포 호수로 유입되는 수량을 조절하기 위해 2009년부터 공사가 시작되었다.
2009년부터 2015년까지 경포생태저류지 공사가 진행되었는데,
경포호 유입 하천인 경포천(鏡浦川)[강릉시 죽헌동 일원]에 생태 저류지를 조성하고,
주변 환경을 정비하여 시민 편의 시설인 산책로, 꽃밭 등을 조성하였다.
2010년 31만 9000㎥에 호안 및 토공(土工) 공사를 실시하였고,
2011년 군정교(郡丁橋) 확장, 방류 수문 및 수량 조절보 설치, 2013년 저류지 조성 1단계 공사를 준공하였으며,
2014년부터 2015년 2단계 공사로 친수 공간 조성 공사를 진행하였다.
경포생태저류지는 오죽헌(烏竹軒)과 선교장(船橋莊) 사이에 있는 경포천과 경포천 주변 농경지에 조성한 생태 하천이다.
저류지 중심을 가로질러 메타세콰이어를 심어 산책로를 조성하였다.
산책로 주변으로는 유채꽃과 코스모스 등을 심어 봄가을로 만개한 꽃을 감상할 수 있다.
리딩으로 수고하는 수정님...
오죽헌 도착...(11:31)
이곳에서 각자 점심 식사 후... 13:10분에 다시 모이기로 한다.
강릉 오죽헌(江陵 烏竹軒)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주택 별당 건물.
조선 시대 상류 주택의 별당 사랑채로 사용되던 전통 건축물로,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李珥)가 태어난 곳이다.
‘오죽헌’이라는 이름은 이이의 사촌인 권처균(權處均)의 호에서 유래했다.
권처균은 외할머니인 용인이씨에게서 집을 물려받았는데,
집 주위에 줄기가 손가락만하고 색이 검은 대나무[오죽(烏竹)]가 많이 자라는 것을 보고 자신의 호를 오죽헌이라고 정하였다.
그리고 호를 다시 집 이름에 붙이면서 이 집이 오죽헌이 된 것이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6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오죽헌은 조선 세종 때 문신인 최치운(崔致雲)[1390~1440]이 지었다.
오죽헌 뒤쪽에는 원래 고택이 있었으나 정화사업 시 모두 헐어내고 지금은 사랑채 일부만 남아 있다.
사랑채는 5량 팔작지붕 형식으로 행랑과 부엌을 3량 맞배지붕으로 하여 이어 붙였다.
강릉 오죽헌은 신사임당, 이이가 태어난 역사적인 건물로, 우리나라 주택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이다.
도시락 파는 한옥 마을로 들어가고...
강릉오죽한옥마을
한옥은 예로부터 작위적인 형태가 아닌 자연을 관조하며 주위의 환경요소와
어울리도록 지었기 때문에 주위의 경관요소를 거르지 않는 곳에 집을 짓되
그곳에서 나오는 재료를 사용하여 그곳의 지세에 맞는 형태의 것이 되도록 하였다.
초가의 선은 뒷산의 모양을 닮았고 기와의 선은 양끝을 잡은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늘어진 새끼줄의 선을 표현하며,
처마는 후림과 조로를 두고 용마루의 가운데를 처지게 하여 자연스러운 형태를 나타나게 하여 유연성을 품고 있다.
강릉오죽한옥마을은 이러한 한옥의 특징을 최대한 살려 자연스럽고 언제 보아도 정겨운 공간으로 조성하였다.
비록 기교 있는 장식으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재료 본연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담백함과 순수함을 나타내었으며,
마을 곳곳에 심어진 대나무의 경관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차분해지고 심신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조선의 대표학자 율곡 이이가 태어난 집으로 유명한 오죽헌과
강릉한옥마을을 연계하여 율곡의 사상을 전파할 수 있는 인성 교육장을 운영하며,
다양한 전통문화체험을 통해 전 세계인에게 한옥의 우수성과 전통성을 알리는 매개체가 될 것이다.
옛 선조들의 삶의 지혜를 보존하고 과거와 현대를 잇는 강릉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겠다.
식사 후 시간이 여유가 있어 카페에서 ...(12:28)
오후 걷기를 시작한다...(13:14)
도로와 주택가를 벗어나 강릉대 뒤 마명산 자락 산길로 들어선다...
무심한 하곤 형님의 포즈...
경포 저수지 상류
위촌천 渭村川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위촌리로 흐르는 하천.
위촌천(渭村川)은 성산면 위촌리 마을 가운데로 흐르는 하천이어서 생긴 이름이다.
위촌천은 경포호로 흐르는 죽헌천의 상류가 되며 황계(璜溪)라고도 하는데,
황계는 중국 감숙성(甘肅省)에서 발원하여 황하(黃河)로 흐르는 물줄기인데,
마을로 흐르는 물줄기가 이와 비슷하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위촌천의 물줄기는 두 줄기인데, 한 줄기는 위촌리 안쪽에 있는 사실이재 밑에서 발원하여 지재를 지나오고,
또 한 줄기는 멍애재 밑에서 발원하여 골아우를 지나온다.
이 물이 솔안에서 만나 마을 가운데를 지나 수붕구, 웃느릅내(유천동), 죽헌저수지를 지나 경포호로 들어간다.
느릅내 마을을 지나면서...(14:20)
느릅내[楡川]
강원도 강릉시 유천동에 있는 자연 마을.
예전에 마을로 흐르는 냇가(위촌천 하류)에 느릅나무가 많이 자라 생긴 이름이다.
이 내는 위촌천으로 성산면 위촌리에서 흘러와 죽헌저수지로 흐른다.
마을은 땅재봉에서 마명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있어 이 줄기를 기준으로 윗 느릅내, 아랫 느릅내로 나눴다.
느릅내 한가운데는 강릉의 4주 산과 경포의 4주산 가운데 하나인 땅재봉이 있고,
땅재봉 북쪽 줄기 끝에는 위촌천이 흐른다.
땅재봉은 삿갓을 엎어 놓은 형상으로 생겼는데,
영험한 산이라 하여 다른 지역 사람들이 묘를 쓰기 위해 밤에 몰래 썼으며,
또 급하게 쓰다 보니 봉분도 하지 않고 그냥 땅속에 시신을 묻고 간 묘들도 많이 있었다고 한다.
느릅내 마을로 흐르는 내를 따라 올라가면 성산면 위촌리가 되고,
내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죽헌동 원퉁이(죽헌저수지), 경포호가 된다.
땅재봉 동쪽 줄기 밑에는 평평한 바위에 새겨진 바둑판이 있고,
그 옆에는 남자의 성기 모양이 붙어 있는 남근석과 여자의 성기 모양이 붙어 있는 여근석이 있는데,
이 바위를 건드리면 느릅내 처녀총각들이 바람이 난다고 하여 이 바위를 건드리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느릅내는 윗 느릅내와 아랫느릅내 마을로 나눠졌는데,
아랫느릅내 앞에 있는 죽일에는 논을 메워 거대한 주택단지가 되었다.
강릉대 해람지
바우길 사무국 강릉 여행자 플랫폼 강릉 수월래 도착...(14:50)
리딩 후...함께 한 바우님들을 정중히 맞이 하는 지기님들 모습이 인상 깊다.
수정님, 주객님...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상임이사님 모습을 마지막으로 오늘 발걸음을 마무리한다...(14:52)
기억의 습작 -전람회 이젠 버틸 수 없다고 휑한 웃음으로 내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았지만 이젠 말할 수 있는 걸 너의 슬픈 눈빛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걸 나에게 말해봐 너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볼 수만 있다면 철없던 나의 모습이 얼만큼 의미가 될 수 있는지 많은 날이 지나고 나의 마음 지쳐갈 때 내 마음속으로 쓰러져가는 너의 기억이 다시 찾아와 생각이 나겠지 너무 커버린 내 미래의 그 꿈들 속으로 잊혀져 가는 너의 기억이 다시 생각날까 너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볼 수만 있다면 철없던 나의 모습이 얼만큼 의미가 될 수 있는지 많은 날이 지나고 나의 마음 지쳐갈 때 내 마음속으로 쓰러져가는 너의 기억이 다시 찾아와 생각이 나겠지 너무 커버린 내 미래의 그 꿈들 속으로 잊혀져 가는 나의 기억이 다시 생각날까 많은 날이 지나고 * 1990년대 듀오 ‘전람회’에서 김동률과 함께 활동했던 서동욱 모건스탠리 프라이빗 에쿼티 부대표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50세. 서동욱은 연세대 동창인 싱어송라이터 김동률과 전람회를 결성해 1993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꿈속에서’로 대상을 받았다. 전람회는 1994년 1집 ‘기억의 습작’을 발표한 후 1997년 해체할 때까지 세 장의 앨범을 냈다. ‘기억의 습작’ ‘여행’ ‘이방인’ ‘새’ ‘취중진담’ ‘졸업’ ‘다짐’ 등이 대표적인 히트곡이다. 전람회는 1997년 해체 당시 “너무 어린 나이에 가수 생활을 하면서 학생 신분으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놓쳐버리지 않았나 하는 기분에 사로잡혔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당분간 학교로 돌아가 우선 공부에 전념하면서 그동안 해보지 못한 일들을 하며 앞으로의 미래를 설계하고 싶다”고 밝혔다. 전람회 해체 후 김동률은 이적과 듀오 ‘카니발’을 결성해 가수 생활을 이어갔다. 서동욱은 맥킨지앤드컴퍼니, 두산 그룹, 알바레즈앤마살, 모건스탠리 프라이빗 에쿼티 등 금융권에서 일했다. 서동욱은 2008년 5월 김동률의 단독 콘서트를 찾아 “(김동률의 공연이) 놀랍고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등 변함없는 우정을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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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메타세콰이어길의 원근이 죽입니다요. 저 먼 길의 끝에서 사람의 머리가 보이는 듯싶더니 일군의 무리가 저벅저벅 걸어와 영화의 한 장면을 만드는군요.
어제도 찍느라, 글 올리시느라 애 많이 쓰셨네요. 기록은 추억을 남긴다!
그저 많이 많이 고마울 뿐...
최근 들어 두 분이 열심히 참석해 걸으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메타세콰이어 길에서 성능 좋은 망원 렌즈가 있었으면
걸어오는 바우님들 모습을 정말 멋지게 담을 수 있었을 텐 데....아쉬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날은 흐렸지만 우리의 마음은
활짝 핀 봄이었습니다 ^^
늘 땀 흘리며 올랐던 길,,
내리막 길도 그렇게 길 줄은 어제 처음 경험했습니다 ^^
뒷바대!
새로운 명칭도 배웁니다
늘 감사한 걷자님 !!
👍👍👍 ❤️❤️❤️
다음 주 눈 쌓인 안반데기 길에는
걷자님이 꼭 !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또 반갑게 뵐께요~^^
바우길을 걸으면서 강릉의 자료들을 찾다 보니...
독특한 지명이나 이름들이 참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요즘은 이 또한 즐거움으로 다가 옵니다.
눈이 얼마나 쌓여 있을지 궁금해 지는 안반데기..^^
옥연 회장님 든든하셨겠네~ㅋ
저 바우길 처음 걷던 날
나룻배를 참 재밌게 탔었죠
또 타고 또 타고 계속 타고 싶었다는요~
몽글 몽글 맺혔던 꽃봉오리가
이제는 잘 튀겨진 팝콘처럼 활짝 터져 버렸어요~
남겨 주신 사진들을 보자니
걷자님께서는 역시나
선두 후미를 가로지르며 동분서주하셨네요~
수고 많으셨어요~^^
다음 걸음도 우리 걷자님
혼자 애쓰셔야겠네요
어느 기관의 요청으로 토요일에 보강을 해야하는 사정이 생겨버렸거든요~
국민의 숲길에서나 뵐 수 있겠어요~^^
옥연 회장님 주머니에서 손을 절대 빼지 않더라구요
제가 손을 강제로 빼면 다시 집어 넣고....역시 회장님 포스...
바우길 걸으면서 함께 나룻배 타던 그 시절도 참 좋았었는데...
바쁜 건 좋은 거지만..
얼구리 못 보는게 아쉽습니다.
매주 한번도 거름없이 우리들의 모습을 예쁘게 남겨 주시는 걷자님께 그저 감사 합니다 라는 너무나 흔한 말 밖에 못드립니다~
감사 합니다
두 분과 함께 하는 게 제 겐 고마움 + 즐거움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냥 사진만 보고 무심히 지나 갑니다.
니그네님이 이렇게 댓글을 달아 주시는 게 어찌 흔한 말 이신지요
그저 감사 할 따름입니다...^^
바우길도 명품이지만,
걷자님의 글과샤진이 더 명품입니다.
늘 감사합니다.
항상 친구하고 함께 걷다 가
홀로 걸으시는 모습이 조금은 외로워(?) 보였습니다...ㅎ
바우길에 열심히 참석하셔 좋은 사람들과 많이 친해 지시길 바래 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후기를 쓰신게 아니라
"바우길의 기억"이라는 영화 한편을 찍으셨군요~
많은 자료와 정보로
학이시습지길을 더욱 의미가 있는 명품 길로
만들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기억을 되돌려 봅니다.
예전에 오랜 시간 산만 다니 다 잠깐 씩 쉴 적에 바우길을 걸었었고
바우길을 멈추고 다시 산에 올라 열심히 걸었고
다시 바우길에 돌아 와 많은 추억을 쌓았습니다.
하여, 바우길을 고마워 하고 있습니다.
작년 이맘때,
테라님의 부재로 인해 허접한 후기를 쓰며,
누군가의 추억을 기록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었습니다.
늘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시는 걷자님 덕분에
그저 즐겁게 바우길을 걷고 있습니다.
"기억의 습작"
제가 좋아하는 노랜데...
잘 들었습니다. ^^
최근 들어 구룸님 모습을 자주 보고
댓글도 잘 달아 주시고
음악에도 관심을 가져 주시니 올리는 제 입장에서는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틈틈이 몇 컷이라도 바우님들 모습 담아서 올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