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예수] “말과 행동 일치하는 기독인 귀한 시대… 손해 보듯 살아보자” 1세대 AI 전문가 이호수 박사 입력 : 2024-09-21 03:03
‘1세대 인공지능 전문가’ 이호수 박사가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최근 신앙 에세이를 펴낸 계기를 설명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한번에 모든 핀을 쓰러트리는 스트라이크를 위해 필수로 공략해야 하는 볼링의 킹핀(king pin), 악기가 가진 최상의 음정과 음질을 책임지는 조율사, 벼락을 자기 몸에 흘려 건물의 안전을 보장하는 피뢰침….
미국 IBM 왓슨연구소를 거쳐 삼성전자 부사장, SK텔레콤 사장 등을 지낸 1세대 인공지능(AI) 전문가 이호수(72) 박사가 비기독교인에게 하나님과 예수를 설명할 때 쓰는 비유적 표현들이다.
인간의 모든 어려움과 해결책을 아는 하나님은 ‘인생의 킹핀’이자 자신의 진가를 발견케 하는 ‘인생 최고의 조율사’라는 식이다. 성령 구원 부활 창조 등 기독교의 근간이지만 초심자에겐 낯선 개념도 쉽게 와닿는 일상 속 표현으로 풀어 설명한다.
이 박사는 이처럼 신앙에 관한 단상을 엮어낸 책 ‘일상에서 만난 신앙’(토기장이)을 최근 펴냈다. 은퇴 후에도 “하나님이란 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나도 만나고 싶다”며 물어물어 그를 찾아온 이들에게 부치는 일종의 답장이다. “무신론자로 살았던 이전의 내 모습이 떠올라 복음의 빚을 갚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는 그를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회의실에서 만났다.
기술의 한계에서 만난 하나님
이호수 박사가 2003년 미국 IBM 왓슨연구소 재직 당시 한 복지단체를 방문해 봉사활동에 참여한 모습. 이 박사 제공
불교 집안에서 태어난 이 박사는 종교 없이 지내다 35세 때 기독교로 회심했다. 서울대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거쳐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AI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IBM 왓슨연구소에 재직할 때였다. 미국에 유학 온 이후로 아내를 따라 한인교회에 나가긴 했지만 ‘나이롱 신자’에 가까웠던 그가 신앙을 받아들인 건 연구소에서 만든 ‘인공 컴퓨터 눈’을 접하면서다.
당시 연구소에서는 세계 최정상급 AI 전문가 30여명이 모여 ‘컴퓨터 비전’을 연구했다. 사람 눈의 물체 인식에 버금가는 컴퓨터 눈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수천만 달러를 투자해 20여년간 공들인 연구 결과를 확인한 이 박사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물체 인식 수준이 “잠자리 눈에도 못 미칠 정도”여서다.
이날 귀가해 마주한 한 살배기 둘째 딸의 사물 인식 수준은 연구소의 인공 눈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불현듯 회의가 찾아왔다. ‘인도 이스라엘 등 전 세계 수재들이 수십년간 매달려도 아기의 생물학적 기능이 훨씬 우월하다. 인간의 시청각과 인지, 소화 능력, 심장 운동 기능 등은 도대체 어떻게 주어진 것일까.’
질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인간은 만들 수 없는, 인체의 정교한 구조와 기능이 오랜 세월 동안 우연히 만들어졌다는 기존 관점에도 의심이 생겼다. 기술의 한계에서 인간 능력의 위대함을 엿본 이 박사는 인간의 근원을 파고들다 신적 존재의 가능성을 떠올렸다. ‘딸의 시각 능력은 나나 아내가 준 건 분명 아니다. 하나님이란 신이 준 거라고 치자. 근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가 당시 한 생각이다.
성경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순 엉터리’라고 여겼는데 다시 보니 글의 구조가 예사롭지 않았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란 예수의 말씀을 읽을 때가 특히 그랬다. 이 박사는 “‘나는 인생의 진리를 알려주는 선생이다’가 아닌 ‘나는 진리’라고 적힌 성경을 보며 ‘이건 사람의 논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설혹 성경이 신의 논리이고 그가 인간을 창조했더라도 여전히 나와는 어떤 접점도 없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던 그에게 같은 교회의 한 집사가 “매일 30초씩 기도하라”는 조언을 전한다.
신구약 성경을 볼 때 “하나님은 자신을 찾는 자를 반드시 만나준다”는 이유였다.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이 박사는 잠들기 전 “하나님, 엄청난 존재인 당신을 나는 모릅니다. 제가 알 수 있게 나타나 주십시오”라고 기도했고 두 달여 만에 ‘기도 응답’을 받았다.
알 수 없던 존재가 믿어지는 이 경험 후엔 지인에게 받은 초신자용 설교 테이프 50개를 사흘 만에 섭렵했다. 그는 “연구소 퇴근 후 한두 개 듣다가 그 다음 내용이 너무 궁금해 신참인데도 이틀 휴가를 내 온종일 들었다”며 “믿음 없는 이를 위한 기독교 신앙서를 쓴 것도 이런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일을 주께 하듯이
삼성전자 미디어솔루션센터장(부사장)이던 2009년 영국 런던에서 독자 모바일 운영체제 ‘바다’ 론칭을 발표하는 이 박사. 이 박사 제공 2014년 삼성전자 미디어솔루션센터 미주지부 관계자들과 함께한 모습. 이 박사 제공
회심 경험은 삶 전반에 변화를 가져왔다. 1985년부터 20년간 IBM에서 근무하는 동안 주중엔 업무에 열중하고 주말엔 교회 안수집사로 각종 봉사에 앞장섰다. 2006년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부사장으로 부임한 이후로는 서울 온누리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이후 같은 회사 미디어솔루션센터 부사장과 SK C&C를 거쳐 SKT 정보통신기술(ICT) 사업 총괄 사장을 역임한 그가 일하는 동안 신앙적 측면에서 중점을 둔 건 “크리스천의 덕목을 실천하는 것”이다.
SK C&C 재직 당시 이 박사가 2016년 고객을 대상으로 정보통신기술 관련 강연을 하고 있다. 이 박사 제공
이 박사가 일하며 새긴 크리스천의 덕목, 즉 기독 직장인의 덕목은 ‘무슨 일을 하든 주께 하듯 하라’(골 3:23)다. 그는 “기업이든 공공기관이든 어느 조직이나 기독교인을 반기는 곳은 드물다”는 걸 전제로 했다. “그렇기에 이 덕목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겸손한 자세로 거짓말하지 말 것’과 ‘상관과 동기, 부하를 존중하고 이들에게 존경받을 것’,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할 것’ 등을 들었다. 이 박사는 “진짜 신앙인은 일터에서 겸손하고 일로서 상관과 부하에게 인정받으며 회사 이익을 위해 거짓 없이 성심껏 일한다”며 “이런 사람은 회사가 반드시 중요한 일을 시키기 마련”이라고 했다.
책에는 그가 삼성전자 부사장으로 재직 중이던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일본 출장을 다녀온 일화가 나온다. 여진이 이어지는 와중에 일본의 한 게임회사와 담판을 벌인 이 박사는 그야말로 ‘목숨 걸고’ 계약을 성사했다. “해당 회사뿐 아니라 어디서든 마찬가지다. 믿는 이들은 어디서든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일하며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회 사역뿐 아니라 직장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봤다. 이 박사는 “저는 기독 직장인에게 ‘회사와 교회에 일이 있다면 직장으로 가라’고 조언한다. 직장에서 하나님을 알릴 적기인데 왜 교회로 가느냐”며 “평소 하나님이 무엇을 더 기뻐할지를 염두에 두고 일했다. 이런 마음을 상사들이 잘 알아줘, 여러 주요 업무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군대식 조직문화 가운데 신입사원이나 비서에게도 깍듯이 존대하는 이 박사를 보며 기독교에 대해 관심을 보인 사내 구성원도 꽤 됐다고 한다. 그가 몸담았던 회사들은 업무 시간에 종교적 이야기를 할 수 없었기에 퇴근 후 답변하곤 했다. 신앙 문의가 이어지자 아예 자신의 회심기와 기독교 교리의 핵심을 담은 소책자를 직접 만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 이야기’란 30쪽 분량의 책이다. 2년여간 틈틈이 작성 후 신학대 교수의 감수를 받아 완성했다. 기독교 신앙에 관해 문의해온 직장 동료 40~50명에게 전한 이 소책자는 최근 출간한 신앙 에세이의 기초가 됐다.
교회, 5류 되면 안 돼
퇴임 이후에도 기업에 자문을 제공하고 언론과 대학 등에서 대중 강연에 나서온 이 박사는 산업과 AI 서비스를 접목한 책을 그간 펴내 왔다. 신앙 에세이인 이번 책을 기점으로 올 하반기부터는 교회와 거리가 먼 이들에게 기독교의 본질을 쉽게 설명하는 글을 주로 쓸 계획이다. 특히 ‘교회 다니면 위선자’란 세간의 시선에도 기독교 신앙을 탐구하기로 결정한 초심자를 격려하는 내용을 담는다. 그는 “기업 정치 어느 분야든 부정부패에 민감하고 불이익을 감수하는 올곧은 기독교인은 바보 취급을 받게 돼 있다. 어쩌면 지금이 이들에겐 환란일지 모른다”며 “그렇지만 이런 바보 같은 사람이 있어야 세상이 부패하지 않는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기업은 2류, 정치는 4류”란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말을 빌려 “한국교회가 5류가 된 건 아닌지 살펴야 한다”고도 했다. 자신에게 기독교 신앙을 물어온 이들이 “한국교회는 믿을 수 없다. 거기선 답을 못 얻는다”고 하나같이 입 모은 데 기인한 말이다.
이 박사는 “이들의 말을 듣고 얼마나 참담했는지 모른다. 겉과 속, 말과 행동이 같은 기독교인이 참 귀하다는 생각”이라며 “손해 보듯 살 때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것을 믿는 기독교인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미션탐사부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응원하기 좋은 생각이 좋은 곳으로 데려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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