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새끼...... 흐...흑 흐엉..."
여대생 이혜선은 원망감에 눈물을 멈추지 못한다. 그녀가 사는 작은 원룸은 책상이 뒤엎어져있고 옷들도 다 흐트러져있다.
띠로링~
그떄마침 문자 한 통이 온다.
'걸레 같은년'
"하......"
혜선은 휴대폰을 던져버린다. 이런문자들도 이젠 지겨워 질대로 지겨워져버린 것이다. 혜선은 간신히 마음을 추스리고 화장실로들어간 다음 세수를하고 거울을 멍하니 보고있다. 혜선의 머릿속에 어떤 한 사람이 기웃거린다.
불과 몇달 전 일이었다.
"해보라니까!!"
"아, 싫다고!!!"
혜선은 오랜만에 만나 친구 지수와 카페에서 티격태격 싸우고있다.
"왜!!!"
"난 혼자가 편하다고!"
싸우는 이유는 지수가 계속해서 혜선에게 소개팅을 강요하고있다. 혜선은 또 그 소개팅을 거절하고있다. 그녀가 거절하는 이유는 아직은 남자를 만날 생각도없고, 그런 형식적인 만남을 제일 싫어해서이다.
"이 사람 진짜 좋은사람이야. 엄청다정하고 젊은나이에 회사도 다니고있고. 너랑 딱 어울린다니까?"
혜선은 지수가 이해되지않는다. 지수는 고등학교때부터 여학생과 남학생을 이어주는거에 집착했다.
"아, 몰라 난 간다."
"야!! 기다려!!"
혜선은 재빨리나와 집으로가는 버스를탄다. 사실 오늘은 서울에있는 대학교때문에 원룸에 혼자살다가 가족들을 보려고 집으로내려가는 길이었다. 두 세시간 정도 버스를탄 끝에 집에 도착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시끌시끌하다.
"아... 안녕하세요"
"어, 그래 안녕, 오랜만이다~ 많이이뻐졌네?"
"아니예요^^"
바로 엄마 친구들이었다. 혜선은 불안한 예감이들었다. 그래서 얼른 방으로들어갔는데 엄마가 밖으로 나오라고한다. 혜선은 한숨을 푹쉬고 밖으로나간다.
"혜선이 대학들어간 이후로 처음본다~ 벌써4학년? 세월 참 빠르네~ 근데 너 남자친구는있어?"
"아니요.."
"어머, 미안하다. 근데 혜선이 너 모태솔로라고 하지않았나? 연애하고싶을텐데 얼굴도 이쁜데 왜이럴까"
"그러게, 남들 다 하는연애 얘만못해 결혼은 이르지만 연애는 해봐야지!"
혜선을 두고 엄마와 친구분들이 토론을하고있다. 혜선은 그저 시간이 빨리가길 바랄뿐이다.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됐네. 우린이만 가볼께~"
"안녕히가세요~"
엄마 친구분들이 나가자마자 혜선은 도끼눈을 뜨고 엄마에게 다가간다.
"엄마!! 내가오늘 내려온다고 말했잖아!! 왜 아줌마들데려왔어!! 그리고 내가모태솔로인건 도대체 언제말한거야!!!"
"아이고, 깜짝이야 이년아!!! 귀청 떨어지겠다!! 너한테 괜찮은남자 없냐고 물어보려고 데려왔어!!"
"그건 내가알아서해 신경쓰지마!"
혜선이 방으로들어가 문을 쾅 닫는다. 곧바로 침대에누워 천장을 쳐다본다. 이러고있으니까 화가 좀 풀리고 스르르 눈이감긴다. 혜선은 씻는것도 잊고 해야할 과제도잊고 잠이들어버린다. 그 다음날 혜선은 살금살금 거실로 나가 엄마의 얼굴을 살펴본다. 다행히 화가풀린 표정이다. 혜선은 내심 엄마에게 화를낸게 미안했다.
"엄마... 미안해..화 풀렸지?"
"미안하면... 남자만나"
혜선은 어이가 없었다. 왜이렇게 다들 자신의 연애에대해 참견하는지 모르겠다. 혜선은 다혈질인 성격을 누르지못하고 또다시 승질을냈다. 아침부터 시끄럽자 어제새벽에들어온아빠가 비몽사몽 그 둘을 말린다. 겨우 진정되고 아빠마져 엄마편을들게되자 혜선은
울며 겨자먹기로 한 달안에 남자를 소개받기로 약속한다.
'이거 좀... 긴장되네'
결국 혜선은 지수가 추천한 남자를 소개받기로하고 그때 지수와 만난 카페에서 그 남자를 기다리고있다.
딸랑~ 문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뒤에남성이 말을걸어온다.
"저기... 이혜선씨 되십니까?"
"아, 네. 최하준씨?"
"네, 안녕하세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예요, 제가 일찍 온 거예요."
혜선은 내심 조금 실망하게된다. 사진과 실물이 좀 달랐기 때문이다. 자신도 크진않지만 키가 언뜻봐도 170좀 안되보이고 피부가 까무잡잡한 안경쓴남자가 자신의 이상형과 멀었다. 이런저런 대화를하면서 이남자는 그래도 대화는 잘 통하는 편이었다. 젊은나이에 직장에다닌다더니 머리에 지식은 많은것 같다. 자리를옮겨 저녁식사로 스파게티를먹고 하준이 자신의 차로 혜선을 집까지 데려다준다. 혜선은 고마움을 느끼지만 이성적으로 또 만나고싶다는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패션 감각은 없는것같고... 성격은 그냥 착한것같고...'
혜선은 오랜만에 원피스를입고 구두를 신어서 피곤한지 금방 잠들어 버린다.
다음날 문자한통이 와있다.
'좋은아침 입니다^^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이번주 토요일에 영화한편 어떠세요?^^'
혜선은 한숨을 쉰다. 이 남자가 싫은건 아니다. 그냥 그럭저럭 인거다. 하지만 혜선은 또 소심한면이 있어서 쉽게 거절하지못한다. 그리고 어제 커피값에 밥값에 꽤 많은돈을 다내주고 집까지 데려다줬으니 더 거절못하겠다. 고민끝에 문자를보낸다.
'네, 좋아요.'
토요일 안경쓴남자가 팝콘을들고 혜선을 기다리고있다.
"안녕하세요, 제가좀 늦었죠? 죄송해요."
"아, 아니예요! 저도 방금왔어요."
일찍와서 팝콘까지 사놓은 하준에게 혜선은 미안한 마음을 느낀다. 영화 입장시간이되어 둘은 영화관에 들어간다. 영화가 시작하고
그 영화는 코미디지만 슬픈내용이 들어가 있는 영화였다. 이 영화를 고른이유는 단순히 인기가 많아서 고른듯하다. 영화 막바지에 이르고 슬픔이 절정에치닫는 부분이었다. 사람들도 훌쩍거리고 혜선도 훌쩍이며 눈물을 닦는다. 그때 옆에서 하준이 손수건을내민다. 혜선은 손수건을 고맙다고하며 받고 눈물을 닦는다. 가만보니 하준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둘은 밥을먹으러간다. 저번보단 비교적 저렴한가게에들어간다.
"영화 보여주셨으니까 밥은 제가 살게요."
"그럼, 감사히 먹겠습니다~"
둘은 맛있게 식사를하고 하준은 화장실에 값다온다고하며 나간다. 그 사이 혜션은 거울을 잠깐보고 아까 손수건을 펼쳐본다. 아무것도 없는 흰 손수건이다.
'빨아서 줘야겠지'
손수건을 다시 집어넣자 하준이 들어온다. 둘은 대학얘기 회사얘기 이런저런 이야기를하고 밖으로 나가기위해 계산대로 간다.
"아, 계산은 제가 했어요."
"네? 왜요??"
"아직 대학생 이신데 어떻게 얻어먹어요."
"그래도.."
"정 그러시다면 다음에 커피 한 잔 사주세요~"
혜선은 감사하다고하고 음식점을나온다. 그날도 하준은 혜선을 집까지 데려다준다.
일주일 뒤 그 둘은 또 만나고 똑같이 헤어지고 그런만남을 몇번만나니 혜선은 이제 이런 별 감정없는만남은 그만둬야겠다고 다짐을하고 다음날 혜선이 문자를 보낸다.
'죄송해요...저희는 인연이 아닌것 같아요..더 좋은 분 만나세요."
바로 답장이온다.
'저야말로 죄송해요. 제가 혜선씨 붙잡은 거같아서...'
이문자를 받고 혜선은 정말 미안했다. 하지만 이런 만남은 원하지않았다. 그다음날 지수에게 하준과 이렇게됐다고 말하고 혜선은 욕을 엄청 먹었다. 혜선도 이제 이런만남이 또 오게되면 질질끌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 혜선이 하준에게 그런문자를 보내고 이틀뒤 같은과 동갑내기 주혁한테 고백을받게된다. 혜선은 하준에게 미안함에 조금 우울해있었는데 그런 고백을받고 수락하게된다. 김주혁은 대학에 들어가고 처음 친구가된 사람이었다. 그렇게 친하진않고 가끔 말하는 사이인데 갑작스런 고백에 당황하지만 호감형이었기때문에 사귀기로한것이었다.
한달 후 혜선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있는데 밖에 우연히 떠드는소리를 듣게된다
"야, 김주혁 말 들었어?"
"뭔데?"
"김주혁도 쓰레기지만 걔 여친 이혜선도 만만치 않아. 걔 완전 걸레래. 김주혁이 말했는데 이혜선 걔 이 남자 저남자 아무나 만나고다닌데, 김주혁이 엄청 싫어하던데, 이제 지가 찰거라나뭐라나."
"헐, 미친거 아냐? 소문으로만 들어봤지 진짜 그런년은 처음 본다. 걔 그렇게 안봤는데..."
"그러게, 야 이제 수업시작하겠다. 빨리가자."
"......"
혜선은 충격에굳은 채 말도못하고 멍하니 앉아있는다. 몇분 후 세수 한 번을하고 밖으로 나간다. 수업도 안들어가고 공원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다.
'니가 어떻게 나한테 그래'
혜선에 눈에 눈물이 뚝뚝 떨어지다가 끝내 펑펑 울게된다. 그렇게 한시간을 공원에서 울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지만 말은 걸지 않았다. 혜선은 울면서 문자를보낸다.
'수업끝나면 바로 공원으로와.'
또 한 시간 뒤 멀리서 주혁이 뛰어온다.
"왜, 무슨일있어? 울었어? 어떻게된거야?"
짝-!!
큰 마찰음과 함께 주혁의 고개가 돌아가있다.
"미친놈아, 나 갖고노니까 좋아? 재밌어? 너원래 이런애였니? 너 정말 역겹다."
"혜선아... 왜 그래 난 그냥...."
"됐어, 니 목소리 듣기도 싫어. 너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다신 연락하지마..."
"혜선아!! 잠깐만, 내가 그때 기분이안좋아서 말이 헛..."
혜선은 말을 듣지도않고 빠른걸음으로 가버린다. 주혁이 재빨리 붙잡았지만 혜선은 있는 힘 껏 뿌리치고 택시를잡아 탄다.
"미친년..."
주혁이 작게 중얼거린다.
혜선은 자신의 원룸으로 돌아와 그대로 누워버린다. 또 다시 눈물이 났다. 자신이 처음으로 좋아했던 남자인데 그만큼 배신감이 너무 컸다. 눈물을 닦을게 없어 이불을 끌어다 벅벅 문질렀다. 그러다 구석에 있는 하얀손수건을 발견한다. 하준에게 다시돌려주려고 빨아놨었는데 깜빡하고 주지못한 손수건이었다. 혜선은 하준의 얼굴이 생각나자마자 더 펑펑 울었다. 하준에게 너무미안했고 뭔가 다른감정이 느껴졌다. 그 날 학교에 어떻게가지 라는 생각에 혜선은 한 숨도 자지못했다.
그 다음날 사람들이 혜선을 보는 눈빛이 달라져있다. 혜선이 지나가면 다 수근거리고 친하다고 생각한 친구들마져 등을돌려버린다. 모두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이드는 혜선은 도저히 수업에집중하지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버렸다. 혜선은 억울함과 원방감에 책상을 뒤엎어버리고 난리를 친다.
그렇게 화장실에서 멍하니 거울을 보던 혜선은 어제부터 계속 하준만 생각이난다.
혜선은 하준을 그냥 착한사람 이라고만 생각하고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에서 다신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거란 생각을 한다. 결국 혜선은 그날 밤 하준에게 연락을 하게된다.
"...여보세요?"
"..."
"혜선 씨?"
"제 번호 아직 안지우셨나봐요..."
"...네"
"죄송해요... 저 너무 이기적이네요... 먼저 차버릴떈 언제고 또 다시연락해서...죄송해요.."
"아, 아니예요! 혜선씨..."
"저 하준씨가 계속 생각났어요... 죄송해요... 내일 저랑 만나주시면 안되요..?"
"...고마워요."
이렇게 둘은 다시만나게되고 혜선은 일년 휴학하게 되었다. 혜선은 휴학 기간동안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하고 과외도해가며 하준을 만났고, 하준도 혜선에게 변함없이 잘해주며 자신의 일을 열심히한다. 혜선은 더 이상 남들이 자신을 욕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하준에대한 사랑을 키운다.
둘은 약 3년동안 연애를 하다가 결국 결혼하게 되고 딸 2명을 낳아 행복하게 잘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