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의 여행으로 내딛는 무해한 삶의 첫걸음
이시원 제비의 여행 대표 나라경ㅈ 2022년 04월호
기후위기 시대의 여행은 어때야 할까?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들로 자연과 아름다운 여행지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고민이 깊어졌다. 여행을 떠나는 순간, 더 쉽게 일회용품을 사용하고 더 많이 소비한다. 영국의 NGO 투어리즘 컨선(Tourism Concern)에 따르면 한 사람의 여행자는 하루 평균 3.5kg의 쓰레기를 남기고 1.5톤의 물을 사용하며, 관광산업은 전체 탄소배출량의 9%를 차지한다. 일상에서 해방돼 마음껏 즐기고자 하는 보상심리로 많은 윤리적 기준과 질문은 뒤로 밀려나는 것이다. 나 또한 여행을 사랑하고 그저 즐기고 싶지만 잠시의 즐거움과 편리함보다 닥쳐올 재난과 기후위기에 대한 무거움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제로웨이스트와 비거니즘을 실천하고 최대한 무해한 여행법을 찾아 사람들과 나누기로 결심했다.
‘제비의 여행’은 이러한 고민의 여정 끝에 나온 답이었다. 제비의 여행은 ‘제’로웨이스트+‘비’건+공정‘여행’으로 여행지에 쓰레기를 남기지 않고 비건 음식을 먹으며, 여행지 주민의 삶과 환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여행이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SNS를 통해 여행자들에게 제로웨이스트 비건 여행코스를 제안하고, 서울 연희동에서 진행되는 반나절의 로컬여행 ‘제비의 일상여행@연희’를 안내했다.
제비의 일상여행@연희는 반나절 동안 연희동 골목골목을 걸어다니며 제로웨이스트비건 공간들을 여행하고 사람과 마을을 만나는 로컬여행이다. 연희동의 랜드마크인 사러가 쇼핑센터부터 정음철물, 엄마식탁, 연희대공원, 경복쌀상회, 유어마인드, 비건앤비욘드, 비밀책방 페잇퍼, 포포브레드, 보틀팩토리 등 연희동에서만 만날 수 있는 제로웨이스트·비건·로컬 공간들을 함께 여행하고 있다.
‘제비의 삶’은 개인의 일상에서 환경에 해를 끼치는 요소들을 덜어내고 사회에 구조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생활방식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제비들이 생겨야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어렵고 힘들 거라 생각해 삶을 전환할 결심까지 다다르지 못한다. 그러나 여행은 새로운 공간과 장소에서 다른 삶의 방식을 경험해 보는 것이고, 단 한 번의 경험이기에 용기를 낼 수 있게 된다.
제비의 일상여행@연희에 함께하는 여행자들은 연희동이란 동네를 여행하며 쉽고 즐겁게 제비의 삶을 경험해 보게 된다. 각자 가져온 통에 비건 빵과 무포장 쌀을 담아 사보고, 음료를 살 때 텀블러를 내밀어 보고, 제로웨이스트숍에서 다양한 용품과 실천 방법을 알아보고 비건 식당에서 채식요리를 먹어본다. 일상여행을 통해 제로웨이스트와 비건이 어렵고 힘든 것이 아니라 즐겁고 새로운 일상의 방식임을 경험할 수 있다. 그 경험이 지구를 생각하는 삶의 첫걸음을 함께 떼는 일이 되길 바랐다.
실제로 제비의 일상여행에 참여했던 한 여행자는 “제로웨이스트와 비건은 어렵게만 느껴졌는데 직접 해보니 쉽고 뿌듯해서 앞으로도 실천해 보려 한다”고 말했다. 돌아가서 학생들과 비건 캠프를 하고 다회용기를 선물했다는 선생님도 있었고, 앞으로 제비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여행자, 공동체 분들과 여행을 간다며 ‘제비 여행법’에 대한 강의를 요청한 여행자도 있었다.
제비의 여행은 여행자들에게 여행지의 주민과 환경을 고려하는 여행을 제안하고 연희동의 제로웨이스트 비건 공간들을 맵핑하며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기후위기와 코로나19로 여행이 멈춘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서로를 발견하며 더 많이 연결되는 것, 동네의 일상과 사람을 여행하는 일이 아닐까. 제비의 여행이 꾸려가고 있는 무해하고 즐거운 일상여행에 함께해 보길, 지구를 생각하는 한 걸음을 내딛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