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준 | 2012-08-28 10:25:08, 조회 : 1,808, 추천 : 249 | |
나의 첫바위는 2002년 직장 선배의 지도로 인수 고독길 등반이었다. 그길도 처음엔 어찌나 후달리던지.... 그리고 그 선배의 모습이 왜그리 멋져 보이던지.... 그런데 그 선배의 등반 실력이 꽝이라는 것을 안 것이 바로 박쥐길이었다. 선배의 아는 동생(그 친구는 등반을 제법 했었다.)과 셋이서 박쥐길을 등반하게 되었다. 동생이 선등을 하고 두 번째로 내가 올랐다. 첫피치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박쥐 날개를 겨우 뜯으며, 중간 볼트 가까이 왔을 때 위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여기 사람이 많아서 좀 기다려야 할거 같아요. 볼트에 확보하고 편하게 대기하고 계세요“ 낭패였다. 거기에서 확보줄을 풀고 볼트에 확보하는게 더 후달렸다. 확보줄 푸는게 후달려 그냥 마냥 붙잡고 기다렸다. 거기서 힘을 다 빼고 맨우측 날개 올라타는 지점에서 시원하게 추락을 먹었다.(내가 추락 먹은 기억 중에 가장 시원했던 것 같다.) 몇 번 다시 시도해봤지만 팔만 바들바들 떨리고 도저히 오를수가 없었다. 밑으로 내려와서 선배에게 말했다. “형님 저는 도저히 안되겠으니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께요“ 선배 왈 ”그래? 그럼 심심하겠지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그러나 전혀 심심하지 않았다. 이어서 출발한 형님은 내가 추락한 자리에서 쓰고있던 고글까지 날려버리며 나보다 더 화끈하게, 시원하게 추락을 먹었다. 그것으로 그날 등반은 종료되었다. 그리고 그 선배에 대한 환상도 같이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이 길을 내가 리딩할 날이 오리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박쥐길의 추억이라고 제목을 붙인 이유를 얘기하다 보니 서두가 길어졌다. 이정도면 추억이라고 얘기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박쥐길은 1960에 개척되었다고 한다. 선우중옥씨와 전광호씨가 5시간만에 최초 등반을 했다고 한다. 전체길이 180m, 6피치로 이루어져 있다. 박쥐길은 표범길과 함께 도봉산 선인봉의 가장 인기있는 코스로 알려져있다. 등반난이도는 2피치 박쥐날개가 5.8 이고, 테라스 위의 4피치 크랙이 5.9, 그리고 오버행 크랙을 트래버스하여 오르는 부분이 5.10a 로 매겨져 있다. 산빛에 와서 박쥐길을 등반한건 7월초 토요일 은수 형님과 진택 동생, 집사람과 넷이서 야영팀이 들어오기에 앞선 토요일 오후였다. 그날 차분히 후등으로 오르면서 나중에 리딩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러면서 “그 때 진 빚을 갚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지난 월례회때 2차 술마시는 자리에서 선포를 했다. 박쥐길을 리딩하고 등반기를 올리겠노라고..... 그랬더니 지호 동생과 진택 동생이 서로 빌레이를 봐 준단다. 아! 이렇게 고마울수가....
그리고 8월의 마지막 팀 등반, 마침 참가가 가능해 졌다. 캠까지 다 챙기고 마음을 준비를 하고 야영장에 있는 야영팀과 합류했다. 오늘은 마침 표범길과 박쥐길 두 군데를 한단다. 김 대장이 조를 나누며, 박쥐길은 진택이가 리딩하란다. 진택이도 그런단다. 원래 잘 내색을 안하는 성격이라 속으로만 “우이씨 모야! 서로 빌레이 봐준다고 해놓고..... 술먹고 잊어버린거야?“
어찌 됐거나 박쥐, 표범길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결국 등반을 포기하고 선인봉의 맨 우측에 위치한 진달래 길과 경송(확실하지는 않음)길을 두 팀으로 나누어 등반을 하고 점심 식사를 했다. 미경씨가 가져온 열무 김치가 가장 인기가 좋았다. 마지막 남은 김밥 한줄이 맛이 약간 갔단다. 맛이 갔다는 말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창연씨는 마지막 한쪽까지 다 해치운다. 정말 놀라운 내공이다. 창연씨는 예사 사람이 아닌 듯 싶다.
더 이상 등반이 없을 줄 알았는데, 표범, 박쥐 결국 더 한단다. 김이 빠진 뒤라 리딩할 생각도 안했는데, 진택 동생이 “형님 박쥐길 한번 리딩하시죠“하는데, 귀가 번쩍 띄었다. 그런데 자기가 확보해 준다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지가 표범을 하고 싶어서 나한테 떠넘긴 듯 하다. 그러면서 여자들 셋에 오늘 처음온 상호씨를 박쥐팀에 배정해준다. “이런 닝기리” “중간에 못올라가면 누가 가”했더니 누군가가 “형님 그냥 내려오시면 됩니다”한다. 그래서 더 마음 굳게 먹고 시작을 했다. 그런데 처음 시작부터 자세가 안나오는데다 두 번째 볼트를 지나쳐서 조금 내려와 퀵도르를 걸때는 살짝 당황까지 했다. 그래서 그런지 첫 피치가 무척 힘들었다. 오죽 불안했으면 상미가 빌레이를 바꿨을까. 창연씨가 밑에서 봐주는 바람에 무사히 첫피치를 마친 듯 싶다.
두 번째 피치를 시작하면서 속으로 “침착하게 여유있게 하자. 첫피치처럼 헤매면 사고난다.“하면서 담담한 마음으로 출발했다. 초입에서 물이 흐르길래 긴장을 했지만 다행이 미끄럽지는 않았다. 중간에 볼트 걸고 무사히 우측 끝까지 갔다. 자세가 약간 흐트러 지긴 했지만 집중해서 날개를 올라타는데 성공했다. 얼굴에서 땀이 뚜두득 떨어지는 가운데 짜릿함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뒤에서 상호씨, 미경씨 파이팅을 외치는 듯 하길래 우쭐해져서 한마디 한다. “자신있게 오르면 돼” 중간에서 끊을까하다가 내친김에 소나무까지 올랐다. 뒤이어 올라오는 상호씨 오늘 처음 등반에 합류했고 얼마전 등산학교를 졸업했다하지만 왕년에 등반을 했던 경험도 있어서인지 등반 실력이 장난이 아닌 것 같다. 뒤풀이하면서 김대장에게 잘좀 키워보라는 말도했다. 이어서 올라오는 미경씨 많이 힘들어하는 듯 하다. 올라오는 길을 내가 잘못 인도하는 바람에 아침부터 개고생이다. 마지막 구간을 오르려고 열심히 루트 파인딩하고 이미지 트레이닝하는데 밑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서 거기서 하강하세요” 많이 아쉬웠다. 하는김에 오늘 끝내고 싶었는데, 그래야 10년전의 빚을 완전히 갚는건데.... 하지만 어쩌랴. 대장의 철수 명령이 내려졌는데.... 하강을 하면서 상호씨한테 라스트를 부탁하고 싶었었는데, 오랜 시간 기다리라하기가 미안해서 상미한테 라스트를 부탁하고 하강을 시켰다. 상미가 힘들다고 했으면 남아있으라고 하려 했는데, 괜찮단다. 나중에 들으니 여자들 셋이서 내려오면서 고생 많이 했다 한다. 많이 미안했다.
밑에서 내려와 아내가 오르는 것을 보니, 많이 힘들어한다. 어제 오늘 연이어 등반하느라 기운이 많이 빠진 듯 하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새는줄 모른다는 말이 딱이다. 교회 땜에 자주 팀 등반을 못하다보니 팀등반을 못가는 주에는 어디라도 데려다 줘야 내 인생이 편안할 지경이다. 마지막으로 올라가는 상미의 모습은 한 마리의 새가 사뿐 사뿐 날아오르는 모양새다. 과연 등반 여신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다. 내가 길눈이 어두운 편이라 엉뚱한 길을 오르면서 상미한테 이길 맞냐고 물었더니 이길이 맞다고 아주 자신있게 말해서 난 철썩 같이 믿고 말았다. 앞으로 상미한테 길을 물을땐 조심을 해야할 듯 싶다.
전구간 등반을 못해서 등반기 쓰는 것은 미루려고 했는데, 나중에 완등을해도 이번 같은 느낌은 못받을 거 같아 이렇게 몇자 적어본다. 난 등반을 하면서 선인은 거의 오지 않았다. 초보 때의 추억을 두고 두고 간직하다가 먼 훗날 추억을 되새기면서 리딩을 하는 기쁨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등반을 쉬지 않고 해온 덕분이라 생각한다.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나의 등반은 산빛과 함께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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