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의 마음고생에도 불구하고 이날 등장한 엄앵란의 얼굴은 다행히 매우 건강한 모습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호탕한 말투와 거침없는 입담으로 시종 스튜디오를 웃음바다로 만든 엄앵란은 방송을 통해 결혼 초에 겪었던 시어머니와의 갈등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주부들의 공감을 샀다.
이날 방송에서 무엇보다 시청자의 이목을 사로잡은 것은 엄앵란이 살찐원인을 고부갈등 때문이었다고 밝힌 부분이다. 그녀는 “한창일 때 결혼을 했는데 내가 좀 억센 며느리였다. 아마 시어머니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나에게 눈치를 줬었다”는 말로 편치 않았던 시집살이를 고백해 왔다. 실제로 엄앵란은 1964년 11월, 당대 최고의 영화 스타였던 신성일과 화려한 결혼식을 올리며 본격적인 주부 생활에 돌입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여배우의 결혼은 동시에 은퇴를 의미하던 것. 이러한 분위기는 영화 ‘하녀’, ‘맨발의 청춘’ 등 굵직한 영화에 출연하며 엄연한 톱 배우로 자리하고 있던 엄앵란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결혼 이후 전업주부로서 줄곧 시댁에 함께 살며 시집살이를 했던 엄앵란은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시어머니와 사사건건 부딪혔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엄앵란 살찐원인이라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살찐원인으로 지목된 당시의 시집살이는 바깥출입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엄격했다는 것이 그녀의 고백이다. 게다가 시어머니는 신성일의 속옷 하나 조차 세세하게 간섭할 정도로 엄앵란에게 스트레스를 줬다는 것.
결국 극도의 스트레스 원인이 됐던 고부갈등은 결혼 후 3년 뒤, 시어머니에게 집을 사드리며 분가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끝날 수 있었다는 것이 엄앵란의 설명이다. 이 당시의 혹독했던 시집살이는 과거 신성일이 한 연예 프로그램에 출연해 “아내와 어머니의 갈등이 심했다. 그 갈등을 해소시키기 위해 엄앵란 앞에서 뺨까지 맞아가며 어머니를 분가시켰다”고 고백하면서 한 차례 입증된 바 있다.
방송을 통해 고백된 엄앵란의 시집살이는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오기까지 한다. 일찍이 최고의 전성기 시절, 결혼과 함께 모든 영광을 뒤로 했던 그녀가 결혼 이후에 겪어야 했던 다사다난했던 인생 역경들을 대중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녀는 지난해 출판됐던 신성일의 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를 통해 한 여자로서 감당하기 힘든 마음고생까지 해야 했다. 이는 대중 앞에 까발려진 남편의 외도와 그를 향한 대중의 시선, 이 모든 것들이 고부갈등과 함께 그녀의 고단했던 삶을 여실히 드러내 주고 있음을 말해 준다.
지난 16일 방송된 SBS ‘좋은 아침’을 통해 엄앵란은 그간의 마음고생에 대해 “가던 대로 그냥 가는 거야. 죽을 때 같이 죽으면 되는 건데, 내가 이혼이란 그런 사치스런 것을 뭐 어쩌겠어?”라는 말로 해탈의 경지를 표출해 왔다. 또한 그녀는 “부모는 자식들에게 어떻게 총알받이를 해줄까만 고민하면 된다”는 말로 오로지 부모로서의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삶의 철학을 밝히며 모두를 뭉클하게 하기도 했다. 새삼 화제가 되고 있는 그녀의 인고의 삶에 대중이 존경의 눈길과 더불어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보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