뭄바이에서 함피까지 320km, Sleeper라 불리는 침대버스로 이동할 예정이다. 버스는 예정보다 20분 늦은 밤 9시에 어둠을 뚫고 나타났다. 도심을 한참 벗어난 이곳은 가로등이 거의 없다. 어디나 어둑어둑하다. 띄엄띄엄 늘어선 가게에서 새나오는 전등 빛이 희미하게 길을 밝히고 있을 뿐이다. 은하철도999에서 철이가 내렸던 어떤 행성처럼. 길은 차도와 인도 구분도 없고 이곳저곳 패인 낡은 아스팔트엔 차선도 보이지 않는다. KFC 매장 주변 어두운 골목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십여 명이 몰려나온다. 도로 경계석과 15도 각도로 삐딱하게 섰던 버스가 반듯하게 다시 자리를 잡는다. 낡고 긴 버스 이마에는 Paulo라고 갈겨 쓴 붉은 필기체가 선명하다. 보자마자 이 고철덩어리가 내 마음 깊은 곳으로 뛰어든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낮은 조도의 호롱불에 휘갈겨 쓴 그의 이름이 뿜어내는 자유로움이 준 해방감 때문일까. 먼지 자욱한 차체와 널직한 앞유리창을 보면서 사도 바울의 역경을 잠시 떠올려 보기도 하였지만, 그분의 도덕성과 어떤 연관도 이을 수 없는 친구라는 걸 승객들은 곧 확인하게 될 것이다. 아무튼 나는 금방 말을 걸어올지도 모른다는 어처구니없는 상상을 하면서 그를 맞이하였다.
버스 바닥 화물함에 배낭을 밀어 넣었다. 계단에 첫발을 올리자 눈에 들어온 것은 운전석 시트의 반짝이는 기름때와 얼룩진 등받이 방석이었다. 몸을 눕힐 자리의 청결을 기대하지 말라는 경고장이다. 마지막 세 번째 계단을 딛고 상판에 오르는 순간, 숱한 몸에서 분리되어 남겨진 체취와 그들 몸을 탐했던 곤충을 살상하기 위한 화학무기 냄새, 다시 그 냄새를 중화시키기 위한 냄새들이 뒤섞인 기기묘묘한 향이 코에 충격을 준다. 쥐스킨트의 <향수>*에 등장하는 그루누이라면 냄새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을까. 충격이 반감을 자극하지 않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7,80cm 정도 폭의 중간 복도 좌측은 더블, 우측은 싱글석이다. 앞에서 뒤로 다섯칸씩 2층이니까 왼편 20명, 오른편 10명, 맨 뒷자리는 더블로만 2층으로 4명이 잘 수 있다. 34인승. 한국의 이동 닭장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온 것 같은 구조다. 빈자리는 커튼이 젖혀 있다. 24번 룸(?)을 찾지 못해 남자 승무원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이리저리 한참 헤매더니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번호가 어디 있냐고 물었다. 기둥 안쪽에 희미하게 못으로 긁힌 흔적이 보인다. 21번과 22번 사이가 24번이다. 뭔 질서인지 알 수가 없다. 수학에 재능이 있는 친구들이 많다고 소문난 나라니까 복잡한 수열이 개입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맨 뒤 천정 밑자리에서 내리꽂는 시선과 마주친다. 스피노자같이 노랑머리를 늘어트린 잘 생긴 백인 청년이다. 폰 위에서 그의 손가락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바로 앞 이층 더블칸 커튼이 빠끔 열리더니 구렛나루를 기른 젊은이의 얼굴이 튀어나온다. 창백하고 비쩍 마른 데다가 머리를 풀어 헤친 꼴이 영락없는 히피다. 그의 불안한 눈동자는 싱글 티켓으로 차지한 더블칸의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을까 확인 중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어디서나 그랬지만 오늘 밤 가는 길도 상태가 좋지 않다. 충격을 온전하게 흡수하기에는 늙은 Paulo의 무릎(서스펜션)이 약할 수도 있다. 좌회전을 하면서 몸이 우측으로 쏠리는가 싶더니 5핀 충전밧데리와 타입C 휴대폰을 연결하는 중간 젠더가 빠져버린다. 피라밋 밑둥을 자른 듯한 숫 젠더를 파트너의 홀에 랑데뷰시키려면 정확한 도킹 능력이 필요하다. 몇 번을 시도하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이 고장 난 모선과 도킹을 시도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불가능하다고 말할 것까지는 없지만 몸이 상하좌우로 끊임없이 흔들리는 상태에서 젠더의 도킹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정지할 때를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요동의 폭도 커지고 있다. 이곳도 노면 상태가 좋지는 않았다. 찻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으로 비포장 시골길을 달리고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소음과 진동만으로 버스 외부의 다른 상황은 알 수가 없다. 바닥에서 50cm 위에 위치한 버스창이 룸에 25cm 정도 걸쳐 있지만 간유리라서 아무 것도 볼 수가 없다. 간유리가 아니라 투명했던 유리에 먼지가 눌어붙은 것인지도 모른다.
한 시간 정도 지나면서 엔진 소리가 잦아지더니 이내 정차한다. 첫 번째 정류장이다. 웅성대는 소리와 함께 신참 승객들이 버스에 오른다. 커튼을 젖히지는 않았지만, 두세 명 정도가 오른 것 같다. 그들의 떠들썩함으로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짐을 느낀다. 탑승하는 순간에 신참자들이 갖는 불안과 불편함이 이미 나에겐 익숙한 것이 된 상태다. 한 시간이 지나면 저들 역시 나와 똑같은 상태가 되겠지만, 저들이 성취할 것을 먼저 성취한 자의 여유로움이다. 9시간 내내 겪을 일이 지난 한 시간 동안 겪은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점과 지루함과 어려움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심리적인 안정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차지한 공간은 paulo의 뒷부분 바닥이다. 버스에 오른 발소리가 점점이 커지다가 바로 뒷자리 커튼 앞에서 멈춘다. 커튼을 젖히는 소리. 이제는 어느 쪽에 머리를 둘 것인지 결정해야 할 것이다. 가방이나 배낭을 들고 탔다면 놓을 위치도 정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자세를 낮추고 조심스럽게 좁은 공간으로 몸을 진입시킬 것이다.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커튼을 열어볼까 했지만 좁은 복도에서 힘들게 부비적거리는 신참자를 더 불편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뒷자리에 자리잡은 신참자가 동승한 친구에게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친구는 건너편 2층 더블칸에 있는 모양이다. 영어를 구사하는 20대 젊은 여성으로 추정해본다. 목소리만으로 나이를 추측할 수 있을 만큼 오랜 삶을 산 나 자신에게 놀란다.
자판을 정확하게 겨냥하여 손가락으로 폰 버튼을 때리려면 눈의 초점을 잘 맞추어야 한다. 안경 쓴 늙은 근시안들은 안경을 벗어야 가능한 일이다. 벽에는 왼손에 쥔 안경을 걸어둘 만한 그 무엇도 없었다. 그렇다고 호주머니에 넣는다면 상황으로 보아서 안경은 언제라도 부서질 수 있다. 엔진이 있는 뒷쪽으로 머리를 두었는데 발끝 우측 상부에 설겆이 그릇을 말리는 구조물과 비슷한 것이 선반처럼 고정되어 있다. 그러나 안경을 위에 놓기에는 구조물의 틈이 넓어 보인다. 다시 코에 얹어 놓았다. 안경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코가 화물을 고정시키는 기능도 있다는 걸 이제서야 깨닫는다.
급정거와 함께 커지는 뒷바퀴 브레이크 패드의 신음소리. 나는 뒷바퀴와 엔진 사이에 있다. 오선지에 표시한다면 윗쪽으로 보조선을 일곱 줄은 그어야 할 소리는 심장이 쭈삣해지면서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소프라노 색소폰이 낼 수 있는 가장 높은 소리보다 더 높은 소리다. 잠시 정차한다. 타이어가 낡은 아스팔트와 일으키는 마찰음과 바람소리가 사라졌다. 엔진만이 낮은 토크로 돌아간다. 어떤 상황이 차를 정지시켰는지 궁금하다. 출발 후 가장 낮은 소음이다. 파울로의 좁은 공간에 갇힌 사람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사치를 누리는 순간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소음조차도 위안이 될 때가 있다. 파울로가 퍼커션의 통제 없이 어쿠스틱 기타 반주에 맞추어 그의 언어로 <From The Beginning>**을 연주하는 듯하다. 환상적인 전자피아노 소리를 적막한 밤하늘로 날려 보내면서 그가 이 여행에 아무 책임이 없음을, 그러나 그와 동행하는 것이 운명이었음을 노래한다. 귓가에 맴도는 이 기괴한 소리는 안드로메다 은하계 항성의 여러 행성을 오가는 급행열차를 탄 여행객에게 더없이 아름다운 소리다.
There might have been things I missed, But don’t be unkind
아마 내가 놓쳤던 부분이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매정하게 굴지는 마
It don’t mean I’m blind, Perhaps there’s a thing or two
내 눈이 멀었다는 뜻은 아니야, 한두 가지 실수를 했을 수도 있지
I think of lying in bed, I shouldn’t have said
침대에 누워 생각해 보니까, 그 말을 하지 않았어야 했던 것 같아
But there it is, You see it’s all clear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네, 당신이 본 그대로야.
You were meant to be here, From the beginning
그렇지만 당신은 여기 있어야만 했어, 처음부터
* <향수>: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번역, 열린책들, 2021.
** <From The Beginning>: Emerson Lake & Palmer의 노래, 1972년 영국 Irland Record에서 발간된 Triloy 앨범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