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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개인의 영달을 추구하지 말고 소외된 이를 섬기십시오”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한 사람의 가치는 그의 역할, 성공, 재산이 아니라 섬김으로 평가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9월 19일 연중 제25주일 삼종기도를 통해 종종 “십자가의 맛”을 보며 대가를 치르지만 타인을 섬기는 종이 되는 것이 첫째가 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가난한 이들, 작은 이들, 보답할 길이 없는 이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말했다.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복음(마르 9,30-37 참조)은 예루살렘으로 가던 길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마르 9,34) 하는 문제로 논쟁을 벌였던 일을 들려줍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강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 9,35). 만일 여러분이 첫째가 되고 싶다면, 맨 끝줄로 가서 모든 이를 섬겨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장중한 명언을 통해 반전을 시작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정말로 중요한 것에 대한 기준을 뒤집으십니다. 사람의 가치는 더 이상 그가 맡은 역할, 그가 이루는 성공, 그가 전개하는 일, 그가 은행에 예치한 돈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고, 그런 것에 달린 게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위대함이나 성공은 그와 전혀 다른 기준으로 평가됩니다. 곧, ‘섬김’입니다. 그 사람이 ‘가진’ 것이 아니라, ‘주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첫째가 되고 싶습니까? 섬기십시오. 이것이 길입니다.
오늘날 “섬김(서비스)”이라는 단어는 다소 진부하고 케케묵은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섬김은 복음에서 명확하고 구체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섬긴다는 것은 공손한 표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처럼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삶을 몇 마디로 요약하시면서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르 10,45 참조)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예수님을 따르고자 한다면, 우리는 주님께서 몸소 걸어가셨던 길, 그 섬김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주님께 대한 우리의 충실성은 기꺼이 섬기려는 우리의 자세에 달려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를 맛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타인을 위한 기꺼운 마음과 타인을 향한 돌봄이 커질수록 우리는 예수님처럼 내적으로 더 자유로워집니다. 우리가 더 많이 섬길수록 우리는 하느님의 현존을 더 많이 깨닫게 됩니다. 특히 우리가 아무것도 보답할 수 없는 이들, 가난한 이들을 섬길 때, 그들의 어려움과 곤경을 온유한 연민으로 받아들일 때, 거기서 우리는 우리가 하느님께 사랑받고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김의 우선권’에 관해 말씀하신 다음, 이를 설명하시려고 한 가지 행동을 취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행동이 그분께서 사용하시는 말씀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행동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제자들 가운데에 세우십니다(마르 6,36 참조). 가장 중요한 장소, 곧 중심에 말입니다. 복음에서 어린이는 천진난만하다는 걸 상징한다기보다 작음을 상징합니다. 작은 이는 다른 사람에게 의존합니다. 성인에게 의존하는 아이들처럼 말입니다. 이들은 받아들여져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를 껴안으시며 어린이처럼 작은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바로 당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마르 6,37 참조). 자,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섬겨야 할까요? 받는 것을 필요로 하지만 그 대가로 아무것도 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받아야 하지만 되갚을 길이 없는 이들을 섬겨야 합니다. 소외된 이, 홀대받는 이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거기에’ 예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섬기는 작은 이, 가난한 이를 통해 우리도 하느님의 온유한 포옹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복음이 요구하는 것처럼 이렇게 자문해 봅시다. 예수님을 따르는 나는 가장 홀대받는 이에게 관심을 두는가? 아니면 그날의 제자들처럼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는가? 나는 타인의 희생으로 나 자신만의 자리를 만들기 위한 경쟁의 관점에서 인생을 이해하는가? 아니면 첫째가 되는 것이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가? 구체적으로, 나는 “작은 이들”에게, 내게 되갚을 길이 없는 이들에게 시간을 내는가? 나는 내게 되갚을 수 없는 이들을 걱정하고 있는가? 아니면 단지 나의 친척과 친구들만 걱정하는가? 이는 우리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들입니다.
섬기는 것은 우리를 하찮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라나게 하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도록 주님의 겸손한 여종 동정녀 마리아께서 우리를 도우시길 빕니다. 또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사도 20,35 참조)는 것도 깨닫게 해주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