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부터 더불어민주당을 출입하면서 두 번의 아슬아슬했던 표 차이의 선거 결과가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나왔던 0.59%포인트, 그리고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나왔던 0.73%포인트입니다.
원래 석패가 가장 아쉬운 법이죠. 패배한 쪽은 쉽사리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후회와 미련 속 괜한 ‘삽질’을 할 때가 많습니다. 요즘 민주당이 딱 그렇습니다.
● 송영길과 0.59%포인트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이 뒤늦게 터지면서 최근 민주당은 ‘초긴장’ 상태입니다. 검찰은 당시 송영길 캠프가 돈 봉투 90개를 만들어서 현역 의원과 당 관계자들에게 뿌렸다고 의심하고 있죠.
검찰의 압수수색 이후 현역 의원 최소 10여 명이 연루돼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이른바 ‘송영길 리스트’가 지라시처럼 나돌기도 했습니다.
잠시 2021년 5월 2일 전당대회 때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송영길은 이날 박빙의 선거 끝에 최종 득표율 35.60%로 당선됐습니다. 친문(친문재인) 핵심 홍영표(35.01%)과의 격차는 0.59% 포인트 차이에 불과했습니다. 송영길은 45%가 반영되는 대의원 선거에선 홍영표를 1.50%포인트 차로 이겼지만 40%가 반영되는 권리당원 투표에선 홍영표에 0.67%포인트 차로 졌습니다.(통상 대의원은 당 지도부와 지방자치단체장, 현역 의원을 비롯한 지역위원장 등 직업 정치인이 대부분입니다. 권리당원은 가입 후 6개월간 당비를 납부한 당원으로, 전당대회 투표 등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0.59%포인트’는 송 전 대표의 임기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습니다. 지금의 ‘친명’ 대 ‘비명’ 갈등도 이 아슬아슬한 표차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 내에선 이재명 측이 송영길을 전략적으로 민다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실제 이재명 최측근 모임인 ‘7인회’ 소속 멤버가 송영길 캠프에서 조직 업무 등을 지원하기도 했고요. 이 때문에 송영길은 당선 직후 이어진 대선 경선 과정 내내 “이재명 편만 든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오죽하면 그 때 ‘이심송심’(李心宋心)이라는 말도 나왔죠. 당시 친문 지지층 사이 송영길의 별명은 ‘쩜오 대표’. “0.59%포인트로 간신히 이겨놓고 왜 제멋대로 당을 운영하느냐”는 노골적 불만이었습니다.
특히 그 해 10월 이낙연이 3차 국민선거인단 투표에서 압승하고도 결선행에 실패하자 당내 갈등은 극에 달했습니다.
당시 이낙연 캠프는 “경선에서 중도 사퇴한 후보들의 표를 총유효투표수에서 제외한 방식에 문제가 있다”라며 이의를 신청했었죠. 이른바 ‘사사오입’ 논란이었습니다. 하지만 송영길은 “우리 당은 어제 이재명 후보를 20대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 발표했다”라고 곧장 일축했습니다.
이에 항의하는 이낙연 지지자들을 향해선 “거의 일베(극우 성향 커뮤니티) 수준”이라고 했다가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그 뒤로도 송영길의 서울시장 선거 출마 강행으로 공석이 된 인천 계양을 지역구에 이재명이 출마하는 등 둘 간의 ‘밀월 관계’에 대한 의심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제대로 봉합하지 않았던 0.59%포인트의 갈등이 2년 만에 이뤄진 검찰 수사에 다시 터진 겁니다.
요즘 친문, 친이낙연계에선 “만약 의혹이 사실이고, 돈 봉투 살포가 없었더라면 민주당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당시 송영길이 아니라 홍영표가 당선됐더라면 대선 후보까지 바뀌었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당직 개편 이후 겨우 잠잠해지는 듯했던 당내 갈등도 다시 불붙는 모양새입니다.
“(프랑스에 있는) 송영길이 제 발로 들어오는 게 낫지 않나. 그게 더 당당하다”(조응천 의원·14일 CBS라디오), “당내 진상조사 기구를 마련해 정리할 건 하고, 사죄하고 이렇게 나가야 하는데 아직까지 당 지도부가 그걸 안 하는 게 더 큰 문제”(이상민 의원·14일 CBS라디오)라는 등 비명(비이재명)계 의원들이 뜨뜻미지근한 당 지도부의 대응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겁니다.
● 이재명과 0.73%포인트
아찔한 승부는 작년에도 있었죠.
지난해 5월 대선에서 이재명은 1614만7738표(47.83%)를 받아 ‘역대 대선 낙선자 중 최다 득표자’라는 아이러니한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1639만4815표(48.56%)로 당선된 윤석열 대통령과는 24만7077표(0.73%포인트) 차이에 불과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민주당과 이재명에겐 이 0.73%포인트 차이가 또 한 번의 독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제대로 졌더라면 이재명도 이제까지 다른 패배자들이 그랬듯, 잠시 해외로 나가는 등 정치 행보를 중단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재명은 대선 직후 오히려 ‘개딸’들과의 스킨십을 대폭 강화하더니 ‘선거 중독자’마냥 6월 보궐선거, 8월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했습니다.
스스로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돼서 졌는지 돌이켜 보고 반성하고 개선할 수 있는 시간이 전혀 없었던 셈입니다.
지난해 이재명의 전당대회 출마 소식에 한 민주당 원로는 “망할 땐 확실히 망해야 다시 일어설 수 있는데, 어쭙잖게 진 게 이재명의 가장 큰 문제”라고 걱정하더군요.
이재명은 대선 석패에 대한 미련이 남은 것인지, 아직도 혼자 ‘대선주자’ 같은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역 순회 간담회를 하는가 하면, 11일엔 외신기자 간담회에도 참석했죠. 한일 정상회담 결과를 비판하고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터진 미국 측 감청 의혹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을 텐데, 여기서도 이재명이 극도로 꺼리는 질문들만 이어졌습니다.
“지금까지 측근 5명이 사망했다. 이재명이란 인물을 위험인물로 봐야 하는가”, “성남시장할 때 일로 기소된 것과 관련해 어떤 입장인가” 등 한껏 날 선 외신 기자들의 질문에 이재명은 “외신 기자회견에서 이런 질문과 답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수치스럽다”라며 진땀을 뺐습니다.
평소 국내 출입 기자들의 질문에는 침묵으로 일관하던 그는 쏟아지는 외신 질문 세례에 “청문회 하는 기분”이라고도 하더군요.
이재명이 벌써 차기 대선을 바라보고 움직일 때는 아직 아닌 듯합니다.
돈봉투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은 ‘더넣어봉투당’, ‘쩐당대회’ 등이라며 파상공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일주일 가까이 전전긍긍하기만 했죠. 한 민주당 관계자는 “당이 당사자 등에게 자진 탈당 등을 요구하면 ‘이재명 때는 안 그러더니’라는 형평성 논란이 일 것이고, 그렇다고 뭉개면 ‘이재명에 이어 또 방탄이냐’는 여론이 이어질 것”이라며 “어찌해도 욕을 먹는 딜레마 구조”라고 했습니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것인지 이재명은 17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아직 사안의 전모가 밝혀진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볼 때 당의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안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말씀 드리면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저로서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습니다.
이번 돈봉투 사태와 관련해 첫 공식 입장이자 사과였습니다.
그러면서 “당은 정확한 사실 규명과 빠른 사태 수습을 위해 노력하겠다.이를 위해 송영길의 조기 귀국을 요청했다”면서도 “이번 사안은 당이 사실 규명하기엔 한계가 뚜렷하다. 그래서 수사기관에 정치적 고려가 배제된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요청한다”고 당부했습니다. 현재로선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발언 같습니다.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에는 이번 일로 크게 실망하고 분노한 지지층들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번 칼럼은 그 동안 민주당을 지지하고 응원했던 사람들의 날 것 그대로의 말·말·말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당 대표가 아주 멋진 전통 세웠네~ 죄짓고 수사받으면 다 야당 탄압이야?”
“지금까지 열심히 응원하던 당원들 배신하고 돈 조금에 양심을 팔고 있으니 민주당 하는 것이 X 팔려 살 수 있겠소?”
“김기현 입에서 저런 쓰레기 말을 들어야 하냐? 저런 말에도 반박을 못 하겠네.”
“땅을 치고 후회한들 민주당 이쁘게 봐줄 것 하나도 없다. 이번 사태가 여실히 보여준다.”
“돈 봉투 사건으로 아마 당이 해체되지 않을까 싶네.”
김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