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문턱 너머로
설날을 이틀 앞둔 일월 셋째 금요일은 대한 절기였다. 먼저 지나간 소한도 따뜻했는데 대한마저 그리 춥지 않았다. 그러나 주간 예보에는 설을 쇤 직후 10년 만에 닥치는 최강 한파로 남녘의 최저기온은 영하 10도를 밑돌 거란다. 여기저기서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가 추위에 데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아직 입춘까지 보름이 더 남았기에 빙점 아래로 내려갈 날이 더러 있지 싶다.
아침나절 지난 연말 서울로 올라가 받은 건강검진 후속 절차로 시내 병원을 찾아갈 일이 있었다. 그때 흉부 엑스레이 사진에 희미한 점이 보여 무슨 사정일까 싶어 정밀한 씨티를 찍어보길 권해 진료를 예약해 두었더랬다. 호흡기내과 전문의가 가운데 한 분에 의뢰해 둔 진료실을 찾아 미리 제출된 시디에 따른 주치의 설명을 듣고 후일에 씨티 촬영 일자를 잡아 놓을까 싶었더랬다.
퇴임을 앞둔 재작년 공무원 신분으로는 마지막 건강검진을 받았던 병원이라 그때 찍어둔 자료는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의사는 그 사진과 서울에서 찍어온 사진을 비교 대조해 보더니 별반 크게 차이점이 없을 듯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먼저 엑스레이를 찍고 씨티 촬영도 오늘 가능할 듯하니 관계자로부터 시간을 안내받으라면서 검사 결과는 후일 어느 날 내원해 확인하길 바랐다.
병원은 무척 친절하고 분야별 업무가 유기적으로 체계화 되어 있었지만 환자에게는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졌다.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마다 또 다른 데스크에서 접수와 안내를 받아야 했다. 진료 공간이 다른 영상 촬영실로 갔더니 엑스레이는 지금 즉시 찍을 수 있는데 씨티 촬영은 대기 순번이 정해져 있어 오후 시간대에 가능하다고 해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 처지였다.
나는 병원 일을 보고 나면 곧장 근교 갯가로 산책을 나서려던 계획은 변경해야 했다. 내가 가고자 했던 곳은 진동 광암 선창에서 다구리를 지나 도만마을로 갈 예정이었다. 대한의 한겨울이지만 나는 새해 들어 여기저기 피어나는 꽃을 찾아내고 있다. 어제는 강서 둔치도에서 핀 매화, 그저께는 감계 중방마을의 매화, 그 전에는 사림동 분재원과 주택 정원의 운룡매도 완상했다.
올겨울 화신은 매화뿐만 아니라 풀꽃에서도 흔하게 봐 왔다. 물론 그 꽃은 겨울이 깊어지기 전 피어난 것이라 지난해 연말부터 꽃잎을 펼쳐 나왔다. 추위가 닥쳐도 꽃잎은 오므라들지 않고 따뜻한 날이면 개화가 더 진행되었다. 북면 외감마을 묵혀둔 논배미로 흘러드는 농수로 언저리에 핀 광대나물꽃을 봤다. 동읍 육군정비창 근처 중앙천 천변에서 냉이를 캐다 봄까치꽃도 만났다.
병원에서 오후까지 봐야 할 일로 갯가로 나갈 탐매 일정은 변경했다. 엑스레이를 찍어두고 병원과 인접한 창원천 천변 산책을 나섰다. 징검다리를 건너 창원대로 용원지하차도를 지나 현대 로템 공장 이면도로를 따라 봉암 갯벌로 진출했다. 갯벌 가장자리는 색이 바랜 갈대숲이 둘러쳤고 냇바닥에는 흔한 흰뺨검둥오리 말고도 날개 깃털이 하얀 흰죽지오리도 몇 마리 섞여 놀았다.
봉암 갯벌이 바라보이는 데서 발길을 돌려 창원천을 거슬러 오르니 길섶에 조경수로 자라는 개나리가 노란 꽃잎을 펼쳐 봄소식을 전해 왔다. 개나리꽃은 한두 송이가 아닌 무더기로 피어나 삼월 초순인가 싶을 정도였다. 그 개나리를 보면서 어느 시인의 산에 올라갈 때 보이질 않던 꽃이 내려갈 때 보이더란 구절이 떠올랐다. 병원으로 다시 가 시간이 남아 다른 일을 먼저 봤다.
일 주 뒤 소화기내과 예약된 진료 상황을 보니 오늘 온 김에 가능해 전문의를 만났다. 역시 서울의 자료를 모니터로 보더니 위내시경과 초음파 검사 일정을 잡아 놓았다. 이후 영상 의학과로 가서 검사대에 누워 기계음으로 들려온 ‘숨을 들이쉬세요! 멈추세요!’를 반복하여 컴퓨터 단층 사진 촬영을 마쳤다. 검사는 피의자를 불러 조지고 판사는 미뤄 조진다더만 의사는 환자를 찍어서 … 23.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