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각 뒷편엔 커다란 철판이 세워져 있다. 용도는 모른다. 배선을 묻느라 경사진 곳에 땅이 파여져 어수선하다. 주차장엔 절을 찾는 신도보다 등산객들의 차량들로 가득차 있다.
ㅡ범종ㅡ 탑 앞쪽에 비 가림막 안의 동종銅鐘을 눈여겨 보고 내려왔다. 새벽이면 여명을 가르는 범종의 소리. 모습은 우람한 남자같고 소리는 가슴을 파고드는 여자다. 스스로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
오늘은 서둘러 7시에 오대산으로 향한다. 아내와 처제 청숙과 동행이다. 차들은 막힘없이 달린다. 양평휴게소에서 아침을 먹었다. 주말이라 이른 시간에도 홀이 붐빈다.
차량이 조금씩 늘어 점점 속도를 못낸다. 월정사를 지나면서 흙길을 13분간 달린다. 생각보다 일찍 상원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차를 세울 공간이 없어 길 옆에 차를 세웠다. 초하루여서 절을 찾는 신도들이 많아진다.
ㅡ진위ㅡ 아침 공기가 상큼하다. 두 절을 빈번하게 찾는 이유가 있다. 종을 보기 위해서다. 오대산 상원사의 동종銅鐘은 국보 36호로 지정된 범종이다.
용문산 상원사의 범종은 국보367호로 지정됐다가 1962년 국보에서 배제된다. 일본에서 들여온 가짜 종으로 판명났다. 일제 강점기에 서울 남산으로 옮겨져 제야에 울리던 범종이다.
떠돌이 종으로 100년 만에 다시 용문산 상원사 제자리로 오게 된다. 2012년 조사결과 진짜로 밝혀진다. 그 후 다시 진위眞僞 여부에 대해 논란이 되어 현재는 고철 신세를 면치 못한다. 지금은 밖에서 비바람을 맞는 초라한 신세다. 지금까지도 비운의 종이라 불린다.
오대산 상원사의 범종은 다른 종과 달리 대우를 받는다. 신라 선덕왕 24년에 만든 11개 범종 중 하나다. 안동 루문樓門에 걸린 종을 조선 예종 1년(1469)에 상원사로 옮겼다고 한다.
국보인 범종의 훼손을 막기 위해 타종하는 일이 없다. 옆에 있는 모조품 종이 대신한다. 현재 유리관 안에 보호 받고 있는 범종. 우리나라 최고의 종이라고 한다. 종을 보기 위해 오대산 상원사에 온 사람들이 놓칠세라 눈에 담는다.
용문산 종누는 용이 두마리인 쌍용이다. 오대산 상원사의 종누엔 한마리인 단룡이다. 서로 몸값이 다른 두 종의 외관은 크게 다를 바 없다.
사찰마다 법당 앞에 종루에 종이 매달려 있다. 진리를 설하는 부처님의 사자후라고 하는 범종. 소리는 없어도 울림이 온다.
ㅡ분별ㅡ 연암 박지원은 이렇게 말한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 "본 바가 적은 자는 백로를 가지고 까마귀를 비웃고, 오리를 가지고 학을 위태롭게 여긴다. 사물은 절로 괴이할 것이 없건만 자기가 공연히 화를 내고 한 가지만 같지 않아도 온통 만물을 의심한다."
용문산 상원사 동종의 모습은 나무랄 데 없다. 세인들에게 싸늘한 눈초리를 받는 신세다. 어정쩡하게 가짜종으로 불리는 범종은 식별에 능한 사람을 기다리는 중이다. 밑져야 본전이니까.
종을 주조한 장인들은 이미 사대(지ㆍ수ㆍ화ㆍ풍)로 흩어지고 딴세상 사람이다. 시시비비가 어디 이뿐이랴만 가짜와 진짜는 생각하기 나름이다. 진짜는 가짜를 능가하고, 가짜는 진짜에 버금간다. 누구든지 종소리를 분별할 줄 안다면 단 번에 가려낸다. 방법은 있다.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가야 한다.
첫댓글 새삼 상원사의 두 범종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울림이 기ㅡ슴에 듣는이의 마음 이라
여겨집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