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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찬송가 597장 ( 구 378장 ) / 히브리서 13 : 1 - 13
● 다함께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겠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 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 찬송가 378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히브리서 13장 1절 – 13절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3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4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9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10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나니,
11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13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아멘!
고훈 목사님의 시집 중에 "그 날 같은 하루를 날마다 살고 싶다." 는 제목의 시집이 있습니다. 그 시집의 서시로 "사랑합니다." 라는 시가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 받아주지 않아도 / 미워서 보기 싫어해도 / 사랑할 수밖에 없어서 사랑합니다. // 이 사랑은 / 나의 사랑이 아니라 / 주님의 사랑입니다./ 나는 배달자이기에 어떻게 대해도 좋습니다. / 나의 사랑 같은 시시한 것을 / 소중한 당신에게 이렇게 줄 수는 없습니다. 당신이 / 이 놀라운 주님의 사랑을 / 오늘 받기만 하면 / 나는 사라져도 좋습니다. / 나는 죽어도 좋습니다." 시인이신 고훈 목사님은 소중한 사람에게 나의 사랑 정도를 가지고는 사랑할 수가 없고, 오직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기에 자신은 사랑의 배달자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는데, 주님은 “염려하지 말고, 사랑만 하라.” 는 응답을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1절입니다.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서로 사랑하기를 계속하라고 강권하십니다.
유럽을 여행하다보면 대부분 천주교의 성당이나 개신교의 예배당을 관광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배당 안에 놓여 있는 의자들이 성도들이 불편하게 앉아서 에배를 드리도록 등받이가 수직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의자가 왜 불편하게 만들어졌는지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주일학교를 다녔던 시골교회는 아예 의자가 없었고, 마루바닥이었습니다. 그런데 강단 위의 의자 세 개가 있었는데, 의자 등받이가 수직에 가까운 딱딱한 나무 의자였습니다. 나중에 예배당에 의자가 도입됐는데, 그것도 등받이가 다 수직으로 되어 있고, 아예 방석도 없었습니다. 저는 성구 업체가 기술이 없어서 그렇게 만든 줄 알았습니다. 지금 우리교회 의자등받이는 편하게 약간 뒤로 기울어 있잖아요? 그런데 세계 최고의 가구 기술을 가진 유럽에서도 교회 의자는 앉기가 불편한 수직입니다. 그 이유는 곧은 자세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라고 일부러 불편한 의자등받이를 수직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유럽 교회의 예배당 의자들은 다 수직 등받이입니다.
이렇게 불편하지만 곧은 자세로 예배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이태리 사람들의 삶에 불편함을 참는 자세가 배여 있었습니다. 특별히 이태리에는 배달 문화가 아예 없습니다. 페스트푸드 음식점도 별로 없습니다. 정수기도, 전자 도어도 사업이 전혀 안 된답니다. 자동차도 수동기어를 고수하고, 아이들 통학도 스쿨버스가 없고 철저히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는 문화입니다. ‘빨리 빨리’ 와 조금이라도 더 편리함을 추구하는 한국 사람의 눈에는 너무나 답답할 일입니다. 그러나 능력이나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고 합니다. 이태리 사람들은 ‘빨리 가면 잃는 것이 많다.’ 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이 맞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빨리 빨리 문에 조급해 하며,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나를 보게 됩니다. 앞으로는 저도 편리함만 추구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하늘도 보고, 바람도 느끼고, 물 흐르는 소리도 듣고 사람들의 마음까지 읽으면서, 천천히 그리고 깊이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합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제시한 중산층 기준입니다. / 1. 외국어를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고 2.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어야 하고 / 3.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어야 하며 / 4. 남들과는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어야 하고 / 5. 사회 문제에 대한 공적인 분노에 의연히 참여할 것 / 6. 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할 것 / 여유와 배려입니다.
옥스퍼드대학이 제시한 영국의 중산층 기준입니다. / 1. 페어플레이를 할 것 / 2.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 3.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 / 4.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할 것 / 5. 불의, 불평, 불법에 의연히 대처할 것 / 신사의 나라다움이 있습니다.
기독교국가라는 미국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중산층 기준입니다. / 1. 자신의 주장에 떳떳하고 / 2. 사회적인 약자를 도와야 하며 / 3.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는 것 / 4. 테이블 위에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비평지가 놓여있을 것 / 나보다 너를 먼저 생각하는 예수 정신입니다.
우리나라도 이젠 유럽의 나라들보다 경제력에서는 우위에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신적인 깊이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설문조사를 통해서 중산층의 조건을 물었더니 이런 답변이 나왔답니다. 1. 부채없이 아파트 30평 이상 소유, 2. 월 급여 500만 원 이상 / 3. 자동차는 2,000 CC급 중형차 소유 / 4. 예금액 잔고 1 억원 이상 보유 / 5. 해외여행 1년에 한 차례 이상 다닐 것. / 모두 다 돈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물질 중심의 가치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 선진국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기독교 세계관을 가진 나라들이 우리나라와 다른 기준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 - 3절 말씀을 보면, 서로 사랑하되 나그네와 감옥에 갇힌 자와 학대받는 자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친한 사람들과 잘 어울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어려운 이들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하나님을 섬기듯이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떤 이들은 - 곧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대접하였다고 예를 듭니다. ‘손님이 오지 않는 집에는 천사도 오지 않는다.’ 는 중동 속담이 있답니다. 우리도 주님께 하듯 섬겼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바로 믿는지 아닌지는, 기도를 많이 하고, 성경을 많이 읽고 영적 체험을 많이 한 것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그것 보다 더 중요한 표식은 삶에서 드러나는 성실함과 정직함, 그리고 어려운 이들을 사랑하는데서 ‘그 사람은 다르네.’ 하는 인정을 받아야 진짜입니다. 우리가 단지 종교적인 사람으로만 낙인 찍혀서는 안 됩니다.
유럽 여행을 할때마다 소중한 교훈을 얻습니다. 이태리의 성당 건물들은 웅장하고 화려함 극치였고, 예술품 그 자체입니다. 그 건물들을 보면서 감동을 받기 보다는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프랜시스의 고향 앗시시에서 본 성 프랜시스 대성당에서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청빈의 사람 프랜시스의 유해를 보존한 성 프랜시스 성당은 규모가 너무 엄청나고 화려해서, 프랜시스의 청빈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습니다. ‘청빈’ ‘순결’ ‘순명’ 을 절대 규칙으로 삼고 타락한 교회를 개혁하라는 소명을 감당하였던 프랜시스를 ‘예수님의 화신’ 으로 우상화하고 있으니 모순 중에 모순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크고 화려한 성공보다는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신비적인 체험을 추구하지 말고, 성경 말씀을 생명처럼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고, 그 말씀을 전할 때, 고난이 닥치는 것은 영광이니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신앙은 삶으로 증거 되어야 진짜입니다. 이것은 가정에서부터 시작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가족들에게 부끄러움이 없이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 너무나도 놀라운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5절에 “...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진 표현입니까? “주님이 친히 하신 말씀” 이라면 인생의 어떤 괴로움이나 죽음이나, 핍박이나 유혹. 어떤 시험이라도 우린 넉넉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겠다." 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모든 성도들의 마음에 임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으면 먹고 사는 염려하지 않으며, 사랑만하며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 우리 마음에 계신 주 예수님을 실제로 믿고 동행하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산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마 15:8) 이처럼 예수님께서 정말 마음에 계시다는 의식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실제로 내 마음에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약속은 임마누엘입니다.(창 28:15, 신 31:6, 수 1:5, 대상 28:20, 요 14:18, 마 28:20)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믿음이 분명하면 우리 삶은 완전히 변합니다. 자족하며 살게 됩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탐심이 떠나갑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감사가 옵니다. 어떤 처지에서도 용기가 생깁니다.(6절) 주님이 나를 도우십니다. 두려움이 없습니다. 이것이 진정 예수님을 믿는 삶입니다.
사람들과 사이에 갈등이 있는 것은, 예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대나 인간의 죄의 본질은 하나님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보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툭하면 싸우는 것입니다. 명분은 그럴 듯합니다. 그리고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실제는 마음에 계신 주님을 모르고 자기를 더 사랑하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교회 안에서 누군가를 미워하고, 싸운 후 가장 큰 저주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설교가 은혜가 안 돼. 예배가 은혜가 안 돼.” - 여러분! 이보다 더 큰 저주가 어디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절대로 싸우지 맙시다. 미워하지 맙시다. 사랑하며 삽시다. 진짜로 예수 잘 믿는 것은 염려하지 않고, 사랑만 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키려고 힘써야 합니다. 잃어버리거나 변질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면 예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변명하지 말고 자신의 영적 상태를 심각하게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도 예수님을 사랑하듯이 배우자를 사랑하고, 자녀 손들을 사랑하고, 교회 안에서 다른 성도님들을 사랑하며, 모든 삶의 자리에서도 내가 먼저 사랑하고 축복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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