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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국길(任賢國吉)
어진 사람을 등용하면 나라가 길해진다.
任 : 맡길 임(亻/4)
賢 : 어질 현(貝/8)
國 : 나라 국(囗/8)
吉 : 길할 길(口/3)
훌륭한 지도자일수록 인재를 잘 발탁하고 적소에 일을 맡겼다. 인사(人事)가 중요하다고 만사(萬事)라 말은 쉽게 하지만 잘못되어 망사(亡事)가 되면 국민이 피해를 입는다. 알고도 이러한 실패가 잦은 것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현인인 공자(孔子)마저 제자를 잘못 보았다고 자책한대로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한 이모취인(以貌取人)이나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가까운 사람을 뽑는 임인유친(任人唯親), 권력자의 주변에 있다고 능력과 관계없이 우선 발탁한다는 근수누대(近水樓臺) 등등 경계의 말은 숱하다.
자신의 친소와 관계없이 인격과 능력을 갖춘 인재를 등용하는 입현무방(立賢無方)은 고대 성군들이 힘을 기울인 정책이었다.
이렇게 어진 사람을 임용(任賢)하면 나라가 길하고(國吉) 흥했다는 말은 고대 선현들의 행적이나 일화와 우화 등을 수록한 교훈집 유향(劉向)의 설원(說苑)에 나온다.
유향은 전국책(戰國策), 신서(新書), 열녀전(列女傳) 등 숱한 유명 저작을 남긴 중국 전한(前漢) 시대 왕족 출신의 학자다. 존현(尊賢)편에 실린 부분을 보자.
國家之任賢而吉, 任不肖而凶.
국가는 어진 이를 임용하면 길하고 불초한 자를 들어 쓰면 흉하게 마련이다.
여러 예를 든 중에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관중(管仲)을 발탁하고 사후의 몰락을 강조한 것이 흥미롭다.
잘 알려졌듯 관중은 태자 시절 환공을 암살하려 한 반대편의 원수였다. 하지만 환공은 관중의 능력을 인정하여 재상에 임명한 뒤 이후 승승장구, 패자(覇者)가 되고 천하를 바로잡았다.
관중이 죽으면서 추천한 사람을 물리치고 간신 수조(豎刁)와 역아(易牙)를 중용하더니 환공은 사후에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한 때의 잘못 판단으로 명예 잃고 나라까지 기울게 한 본보기였다.
친척이나 원수나 상관없이 능력에 따라 인재를 추천하여 친구불피(親仇不避)란 말을 남긴 진(晉)나라 대부 기황양(祁黃羊)은 대공무사(大公無私)의 표본이다. 인품만 보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에 맡긴다는 임인유현(任人唯賢)이란 말도 같다.
임현물이(任賢勿貳)라고 맡기고 난 뒤 의심하지 말고 끝까지 밀어주라는 말도 명심할 일이다. 그렇다고 등용하고 난 뒤 잘못이 드러나고 모두들 욕하는데도 그냥 직무를 맡긴다면 그것 또한 나라를 길하게 하는 일이 아니다.
임현국길(任賢國吉)
어진 이를 임용하면 나라가 길해진다
중국 춘추시대에 천자는 미약하고 제후들은 종주국에 복종하지 않았다. 그런 제후국 중 왜 어떤 나라는 흥하고 어떤 나라는 시들어 망했나?
간단히 말하면 어진 이를 임용했느냐 그러지 못했느냐로 운명이 갈렸다. 백성의 마음을 따르지 않고 어진 이를 멀리한 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었다.
설원(說苑)의 존현(尊賢) 편에 이런 말이 있다. '국가는 어진 이를 임용하면 길하고 불초한 자를 들어 쓰면 흉하게 마련이다.'
國家之任賢而吉, 任不肖而凶.
누가 아니라고 했나?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그 판단과 시기이다.
설원의 충고는 이렇게 이어진다. '지혜가 부족해 어진 이를 가리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지혜가 능히 어진 이를 알아볼 수 있는데도 결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등용하지 못하면 크게는 그가 죽어 놓치게 되고 작게는 혼란을 만나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이는 심히 슬퍼해야 할 일이다.'
夫智不足以見賢, 無可奈何矣.
若智能見之, 而疆不能決, 猶豫不用, 而大者死亡, 小者亂傾. 此甚可悲哀也.
공자가어(孔子家語)의 현군(賢君) 편에는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자로(子路)가 춘추 후기 진(晉)의 육경(六卿)이었던 범씨(范氏)와 중항씨(中行氏)는 어진 이를 공경하고 불초한 자를 멀리했는데도 왜 망했느냐고 묻는다.
공자의 답은 분명했다. '(그들은) 어진 이를 공경했지만 등용하지 않았고, 불초한 자를 멀리했지만 아주 끊지 못했다. 어진 이는 자신이 등용되지 않는 걸 알면 원망하며 불초한 자는 천시당하는 걸 알면 원수로 여긴다. 어진 이가 원망을 갖고 불초한 자가 원수로 여기면 원망과 원수가 나란히 앞을 막는 것과 같은데, 망하지 않으려고 버틴들 가능하겠느냐?'
尊賢而不能用也. 賤不肖而不能去也.
賢者, 知其不己用而怨之. 不肖者, 知其賤己而讐之.
賢者怨之, 不肖者讐之. 怨讐並前, 雖欲無亡, 得乎.
說苑 卷8 尊賢
第1章
人君之欲平治天下而垂榮名者, 必尊賢而下士.
인군이 세상을 태평하게 다스리고, 후세에 영예로운 이름을 드리우고자 하면, 반드시 현인을 존중하고 자기를 그 아래로 낮추어야 한다.
易曰: 自上下下, 其道大光.
又曰: 以貴下賤, 大得民也.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위에 있는 사람이 자기를 낮추면, 그 도법이 크게 빛나리라' 하였고, 또 '고귀한 지위에 있지만, 아래로 천민과 한께하면 민심을 크게 얻으리라' 하였다.
夫明王之施德而下下也, 將懷遠而致近也.
대저, 명철한 왕이 덕을 베풀되 아래로 나춘다면, 장차 먼 곳의 백성이 품에 안겨 지극히 가까워진다.
夫朝無賢人, 猶鴻鵠之無羽翼也, 雖有千里之望, 猶不能致其意之所欲至矣.
대저, 조정에 현인이 없는 것은 홍곡에게 날개가 없는 것과 같다. 비록 천리를 날고 싶은 뜻이 있지만, 오히려 능히 그 뜻대로 나라 오를 수 없다.
是故游江海者託於船, 致遠道者託於乘, 欲霸王者託於賢.
이러므로 강이나 바다에 노니는 자는 배에 의탁하고, 먼 길을 가려는 자는 수레에 의탁하며, 패왕을 기도하는 자는 현인에 의탁하게 된다.
伊尹呂尚管夷吾百里奚, 此霸王之船乘釋.
이윤, 여상, 관이오, 백리해, 이들은 패왕에 있어 배나 수레의 역할을 한 사람들이다.
父兄與子孫, 非疏之也.
부형과 자손 관계는 소원한 것이 아니다.
任庖人釣屠與仇讎僕虜, 非阿之也.
요리사, 낚시꾼, 백정이 원수, 포로 등과 함께 하는 것은 아부하는 관계가 아니다.
持社稷立功名之道, 不得不然也.
사직을 부지하고 공명을 세우게 하는 방도이니 그리 하지 않을 수없다.
猶大匠之為宮室也. 量小大而知材木矣, 比功效而知人數矣.
이는 대목장이 궁실을 조성하는 일과 같다. 크고 작은 것을 헤아려 쓰일 재목을 알아야 하고, 공효에 견주어 일꾼의 수효를 알아야 한다.
是故呂尚聘而天下知商將亡, 而周之王也.
그러므로 여상이 초빙되자 세상 사람들이 상(商)나라는 장차 망하고, 주(周)가 왕국이 되리란 것을 알았다.
管夷吾, 百里奚任, 而天下知齊秦之必霸也.
관이오,백리해가 국정을 맡게 되자, 세상 사람들이 제나라와 진나라가 패국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豈特船乘哉. 夫成王霸固有人, 亡國破家亦固有人.
어찌 다만 배나 수레뿐이리오. 대저, 왕업과 패업을 이루하는 것은 진실로 사람에게 달린 것이다. 나라를 망치고 가정을 깨뜨는 것도 역시 진실로 사람에게 달린 것이다.
桀用于莘, 紂用惡來, 宋用唐鞅, 齊用蘇秦, 秦用趙高, 而天下知其亡也.
걸왕은 우신(于莘)을 등용하였고, 주(紂)왕은 악래(惡來)를 등용하였고, 송나라는 당앙(唐鞅)을 등용하였으며, 제나라는 소진(蘇秦)을 등용하였고, 진나라는 조고(趙高)를 등용하였기에 세인이 저들의 나라는 망리라는 것을 알았다.
非其人而欲有功, 譬其若夏至之日而欲夜之長也, 射魚指天而欲發之當也.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닌데도 공을 세우려 하는 것은 비유컨대, 하지의 날에 밤이 길기를 바라는 것과 같고, 물고기를 쏜다는 것이 하늘을 향해 쏘려고 하는 것이 합당한가.
雖舜禹猶亦困, 而又況乎俗主哉.
비록, 순인군 우인군이라도 오히려 어려워 할 텐데 하물며 범속한 인주야 오죽하하리오
第2章 1
春秋之時, 天子微弱, 諸侯力政, 皆叛不朝.
춘추시대에는, 천자(天子)는 미약(微弱)하고, 제후들은 각각 자기의 정치에만 힘을 써서, 모두가 종주국을 배반하고, 조정에 조알하지 않았다.
眾暴寡, 強劫弱.
인중(人衆)이 많은 자는 민중(民衆)이 적은 자에게 폭력을 쓰고, 강한 자는 약한 자를 겁탈하였다.
南夷與北狄交侵, 中國之不絕若線.
남이(南夷), 북적(北狄)이 번갈아 침입해 들어오니, 중국은 명줄이 가느다란 실낱 같이 유지되고 있는 상태였다.
桓公於是用管仲, 鮑叔, 隰朋, 賓胥無, 甯戚, 三存亡國, 一繼絕世.
환공(桓公)은 이때에 관중(管仲)을 등용하고, 포숙(鮑叔), 습붕(隰朋), 빈서무(賓胥無), 영척(寧戚)을 임용하여, 망해가는 나라를 세번씩이나 보존하여 끊어질번한 세대를 이었다.
救中國, 攘戎狄. 卒脅荊蠻, 以尊周室, 霸諸侯.
중국을 구제하려, 융적(戎狄)을 좇아냈다. 마침내 형만(荊蠻)을 위협하여, 주실(周室)을 존중하고, 제후(諸侯)를 제패(制覇)하였다.
晉文公用咎犯, 先軫, 陽處父, 強中國, 敗強楚, 合諸侯, 朝天子, 以顯周室.
다음으로 진문공(晉文公)은 구범(咎犯)과 선진(先軫)과 양처보(陽處父)를 등용하여 중국을 강하게 하고, 강한 초나라를 물리치고, 제후를 한데 모아, 천자에게 조알하고, 주실을 햔양하였다.
楚莊王用孫叔敖, 司馬子反, 將軍子重, 征陳從鄭, 敗強晉, 無敵於天下.
초(楚)의 장왕(莊王)은 손숙오(孫叔敖)를 등용하고, 사마자반(司馬子反)과 그리고 장군 자중(子重)을 등용하여, 정(鄭)나라를 복속하고, 강한 진(晉)나라를 물리쳐,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었다.
秦穆公用百里子, 蹇叔子, 王子廖及由余, 據有雍州, 攘敗西戎.
진(秦) 목공(穆公)은 백리해(百里奚)를 등용하고, 건숙(蹇叔)과 왕자 요(廖)와 유여(由余)를 등용하여 옹주(雍州)를 점거하고, 서융(西戎)을 몰아냈다.
吳用延州萊季子, 并翼州, 揚威於雞父.
오(吳)나라는 연주래(延州萊)와 계자(季子)를 등용하여, 익주(翼州)를 아우르고, 계보(雞父)에서 그 위세를 떨쳤다.
鄭僖公富有千乘之國, 貴為諸侯, 治義不順人心, 而取弒於臣者, 不先得賢也.
정(鄭) 희공(僖公)은 천승(千乘)의 풍요함과, 제후로서 귀한 신분이었으나, 백성들의 마음을 따르지 않아, 신하에게 시해를 당하였으니, 이는 어진 이를 얻는 것을 먼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至簡公用子產, 裨諶, 世叔, 行人子羽, 賊臣除, 正臣進.
그러나 정나라는 간공(簡公)에 이르러서는 자산(子產)을 거용하고, 비심(裨諶)과 세숙(世叔) 그리고 행인(行人)인 자우(子羽)를 등용하였기에, 간신이 제거되고, 올바른 신하가 앞으로 나설 수 있게 되었다.
去強楚, 合中國, 國家安寧, 二十餘年, 無強楚之患.
강대한 초나라를 물리치고, 중국을 한데 모으니, 나라가 편안하기, 이십여 년 동안, 강대한 초나라에 대한 근심이 사라졌다.
故虞有宮之奇, 晉獻公為之終夜不寐; 楚有子玉得臣, 文公為之側席而坐.
그래서 우(虞)나라에 궁지기(宮之奇)가 있었기에, 진(晉) 헌공(獻公)은 밤잠을 편히 잘 수 없었으며, 초나라에 자옥득신(子玉得臣)이 있었기에, 진(晉) 문공(文公)은 늘 자리를 옆으로 하고 앉아 있게 되었다.
第2章 2
遠乎賢者之厭難折衝也.
현인을 싫어하여 멀리한다면, 적의 침입을 막기 어렵다.
夫宋襄公不用公子目夷之言, 大辱於楚.
대체로, 송(宋)나라 양공(襄公)은 공자(公子)인 목이(目夷)의 말대로 하지 않았기에 초나라에게 크게 모욕을 당했다.
曹不用僖負羈之諫, 敗死於戎.
조(曺)나라 인주는 희부기(僖負羈)의 간언을 듣지 않았기에, 융(戎) 땅에서 전쟁에 패배하고 죽었다.
故共惟五始之要.
그러므로 오직 다섯가지 시초가 되는 요강을 함께하여야 한다.
治亂之端, 在乎審己而任賢也.
치란의 시초는 잘 살피는 것이 나에게 있으니, 현사를 골라 임용하는데서 시작 된다.
國家之任賢而吉, 任不肖而凶.
국가는 현사를 등용하면 경사롭지만 불초한 사람을 임용하면 불길하다.
案往世而視己事, 其必然也, 如合符, 此為人君者, 不可以不慎也.
지난 세대의 상황을 돌아보고, 이미 지난 사건들을 살펴보면, 필연 그렇게 되는 것이 부절을 마주대는 것과 같이 들어 맞나니, 이래서 임금된 자는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國家惛亂而良臣見.
또 국가가 혼미하고 어지러울 때에는 양신(良臣)이 나타난다.
魯國大亂, 季友之賢見.
노(魯)나라에 대란이 일자, 계우(季友) 같은 어진이가 나타났다.
僖公即位而任季子, 魯國安寧, 外內無憂.
노(魯) 희공(僖公)이 즉위하면서 계자(季子)를 등용하니, 노나라는 안녕을 찾게 되었고, 내외에 근심이 없어졌다.
行政二十一年, 季子之卒後, 邾擊其南, 齊伐其北.
그는 이십일년이나 정치를 운영하였는데. 결국 계자가 죽으니, 주(邾)나라가 노나라의 남쪽을 공격해 오고, 제(齊)나라는 그 북쪽을 침범해 왔다.
魯不勝其患, 將乞師於楚以取全耳.
노나라는 그 근심을 감내치 못하여 결국 초나라에 도움을 빌어 겨우 사직을 보존하였다.
故傳曰: 患之起必自此始也.
그러므로 전(傳)에 이르기를, '근심이 바로 여기서 시작하여 일어날 것이다'고 하였다.
公子買不可使戍衛, 公子遂不聽君命而擅之晉, 內侵於臣下, 外困於兵亂, 弱之患也.
공자(公子) 매(買)는 위(衛)나라로 가서 진(晉)나라로부터 위(衛)나라를 지켰으나, 희공(僖公)에게 죽음을 당하였고, 공자 수(遂)는 진(晉)나라로 가서 군명을 듣지 않고 함부로 하여, 안에서는 신하의 침략을 받고, 밖으로는 병란에 시달리게 되었으니, 그 약함이 근심으로 변한 것이다.
僖公之性, 非前二十一年常賢, 而後乃漸變為不肖也.
희공(僖公)의 성품도, 그전 이십일년 동안 늘 그렇게 현명했던 것과는 달리, 그 뒤로는 점차 불초해 졌다.
此季子存之所益, 亡之所損也.
이는 계자(季子)가 살아 있을 때에는 이익을 보았으나, 그가 죽고 나서는 패손으로 흘렀기때문이다.
第2章 3
夫得賢失賢, 其損益之驗如此, 而人主忽於所用, 甚可疾痛也.
대저 현인을 얻고 잃는데서 오는 손익의 징험이 이와 같은데도 인주가 현인을 임용하는 일을 소홀히 함은 매우 통탄할 일이다 .
夫智不足以見賢, 無可奈何矣, 若智能見之, 而強不能決, 猶豫不用, 而大者死亡, 小者亂傾, 此甚可悲哀也.
대저 지혜가 부족해서 현인을 볼 줄 모른다면, 어쩔 수 없지만, 만약 지혜로 능히 어진 이를 알아볼 수 있으면서도, 결단을 못하고, 미루느라 등용하지 못하다가 크게 잃는 경우에는 그가 사망하는 것이며, 작게 잃는 겨우는 나라의 혼란과 경패일 것이니, 이것이 심히 슬픈 일이다.
以宋殤公不知孔父之賢乎.
安知孔父死, 己必死, 趨而救之.
趨而救之者, 是知其賢也.
송(宋)나라 상공(殤公)이 공보(孔父)가 현인인 줄을 몰랐겠는가? 공보(孔父)가 죽을 줄 어찌 알며, 자기도 반드시 죽는 다는 사실을 어찌 알았겠는가? 달려가서 구하였다면, 이 사람은 현인을 알아보았다 할 것이다.
以魯莊公不知季子之賢乎.
安知疾將死.
召季子而授之國政, 授之國政者, 是知其賢也.
또 노(魯)나라 장공(莊公)이 어찌 계자(季子)가 어진 사람인 줄을 몰랐겠는가? 그러나, 그가 빨리 죽을 줄을 어찌 알았으랴? 계자를 불러 국정을 맡겨야 했고, 그에게 국정을 맡겼더라면, 그는 현인을 알아 보았다고 할 것이다.
此二君知能見賢而皆不能用.
이 두 인군은 어진 이를 알아보는 데에는 능했으나 모두 능히 등용하지 못하였다.
故宋殤公以殺死, 魯莊公以賊嗣.
그러므로 송(宋) 상공(殤公)은 죽음을 당하였고, 노(魯) 장공(莊公)은 그 후사에게 제대로 물려주지 못했다.
使宋殤蚤任孔父, 魯莊素用季子, 乃將靖鄰國, 而況自存乎.
송(宋) 상공(殤公)으로 하여금 좀더 일찍 공보(孔父)를 임용하게 하고, 노(魯) 장공(莊公)으로 하여금 좀더 일찍 계자(季子)를 등용하게 하였더라면, 이에 이웃나라도 안정을 얻었을 것이니, 하물며 스스로 보전하는 것에 있어서이리오!
第3章
鄒子說梁王曰: 伊尹故有莘氏之媵臣也, 湯立以為三公, 天下之治太平.
추연(鄒衍)이 양왕(梁王)에게 말하기를, '이윤(伊尹)은 유신씨(有莘氏)의 잉신(媵臣; 여자가 십갈 때 데리고 가는 남자)이었는데, 탕왕(湯王)이 그를 세워 삼공(三公)으로 삼으니, 천하가 다스려져서 태평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管仲故成陰之狗盜也, 天下之庸夫也, 齊桓公得之以為仲父.
관중(管仲)은 성음(成陰)땅 사람으로, 개도둑질이나 하던, 천하에 용렬한 사내였는데,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그를 얻어 중부(仲父)로 삼았고,
百里奚道之於路, 傳賣五羊之皮, 秦穆公委之以政.
백리해(百里奚)는 길 거리에 떠돌던 사람으로서, 여기저기 전전하다가 다섯 마리 양가죽에 팔려 온 뒤에, 진(秦) 목공(穆公)이 그에게 정치를 맡겼습니다.
甯戚故將車人也, 叩轅行歌於康之衢, 桓公任以國.
영척(寧戚)은 장군이 된 사람인데, 남의 수레를 몰던 사람로서 거리를 다니며 노래나 불르던 천인이었는데, 제(齊) 환공(桓公)이 그에게 나라를 맡겼습니다.
司馬喜髕腳於宋, 而卒相中山.
范睢折脅拉齒於魏而後為應侯.
사마희(司馬喜)는 송(宋)나라에서 월형(발 뒷굼치 자름)을 받았지만, 마침내 중산(中山)의 재상이 되었고, 범저(范睢)는 위(魏)나라에서 가슴이 찢기고 이를 뽑히는 수난을 당했지만, 뒤에 진(秦)나라로 가서 응후(應侯)의 작위를 받았습니다.
太公望故老婦之出夫也, 朝歌之屠佐也, 棘津迎客之舍人也, 年七十而相周, 九十而封齊.
태공망(太公望)은 너무 가난하여 아내가 집을 나가 조가(朝歌)에서 푸줏간 일을 돕고, 자신은 극진(棘津)에서 여인숙의 머슴이었지만, 나이 칠십에 주(周)나라 재상이 되었고, 구십에는 제(齊)나라에 봉후 되었습니다.
故詩曰: 綿綿之葛, 在於曠野, 良工得之, 以為絺紵, 良工不得, 枯死於野.
그러므로 시(詩)에 이르기를, '이리저리 뻗은 칡넝쿨은, 들판에 가득하네. 솜씨 좋은 이 이를 가져다가, 멋진 베옷을 만드네. 솜씨 좋은 사람 만나지 못하면, 들에서 말라 죽는다네' 하였습니다.
此七士者, 不遇明君聖主, 幾行乞丐, 枯死於中野, 譬猶綿綿之葛矣.
이 일곱 사인(士人)이 명군성주(明君聖主)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저 걸식이나 하고 거지 노릇을 하다가, 들에서 말라 죽었을 것이니, 비유하건대 들에 널브러진 칡넝쿨 같았을 것입니다'고 하였다.
第4章
眉睫之徵, 接而形於色,
聲音之風, 感而動乎心.
눈을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것도, 가까이 접해 보면 그 형상이 드러나고, 바람결에 실려오는 소리도 듣느라면, 느낌이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甯戚擊牛角而商歌, 桓公聞而舉之.
영척(甯戚)이 쇠뿔로 된니팔을 불어 악곡을 연주하니, 환공(桓公)이 듣고 그를 등용하였다.
鮑龍跪石而登嵼, 孔子為之下車, 堯舜相見不違桑陰, 文王舉太公不以日久.
포룡(鮑龍)이 돌위에 꿇어앉아 등산(登嵼)이란 시를 읊는 것을 보고, 공자(孔子)가 수레에서 내려 그와 마주하였으며, 요(堯)와 순(舜)은 서로 만나 뽕나무 그늘을 두고 예가 어긋나지 않았고, 문왕(文王)이 태공(太公)을 기용할 적에, 오래 도어서야 그를 알아본 것이 아니다.
故賢聖之接也, 不待久而親,
能者之相見也, 不待試而知矣.
그러므로 성인이 사람을 접해서 오래 지난 후에에야 친해지는 것이 아니며, 능한 사람끼리 만날 때에는 시험해 보지 않고서도 서로 알게 된다.
故士之接也,
非必與之臨財分貨, 乃知其廉也,
非必與之犯難涉危, 乃知其勇也.
사인(士人)을 접견할 때에도, 반드시 재물을 나누는 것을 본 다음에야, 청렴한지를 아는 것이 아니며, 반드시 범난과 섭위를 부여하고 난 뒤에야 그의 용맹을 알게 되는 것도 아니다.
舉事決斷, 是以知其勇也.
取與有讓, 是以知其廉也.
일을 거행하면서 결단하면, 곧 그 용기를 알 수 있고, 취하고 사양하는 것으로써, 곧 그의 청렴을 알 수 있다.
故見虎之尾, 而知其大於貍也.
見象之牙, 而知其大於牛也.
그러므로 호랑이의 꼬리만 보고도 그것이 살쾡이보다 큰 것임 알 수 있고, 코끼리의 상아만 보고도 그것이 소보다 큰 짐승임을 안다.
一節見則百節知矣.
한 마디만 보고서도 나머지 백개의 마디를 다 안다.
由此觀之, 以所見可以占未發, 睹小節固足以知大體矣.
이로써 살펴 보건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아직 드러나지 않은 면을 점칠 수 있고, 작은 마디만 보고서도 진실로 족히 큰 몸 전체를 알 수가 있는 것이다.
第5章 1
禹以夏王, 桀以夏亡.
湯以殷王, 紂以殷亡.
우(禹)인군은 하(夏)나라를 근거로 왕이 되었지만, 걸(桀)은 그 큰 하나라를 가지고서도 망했다. 탕(湯)인군은 은(殷)나라를 바탕으로 왕이 되었지만, 주(紂)는 그 은나라를 가지고서도 망했다.
闔廬以吳戰勝無敵於天下, 而夫差以見禽於越.
합려(闔廬)는 오(吳)나라를 싸움에 이겨 천하에 적이 없었지만, 부차(夫差)에 이르러 도리어 월(越)나라에 사로잡혔다.
文公以晉國霸, 而厲公以見弒於匠麗之宮.
진(晉) 문공(文公)은 진(晉)나라를 패자(覇者)로 이루어 놓았지만, 여공(厲公)에 이르러 장려궁(匠麗宮)에서 시해를 당하였다.
威王以齊強於天下, 而湣王以弒死於廟梁.
제(齊)나라는 위왕 때 그 제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어 놓았지만, 민왕(愍王)에 이르러 사당의 대들보에 묶여 굶어 죽는 변을 당하였다.
穆公以秦顯名尊號, 而二世以劫於望夷.
진(秦) 목공(穆公)은 그 진(秦)나라의 이름을 들어내고, 존귀히 해놓았지만, 이세(二世)에 이르러 망이궁(望夷宮)에서 겁살(劫殺)당하였다.
其所以君王者同, 而功跡不等者, 所任異也.
이들이 모두 군주라는 이라는 이름은 같지만 그 공적이 같지 않은 것은, 신하에게 맡기는 바가 각기 달랐기 때문이다.
是故成王處襁褓而朝諸侯, 周公用事也.
그래서 성왕(成王)이 강보(襁褓)에 쌓인 채 제후의 조알을 받을 때에는, 주공(周公)이 일을 대신하여 아무 탈이 없었으나,
趙武靈王五十年而餓死於沙丘, 任李充故也.
조(趙)나라 영왕(靈王)은 쉰 살이나 되었으면서도 사구(沙丘)에서 굶어 죽은 것은 이태(李兌)를 임용했기 때문이다.
桓公得管仲, 九合諸侯, 一匡天下, 失管仲, 任豎刁易牙, 身死不葬, 為天下笑.
환공(桓公)은 관중(管仲)을 얻어, 아홉 번이나 제후들을 불러 회맹(會盟)을 하고 천하를 하나가 되게 하였지만, 관중을 잃자, 수조(豎刁)와 역아(易牙)를 임용하여, 자신이 죽은 후에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여,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第5章 2
一人之身, 榮辱俱施焉, 在所任也.
한 사람의 몸에 영욕(榮辱)이 함께 따르는 것은 임용된 사람에게 달린 것이다.
故魏有公子無忌, 削地復得.
趙任藺相如, 秦兵不敢出鄢陵.
任唐睢, 國獨特立.
그러므로, 위(魏)나라에는 공자 무기(無忌)가 임용되어 있었기에, 잃었던 땅을 되찾았고, 조(趙)나라는 인상여(藺相如)가 임용되어 있었기에, 진(秦)나라의 군사가 감히 언릉(鄢陵)을 넘지 못하였으며, 당저가 임용되어 있었기에 나라가 우뚝 섰다.
楚有申包胥, 而昭王反位.
齊有田單, 襄王得國.
초(楚)나라에는 신포서(申包胥)가 임용되어 있었기에 소왕(昭王)이 왕위에 다시 복귀할 수 있었고, 제(齊)나라에는 전단(田單)이 나섰기에 양왕(襄王)이 나라를 되찾았다.
由此觀之, 國無賢佐俊士, 而能以成功立名, 安危繼絕者, 未嘗有也.
이로써 살펴 보건대, 나라에 어진 보좌와 뛰어난 사인(士人)이 없고서는 능히 공명을 이루고, 이름을 세우고, 나라를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하고, 끊긴 후사를 이어나가는 사례는 아직없다.
故國不務大, 而務得民心.
佐不務多, 而務得賢俊.
그러므로 나라를 크게 하기에 힘쓸 것이 아니라 민심을 얻기에 힘쓸 것이며, 많은 보좌를 얻기에 힘쓸 것이 아니라 현인을 얻기에 힘쓸 것이다.
得民心者民往之, 有賢佐者士歸之.
백성의 마음을 얻으면 백성이 저절로 그리로 쏠리고, 현인의 보좌가 있으면 사인(士人)이 그에 의지한다.
文王請除炮烙之刑而殷民從.
문왕(文王)이 포락지형(炮烙之刑; 불에 달군 쇠로 당근질하는 형벌)을 없애자 은(殷)나라 백성들이 그에게 복종하였고,
湯去張網者之三面而夏民從.
탕왕(湯王)이 세 귀퉁이를 모두 그물로 쳐서 새를 잡는 관습을 없애자, 하(夏)나라의 백성들이 그에게 복종하였으며,
越王不隳舊冢而吳人服.
以其所為之順於民心也.
월왕(越王)이 옛 오(吳)나라 무덤을 파헤치지 않자 오나라 백성들이 그에게 복종하였다. 그 백성들의 마음을 따라서 다스렸기 때문이다.
故聲同則處異而相應, 德合則未見而相親.
그러므로 소리가 같으면 처한 곳이 달라도 서로 호응하며, 덕이 부합하면 서로 보지못하는 관계라도 친해진다.
賢者立於本朝, 則天下之豪, 相率而趨之矣.
현인이 조정에 있으면, 천하의 호걸들이 무리를 이끌고 달려 온다.
第5章 3
何以知其然也.
어떻게 그렇다는 것을 아는가?
曰: 管仲, 桓公之賊也, 鮑叔以為賢於己而進之為相, 七十言而說乃聽.
말하기를, '관중은, 환공(桓公)의 도적이었지만, 포숙(鮑叔)이 그가 자기보다 현철하다고 여겨 그를 추천하여 재상이 되게 하였는데 칠십여 귀절의 말로 환공을 설득해서 허락을 받았다.
遂使桓公除報讎之心而委國政焉.
그리하여 마침내 환공으로 하여금 관중에 대한 보복의 마음을 없애게 하고 나라를 맡기게 하였다.
桓公垂拱無事而朝諸侯, 鮑叔之力也.
환공은 팔짱을 끼고도 아무 일 없이 제후들로부터 조알을 받은 것은, 포숙(鮑叔)의 힘이었다.
管仲之所以能北走桓公無自危之心者, 同聲於鮑叔也.
관중(管仲)은 관중대로 북쪽으로 환공에게 달려가 스스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구게 된 것은 포숙(鮑叔)과 같은 주장을 하였기 때문이다.
紂殺王子比干, 箕子被髮而佯狂, 陳靈公殺泄冶而鄧元去陳.
은(殷)나라 주(紂)가 왕자 비간(比干)을 죽이자 기자(箕子)가 머리를 풀고 거짓으로 미친 체하였으며, 진(陳)나라 영공(靈公)이 설야(泄冶)를 죽이자 등원(鄧元)이 진(陳)나라를 떠났다.
自是之後, 殷兼於周, 陳亡於楚, 以其殺比干, 泄冶而失箕子與鄧元也.
이로부터 은(殷)나라는 주(周)나라에 명합(幷合)되었고, 진(陳)나라는 초(楚)나라에게 망하였으니, 이는 비간(比干)과 설야(泄冶)를 죽임으로써, 기자(箕子)와 등원(鄧元)을 잃었기 때문이다.
燕昭王得郭隗, 而鄒衍, 樂毅以齊趙至, 蘇子屈景以周楚至.
연(燕)나라 소왕(昭王)이 곽외(郭隗)를 잘 모시자, 추연(鄒衍)과 악의(樂毅)가 각각 제(齊)와 조(趙)에서 달려 왔고, 소진(蘇秦)과 굴경(景景)이 주(周)와 초(楚)에서 찾아 왔다.
於是舉兵而攻齊, 棲閔王於莒.
이에 군대를 일으켜 제(齊)를 공격하여, 제(齊)나라 민왕(閔王)을 거(莒)로 몰아 넣었다.
燕校地計眾, 非與齊均也, 然所以能信意至於此者, 由得士也.
연(燕)나라는 그 땅이나 백성들의 수효로 보아, 제(齊)나라에 대등하지 못했지만, 능히 그 뜻을 얻는데 이르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사인(士人)를 얻었기 때문이다.
故無常安之國, 無恒治之民.
그러므로 항상 편안한 나라는 없으며, 항상 다스려지는 백성도 없다.
得賢者則安昌, 失之者則危亡.
현인을 얻으면 나라가 편안하고 창성하지만, 현인을 잃으면 위험과 멸망이 닦쳐 온다.
自古及今, 未有不然者也.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렇지 않은 경우는 일직이 없었다.
明鏡所以昭形也, 往古所以知今也.
맑은 거울이 형체를 밝게 비추듯이, 지나간 옛날의 일은 오늘을 알려 주는 거울이다.
夫知惡往古之所以危亡, 而不務襲跡於其所以安昌, 則未有異乎卻走而求逮前人也.
무릇 옛날 망한 원인을 알아 보기를 싫어하고, 옛날의 창성하였던 족적을 답습하기를 힘쓰지 않으면, 이는 도리어 뒷걸음질 하면서 앞사람을 따라 잡겠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太公知之, 故舉微子之後而封比干之墓.
태공(太公)은 이것을 알았기에 그러므로 미자(微子)의 후손을 등용하였고, 비간(比干)의 묘를 봉하였다.
夫聖人之於死尚如是其厚也, 況當世而生存者乎. 則其弗失可識矣。
무릇, 성인은 죽은 자에게 까지 후덕을 베푸는데, 하물며, 당세(當世)에 생존해 있는 사람에게이리오! 그러니, 옛날의 일을 잃지 않는 것을 식견이라이라 할 수 있다.
第6章
齊景公問於孔子曰: 秦穆公其國小, 處僻而霸, 何也.
제(齊)나라 경공(景公)이 공자(孔子)에게 묻기를, '진(秦) 목공(穆公)은 그 나라가 작고, 땅이 후미진 자리에 처해 있으면서도, 패자가 되었습니다. 어찌 된 것입니까?'고 물었다.
對曰: 其國小而志大, 雖處僻而其政中, 其舉果, 其謀和, 其令不偷, 親舉五羖大夫於係縲之中, 與之語三日而授之政, 以此取之, 雖王可也, 霸則小矣.
공자가 대답하기를, '그 나라는 작았으나 뜻이 컸기 때문에, 비록 구석진 자리에 처해 있었지만 그 정치는 중정하였고, 그 거사는 과감하였으며, 그 모책이 조화로왔고, 그 법령을 훔치지 못하게 하였으며, 친히 죄인으로 묶여 있던, 오고대부(五羖大夫)를 임용하여, 그들과 더불어 사흘 동안이나 의견을 나누고, 그에게 정치를 맡겼습니다. 이 때문에 패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니, 비록 왕업(王業)이라도 이룰 수가 있었는데, 패업(覇業)에 그친 것은 오히려 작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고 하였다.
第7章 1
或曰: 將謂桓公仁義乎.
殺兄而立, 非仁義也.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장차 환공을 인의(仁義)의 사람이라고 하겠는가? 형을 죽이고 인군의 자리에 앉았으니, 인의의 사람이 아니다.
將謂桓公恭儉乎.
與婦人同輿, 馳於邑中, 非恭儉也.
장차 환공을 공검한 사람이라 하겠는가? 부인들을 거여(車輿)를 태우고 고을 안을 달렸으니, 공검한 사람이 아니다.
將謂桓公清潔乎.
閨門之內, 無可嫁者, 非清潔也.
장차 환공을 청결한 사람이라 하겠는가? 규문 안에는 시집가지 않은 여자들 뿐이었으니, 청결한 사함이 아니다.
此三者亡國失君之行也.
이 세가지는 나라를 망치고 인군의 자질을 잃는 짓이다.
然而桓公兼有之.
그러나 환공은 겸하여 지닌 것이 있다.
以得管仲隰朋, 九合諸侯, 一匡天下, 畢朝周室, 為五霸長, 以其得賢佐也.
관중, 습붕 같은 현인을 얻어 등용 하였으며, 제후를 아홉 번이나 불러 회동하여 크게 천하를 바로잡아 주실에 조알하는 오패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이는 어진 보좌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失管仲隰朋, 任豎刁易牙, 身死不葬, 蟲流出戶.
관중, 습붕을 잃고나서, 수조와 역아를 임용하였기에 몸이 죽자 장의를 행하지 않아 벌레가 창호 밖에 기어나왔다고 한다.
一人之身, 榮辱俱施者, 何者.
其所任異也.
이렇듯 한 몸에 영욕을 함께 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임용한 사람이 달르기 때문이다.
由此觀之, 則任佐急矣.
이를 연유하여 본다면, 보좌를 임용하는 일이야말로 긴급한 것이라 하겠다.
第7章 2
周公旦白屋之士, 所下者七十人, 而天下之士皆至.
주공(周公), 단(旦)은 가난한 사인(士人)들에 대하여 자기를 나추어 모신 사람이 칠십인나 되었는데, 천하의 많은 사인들이 모여들었다.
晏子所與同衣食者百人, 而天下之士亦至.
안자(晏子)는 입는 옷과 음식을 동일하게 한사람이 백 사람이나 되었는데, 천하의 사인들이 또한 모여 들었다.
仲尼修道行, 理文章, 而天下之士亦至矣.
중니(仲尼)는 도를 수양하고 문장을 조리 있게 하였는데 천하의 사인들이 또한 찾아들었다.
伯牙子鼓琴, 鍾子期聽之, 方鼓而志在太山, 鍾子期曰: 善哉乎鼓琴. 巍巍乎若太山.
백아자(伯牙子)가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鍾子期가 소리를 알아들었는데, 방금 거문고를 타되 그 뜻을 태산에 두면, 종자기가 말하기를, '훌륭하도다. 거문고 를 타는 솜씨여! 높고 높도다! 마치 태산과 같도다'고 하였다.
少選之間, 而志在流水, 鍾子期復曰: 善哉乎鼓琴. 湯湯乎若流水.
잠깐 선곡 후에 백아가 뜻을 흐르는 물에 두고 타면, 종자기가 또 말하기를, '훌륭하도다, 음률이여, 철렁 철렁 넘치는 모양이 물 흐는 것 같도다'고 하였다.
鍾子期死, 伯牙破琴絕絃, 終身不復鼓琴. 以為世無足為鼓琴者, 非獨鼓琴若此也.
종자기가 죽으니, 백아는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끊고 종신토록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 세상에 족히 거문고를 연주하여 들려줄만한 사람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賢者亦然. 雖有賢者而無以接之, 賢者奚由盡忠哉.
나라에 현인도 역시 그러하다. 비록 현철이 있더라도 접대하는 이가 없다면, 현철은 무엇을 연유하여 충성을 하겠는가.
驥不自至千里者. 待伯樂而後至也.
천리마는 스스로 철리를 달리지 못한다. 백락(伯樂)을 기디다린 후에야 달려 천리에 이를 것이다.
第8章 1
周威公問於甯子曰: 取士有道乎.
주(周)나라 위공(威公)이 영자(甯子)에게 말하기를, '현사(賢士)를 초빙하는 방도가 있습니까?'고 물었다.
對曰: 有. 窮者達之, 亡者存之, 廢者起之, 四方之士, 則四面而至矣.
영자가 대답하기를, '있습니다. 궁색한 자는 통달시켜 주고 죽을 고비에 있는 자를 살려주고, 피폐한자를 일으켜 준다면, 사방의 현사가 사방에서 찾아 올 것입니다.
窮者不達, 亡者不存, 廢者不起, 四方之士, 則四面而畔矣.
궁색한 자를 통달시켜 주지 못하고, 죽을 고비에 있는 자를 살려주지 못하고, 피폐한 자를 일으켜 주지 못한다면, 사방의 현사는 사면에서 반역할 것입니다.
夫城固不能自守, 兵利不能自保, 得士而失之, 必有其間.
대체로 성이 견고하면 스스로 능히 지킬 수 없고, 병기가 날카로우면 능히 스스로 보위하지 못하나니, 현사를 얻었더라도 잃는 것은 반드시 이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夫士存則君尊, 士亡則君卑.
대저 현사가 존재하면 인주가 존중되고, 현사가 없으면 인주가 비하되는 것입니다'라 하였다.
第8章 2
周武公曰: 士壹至如此乎.
주무공(周武公)이 말하기를, '사인(士人) 한 사람이 이와같은 상황에 이르게 합니까?'고 물었다.
對曰: 君不聞夫楚平王有士, 曰楚傒胥丘, 負客.
대답하여 말하기를, '주군께서 듣지 못했습니까? 저 초나라 평왕(平王)에게 사인이 있었는데, 초혜(楚傒), 서구(胥丘), 부객(負客)이란 사람들입니다.
王將殺之, 出亡之晉, 晉人用之. 是為城濮之戰.
왕이 장차 죽이려고 하자, 초나라를 버리고 나가 진(晉)나라로 도망하였는데, 진나라에서는 이들을 등용했습니다. 이래서 성복의 전쟁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又有士曰苗賁皇, 王將殺之, 出亡走晉. 晉人用之, 是為鄢陵之戰.
또 사인 묘분황(苗賁皇)이란 사람을 왕이 죽이려하자 초나라를 나가 진(晉)나라로 도망하여 달아났습니다. 진(晉)에서는 이를 등용하였는데, 이래서 언능(鄢陵)의 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又有士曰上解于, 王將殺之, 出亡走晉. 晉人用之, 是為兩堂之戰.
또 사인 상해우(上解于)란 사람을 왕이 죽이려 하자, 나가서 진(晉)으로 도앙갔는데, 진에서는 이 사람을 등용했습니다. 이래서 양당(兩堂)의 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又有士曰伍子胥, 王殺其父兄, 出亡走吳. 闔閭用之, 於是興師而襲郢.
또 사인 오자서란 사람이 있었는데, 왕이 그 아비를 죽이자, 오나라로 도망 하였습니다. 오나라의 합려(闔閭)가 이를 등용하였는데, 이 때에 군사를 일으켜 영(郢)을 습격하였습니다.
故楚之大得罪於梁鄭宋衛之君, 猶未遽至于此也, 此四得罪於其士, 三暴其民骨, 一亡其國.
그러므로, 초나라는 양(梁), 정(鄭), 송(宋), 위(衛)의 인군들에게 크게 죄를 지었다 하드라도 오히려 급격히 이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인데, 네번씩이나 사인에게 죄를 지어 세번이나 백성의 해골을 햇빛 아래 내둥글려 단번에 나라를 망쳤습니다.
由是觀之, 士存則國存, 士亡則國亡.
이를 연유하여 보건대, 사인이 있어야 나라도 있고, 사인이 망하면 나라도 망하는 것입니다.
子胥怒而亡之, 申包胥怒而存之, 士胡可無貴乎.
오자서가 성을 내자, 초나라가 망하였지만, 신포서가 성을 내자, 초나라가 살아 났으니, 사인(士人)이 어찌 존재가치가 희귀(希貴)함이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고 하였다.
第9章
哀公問於孔子曰: 人若何而可取也.
애공이 공자에게 말하기를, '사람이 어떤 사람이래야 들어 쓸만하다고 하는 것입니까?'고 물었다.
孔子對曰: 毋取拑者, 無取健者, 毋取口銳者.
공자는 대답하였다. '말없는자를 뽑아 쓰지 말 것이며, 웅건한 사람을 뽑아 쓰지 말며, 말 잘하는 사람을 뽑아 쓰지 말아야 합니다.'
哀公曰: 何謂也.
애공이 다시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孔子曰: 拑者大給利不可盡用;健者必欲兼人, 不可以為法也;口銳者多誕而寡信, 後恐不驗也.
공자가 대답하기를, '입다물고 말없는 자를 쓰지 말 것이며, 거만하여 남을 어렵게 하는 자는 남의 일까지 겸하고 싶어하나니, 법에 비추어 불가하며, 말 잘하는 자는 거짓이 많아 믿업지 못하며, 뒤에가서 보면 증혐되지 않을 것이 두렵습니다.
夫弓矢和調而後求其中焉, 馬愨愿順, 然後求其良材焉.
대저 활과 화살은 서로 조화가 된 후에야 명중을 기대할 수 있고, 말은 조심성 있제 길들여져 순하게 한 뒤에야 좋은 말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人必忠信重厚, 然後求其知能焉.
사람도 반드시 성실하고, 신실하고, 진중하고, 후덕해진 뒤에야 그 지혜와 능력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今有人不忠信重厚而多智能, 如此人者, 譬猶豺狼與, 不可以身近也.
지금 사람이 충신(忠信), 중후(重厚)하지도 못한데 지헤 능력이 많다고 하더라도, 이와같은 사람은 비유하면 시랑(豺狼)과 같아서 몸을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是故先其仁義之誠者, 然後親之, 於是有知能者, 然後任之.
이러므로, 먼저 그 사람의 인의(仁義)에 대한 성실성을 확인한 후에 친근히 하고 지능이 있는 지를 확인한 후에야 임용합니다.
故曰, 親仁而使能.
그러므로, 말하기를, '인(仁)한 이를 친근히 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시킨다'고 하는 것입니다.
夫取人之術也. 觀其言而察其行.
이것이 사람을 취하는 방도입니다. 그 말하는 것을 관찰하고 그 행실을 살펴봅니다.
夫言者所以抒其匈而發其情者也, 能行之士必能言之.
말이란, 가슴 속을 퍼내는 것이기에 정서를 나타내는 것이니, 실행에 능숙한 인사(人士)는 말도 능숙합니다.
是故先觀其言而揆其行.
이러므로 먼저 말하는 것을 살펴보고 그 행실을 헤아립니다.
夫以言揆其行.
말로써 그 행실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雖有姦軌之人, 無以逃其情矣.
비록 간사한 궤도에 듦이 있는 사람이라도 그 정(情; 마음)을 피하지 못합니다'고 하였다.
哀公曰: 善.
애공이 말하기를, '훌륭합니다'고 하였다.
第10章
周公攝天子位七年, 布衣之士, 執贄所師見者十二人, 窮巷白屋所見者四十九人, 時進善者百人, 教士者千人, 官朝者萬人.
주공이 천자를 섭정한지 칠년, 예물(페백)을 가지고 가서 스승의 예로 만나보는 사인(士人)이 열두 사람이요, 궁벽한 마을에 가난한 사인들을 만나기를, 열 아홉 사람이요, 때로 훌륭하다 하여 진급시킨 사인이 백 사람이요, 남을 가르칠만한 사인이 천 사람이요, 관리로서 조회에 참석하는 사인이 만사람이었다.
當此之時, 誠使周公驕而且吝, 則天下賢士至者寡矣.
이런 시절을 맞아 진실로 주공(周公)이, 교만하였거나 인색하였다면, 천하의 현사(賢士)가 찾아오는 수효는 적었을 것이다.
苟有至者, 則必貪而尸祿者也.
그런데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자라면 반드시 무언가를 탐착하고, 녹이나 축내는 사람들일 것이다.
尸祿之臣, 不能存君矣.
제 몫을 하지 않고 봉록이나 타먹는 신하는 능히 인군을 보존 할 수 없다.
第11章
齊桓公設庭燎. 為士之欲造見者, 期年而士不至.
제(齊)나라 환공(桓公)은 마당에 햇불이 타는 화로를 설치하였다. 사인(士人)들이 밤에라도 찾아오면 만나보려 한 것이었지만, 일년 제돌이 되도록 사인은 오지 않았다.
於是東野鄙人有以九九之術見者.
이때 동야에 산다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이 구구의 법술을 지녔다고 와서 뵙기를 청했다.
桓公曰: 九九何足以見乎.
환공이 말하기를, '구구의 술법이 무엇인지 볼수가 있겠는가?'고 묻자,
鄙人對曰: 臣非以九九為足以見也.
비인이 대답하기를, '신은 구구의 산술로 주군을 뵙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臣聞主君設庭燎以待士, 期年而士不至.
신이 듣건대, 주군께서 마당에 횃불로 화로를 설치하고 사인을 기다렸으나 기년이 되도록 사인이 오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夫士之所以不至者, 君天下賢君也, 四方之士, 皆自以論而不及君, 故不至也.
대저 사인이 오지 않는 까닭은 주군께서 천하의 현철하신 인군이신지라, 사방의 사인들이 모두 스스로 따져보기를 우리는 인군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여겨 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夫九九薄能耳, 而君猶禮之, 況賢於九九乎.
무릇 구구 산술법은 얇고 가볍고 하천한 기능에 불과한데도 주군께서 오히려 예경해 주시는데, 하물며 구구법 보다 현철한 사인에 대해서야 어떻겠습니까?
夫太山不辭壤石, 江海不逆小流, 所以成大也.
무릇 저 태산은 흙과 돌을 사양하지 않고, 강과 바다는 작은 개천 물일망정 거부하지 않기에 크게 이루는 것입니다.
詩云, 先民有言, 詢于芻蕘. 言博謀也.
시경에 이르기를, '선민이 말하기를, '꼴베는 아이에게도 묻는다'고 한것은 모책을 널리 구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고 하자,
桓公曰: 善. 乃因禮之.
환공이 말하기를, '훌륭한 말이외다' 하고 인하여 예를 갖추었다.
期月四方之士, 相攜而並至.
한달 쯤 되자 사방의 사인들이 손을 잡고 나란히 모여들었다.
詩曰: 自堂徂基, 自羊徂牛. 言以內及外, 以小及大也.
시경에 말하기를, '당 아래에서 주추돌 놓인데로 가고, 양(羊)으로 부터 소(牛)있는데로 간다'고 한 것은 안엣 것을 밖으로 미치게 하고, 작은 것을 큰 것에 미치게 하는 것을 이른다.
第12章
齊景公伐宋, 至於岐隄之上, 登高以望, 太息而歎曰: 昔我先君桓公, 長轂八百乘以霸諸侯, 今我長轂三千乘, 而不敢久處於此者, 豈其無管仲歟.
제齊나라 경공(景公)이 송(宋)나라를 정벌 할 때 기제(岐隄) 위에 이르러 높이 올라 멀리 바라보며 큰 숨을 쉬고, 탄식하여 말하기를, '엣적에 우리 선군(先君; 桓公)은 장곡 팔백승으로 제후를 제패하셨는데, 지금 나는 감히 오래도록 이런 경지에 처하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 관중(管仲)이 없기 때문이리오'라 하였다.
弦章對曰: 臣聞之, 水廣則魚大, 君明則臣忠. 昔有桓公, 故有管仲, 今桓公在此, 則車下之臣盡管仲也.
현장(弦章)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신이 듣건대, 물이 넓으면 물고기가 크고, 인군이 명철하면, 신하가 충직하다고 합니다. 옛적에 환공은 그러므로 관중을 수하에 두었던 것인데, 지금도 환공이 여기 계신다면 수레 아래의 신하들이 모두 관중일 것입니다'고 하였다.
第13章
趙簡子游於河而樂之, 歎曰: 安得賢士而與處焉.
조(趙)나라 간자(簡子)가 황하에서 노닐며 즐거워 하다가 탄식해 말하기를, '어찌하면 현사(賢士)를 얻어서 함께 즐길 수 있을까?고 하자,
舟人古乘跪而對曰: 夫珠玉無足, 去此數千里而所以能來者, 人好之也;今士有足而不來者, 此是吾君不好之乎.
뱃사람인 고승(古乘)이 무릎을 꿇고 대답하여 말하기를, '대저, 주옥은 발이 없지만 멀리 떨어진 것이 천리 밖이라도 찾아오나니 사람이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인이 발을 지니고서도 오지 않는 것은 우리 주군께서 좋아하시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고 하였다.
趙簡子曰: 吾門左右客千人, 朝食不足, 暮收市征, 暮食不足, 朝收市征, 吾尚可謂不好士乎.
조간자가 말하기를, '나의 대문 안에 식객이 천 사람이나 된다. 아침 식사거리가 부족하면, 전날 저녘에 시장에 가서 마련해 오고, 저녁 식사 거리가 부족하면 당일 아침에 시장에 가서 마련해 온다. 내가 이래도 사인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겠는가?'고 말하니,
舟人古乘對曰: 鴻鵠高飛遠翔. 其所恃者六翮也. 背上之毛, 腹下之毳, 無尺寸之數, 去之滿把, 飛不能為之益卑; 益之滿把, 飛不能為之益高. 不知門下左右客千人者, 有六翮之用乎. 將盡毛毳也.
뱃사람 고승이 말하기를, '홍곡은 높이 날라 멀리 갑니다. 그가 믿는 것은 양쪽 날개쭉지 밑에 있는 여섯 개의 근골인 육핵입니다. 등 위의 터럭 배에 있는 잔털 자로잴 수 없이 많은 것을 한주먹 잡아 뽑아 버린다고 해서 나르기를 더 낮게 나르게 할 수 없고, 한주먹 더해준다 하여 나르기를 더 높이 날게 할수는 없습니다. 문 안에 좌우 식객 천이나 되는 사람들이 육핵이 있어서 쓸만한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몽땅 등위의 터럭이나 배를 감싸고 있는 잔 털이 아니겠습니까?'고 하였다.
第14章
齊宣王坐, 淳于髡侍, 宣王曰: 先生論寡人何好.
제(齊)나라 선왕(宣王)은 앉아 있고, 순우곤(淳于髡)이 모시고 있었는데, 선왕이 말하기를, '선생이 과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따져보시오' 하였다.
淳于髡曰: 古者所好四, 而王所好三焉.
순우곤이 말하기를, '옛 사람이 좋아한 것은 네가지인데 주군께서 좋아하는 것은 세가지 입니다'고 하였다.
宣王曰: 古者所好, 何與寡人所好.
선왕이 말하기를, '옛 사람이 좋아한 것과 과인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오?'라 묻자,
淳于髡曰:
古者好馬, 王亦好馬.
古者好味, 王亦好味.
古者好色, 王亦好色.
古者好士, 王獨不好士.
순우곤이 말하기를, '옛 사람은 말을 좋아 하였는데, 주군께서도 말을 좋아하십니다. 옛 사람은 맛을 좋아하였는데 주군께서도 또한 맛을 좋아하십니다. 옛 사람은 색을 좋아 하였는데 주군께서도 또한 색을 좋아하십니다. 옛 사람은 사인을 좋아 하였는데, 주꾼께서는 홀로 사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고 하였다.
宣王曰: 國無士耳, 有則寡人亦說之矣.
선왕이 말하기를, '나라에 사인이 없구료, 있다면 과인 또한 기뻐할 것이오'라 하였다.
淳于髡曰: 古者驊騮騏驥, 今無有, 王選於眾, 王好馬矣.
순우곤이 말하기를, '옛 사람은 화류, 기기같은 명마를 좋아하였습니다. 지금은 없는데도 주군께서는 없는 중에도 많은 말 중에서 선택하여 가지고 좋아 하십니다.
古者有豹象之胎, 今無有, 王選于眾, 王好味矣.
옛 사람은 표범 코끼리의 태반의 맛을 좋아 하였는데, 지금은 없지만 없는 중에도 많은 무리 가운데서 선택하여 맛을 좋아하십니다.
古者有毛廧西施, 今無有, 王選於眾, 王好色矣.
옛날에는 모장이나, 서시같은 미인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데도 없는 중에도 많은 무리 중에서 선발하여 왕께서 색을 좋아하십니다.
王必將待堯舜禹湯之士而後好之, 則禹湯之士亦不好王矣. 宣王嘿然無以應.
주군께서 장차 요(堯), 순(舜)과 우(禹), 탕(湯)을 섬기던 사인을 기다린 후에야 사인을 좋아 하신다면, 우, 탕을 섬기던 사인들은 우리 주군을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고 말하자 선왕은 묵묵히 응답하지 못하였다.
第15章
衛君問於田讓曰: 寡人封侯盡千里之地, 賞賜盡御府繒帛而士不至, 何也.
위(衛)나라 인군이 전양(田讓)에게 물어 말하기를, '과인이 제후를 봉록하느라 천리의 땅을, 소진하고 상을 내리느라, 대궐 안의 비단이 바닥이 났는데도 사인이 이르지 않음은 무슨 까닭인가?'고 물었다.
田讓對曰:
君之賞賜, 不可以功及也.
君之誅罰, 不可以理避也.
猶舉杖而呼狗, 張弓而祝雞矣.
雖有香餌而不能致者, 害之必也.
전양(田讓)이 대답하기를, '주군께서 상을 하사하시는 것은 공을 이룬 것으로는 미치지 못합니다. 주군께서 죽이는 벌을 내리시는 것은 이치로는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막대기를 들고 개를 부르는 것과 같고, 활를 고누며 닭을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비록, 향기나는 미끼가 있을지라도 능히 이르지 못하는 것은 해침을 당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고 하였다
第16章
宗衛相齊, 遇逐罷歸舍, 召門尉田饒等二十有七而問焉, 曰: 士大夫誰能與我赴諸侯者乎.
종위(宗衛)가 제나라 재상으로 있었는데 축출을 당하여 재상 자리를 그만 두고 집으로 돌아와서 문위, 전요 등 스물 일곱 사람을 불러 묻기를, '사대부 중에 누가 능히 나와 함께 제후를 찾아 가겠는가?'고 물었다.
田饒等皆伏而不對.
전경등이 모두 업드리고, 대답하지 않았다.
宗衛曰: 何士大夫之易得而難用也.
종위가 말하기를, '어찌 사대부는 쉽게 얻으면서도 등용되기는 어려운가?'고 묻자,
饒對曰: 非士大夫之難用也. 是君不能用也.
전요가 대답하기를, '사대부의 등용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이는 그대가 능히 등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고 하였다.
宗衛曰: 不能用士大夫何若.
종위가 말하기를, '능히 등용하지 못한다니 무슨 뜻인가?'고 묻자,
田饒對曰: 廚中有臭肉, 則門下無死士矣.
전경이 말하기를, '부엌에 냄새나는 썩은 고기가 있으면, 그 문하에는 죽는 사인(士人)이 없습니다.
今夫三升之稷不足於士, 而君雁鶩有餘粟.
지금 저 서되의 식량은 사인이 먹고 살기에 부족한데, 그대가 기르는 오리 기러기가 먹는 곡식은 남아돕니다.
紈素綺繡靡麗, 堂楯從風雨弊, 而士曾不得以緣衣.
흰 비단, 수놓은 비단은 난간에 곱게 휘날리고, 집 난간에 걸려 비바람에 퇴색하고 있는데, 사인은 일직이 꿰매 입을 옷도 얻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果園梨粟, 後宮婦人摭以相擿, 而士曾不得一嘗.
과원에는 후궁 부인들이 배나 밤등을 따가지고 서로 던지며 노는 놀잇감인데도, 사인은 일직이 한 번도 맛보지 합니다.
且夫財者, 君之所輕也, 死者士之所重也.
또 재물에 대해서는 그대에겐 가벼운 것이지만, 사인에겐 그것이 귀중한 것입니다.
君不能用所輕之財, 而欲使士致所重之死, 豈不難乎哉.
군은 가벼이 여기는 재물을 능히 쓰지 못하면서 사인으로 하여금 소중히 여기는 죽음에 이르게 하려 하니, 어찌 어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라 하였다.
於是宗衛面有慚色, 逡巡避席而謝曰: 此衛之過也.
이때에 종위의 얼굴에 부끄러워 하는 기색이 돌았다. 종위는 머뭇거리다가 자리를 피해 앉으며 사죄하여 말하기를, '이것은 종위의 잘못이오'라 하였다.
第17章
魯哀公問於孔子曰: 當今之時, 君子誰賢.
노(魯)나라 애공(哀公)이 공자에게 물어 말하기를, '요즘의 인군 중에 누가 현철하다고 보십니까?'고 물었다.
對曰: 衛靈公.
공자가 말하기를, '위(衛)나라 영공(靈公)입니다'고 하였다.
公曰: 吾聞之, 其閨門之內, 姑姐妹無別.
애공이 말하기를, '제가 듣기로는 그 규문 안에는 고모, 시누이, 누이의 구별이 없다고 합니다'고 하니,
對曰: 臣觀於朝廷, 未觀於堂陛之間也.
공자 대답하기를, '신은 조정에서 하는 일만 보았지, 내전의 일은 보지 못했습니다'고 하였다.
靈公之弟曰: 公子渠牟, 其知足以治千乘之國, 其信足以守之, 而靈公愛之.
영공의 아우가 말하기를, '공자 거모(渠牟)는 그 족히 천승의 나라를 다스릴만 하고, 그 진실로 족히 나라를 지킬만한 재목임을 알기 때문에 영공이 그를 총애한다고 합니다.
又有士曰王材, 國有賢人, 必進而任之, 無不達也.
또 어는 사인이 말하기를, '그는 왕의 재목이기에 나라에 현인이 있으면 반드시 밀어 올려 임용하였는데, 현달하지 못한 이가 없다'고 합니다.
不能達, 退而與分其祿, 而靈公尊之.
능히 현달하지 못하면 물러나게 하고, 자기의 봉록을 나누어 줄만큼 영공이 그를 존중하였다고 합니다.
又有士曰慶足, 國有大事, 則進而治之, 無不濟也, 而靈公說之.
또 사인이 있어서 경족이라는 사람은 나라에 대사가 있으면, 나아가서 다스려 구제하지 못하는 것이 없었기에, 영공이 기뻐하였다고 합니다.
史鰌去衛, 靈公邸舍三月, 琴瑟不御, 待史鰌之入也而後入, 臣是以知其賢也.
서추(史鰌)가 위나라를 떠나자, 영공은 사저에 내려가서 석달을 금슬(현악기 연주)을 행하지 못하게 하고, 사추가 들어 오기를 기다린 뒤에야 들어 왔다고 하니, 신이 이때문에 그가 현철한 군주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고 하였다.
第18章
介子推行年十五而相荊.
개자추(介子推)는 행년 십오세에 형(荊)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仲尼聞之, 使人往視.
중니(仲尼)가 그 소식을 듣고 사람을 시켜 가서 어떻게 하는지를 살펴 보게 하였다.
還曰: 廊下有二十五俊士, 堂上有二十五老人.
사람이 돌아와서 말하기를, '낭하에 스물 다섯 사람의 뛰어난 준사가 있었으며, 당 위에는 스물 다섯 사람의 노인이 있었습니다'고 하자,
仲尼曰: 合二十五人之智, 智於湯武, 并二十五人之力, 力於彭祖. 以治天下, 其固免矣乎.
중니가 말하기를, '스물다섯 사람의 지혜를 합치면 탕(湯), 무(武) 보다 지헤롭고, 스물 다섯 사람의 힘을 아우른다면 힘이 팽조(彭祖)보다 셀 것이다. 이로써 천하를 다스린다면 진실로 어려움을 면할 것이다'고 하였다.
第19章
孔子閒居, 喟然而歎曰: 銅鞮伯華而無死, 天下其有定矣.
공자가 한가로이 지내며 한숨을 쉬면서 탄식하기를, '동제(銅鞮), 백화(伯華)가 죽지만 않았더라면, 천하는 안정되었을 것이다'고 하였다.
子路曰: 願聞其為人也何若.
자로(子路)가 여쭙기를, '원컨대, 그 사람됨이 어떻했는지 듣고 싶습니다'고 하였다.
孔子曰: 其幼也敏而好學, 其壯也有勇而不屈, 其老也有道而能以下人.
공자가 말하기를, '그가 어렸을 적에는 민첩하고 배움을 좋아하였으며, 그가 장년이 되어서는 용기가 있어서 불의에 굽히지 않았으며, 그가 노년이 되어서는 도를 가지고 남의 아래가 될 수 있었다'고 하였다.
子路曰: 其幼也敏而好學則可, 其壯也有勇而不屈則可;夫有道又誰下哉.
자로가 묻기를, '그가 어렸을 때 민첩하고 배움을 좋아하였다면 옳습니다. 그가 장년이 되어 용기가 있어서 불의에 굽히지 않은 것도 옳습니다만, 대체 도를 가지고 또, 누구의 아래가 되는 것입니까?'고 물으니,
孔子曰: 由不知也. 吾聞之, 以眾攻寡而無不消也.
공자 말하기를, '유(由)는 알지 못하는구나. 내가 듣기로는 수효가 많다는 힘만 믿고, 수효가 적은 쪽을 공격하고서 쇠멸하지 않은 나라가 없다고 한다.
以貴下賤, 無不得也.
고귀한 신분으로써 미천한 신분의 아래가 된다면 얻지 못할 것이 없다.
昔在周公旦制天下之政而下士七十人, 豈無道哉. 欲得士之故也.
엣적에 주공단은 천하의 정사를 다스리면서도 사인 일흔 사람의 아래에 있었다. 어찌 도가 없어서 였겠는가. 사인의 협력을 얻고 싶었던 때문이다.
夫有道而能下於天下之士, 君子乎哉.
대저, 도를 가지고서도 능히 천하 사인의 아래가 될 수 있다면 그가 군자다'라 하였다.
第20章
魏文侯從中山奔命安邑, 田子方從.
위(魏)나라 문후(文侯)가 중산으로부터 급히 안읍(安邑)으로 가는데 전자방(田子方)이 따라갔다.
太子擊過之, 下車而趨.
태자 격(擊)이 스쳐지나 앞서 가다가 수레에서 내려 도보로 뒤쫓아 오는 것이었다.
子方坐乘如故, 告太子曰: 為我請君, 待我朝歌.
자방은 그대로 수레 위에 앉은 채 태자에게 알리기를, '나를 위하여 인군을 부탁하오. 조가에서 나를 기다려 주시오'라 하였더니,
太子不說, 因為子方曰: 不識貧窮者驕人, 富貴者驕人乎.
태자가 불쾌하다는 듯이 인하여 묻기를, '빈궁한 사람이 남에게 교만한지, 부귀한 사람이 남에게 교만한지 모르겠습니다?'고 하였다.
子方曰: 貧窮者驕人, 富貴者安敢驕人, 人主驕人而亡其國, 吾未見以國待亡者也.
자방이 말하기를, '빈궁자가 남에게 교만합니다. 부귀한 자가 어찌 감히 남에게 교만하겠습니까. 인주가 교만한 까닭에 그 나라를 망치는 것입니다. 나는 나라가 망하기를 기다리는 자를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大夫驕人而亡其家, 吾未見以家待亡者也.
대부가 남에게 교만한 까닭에 그 집을 망치는 것이지 나는 집이 망하기를 기다리는 자를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貧窮者若不得意, 納履而去, 安往不得貧窮乎.
빈궁한 사람은 만약 뜻대로 되지 않으면 신발을 신고 떠납니다. 어디에 간들 빈궁이야 얻지 못하겠습니까.
貧窮者驕人, 富貴者安敢驕人.
그러니 빈궁자는 남에게 교만하고 부귀한 자가 어찌 감히 남에게 교만하겠습니까?'라 하였다.
太子及文侯道田子方之語, 文侯歎曰: 微吾子之故, 吾安得聞賢人之言, 吾下子方以行, 得而友之.
태자와 문후가 전자방의 말에 이끌려. 문후가 탄식해서 말하기를, '우리 태자의 질문이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현인의 말을 들을 수 있었겠는가. 내가 자방의 아래에 처하였기에 능히 벗할 수 있으리다.
自吾友子方也, 君臣益親, 百姓益附, 吾是以得友士之功.
이제부터 나의 벗 자방이니, 군신의 입장에서는 더욱 친밀할 것이며, 백성은 더욱 의지하려 올 것이다. 나는 이때문에 사인을 벗할 수 있는 아량을 얻었도다.
我欲伐中山, 吾以武下樂羊, 三年而中山為獻於我, 我是以得有武之功.
내가 중산(中山)을 정벌하려고 할 때, 나는 군사에 관해서는 악양(樂羊)의 밑대로 대처하였었다. 삼년이 된 후 중산을 나에게 헌납하였다. 나는 이 때문에 무(武; 군사)의 공효를 가질 수 있었다.
吾所以不少進於此者, 吾未見以智驕我者也.
나는 이 때문에 여기에 진출시킨 사람이 적지 않았다. 나는 지혜로써 나에게 교만한 자를 아직 보지 못하였다.
若得以智驕我者, 豈不及古之人乎.
만약 지혜로써 나에게 교만한 자를 얻었더라도, 어찌 옛 사람에게 미치지 못하게 하리오'라 하였다.
第21章
晉文侯行地登隧, 大夫皆扶之, 隨會不扶.
진(晉)나라의 문후(文侯)가 평지를 가다가 가파른 험지를 오를 때, 대부들이 모두 인군을 부축하였으나, 수회(隨會)는 부축하지 않았다.
文侯曰; 會. 夫為人臣而忍其君者, 其罪奚如.
문후가 말하기를, '회여! 대체, 신하가 되어 그 인군을 참을 수 없게 한 자는 그 죄가 얼마나 되겠는가?'고 물었다.
對曰: 其罪重死.
회가 대답하기를, '그 죄가 중대하니 죽여야 합니다'고 하자,
文侯曰: 何謂重死.
문후가 말하기를, '어찌 중대하니 죽여야 한다고 하는 것이오?'고 물었다.
對曰: 身死, 妻子為戮焉.
회가 대답하기를, '한 몸이 죽고 처자도 따라 죽일것이기 때문입니다'고 하였다.
隨會曰: 君奚獨問為人臣忍其君者, 而不問為人君而忍其臣者耶.
수회가 이어 말하기를, '주군께서는 어찌 다만, 신하가 인군을 참을 수 없게 한 것만 묻고 인군이 신하를 참을수 없게 한 것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십니까?'고 묻자,
文侯曰: 為人君而忍其臣者, 其罪何如.
문후가 말하기를, '인군으로서 그 신하를 참을 수 없게 한 것은 그 죄가 어떠한 것인가?'고 물었다.
隨會對曰: 為人君而忍其臣者, 智士不為謀, 辨士不為言, 仁士不為行, 勇士不為死.
수회가 대답하기를, '인군으로서 그 신하를 참을 수 없게 하였다면, 지모가 있는 신하라면 모책을 올리지 않을 것이며, 달변의 인사라면 말해 올리지 않을 것이며, 어진 인사라면 실행해 올리지 많을 것이며, 용맹한 인사라면 싸우다 죽지 않을 것입니다'고 하였다.
文侯援綏下車, 辭大夫曰: 寡人有腰髀之病, 願諸大夫勿罪也.
문후가 수레의 손잡이를 잡고 수레에서 내려와서 대부들에게 사죄하여 말하기를, '과인이 허리 아픈 병이 있어서 그러니, 원컨대 대부들은 죄로 따지지 말아주시오'라 하였다.
第22章
齊將軍田瞶出將, 張生郊送曰: 昔者堯讓許由以天下, 洗耳而不受, 將軍知之乎.
제(齊)나라 장군인 전귀(田瞶)가 군사를 출동할 때, 장생이 교외에 까지 나와서 송별하면서 말하기를, '옛적에 요인군이 천하를 허유(許由)에게 이양하겠다고 하자, 허유는 받지 않았으며 그 말을 들은 귀를 씻었다고 합니다. 장군도 알고 있습니까?'고 묻자,
曰: 唯然, 知之.
전귀가 말하기를, '예 알고 있습니다'고 하였다.
伯夷叔齊辭諸侯之位而不為, 將軍知之乎.
장생이, '백이와 숙제는 제후의 자리를 사양하고 받지 않았는데, 장군께서 알고 있습니까?'고 묻자,
曰: 唯然, 知之.
전귀가 말하기를, '예 알고 있습니다'고 하였다.
於陵仲子辭三公之位而傭為人灌園, 將軍知之乎.
장생이, '오릉중자는 삼공의 자리를 사양하고, 남의 정원 화초에 물이나 대주며 살았다는데, 장군께서 알고 있습니까?'고 묻자,
曰: 唯然, 知之.
전귀가 말하기를, '예 알고 있습니다'고 하였다.
智過去君第, 變姓名, 免為庶人, 將軍知之乎.
장생이, '지과(智過)는 인주의 아우인 신분을 떠나, 성명을 바꾸고 서인을 면했는데, 장군께서 아십니까?'고 묻자,
曰: 唯然, 知之.
전귀가 말하기를, '예 알고 있습니다'고 하였다.
孫叔敖三去相而不悔, 將軍知之乎.
장생이, '손숙오는 재상 자리를 세 번씩이나 떠나고서도, 후회하지 았다는데 장군께서도 아십니까?'고 묻자,
曰: 唯然, 知之.
전귀가 말하기를, '예 알고 있습니다'고 하였다.
此五大夫者, 名辭之而實羞之. 今將軍方吞一國之權, 提鼓擁旗, 被堅執銳, 旋回十萬之師, 擅斧鉞之誅, 慎毋以士之所羞者驕士.
장생이 말하기를, '이 다섯 사람 대부는 명분으로 사양하였을 뿐, 사실은 부끄러워 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장군께서 장군으로서 한 나라의 권세를 잡고, 북을 울리며, 깃발을 날리며, 굳은 갑옷을 입고, 예리한 무기를 잡고, 십만 군사를 마음대로 돌려 움직이게 하며, 부월을 들고 죽이기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처지입니다. 사인으로서 수치스러운 것이 사인에 대한 교만이오니, 삼가하시어 그리 마시기 바랍니다'고 하였더니,
田瞶曰: 今日諸君皆為瞶祖道具酒脯, 而先生獨教之以聖人之大道, 謹聞命矣.
전귀가 말하기를, '오늘 여러분이 모두 전귀의 장도를 위하여, 술과 안주를 갖추어 주셨지만, 오직 선생께서 홀로 성인의 대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삼가 명을 따르겠습니다'고 하였다.
第23章
魏文侯見段干木, 立倦而不敢息, 及見翟璜, 踞堂而與之言.
위(魏)나라 문후(文侯)가 단간목(段干木)을 만날때는 서 있기가 권태로운데도 감히 쉬지 못하였는데, 급기 적황(翟璜)을 만날때는 당에 꿇어 앉아 서로 말을 나누었다,
翟璜不說, 文侯曰: 段干木, 官之則不肯, 祿之則不受, 今汝欲官則相至, 欲祿則上卿. 既受吾賞, 又責吾禮, 毋乃難乎.
적황이 기분이 언짢아 하기에, 문후가 말하기를, '단간목은 관을 더해준대도 좋아하지 않고, 봉록을 더해준대도 받지 않는데, 지금 그대는 관을 바라되, 재상에 이르기를 바라고, 봉록을 바라되, 상경의 록을 원하는 것이외다. 이미 포상을 받았으면서도 또, 나의 예절이 모자람을 탓하니 곤란하지 않은가?'라 하였다.
第24章
孔子之郯, 遭程子於塗. 傾蓋而語終日.
공자가 담(郯)으로 가고 있는데 길에서 우연히 정자(程子)를 만났다. 수레의 양산을 비딱하게 해놓고 종일 말씀을 나누었다.
有間, 顧子路曰: 取束帛一以贈先生. 子路不對.
그러다가 자로를 돌아보고 말하기를, '속백 하나를 가져다가 선생께 드려라'고 하였으나, 자로가 대답하지 않았다.
有間, 又顧曰: 取束帛一以贈先生.
조좀 있다가 또 돌아보며 말히기를, '속백 하나를 가져다가 선생께 드려라'고 하였다.
子路屑然對曰: 由聞之, 士不中而見, 女無媒而嫁, 君子不行也.
자로가 마땅치 못한듯 대답하여 말하기를, '유(由)가 듣기로는, 사인은 중정하지 않은데 만나거나, 여자가 중매 없이 시집가는 일은 군자는 실행하지 않는다고 합니다'고 하였다.
孔子曰: 由, 詩不云乎; 野有蔓草, 零露溥兮, 有美一人, 清揚婉兮, 邂逅相遇, 適我願兮.
공자가 말하기를, '유(由)야, 시에서 이르지 않았더냐? '들에 넝쿨진 풀이여, 이슬이 맺혀 두루하였네. 한 사람 아름다운 연인은 맑기도 하고 곱기도 하네. 우연이 만났지만 서로 다시 만나려 소원을 이루려 간다네' 하였다.
今程子天下之賢士也. 於是不贈, 終身不見. 大德毋踰閑, 小德出入可也.
지금 정자는 천하의 현사다. 이때에 주지 않으면 종신토록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크나큰 덕이야 문지방을 넘지 못하지만 조그마한 덕이야 드나듦이 있어도 옳으니라'고 하였다.
第25章
齊桓公使管仲治國, 管仲對曰: 賤不能臨貴.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관중(管仲)으로 하여금 나라를 다스리게 하였다. 관중이 말하기를, '빈천한 사람은 능히 부귀한 사람위에 임할 수 없습니다'고 하였다.
桓公以為上卿而國不治, 桓公曰何故.
환공이 그를 상경(上卿)으로 삼았는데도 나라는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었다. 환공이 그 다스리지 못하는 까닭을 물으니,
管仲對曰: 貧不能使富.
관중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빈궁한 사람이 능히 부유한 사람을 부릴 수 없습니다'고 하였다.
桓公賜之齊國市租一年而國不治, 桓公曰何故.
환공이 제나라의 도시 세금 일년 치를 관중에게 하사 하였는데도 다스리지 못하였다. 환공이 말하기를,' 무슨 까닭이오?' 라고 묻자,
對曰: 疏不能制親.
관중이 대답하기를, '소원한 사람이 인군과 친밀한 사람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고 하였다.
桓公立以為仲父, 齊國大安, 而遂霸天下.
환공이 관중을 중부(仲父)를 삼자, 제나라는 크게 편안하게 되었고, 드디어 천하를 제패하였다.
孔子曰: 管仲之賢, 不得此三權者, 亦不能使其君南面而霸矣.
공자가 말하기를, '관중의 현철로도 이 세가지 권세 있는자를 손에 넣지 못했다면, 또한 인군으로 하여금 남면하는 패국이 되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고 하였다.
第26章
桓公問於管仲曰: 吾欲使爵腐於酒, 肉腐於俎, 得無害於霸乎.
환공(桓公)이 관중(管仲)에게 물어 말하기를, '내가 따라 놓은 술을 잔에서 썩게 하고 고기를 도마 위에서 썩게 한다면, 패국이 되기에 방해됨이 없겠습니까?'고 물었다.
管仲對曰: 此極非其貴者耳, 然亦無害於霸也.
관중이 대답하기를, '이는 부귀한 자에 있어서는 극히 비난 받을만한 일이지만 그러나 역시 패자가 되는데 있어서는 방해될 것이 없습니다'고 하였다.
桓公曰: 何如而害霸.
환공이 말하기를, '그러면 어떤 것이 패자가 되기에 방해가 되는 것입니까?'고 물었다.
管仲對曰: 不知賢, 害霸; 知而不用, 害霸; 用而不任, 害霸; 任而不信, 害霸; 信而復使小人參之, 害霸.
관중이 말하기를, '현인을 몰라보는 것이 패자에 방해가 되며, 현인임을 알면서도 등용하지 않는 것이 패자에 방해가 되며, 등용하고서도 일을 맡끼지 않는 것이 패자에 방해가 되며, 일을 맡기고서도 믿지 않는 것이 패자에 방해가 되며, 믿으면서도 다시 소인을 시켜 간섭하게 하는 것이 패자에 방해가 됩니다'고 하였다.
桓公: 善.
환공이, '훌륭합니다'고 하였다.
第27章
魯人攻鄪, 曾子辭於鄪君曰: 請出, 寇罷而後復來, 請姑毋使狗豕入吾舍.
노(魯)나라가 비(鄪)를 공격하였다. 증자(曾子)가 사퇴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바라건대, 나가 있다가 전쟁이 끝난 뒤에 다시 들어오겠습니다. 잠깐 동안만 개 돼지들이 제 집에 들지 말게 해주십시오'하였다.
鄪君曰: 寡人之於先生也, 人無不聞. 今魯人攻我而先生去我, 我胡守先生之舍.
비군(鄪君)이 말하기를, '과인이 선생에게 베푼 일을 듣고 보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지금 노나라가 쳐들어 오고 있는 중에, 선생이 우리에게서 떠나시는데 우리가 어찌 선생의 집을 지켜 드리겠습니까?'라 하였다.
魯人果攻鄪而數之罪十, 而曾子之所爭者九.
노나라 사람이 비(鄪)에 처들어 와서 비나라의 열가지의 죄과를 꼽았는데, 그 중에는 증자가 평소에 인군과 다툰 사항이 아홉가지가 들어 있었다.
魯師罷, 鄪君復修曾子舍而後迎之.
노나라의 군사가 끝이 나자 비군은 다시 증자의 집을 수리한 뒤에 증자를 영입하였다.
第28章
宋司城子罕之貴子韋也.
入與共食, 出與同衣.
송(宋)나라 인주 사성자한(司城子罕)은 자위(子韋)를 귀중히 여겼다. 들어오면 밥을 함께 먹고, 나갈 때는 옷을 똑같이 입었다.
司城子罕亡, 子韋不從, 子罕來, 復召子韋而貴之.
사성자한이 망명할 때에는 자위는 따라가지 않았는데 자한이 돌아와서도 다시 자위를 불러 귀중히 대접하였다.
左右曰: 君之善子韋也, 君亡不從, 來又復貴之, 君獨不愧於君之忠臣乎.
주위 사람들이 말하기를, '주군이 자위한테 잘 해주었는데도 망명할 때 따라가지도 않았는데 돌아와서는 또 다시 귀히 여기시니, 주군의 충신들을 대하기에 부끄럽지 않으십니까?'고 묻자,
子罕曰: 吾唯不能用子韋, 故至於亡.
자한이 말하기를, '내가 다만, 능히 자위를 등용하지 못한 까닭에 그래서 망명하기에 이른 것이외다.
今吾之得復也, 尚是子韋之遺德餘教也, 吾故貴之.
이제 내가 복귀할 수 있었던 것도, 오히려 이것이 자위가 끼처준 덕의 남은 가르침인 것이외다. 내가 그를 귀중히 여기는 연고요.
且我之亡也, 吾臣之削跡拔樹以從我者, 奚益於吾亡哉.
내가 망명하자 나의 신하들이 내가 이루어놓은 저취를 깎아 없애고 나를 따르던 사람들을 나무 뽑듯 뽑아 버렸으니, 내가 망명한 것보다 어떤 것이 더 유익하겠는가'고 하였다.
第29章
楊因見趙簡主曰: 臣居鄉三逐, 事君五去, 聞君好士, 故走來見.
양인(楊因)이 조(趙)나라 간주(簡主)를 찾아와 뵙고 말하기를, '신(臣)은 향촌에 사는 동안 세 번씩이나 쫓겨나고, 인주를 섬기면서, 다섯 번이나 떠났습니다. 듣자니 주군께서는 사인을 좋아 하신다기에 찾아와 뵙는 것입니다'고 하였다.
簡主聞之, 絕食而歎, 跽而行.
간주(簡主)가 이 말을 듣고 밥먹기를 거절하고 무릎을 꿇고 기어다녔다.
左右進諫曰: 居鄉三逐, 是不容眾也, 事君五去, 是不忠上也. 今君有士見過人矣.
좌우 신하들이 앞에 나아가 간하여 말하기를, '향리에 살며 세 번이나 쫓겨난 것은 대중(大衆)을 포용하지 못하는 것이며, 인주를 섬기면서 다섯번씩이나 떠나 간 것은 불충한 것입니다. 지금 주상께서 이 사인(士人)을 보통을 지난 사람으로 보시는 것입니다'고 하였다.
簡主曰: 子不知也. 夫美女者, 醜婦之仇也; 盛德之士, 亂世所疏也; 正直之行, 邪枉所憎也.
간주가 말하기를, '그대들은 모르는도다. 대체로 아름다운 미인은 추녀(醜女)가 원망하는 원수요, 도덕이 성대한 인사는 난세에는 소외되며, 정직한 사람의 행실은 사왕(邪枉; 간사 아첨)의 사람이 증오하는 법이다'고 하였다.
遂出見之, 因授以為相.而國大治.
마침내 나가서 인견하고 인하여 재상으로 임용 하였는데 나라가 크게 다스려졌다.
由是觀之, 遠近之人, 不可以不察也.
이로 보건대, 가까운 사람이거나 먼 사람이거나 살펴 관찰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第30章
應侯與賈午子坐, 聞其鼓琴之聲, 應侯曰: 今日之琴, 一何悲也.
응후(應侯)와 가오자(賈午子)가 함께 앉아 거문고 연주하는 소리를 듣고 있다가 응후가가 말하기를, '오늘의 거문고 소리는 어찌 슬프기만 한가?'고 묻자,
賈午子曰: 夫急張調下, 故使人悲耳. 急張者, 良材也; 調下者, 官卑也. 取夫良材而卑官之, 安能無悲乎.
가오자가 말하기를, '대체로 당겨진 현은 강한데 성조는 낮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으로 하여금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당김이 강한 것은 훌륭한 어진 인재인데 반해, 성조가 낮은 것은 관의 지위가 낮은 것입니다. 저 훌륭한 인재를 데려다가 관이 낮은 곳에 앉힌다면 어찌 능히 슬픈 생각이 없겠습니까?'고 하였다.
應侯曰: 善哉.
응후가 말하기를, '훌륭한 말이로다'고 하였다.
第31章
十三年, 諸侯舉兵以伐齊.
십삼년 제후들이 군사를 일으켜 제(齊)나라에 대한 정벌에 나섰다.
齊王聞之, 惕然而恐, 召其群臣大夫告曰: 有智為寡人用之.
제나라 왕이 듣고 놀랍고 두려워서 여러 신하 대부를 불러다 놓고 말하기를, '지혜 있는 자는 과인을 위하여 그 지혜를 쓰이게 하시오'라 하였다.
於是博士淳于髡仰天大笑而不應.
이때에 박사 순우곤(淳于髡)이 하늘을 우러러 크게 웃기만 하고 응답하지는 않았다.
王復問之, 又大笑不應, 三笑不應, 王艴然作色不悅曰: 先生以寡人語為戲乎.
왕이 다시 물었지만 또 크게 웃을 뿐 응답하지 않고, 세 번씩이나 웃기만 하고 응답하지 않으므로 왕이 얼굴을 붉히며 정색하고 언짠은 듯 말하기를, '선생은 과인의 말을 희롱하는가?'고 말하자,
對曰: 臣非敢以大王語為戲也, 臣笑臣鄰之祠田也, 以一奩飯, 一壺酒, 三鮒魚, 祝曰; 蟹堁者宜禾, 洿邪者百車, 傳之後世, 洋洋有餘. 臣笑其賜鬼薄而請之厚也.
대답하여 말하기를, '신은 대왕의 말씀을 희롱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신이 웃은 것은 신의 이웃 사람이 밭에 제사를 지내는데, 제사상에는 한 그릇의 밥과 한 병의 술과 세마리의 붕어를 차려 놓고 빌어 말하기를, '게가 많은 논에 벼가 잘 되게 해주시고, 우묵한 웅덩이 논에서는 벼가 백수레에 실을만큼 나게 해주시고, 후세에 전해서 끝없이 넓어서 써도써도 남음이 있게 해주소서'라 하며 축원 했습니다. 신은 그 제사가 귀신에게 주는 것은 약소한데 바라기는 것은 다대하게 하는 것을 본 일이 생가나서 웃었던 것입니다'고 하였다.
於是王乃立淳于髡為上卿, 賜之千金, 革車百乘, 與平諸侯之事.
이때에 왕은 곧, 순우곤을 당장 상경(上卿)을 삼고 천금과 혁거(革車) 백승을 하사하고 제후의 일을 평정할 임무를 부여 하였다.
諸侯聞之, 立罷其兵, 休其士卒, 遂不敢攻齊, 此非淳于髡之力乎.
제후들이 듣고 당장 군사 행동을 파하고 사졸을 쉬게 하고, 드디어 감히 제를 공격하지 못하였다. 이것이 순우곤의 힘이 아니겠는가?
第32章
田忌去齊奔楚, 楚王郊迎至舍, 問曰; 楚, 萬乘之國也, 齊亦萬乘之國也, 常欲相并, 為之奈何.
전기(田忌)가 제(齊)나라를 떠나 초(楚)나라로 달려오자. 초왕(楚王)이 교외에까지 나와서 그를 영접하여 숙소에 이르러 초왕이 묻기를, '우리 초나라는, 만승(萬乘)의 나라입니다. 제(齊)나라도 역시 만승의 나라이지요. 항상 서로 병합하려고 맞서 있는 관계인데, 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겠습니까?'고 묻자,
對曰: 易知耳, 齊使申孺將, 則楚發五萬人, 使上將軍將之, 至禽將軍首而反耳.
전기가 대답하기를, '그것은 알기가 쉽습니다. 제나라가 신유(申孺)를 장군을 삼아 싸우게 한다면, 이 초나라는 오만의 군사를 일으켜, 초나라는 상장군으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게 한다면, 저쪽의 장군 급을 사로 잡아 돌아올 수 있을 것입니다.
齊使田居將, 則楚發二十萬人, 使上將軍將之, 分別而相去也.
또 제나라가 전거(田居)를 장수로 삼아 내보낸다면, 우리 초나라는 이십만의 군사를 징발하여, 상장군으로 하여금 통솔하게 하고 분야를 별도로 나누어 서로 거리를 두고 맞서게 합니다.
齊使眄子將, 楚發四封之內, 王自出將而忌從, 相國上將軍為左右司馬, 如是則王僅得存耳.
제나라가 면자(眄子)를 장군으로 삼아 덤벼 든다면, 초나라는 국경 내의 군사를 모두 징발하여, 왕께서 친히 나가 이들을 거느리신다면, 신 전기도 그 뒤를 따를 것입니다. 상국(相國)과 상장군을 좌우의 사마(司馬)로 하십시오. 이와 같이 하신다면 왕께서는 겨우 버티어 내실 수 있을 것입니다'고 하였다.
於是齊使申孺將, 楚發五萬人, 使上將軍至, 擒將軍首反.
이때에, 제나라는 먼저 신유를 장군으로 하여 내보냈다. 초나라는 오만의 군사만 출동하게 하여, 상장군 솔하에 이르게 하니, 제나라 장군을 사로잡아 돌아왔다.
於是齊王忿然, 乃更使眄子將.
이때에 제나라 왕은 분심을 품고, 곧 장군을 면자로 바꾸어 통솔하게 하였다.
楚悉發四封之內, 王自出將, 田忌從.
초나라는 국경 안의 모든 군사를 징발하여 왕이 친히 나아가 통솔하고, 전기는 뒤를 따랐다.
相國上將軍為左右司馬, 益王車屬九乘, 僅得免耳.
상국과 상장군을 좌우의 사마를 삼고, 더해서 왕의 전차에는 구승(九乘)을 덧붙쳤기에 겨우 패배를 면하였다.
至舍, 王北面正領齊袪, 問曰: 先生何知之早也.
싸움이 종식 되자, 본처에 으르러 왕은 북면(北面)하여 전기의 앞에 옷깃을 여미고 앉아 물어 말하기를, '선생은 어떻게 조기에 미리 알았던거요?'고 묻자,
田忌曰: 申孺為人, 侮賢者而輕不肖者, 賢不肖者俱不為用, 是以亡也.
전가가 말하기를, '신유는 그 사람됨이, 어진 사람을 모멸하고, 불초한 사람을 경시합니다. 어진 사람이나, 불초한 사람이나 모두 임용되지 못합니다. 그 때문에 패한 것입니다.
田居為人, 尊賢者而賤不肖者, 賢者負任, 不肖者退, 是以分別而相去也.
전거의 사람됨은, 어진 이를 높일 줄은 알지만, 불초한 자를 천시합니다. 현자는 임무를 맡지만, 불초한 자는 떠납니다. 이렇기 때문에 상대를 분별해서 맞서는 것입니다.
眄子之為人也, 尊賢者而愛不肖者, 賢不肖俱負任, 是以王僅得存耳.
면자의 사람됨은, 어진 이에 대해서는 존중하고, 불초한 이에 대해서는 아껴줍니다. 그래서 현 불초가 모두 자기의 소임을 다합니다. 이러므로 왕께서는 그를 상대로 겨우 생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고 하였다.
第33章 1
魏文侯觴大夫於曲陽, 飲酣, 文侯喟然歎曰: 吾獨無豫讓以為臣.
위(魏) 문후(文侯)가 곡양(曲陽)에서 대부들과 술을 나누면서, 술이 얼큰히 취하자, 문후는 한숨을 쉬며 말하기를, '나는 어찌 홀로 예양(豫讓)과 같은 신하를 둘 수가 없는가?'고 하니,
蹇重舉酒進曰: 臣請浮君.
건중(蹇重)이 술잔을 들어 문후에게 올리며 말하기를, '신이 청컨대 벌주를 올리겠습니다'고 하니,
文侯曰: 何以.
문후가 묻기를, '그 무엇 때문이오?'고 묻자,
對曰: 臣聞之, 有命之父母, 不知孝子, 有道之君, 不知忠臣. 夫豫讓之君, 亦何如哉.
건중 대답하기를, '신이 들으니 명령을 내리는 부모는 자식이 효자인지 모르는 법이며, 도를 지닌 인군은 신하가 충신인지 모른다고 합니다. 대체 예양의 주군은 또한 어떠한 인물이겠습니까?'고 하였다.
文侯曰: 善. 受浮而飲之, 嚼而不讓.
문후가 말하기를, '좋소!' 하고 그 벌주를 , 사양하지 않고 받아 마셨다.
曰: 無管仲鮑叔以為臣, 故有豫讓之功也.
그리고 말하기를, '관중(管仲)과 포숙(鮑叔) 같은 신하가 없었기에, 그러므로 예양이 공을 세웠울 것이다'고 하였다.
第33章 2
趙簡子曰: 吾欲得范中行氏良臣.
간자(趙簡子)가 말하기를, '나는 범씨가 얻었던 중항과 같은 어진 신하를 얻어 가지고 싶다'고 하였다.
史黶曰: 安用之.
사염(史黶)이 말하기를, '어디에 쓰렵니까?'고 묻자,
簡子曰: 良臣, 人所願也.又何問焉.
간자가 말하기를, '어진 신하는 사람이 다 원하는 것인데 또 뭘 묻는가?'고 하니,
曰: 君以無為良臣故也.
사염이 말하기를, '수하에 어진 신하가 없다고 여기시는 것은 주군께서 자기에게 양신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夫事君者, 諫過而薦可, 章善而替否, 獻能而進賢, 朝夕誦善, 敗而納之, 聽則進, 否則退.
대저, 인주를 섬기는 자는 인주의 잘못을 간하고 올바른 사람을 천거하고, 훌륭한 사람을 들어내며, 바르지 못한자는 교체하며, 능력 있는 자는 헌납하고, 현철한 사람을 진급시키기 위하여 조석으로 인주에게 성선(成善)한 사람의 이름을 암송하고, 망패(妄敗)한 사람의 이름을 듣게 하여, 인주가 들어주면, 나아가고 들어주지 않으면 물러나는 것입니다.
今范中行氏之良臣也, 不能匡相其君, 使至於難, 出在於外, 又不能入, 亡而棄之, 何良之為, 若不棄, 君安得之.
지금 범중항씨가 양신이라 하셨지만, 능히 그 인주를 바르게 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도리어 어려움 속에 들게 하였기에, 퇴출되어 밖에 있는데도 또한 능히 들이지 못하는 상황이며, 인주가 망명 하는데도, 도모하기를 포기 하였으니, 어찌 양신이라 하겠습니까? 만약 포기하지 않았더라도 인군이 무엇을 얻었겠습니까?
夫良將營其君, 使復其位, 死而後止, 何曰以來, 若未能, 乃非良也.
대저 양신은 장차 그 인군을 경영하여 인군으로 하여금 그지위를 복구하기를 자기가 죽은 뒤에야 그치는 법인데,이런 사람이 어느 날에나 오겠습니까? 만약 아직도 임무를 다하지 못하였다면, 곧, 양신이 아닌 것입니다'고 하니,
簡子曰: 善哉.
간자가 말하기를, '훌륭하오' 하였다.
第34章
子路問於孔子曰: 治國何如.
자로(子路)가 공자(孔子)에게 묻기를, '나라를 어떻게 다스리는 것입니까?'고 묻자,
孔子曰: 在於尊賢而賤不肖.
공자가 대답하기를, '어진 이를 존경하고, 불초한 자를 멀리한다'고 하였다.
子路曰: 范中行氏尊賢而賤不肖, 其亡何也.
자로가 묻기를, 어진 이를 공경하고 불초한 자를 멀리 하였는데도, 그는 망하였는데,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고 묻자,
曰: 范中行氏尊賢而不能用也, 賤不肖而不能去也.
공자가 말하기를, '범씨(范氏)와 중항씨(中行氏)는 어진 이를 공경했으나, 등용하지 않았고, 불초한 자를 천히 했으나 능히 퇴거시키지는 못했다.
賢者知其不己用而怨之, 不肖者知其賤己而讎之.
어진 이란 자신이 등용되지 않는 것을 알면 이를 원망하고, 불초한 자는 자기를 천히 여긴다는 것을 알면 원수로 여긴다.
賢者怨之, 不肖者讎之, 怨讎並前, 中行氏雖欲無亡, 得乎.
어진 이가 원망하고, 불초한 자가 원수로 여긴다면, 원망과 원수가 나란히 앞에 있는데, 중항씨가 비록 망하지 않으려 버틴다고 해도, 어찌 그것이 가능하겠느냐?' 하였다
第35章
晉荊戰於邲, 晉師敗績, 荀林父將歸請死.
진晉나라와 형(荊; 楚)나라가 필(邲) 땅에서 싸울 때, 진나라가 연이어 패하자, 순림보(荀林父)가 스스로 죽기를 청했다.
昭公將許之, 士貞伯曰: 不可, 城濮之役, 晉勝于荊.
진 소공이 이를 허락했으나, 사정백(士貞伯)이 만류하며 말히기를, '안 됩니다. 지난 번 성복(城濮)의 전투 때에, 우리 진나라가 형(荊; 楚)나라를 이겼습니다.
文公猶有憂色, 曰, 子玉猶存, 憂未歇也. 困獸猶鬥, 況國相乎.
그 때 문공께서는 오히려 근심스러운 빛으로 말하기를, '초나라에 자옥(子玉)이 살아있는 한, 근심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덫에 걸린 짐승도 오히려 싸우려 드는데, 하물며 한 나라의 재상이리오?'라 하셨는데,
及荊殺子玉, 乃喜曰, 莫予毒也.
초나라가 자옥을 죽임에 미치어 이에 기뻐하며 말하기를, '나에게 더 이상 독을 품을 자가 없으리라'고 하셨습니다.
今天或者大警晉也, 林父之事君, 進思盡忠, 退思補過. 社稷之衛也.
지금 순림보가 죽으면 혹시 이 진나라에 큰 경계심을 일깨워 줄지는 모르겠으나, 순림보는 임금을 섬김에 있어서, 나아가서는 충성을 다하였고, 물러 나서는 잘못을 바로 잡기에 애썼습니다. 사직(社稷)의 보위(保衛)라고 할 수 있습니다.
今殺之, 是重荊勝也.
지금 그를 죽인다면, 이는 초나라의 승리를 더욱 확인해 주는 것입니다'고 말하니,
昭公曰: 善. 乃使復將
소공이 말하기를, '좋은 말이오!'하고 곧, 순림보를 장군으로 복위시켰다.
▶️ 任(맡길 임/맞을 임)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사람인변(亻=人; 사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壬(임; 짐을 짊어지고 있는 모양)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사람(人)이 짐을 지듯이 책임을 진다는 뜻으로 맡기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任자는 '맡기다'나 '(책임을)지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任자는 人(사람 인)자와 壬(천간 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壬자는 실을 묶어 보관하던 도구를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모양자 역할로 쓰였다. 任자의 갑골문을 보면 마치 사람이 등에 壬자를 짊어지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任자는 이렇게 등에 무언가를 짊어진 모습에서 '맡기다'나 '맡다'라는 뜻을 표현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任자는 주로 어떠한 직책을 '맡고 있다'나 '부담'이나 '짐'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任(임)은 (1)임무(任務) 또는 소임(所任)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맡기다, 주다 ②능하다, 잘하다 ③공을 세우다 ④배다, 임신하다 ⑤맞다, 당하다 ⑥책임을 맡다, 지다 ⑦견디다, 감내하다 ⑧보증하다 ⑨비뚤어지다, 굽다 ⑩마음대로 하다 ⑪미쁘다(믿음성이 있다) ⑫당해내다 ⑬맡은 일, 책무(責務) ⑭짐, 부담(負擔) ⑮보따리 ⑯재능(才能), 재주 ⑰협기(俠氣), 사나이의 기개(氣槪) ⑱임지(任地: 임무를 받아 근무하는 곳) ⑲마음대로, 멋대로,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맡길 위(委), 맡길 탁(托), 맡길 예(預),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면할 면(免)이다. 용례로는 임무를 맡아보는 일정한 기한을 임기(任期), 관직에 명함 또는 직무를 맡김을 임명(任命), 어떤 사람이 책임을 지고 맡은 일을 임무(任務), 자기 의사대로 하는 일을 임의(任意), 어떤 단체의 운영이나 감독하는 일을 맡아 처리하는 사람을 임원(任員), 직무를 맡겨 등용함을 임용(任用), 관원이 부임하는 곳을 임지(任地), 믿고 일을 맡기는 일을 신임(信任), 도맡아 해야 할 임무를 책임(責任), 맡은 자리에 나아가 임무를 봄을 취임(就任), 임무를 받아 근무할 곳으로 감을 부임(赴任), 맡아보던 일자리를 그만 두고 물러남을 사임(辭任), 관직에서 물러남을 퇴임(退任), 어떤 일을 책임지워 맡김을 위임(委任), 관직 같은 데에 새로 임명됨을 신임(新任), 맡은 바 임무에서 떠남을 이임(離任), 임소에 도착함을 착임(着任), 앞서 맡아보던 사람의 뒤를 이어 맡아보는 직무나 임무를 후임(後任), 학급이나 학과목을 책임을 지고 맡아 봄을 담임(擔任), 일정한 직무를 늘 계속하여 맡음 또는 맡은 사람을 상임(常任), 책임은 중하고 길은 멀다는 말을 임중도원(任重道遠), 오직 인품과 능력만을 보고 사람을 임용한다는 말을 임인유현(任人唯賢), 현자에게 일을 맡김에 두 마음을 갖지 말라는 뜻으로 한 번 맡긴 이상 끝까지 밀어주라는 말을 임현물이(任賢勿貳) 등에 쓰인다.
▶️ 賢(어질 현)은 ❶형성문자로 贤(현)은 간자(簡字), 贒(현)은 고자(古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조개 패(貝; 돈, 재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구휼(救恤)한다는 뜻을 나타내는 글자 臤(현, 간)으로 이루어졌다. 많은 재화를 가지고 있어 남에게 나누어 준다는 뜻이 전(轉)하여 뛰어나다, 어질다는 뜻으로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賢자는 '어질다'나 '현명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賢자는 臤(어질 현)자와 貝(조개 패)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臤자는 신하가 일을 능히 잘 해낸다는 의미에서 '어질다'나 '현명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래서 본래 '어질다'라는 뜻은 臤자가 먼저 쓰였었다. 그러나 후에 사람이 어질고 착해 재물까지 나누어 줄 정도라는 의미가 반영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貝자가 더해진 賢자가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賢(현)은 흔히 편지에서 자네의 뜻으로 아랫 사람을 대우하여 쓰는 말의 뜻으로 ①어질다 ②현명하다 ③좋다 ④낫다, 더 많다 ⑤넉넉하다, 가멸다(재산이 넉넉하고 많다) ⑥존경하다 ⑦두텁다 ⑧착하다, 선량하다 ⑨지치다, 애쓰다 ⑩어진 사람 ⑪어려운 사람을 구제(救濟)하는 일 ⑫남을 높여 이르는 말,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어질 인(仁), 어질 량(良),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어리석을 우(愚)이다. 용례로는 마음이 어질고 영리하여 사리에 밝음을 현명(賢明), 어질고 훌륭함 또는 그런 사람을 현준(賢俊), 어질고 총명하여 성인의 다음 가는 사람을 현인(賢人), 어질고 총명하여 성인의 다음가는 사람을 현자(賢者), 어진 신하를 현신(賢臣), 어짊과 어리석음을 현우(賢愚), 어질고 훌륭한 사람을 현영(賢英), 현명한 보좌를 현좌(賢佐), 어진 이와 착한 이 또는 어질고 착함을 현량(賢良), 여자의 마음이 어질고 깨끗함을 현숙(賢淑), 현명하게 생긴 얼굴을 현안(賢顔), 남보다 뛰어난 재주 또는 그런 재주를 가진 사람을 현재(賢才), 남의 아내를 공경하여 일컫는 말을 현합(賢閤), 어진 사위를 현서(賢壻), 덕이 높고 현명한 사람을 고현(高賢), 매우 현명함이나 아주 뛰어난 현인을 대현(大賢), 성인과 현인을 성현(聖賢), 유교에 정통하고 행적이 바른 사람을 유현(儒賢), 밝고 현명한 사람을 명현(明賢), 재주가 뛰어나서 현명함 또는 그런 사람을 재현(才賢), 뛰어나고 슬기로움을 영현(英賢), 이름이 난 어진 사람을 명현(名賢), 어진 사람을 존경함을 상현(尙賢), 어진 어머니이면서 또한 착한 아내를 일컫는 말을 현모양처(賢母良妻), 현인과 군자로 어진 사람을 일컫는 말을 현인군자(賢人君子), 남의 눈을 어지럽고 아뜩하게 한다는 말을 현인안목(賢人眼目), 현인은 중용을 지나 고상한 행위를 함을 이르는 말을 현자과지(賢者過之) 등에 쓰인다.
▶️ 國(나라 국)은 ❶회의문자로 国(국)은 간자(簡字), 囗(국), 囶(국), 圀(국)은 고자(古字), 囲(국), 围(국)은 동자(同字)이다. 國(국)은 백성들(口)과 땅(一)을 지키기 위해 국경(口)을 에워싸고 적이 침입하지 못하게 했다는 데서 나라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國자는 '나라'나 '국가'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國자는 囗(에운담 위)자와 或(혹 혹)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或자는 창을 들고 성벽을 경비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이전에는 或자가 '나라'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누가 쳐들어올까 걱정한다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후에 '혹시'나 '만일'이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여기에 囗자를 더한 國자가 '나라'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國자는 성벽이 두 개나 그려진 형태가 되었다. 참고로 國자는 약자로는 国(나라 국)자를 쓰기도 한다. 그래서 國(국)은 (1)어떤 명사(名詞) 다음에 쓰이어 국가(國家), 나라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나라, 국가(國家) ②서울, 도읍(都邑) ③고향(故鄕) ④고장, 지방(地方) ⑤세상(世上), 세계(世界) ⑥나라를 세우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나라 백성을 국민(國民), 나라의 법적인 호칭을 국가(國家), 나라의 정사를 국정(國政), 나라의 안을 국내(國內), 나라의 군대를 국군(國軍), 나라의 이익을 국익(國益), 나라에서 나라의 보배로 지정한 물체를 국보(國寶), 국민 전체가 쓰는 그 나라의 고유한 말을 국어(國語), 한 나라의 전체를 전국(全國), 자기 나라 밖의 딴 나라를 외국(外國), 양쪽의 두 나라를 양국(兩國), 외국에서 본국으로 돌아감 또는 돌아옴을 귀국(歸國), 국가의 수를 세는 단위를 개국(個國), 조상 적부터 살던 나라를 조국(祖國), 제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침을 순국(殉國),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애국(愛國), 그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은 둘도 없다는 뜻으로 매우 뛰어난 인재를 이르는 말을 국사무쌍(國士無雙), 나라의 수치와 국민의 욕됨을 이르는 말을 국치민욕(國恥民辱), 나라의 급료를 받는 신하를 국록지신(國祿之臣), 나라의 풍속을 순수하고 온화하게 힘을 이르는 말을 국풍순화(國風醇化), 나라는 망하고 백성은 흩어졌으나 오직 산과 강만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말을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나라를 기울일 만한 여자라는 뜻으로 첫눈에 반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여자 또는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말을 경국지색(傾國之色), 나라를 구하는 방패와 성이란 뜻으로 나라를 구하여 지키는 믿음직한 군인이나 인물을 이르는 말을 구국간성(救國干城), 나라를 망치는 음악이란 뜻으로 저속하고 난잡한 음악을 일컫는 말을 망국지음(亡國之音), 국권피탈을 경술년에 당한 나라의 수치라는 뜻으로 일컫는 말을 경술국치(庚戌國恥), 입술과 이의 관계처럼 이해 관계가 밀접한 나라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순치지국(脣齒之國), 작은 나라 적은 백성이라는 뜻으로 노자가 그린 이상 사회, 이상 국가를 이르는 말을 소국과민(小國寡民), 한 번 돌아보면 나라가 기운다는 뜻으로 뛰어난 미인을 이르는 말을 일고경국(一顧傾國), 사이가 썩 친밀하여 가깝게 지내는 나라 또는 서로 혼인 관계를 맺은 나라를 이르는 말을 형제지국(兄弟之國) 등에 쓰인다.
▶️ 吉(길할 길)은 ❶회의문자로 士(사; 선비)와 口(구; 말)의 합자(合字)이다. 훌륭한 사람이 하는 말은 모두가 훌륭하다는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吉자는 '길하다'나 '상서롭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吉자는 士(선비 사)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吉자의 갑골문을 보면 무언가를 아래에 끼워 맞추려는 듯한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신전에 꽂아두는 위목(位目)을 그린 것이다. 위목은 신이나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어놓던 '위패'를 말한다. 그러니까 吉자는 성스러운 신의 이름을 올린다는 의미에서 '상서롭다'나 '길하다'라는 뜻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니 吉자에 쓰인 士자는 위패를 표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吉(길)은 ①길(吉)하다, 운이 좋다, 일이 상서(祥瑞)롭다 ②좋다, 아름답거나 착하거나 훌륭하다 ③착하다 ④복(福), 행복(幸福), 길한 일, 좋은 일 ⑤혼인(婚姻) ⑥제사(祭祀) ⑦음력(陰曆) 초하루 ⑧오례(五禮)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풍년 풍(豊),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흉할 흉(凶)이다. 용례로는 좋은 일과 언짢은 일을 길흉(吉凶), 아주 경사스러운 일을 길경(吉慶), 좋은 일이 있을 징조를 길조(吉兆), 좋은 운수를 길운(吉運), 좋은 소식을 길보(吉報), 경사가 날 조짐을 길상(吉祥), 좋은 날을 길일(吉日), 좋은 일이 생길 징조의 꿈을 길몽(吉夢), 길한 일이 생길 때 사람에게 미리 알려 준다고 하는 새를 길조(吉鳥), 복을 많이 받을 좋은 징조를 길상(吉相), 재수나 운수 따위가 길하지 못함을 불길(不吉), 좋은 일과 언짢은 일을 흉길(凶吉), 좋은 날을 가림을 연길(涓吉), 좋은 날을 가려서 고름을 택길(擇吉), 길흉과 화복이라는 뜻으로 즉 사람의 운수를 이르는 말을 길흉화복(吉凶禍福), 매우 기쁘고 좋은 일을 일컫는 말을 길상선사(吉祥善事), 입춘을 맞이하여 길운을 기원하는 글을 입춘대길(立春大吉), 한편 흉하기도 하고 한편 길하기도 하다는 말을 반흉반길(半凶半吉), 한 번 길조를 얻으면 다시 더 점을 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복불습길(卜不襲吉), 그리고 영구히 편안하고 길함이 높다는 말을 영수길소(永綏吉邵), 흉한 일을 피하고 길한 일로 나아간다는 말을 피흉추길(避凶趨吉)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