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i란
Idāni sato ca sampajānoti
ettha saratīti sato. Sampajānātīti sampajāno.
Puggalena sati ca sampajaññañca vuttaṃ.
Tattha saraṇalakkhaṇā sati, asammussanarasā, ārakkhapaccupaṭṭhānā.
Asammohalakkhaṇaṃ sampajaññaṃ, tīraṇarasaṃ, pavicayapaccupaṭṭhānaṃ.
여기(제3禪의) sato와 ampajāno란
여기서 '기억한다'라고 해서 기억된 자이다. '즉시 안다.'라고 해서 즉시 알고 있는 자이다.
기억과 즉시 앎이 사람에 속하는 것으로 언급되었다.
여기서 기억은 기억하는 것이 특징이고, 잊지 않는 역할을 하며, 보호함으로 드러난다.
즉시 앎은 미혹하지(/잊지, 망각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고, 판단하는 역할을 하며, 조사로 드러난다.
* sampajañña: 각 순간을 즉시 아는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용례가
[abhikkante paṭikkante sampajānakārī hoti]에 나오는 sampajānakārī이다.
Saranti tāya, sayaṃ vā sarati, saraṇamattameva vā esā ti sati.
Sā apilāpana lakkhaṇā, asammoharasā,
ārakkhapaccupaṭṭhānā, visayabhimukhabhāva paccupaṭṭhānā vā,
thirasaññāpadaṭṭhānā, kāyādisatipaṭṭhāpadaṭṭhānā vā,
ārammaṇe daḷhapatiṭṭhitattā pana esikā viya cakkhudvārādirakkhaṇato dovāriko viya ca daṭṭhabbā.
(사람들이) 그것에 의해 기억들하고, 스스로 기억하고, 이것은 단지 기억일 뿐이기 때문에
이것을 기억이라고 한다.
이것은 열거(/나열)하는 것이 특징이고, 잊지 않는 것이 역할이다.
보호함으로 드러나고, 대상을 대면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강한 인식(想)이 근접원인이고, 身등(신수심법)이 근접원인이다.
대상에 굳게 서 있는 것은 기둥과 같고,
눈의 門등(안이비설신의)을 보호하는 것이 문지기와 같이 보아야 한다.
Tatrassa dovāriko paṇḍito byatto medhāvī, aññātānaṃ nivāretā, ñātānaṃ pavesetā.
‘Dovāriko’ti kho, bhikkhu, satiyā etaṃ adhivacanaṃ.
거기에 그의 지혜롭고 숙련되고 현명한 문지기는
모르는 사람들을 막는 자이고, 아는 사람들을 들여보내는 자이다.
비구들이여, '문지기'란 기억의 비유적 표현이다.
<* tato yogāvacaro ahite dhamme apanudeti, hite dhamme upaggaṇhāti.
anupakāre dhamme apanudeti, upakāre dhamme upaggaṇhāti.
evaṃ kho, mahārāja, upaggaṇhanalakkhaṇā satī”ti.
그래서 수행자는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고, 유익한 법들을 集持(집지, 저장/입력/기억)합니다.
도움 되지 않는 법들을 제거하고, 도움 되는 법들을 聚(취, 모음, 저장/입력/기억)합니다.
대왕이여, 이와 같이 기억은 (입력되는 사실을) 저장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Katamañca, bhikkhave, satindriyaṃ?
Idha, bhikkhave, ariyasāvako satimā hoti
paramena satinepakkena samannāgato, cirakatampi cirabhāsitampi saritā anussaritā.
So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vedanāsu…pe…
citte…pe…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
idaṃ vuccati, bhikkhave, satindriyaṃ.
비구들이여, 기억의 기능(記憶力)이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기억을 지니는 자이다.
최상의 기억과 슬기로움을 구족하여,
오래 전에 행하거나 오래 전에 말한 것도 기억하는 자, 회상하는 자이다.
그는 몸에 대해서 몸을 지켜보면서 산다. 열심인자, 즉시 아는 자, 기억을 지닌 자(인 그는)
세상에 대해 지나친 욕심과 불만족을 삼가하고서.
느낌들에 대해... 마음에 대해...
열심히, 즉시 알며, 기억을 지닌 그는 세상에 대해 지나친 욕심과 불만족을 조심하면서
법들에 대해 법을 지켜보면서 산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기억의 기능이라고 말한다.
첫댓글
한 번 잘못 입력되어 저장되면 그 이후에 수정하는 것은 무지 어렵습니다.
중요한 법수 하나 잘못 알려져서 많은 분들이 고생하고 있습니다.
최소한 남방 북방 논서에서는 공히 念 혹은 sati에 대해서는 모두 기억이라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그러다가 언제 부터인지 남방에서 위빳사나라는 지혜의 측면이 강조되어 '알아차림'으로 설명하게 되어서....
여러 주장들(번역어)이 난무하게 되었습니다.
4념처가 삼매에 무더기에 속하다고 반복해서 말씀드려도 지혜수행이라고 합니다.
//‘Dovāriko’ti kho, bhikkhu, satiyā etaṃ adhivacanaṃ.
거기에 그의 지혜롭고 숙련되고 현명한 문지기는
모르는 사람들을 막는 자이고, 아는 사람들을 들여보내는 자이다.
비구들이여, '문지기'란 기억의 비유적 표현이다.// 에서
adhivacana는 name의 명칭, attrîbute의 속성에 영역됩니다.( 출처 : https://suttacentral.net/define/adhivacana?lang=en )
그러면
//‘Dovāriko’ti kho, bhikkhu, satiyā etaṃ adhivacanaṃ.//의 경문 해석은
"비구여,
'문지기'가 sati의 명칭이다." 자... 그러면 원 번역이 오류일수도 있지요? 아닐까요?...
저는 봄봄님과의 이런 교류를 항상 감사히 생각합니다. 識의 증장에 도움이 많이 됩니다.
봄봄님,
추석 연휴 강건하시고 다복하시길 ...
알려 주신 https://suttacentral.net/define/adhivacana?lang=en 에는
designation, term, attrîbute, metaphor, metaphorical expression
....에서 metaphorical expression 즉 은유적 혹은 비유적 표현이라고 나오네요.
모든 도반님들 추석 연휴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_()_
@봄봄 마저요.. 그 앞에 name attribute가 먼저 있음을..초불은 왜 일케 두리뭉실 하게 했을까요? 실참...때문이죠! 아닌가요?
@붓다명상mindsati ‘Cha dvārā’ti kho, bhikkhu, channetaṃ ajjhattikānaṃ āyatanānaṃ adhivacanaṃ.
비구여, 여섯 개의 대문이란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안이비설신의)를 두고 한 말이다.
‘Dovāriko’ti kho, bhikkhu, satiyā etaṃ adhivacanaṃ.
비구여, 문지기란 sati를 두고 한 말이다.
-‘낑수까 나무 비유 경(S35:245)’-
sati에 관한 한,
부처님께서 sati에 대해 직접 정의를 내리신 유일한 경문입니다.
@붓다명상mindsati
아마 ....satiyā etaṃ adhivacanaṃ라는 의미에서 사띠를 비유를 표현한 문장들을 4부 니까야에 많이 나타나지 싶습니다.
그리고, sati가 행하는 기능의 설명이 봄봄님이 게시한 경입니다.
Saranti tāya, sayaṃ vā sarati, saraṇamattameva vā esā ti sati.
Sā apilāpana lakkhaṇā, asammoharasā,
ārakkhapaccupaṭṭhānā, visayabhimukhabhāva paccupaṭṭhānā vā,
thirasaññāpadaṭṭhānā, kāyādi-satipaṭṭhāpadaṭṭhānā vā,
ārammaṇe daḷhapatiṭṭhitattā pana esikā viya cakkhudvārādirakkhaṇato dovāriko viya ca daṭṭhabbā.(이 경문 이름 궁금■)
"이것 때문에 기억(Saranti), 혹은 이것은 그 스스로 기억하고, 혹은 단지 기억하기 때문에 sati이라 한다.
[대상에] 깊이 들어가는 것(apilāpana)을 특징으로 한다. 잊지 않는 것(asammosa)을 역할로 한다. 보호하는 것(ārakkha)으로 나타난다.
혹은 대상과 직면함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기억하는 것을 문지기하는 sati는 1.대상에 깊이 들어감 2. 잊지않음 3. 보호. 4. 대상에 직면함
등으로 나타남. sati는)
강한 인식(thirasaññā)이 가까운 원인이다. 혹은 몸에 대해서 문지기(상호의존관계)를 확립함[念處, satipaṭṭhā]이 가까운 원인이다.
이것은 기둥처럼 대상에 든든하게 서 있기 때문에(patiṭṭhitattā),
혹은 눈 등의 문을 지키기 때문에(rakkhaṇato) "문지기(dovāriko)"처럼 보아야 한다." [초불]'
라고요.
해서
문지기sati이라는 dovāriko은 여섯 감각장소(āyatana, 處)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지키는 역할입니다!
이는
이위자님이 늘 주장하시는 M10 "안으로 안이비설신의를 분명히 알고 밖으로 색성향미촉법을 알고 두변을 조건으로 결박을 알고...."에서의 감각장소 즉, 오문과 의문 전향이고 "아비담마"에서의 인식과정입니다. 즉 법에 대한 (여리)작의입니다.
이위자님도 건강회복하시길 또 즐거운 추석 연휴이 되시길...
@붓다명상mindsati
kāyādi-satipaṭṭhāpadaṭṭhānā를
[혹은 몸에 대해서 문지기(상호의존관계)를 확립함[念處, satipaṭṭhā]이 가까운 원인이다.] 이런 의미로 번역하셨나요?
@봄봄 마저요^^ 아비담마를 읽어 보면 pattha를 '상호의존괸계'에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