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밤 본머스에서 울린 종료 휘슬은 맨시티의 우승 도전을 끝냈고, 동시에 아스날 홈구장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밖에서는 거대한 축제가 시작됐다.
남녀노소 아스날 팬들이 경기장 주변으로 몰려들어 새벽까지 이어지는 환희의 파티를 벌였다. 사람들은 가로등 위로 올라갔고, 깃발이 휘날렸으며, 폭죽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정말 오랜 기다림 끝에 아스날이 마침내 챔피언이 된 것이다.
그러나 불과 5년 전만 해도 같은 장소는 완전히 다른 풍경의 무대였다. 2021년 4월, 수많은 아스날 팬이 경기장 그림자 아래 모여 또 한 번 감정이 폭발한 집회를 열었다. 이번에는 유럽 슈퍼리그 창설 시도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한 배너에는 “클럽은 사랑하고, 팀은 응원하지만, 구단주는 증오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또 다른 배너들은 훨씬 직설적이었다. “Kroenkes out” 구단주 가문의 수장인 스탠 크랑키는 당시 78세의 부동산 재벌로 슈퍼리그 추진의 핵심 인물 중 하나로 널리 여겨졌다.
많은 팬에게 그것은 마지막 인내심의 한계였다. 아스날은 2004년 이후 리그 우승이 없었고, 팬들 사이에서는 미국인 구단주들이 축구는 이해하지 못한 채 오직 수익만 신경 쓰며 클럽을 표류하게 만들고 있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런데 이제 이런 모욕적인 사건까지 벌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크랑키 가문은 어떻게 증오 대상에서 지금의 성공 신화 중심으로 변했을까? 본지는 여러 핵심 관계자와 인터뷰를 통해 전말을 파헤쳤다.
2019년 유로파리그 결승에서 아스날이 첼시에 1대4로 참패한 것은 단순한 패배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아스날은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했고, 이는 막대한 재정 손실 가능성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 사건은 한 부자의 중요한 회담으로 이어졌다.
당시 이사회에 합류한 조시 크랑키는 아버지 스탠 크랑키에게 감독도, 선수단도 더 젊어져야 하며, 클럽 전체에 “완전한 리셋”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젊음 선수 투자와 육성은 이미 크랑키 가문이 운영하는 다른 스포츠 프랜차이즈들의 핵심 철학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아스날에도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실제로 2년 전, 크랑키 가문의 LA 램스는 당시 겨우 30세였던 션 맥베이를 감독으로 선임하며 NFL 현대사 기록을 세웠다. 맥베이는 부임 첫 시즌에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었고, 올해의 감독상을 받았다. 이후 그는 결국 램스를 슈퍼볼 우승으로 이끌게 된다.
스탠 크랑키가 아스날에서 비슷한 길을 걷는 것에 대해 처음 의구심을 품었을 때, 당시 36세였던 조시는 이렇게 되물었다. “그럼, 저도 너무 어리다는 건가요?”
그해 11월, 에메리가 경질됐고, 37세의 아르테타가 감독직을 맡게 됐다. 크랑키 가문은 2007년부터 아스날과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2018년 러시아 재벌 우스파노프의 지분을 모두 사들이며 구단을 완전히 장악하게 됐다.
미국인 구단주들에게 초기 시간은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재건 사다리의 첫 단계를 세운 상태였다. 그렇다면 애초에 왜 아스날을 인수했던 것일까?
한 내부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스탠은 스포츠를 사랑한다. 그는 미주리에서 아버지의 목재 창고 바닥을 쓸고 회계 장부를 정리하며 일을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돈의 가치를 알고 있었고, 아스날과 프리미어리그가 저평가돼 있다고 봤다. 그에게 사업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스포츠의 묘미는 예측 불가능성에 있다.”
크랑키는 예측 불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자신이 소유한 스포츠 프랜차이즈들에 유능한 인물들을 핵심 보직에 앉히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실제로 여러 종목에서 우승이라는 보상을 얻었다.
크랑키를 잘 아는 사람들에 따르면, 그는 복잡한 이사회 구조나 관료주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오랜 경험을 통해 구단주가 지나치게 간섭하는 팀은 성공하지 못한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크랑키 가문을 ‘손 놓고 있는 구단주’로 보는 것도 틀린 시각이다. 모든 중요한 결정에는 최종 승인이 필요하고, 큰돈이 쓰인다면 반드시 명확한 근거를 요구한다.
공동 회장 조시 크랑키는 클럽과 구단주 사이의 핵심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그는 아틀레티코와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을 앞두고 선수단에 연설도 했다. 메시지는 단순하고 분명했다. “죽기 살기로 뛰어라. 동료들을 지켜라. 엠블럼을 자랑스럽게 대표하라. 그리고 축구를 즐겨라.”
2020년 12월, 아르테타는 어쩌면 시험공부하듯 준비에 몰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전 부회장이자 스탠 크랑키의 오랜 변호사였던 팀 루이스와 함께 덴버로 향했다. 그곳에서 중요한 정상 회담이 예정돼 있었다. 장소는 크랑키의 사무실이었다.
그들은 포지션별 계획과 이적 타깃 리스트까지 포함된 ‘5개년 계획’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또한 맨시티와 첼시의 성공 사례들을 분석한 프레젠테이션도 만들었고, 대서양을 건너기 전까지 여러 차례 리허설까지 진행했다.
회의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아르테타는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회의는 예상보다 훨씬 잘 진행됐고, 스탠 크랑키는 매우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분위기가 너무 좋아진 나머지, 대표단은 준비했던 이야기조차 끝까지 다 하지 못했다.
그들이 전달한 핵심 메시지는 분명했다. 아스날을 다시 정상으로 돌려놓고, 동시에 크랑키 가문의 이미지까지 회복하려면 대대적인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크랑키는 설득됐고, 실제 투자가 이어졌다. 그리고 이런 회의들은 이후 정기적으로 열리게 됐다.
따라서 유럽 슈퍼리그 사태가 터지고 팬들의 거센 시위가 벌어졌을 때조차, 물밑에서는 이미 아스날을 정상으로 복귀시키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던 셈이다.
당시 분노의 시위 현장에 있었던 사람 중 하나가 바로 Arsenal Supporters' Trust 소속의 Akhil Vyas였다. 그는 크랑키 가문의 완전 인수 직후, 조시 크랑키에게 직접 “당신들의 목표가 무엇이냐”라고 물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Akhil Vyas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는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고 말했어요. 저는 그때 웃음이 나왔습니다. 당시 우리는 그 목표와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거든요. 그런데 곧 슈퍼리그 사태가 터졌죠.”
“팬 단체와의 회의가 열렸고, 우리는 이사회 인사가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조시가 직접 왔고 분위기는 정말 격렬했어요.”
“저는 그에게 당신 가족은 영국 축구도, 아스날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구단을 팔고 떠날 때라고도 했죠. 아마 ‘우린 당신들을 원하지 않는다’고까지 말했던 것 같습니다.”
“조시는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오해하고 있다고 말하며, 신뢰를 다시 쌓을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그렇게 해냈습니다.”
이제 Akhil Vyas는 크뢴케 가문을 높이 평가한다. “팬들과 함께하는 자문위원회가 있는데 조시는 항상 참석합니다. 그는 비교적 조용한 사람이지만, 매 분기 두 시간 정도를 우리와 대화하는 데 씁니다.”
“그들은 분명 뒤에서 엄청난 일을 하고 있지만, 스스로 전면에 나서려 하진 않아요. CEO 갈릭도 비슷합니다. 선수들과 미켈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길 원하죠.”
“초반은 힘들었지만, 이제 그들은 훌륭한 구단주가 됐습니다. 조시가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원한다고 했을 때는 웃었지만, 지금은 정말 그 약속을 실현하기까지 단 한 경기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크랑키가 보유한 여러 스포츠 구단 사이에는 상업 부문 협업도 존재한다. 아스날 역시 미국 기업 파트너를 유치할 기회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아스날의 이번 시즌 수익이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700m 파운드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한다.
또 다른 공통점도 있다. 크랑키 가문은 예를 들어 LA 램스가 스타 쿼터백 매튜 스태포드를 중심으로 팀을 만든 것처럼 팀의 중심축이 될 핵심 스타를 데려와 그를 중심으로 팀을 구축하는 성향이 있다.
2022년, LA 램스는 22년 만에 첫 슈퍼볼 우승과 함께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어디서 많이 본 이야기 같지 않은가? 그리고 불과 4개월 뒤, 콜로라도 애벌랜치는 21년 만에 첫 스탠리컵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1년 뒤에는 덴버 너기츠가 창단 첫 NBA 우승을 달성했다.
이제는 아스날의 차례였다. 물론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존재한다. 팀 루이스는 지난해 9월 이사회 개편 이후 갑작스럽게 떠났고, 기술 디렉터 제임스 엘리스 역시 올해 2월 팀을 떠나 현재 브리스톨 스포팅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앞서 본지가 보도했듯, 루이스의 퇴장은 마치 드라마 ‘Succession’을 연상시키는 권력 투쟁의 결과였다. 일부는 조시 크랑키가 스스로 주도권을 쥐고, 아버지 스탠 크랑키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고 믿고 있다.
앞으로 조시 크랑키와 CEO 갈릭은 더 큰 시험대에 오르게 될 전망이다. 특히 경기장 확장 문제는 핵심 과제다. 경기 수익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증축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아스날은 주변 공간 부족이라는 현실적인 제약에 묶여 있다. 약 1만~1만 5천 석 규모 확장을 통해 연간 100m 파운드 가량 추가 수익을 만들고, 동시에 재원 조달하려면 상당히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경기장과 유니폼 메인 스폰서 계약 역시 2028년에 만료된다. 수요일에 갈릭은 사무실에서 샴페인을 곁들여 직원들의 노고에 감사를 전했고, 이후 약 50명의 직원과 함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맞은편 The Drayton Park Arms에서 뒤풀이를 즐겼다.
결국, 이들은 성공을 실제로 만들어낸 미국인 구단주들이었다. 팬들의 여론도, 클럽의 운명도 바꿔낸 사람들이다. 7년 전 바쿠에서는 첼시가 승리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압박 속에 놓인 첼시 구단주들이 런던 반대편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