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zul.im/0Nl3zO
조선시대 아동을 대상으로 발생한 범죄 중
왕조실록에 자주 등장하는 종류가 바로
'손가락 절단 사건'입니다.
납치된 아이가 손가락이 잘린 채 발견되는 일이
간혹 발생했는데,
범인들은 주로 걸인이나 관아에서
시체 처리를 담당하는 오작인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아이의 손가락을
'약'으로 비싸게 팔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곤 했다는군요.
중종 27년 3월 8일에는
왕에게 다음과 같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반송방(盤松坊)에 있는
고(故) 관찰사 유세침(柳世琛) 집의
10여 세된 아이 종을
어떤 사람이 산 속으로 유인하여 두 손가락을 끊고,
그 흔적을 없애기 위하여
온몸을 찔러 상처를 입혀
거의 죽게 되었다가 요행히 살아났습니다."
(17집 364 면)
실록에 따르면,
당시 주민들 사이에는 중한 병을 앓는 이에게
살아있는 사람의 간담(肝膽)이나
손가락을 먹이면
병이 낫는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걸인이나 오작인이 뇌물을 받고,
주로 천민이나 종 신분의 아이들을 납치해
손가락을 자르거나
극단적인 경우 살해해
쓸개를 빼어가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지요.
중종은 이같은 소식에 놀라
형조 당상관과 포도대장에게
비밀리에 범인을 잡아들이라는 명을 내립니다.
하지만, 의술이 발달하지 않은 당시 상황에서
산 사람의 손가락을 명약으로 여기는 인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피해자인 아이들이 대부분 천한 신분이었던지라
범죄는 암암리에 계속 이어진 듯 합니다.
4년 뒤인 명종 1년 11월 25일,
비슷한 사건이 다시 한번 실록에 등장합니다.
한성부(漢城府)가 아뢰기를,
“전 영춘 현감(永春縣監) 이성(李誠)의 계집종이
3살된 아이를 이달 9일 진시(辰時)에 잃어버렸다가
미시(未時)에 남학동(南學洞)
소나무 밑에서 찾았는데,
오른손 손가락 두 개가 칼에 잘려졌다 합니다."
(19 집 468 면)
이번에도 여종의 어린 아이가 납치되어
손가락을 잘린 사건이었습니다.
한성부는
"뇌물을 받고 아이들을 유인해
쓸개를 빼가고 손가락을 자르는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은 마땅히 참수형에 처하고
신고하는 자는 상을 주어야 한다"
고 왕에게 요청합니다.
명종은
"매우 경악할 일이다.
형조에서 승전을 받들어
기필코 체포하도록 하라."
는 명을 내립니다.
두 사건 모두 결과적으로 범인이 잡혔는지,
이후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는
실록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마 추적이 어려워 범인을 잡기
무척 힘든 사건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아무리 왕이 엄벌을 명하고
형조에서 체포 의지를 다진다해도,
손가락에 대한 잘못된 '집착'을
뿌리뽑을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청해서 자르기만 하면
손가락 절단이 큰 칭찬이 되는
당시 분위기에 있었습니다.
세종 21년 4월3일,
예조에서 왕에게 다음과 같이 청합니다.
"평안도 가산군(嘉山君) 사람 금음도(今音都)가
악질(惡疾)에 걸려 앓았는데,
그 아들 원진(元進)이 나이 아홉 살로서
손가락을 끊어 피를 먹여서 치료하였삽고,
또 같은 고을 사람 김을송(金乙松)도
급질을 앓았는데,
그 아들 귀시(貴時)가
역시 아홉살 된 어린아이로서 손가락을 끊어
피를 먹여 치료하였사오니,
청하건대,
모두 정문을 세우고 복호(復戶)하여 주게 하옵소서."
(4 집 199 면)
당시 효자로 인정받아
정려문과 복호를 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손가락 잘라 부모에게 먹이기'였습니다.
정려문 (旌閭門) :
효자, 효부, 열녀, 충신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나 문.
복호 (復戶) :
조선 시대에,
충신ㆍ효자ㆍ군인 등
특정한 대상자에게
부역이나 조세를 면제하여 주던 일.
실록에는 위의 원진이나 귀사와 같이
10살도 채 안된 어린 아이가
아픈 부모를 위해 손가락을 잘라
병을 낫게 하였다는
'효담'들을 자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손가락을 잘라 뼈와 살을 태워 가루를 낸 다음
병든 부모나 형제에게 먹였다거나,
허벅지 살을 베어 먹였다는 등이며
이같은 효담이 널리 퍼지면
나라에서 상을 내렸다는 것이지요.
우리도 사극을 통해
많이 본 장면이기도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10살도 안 된 아이가
스스로 손가락을 자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죽을 듯이 앓던 부모가
제 자식의 살을 먹었다고 씻은 듯이 낫는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당시 효자로 인정받으면 정려문이 세워지고
복호를 받을 뿐 아니라,
나라에서 그 일가에게
세금과 요역 부담을 줄여주고
재물을 내렸다고 합니다.
수많은 '손가락 절단' 효자, 효녀들 중
일부는
가난한 집안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수 밖에
없었을 수도 있겠지요.
첫댓글 저렇게까지 살고 싶을까..
아니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