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수면 행동장애는 신경계 퇴행성 질환의 전조증상일 가능성이 높아 조기 발견과 관리가 중요하다 |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자다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팔다리를 휘두르다 침대에서 굴러떨어진 경험이 있다면 단순한 잠꼬대로 넘기지 말아야 한다. ‘렘수면 행동장애(REM Sleep Behavior Disorder)’의 대표적인 증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렘수면 행동장애는 자는 동안 꿈의 내용을 그대로 몸으로 표현하는 질환으로, 침대에서 떨어지거나 파트너를 다치게 하는 신체적 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 나아가 파킨슨병 등 신경계 퇴행성 질환의 전조증상일 가능성이 높아 조기 발견과 관리가 중요하다. 렘수면 행동장애의 원인과 증상, 치료법에 대해 신경과 지기환 교수(인제대학교 부산백병원)와 함께 자세히 알아본다.
몸은 잠들어도 뇌는 깨어있다…렘수면, 그리고 행동장애가 생기는 이유
수면은 크게 비렘수면과 렘수면으로 나뉜다. 렘(REM)수면은 영어로 ‘Rapid Eye Movement’의 줄임말로, 잠자는 동안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는 특징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전체 수면 시간의 약 20~25%를 차지하며, 나이가 들면 전체 수면 시간이 줄어들더라도 렘수면 비율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렘수면 중에는 뇌가 깨어 있을 때처럼 활발하게 움직이지만, 몸은 반대로 거의 움직이지 못한다. 지기환 교수는 “렘수면 시 눈과 호흡 관련 근육을 제외한 대부분의 근육에 힘이 빠지는 ‘무긴장 상태(atonia)’가 되기 때문에 머리는 깨어 있는 것처럼 활동하지만 몸은 잠들어 있는 상태”라며 “꿈에서 달리거나 싸우더라도 실제로는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렘수면 행동장애는 이 무긴장 상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꿈속 행동을 실제로 따라 하게 되는 질환이다. 렘수면을 조절하는 뇌간 회로에 이상이 생기면서 근육 억제 기능이 떨어지고, 그 결과 꿈의 내용이 그대로 행동으로 표출된다. 항우울제 같은 약물, 심한 수면 부족, 음주, 다른 수면 질환이 증상을 악화시키거나 유발할 수 있으며, 50세 이후 여성보다 남성에게서 더 흔하게 나타난다.
이 질환은 잠꼬대, 악몽 장애, 혼돈 각성 등 흔히 헷갈리는 증상들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단순 잠꼬대는 잠깐 중얼거리거나 몸을 조금 움직이는 정도이며, 스트레스가 줄거나 충분히 자면 나아지는 경우가 많다. 악몽 장애는 무서운 꿈을 꾸다 깨는 질환이지만 실제로 몸을 크게 움직이는 경우는 드물다. 혼돈 각성은 주로 어린이·젊은 사람에게 나타나며 자다가 일어나 두리번거리거나 침대에서 떨어지는 행동을 보이지만, 완전히 깬 상태가 아니라 잘 깨지 않고 행동을 기억하지 못한다. 반면 렘수면 행동장애는 꿈속 내용을 실제로 따라 하는 것이 특징으로, 깨운 뒤 비교적 빨리 정신을 차리고 꿈 내용을 기억하는 경우가 흔하다.
“환자 절반 이상이 다친다”… 방치하면 외상에서 퇴행성 뇌질환까지
렘수면 행동장애는 단순히 잠버릇이 심한 정도로 여겨서는 안 된다. 연구에 따르면 환자의 절반 이상이 본인이나 함께 자는 사람의 신체 손상을 입힌 것으로 나타났다. 얼굴이 찢어지거나 치아가 손상되고, 뼈가 부러지거나 심한 경우 머리를 크게 다치는 사례까지 보고된다.
다음과 같은 경우라면 병원을 찾아 정확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 잠결에 반복해서 침대에서 떨어진다
· 자다가 배우자를 때리거나 다치게 한 적이 있다
· 자는 도중 소리를 지르거나 폭력적인 행동이 반복된다
· 50세 이후 이런 증상이 새롭게 시작됐다
특히 냄새를 잘 못 맡거나 변비가 심해지고, 손 떨림이나 행동이 느려지는 증상이 함께 나타난다면 단순한 잠버릇이 아니라 렘수면 행동장애일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렘수면 행동장애가 더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수면 문제가 아니라 뇌 질환의 이른 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원인 없이 발생하는 ‘특발성 렘수면 행동장애’는 뇌 속에 알파 시뉴클레인이라는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쌓이는 질환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으로 파킨슨병, 루이소체 치매, 다계통위축이 있다.
주목할 점은 렘수면 행동장애가 이런 질환보다 훨씬 먼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기환 교수는 “특발성 렘수면 행동장애 환자 중 상당수가 몇 년에서 수십 년에 걸쳐 신경퇴행성 질환으로 진행한다”라며 “평균적으로는 약 10년 안팎의 간격을 두고 먼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렘수면 행동장애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파킨슨병이나 치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적절한 평가와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수면다원검사가 첫걸음… 안전·증상 완화·추적까지
렘수면 행동장애는 증상만으로 진단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검사는 수면다원검사다. 수면 중 뇌파·호흡·산소 수치·몸 움직임을 동시에 측정하며, 렘수면 때 정상적으로 나타나야 할 근육 이완이 억제되고 근육 활동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하는지를 확인한다. 비슷하게 보일 수 있는 다른 수면질환이나 뇌전증과 구별하는 과정도 거친다.
지기환 교수는 “치료의 목표는 크게 세 가지다”라며 “자다가 다치지 않도록 안전하게 만드는 것, 꿈속 행동을 줄여 환자와 가족 모두 편하게 잘 수 있도록 증상을 줄이는 것, 그리고 신경퇴행성 질환으로의 변화 여부를 살피기 위해 정기적으로 추적 관찰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변화가 일찍 발견되면 그만큼 빨리 평가와 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
약물치료는 클로나제팜이 기본이다. 다만 아침 졸음, 집중력 저하, 균형 감각 저하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멜라토닌은 꾸준히 복용하면 증상을 완화하고 편안한 수면을 돕는 식이 보충제로 활용된다. 술을 줄이거나 끊고,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는 약물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수면무호흡증은 렘수면 행동장애와 동반되는 경우가 많아 함께 치료해야 한다.
지기환 교수 | 출처: 인제대학교 부산백병원
안전한 수면 환경부터 갖춰야… 남녀 모두 방치하면 안 되는 이유
안전한 수면 환경을 만드는 것도 치료의 핵심이다. 침대 옆에서 날카롭거나 값비싼 물건, 무기나 시계·휴대폰 등을 치우고, 침대 근처 바닥에 쿠션을 깔거나 침대 양쪽에 보호대를 설치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필요하면 배우자와 따로 자는 것도 방법이다. 수면 시간표를 만들어 규칙적인 수면 패턴을 유지하는 생활 습관도 증상 관리에 보탬이 된다.
지기환 교수는 “렘수면 행동장애는 남성에게 더 흔한 질환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남성 환자에게서 폭력적 행동과 신체 손상이 더 두드러져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성 환자는 증상이 덜 뚜렷해 진단이 늦어지거나 놓치기 쉽다”라며 “성별과 관계없이 이상 행동이 반복된다면 단순한 잠버릇이 아니라 뇌가 보내는 중요한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꿈속 행동을 실제 몸으로 따라 하기 시작했다면, 몸이 보내는 신호를 참거나 숨기지 말고 병원을 찾아 정확한 검사와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이새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