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주는 정예은
이 소설 속 비열하고 추악한 인물들은 왜 그렇게 되었을까? 나는 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얻기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돈으로 사람을 농락하고, 이 <죄와벌> 속에서 돈은 범죄를 저지르게 하는 원인이다.
주인공이 자신의 관념이 옮음을 증명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자신의 환상이 깨지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책의 저자인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했던 '신과 악마가 싸우고 있다. 그 싸움터가 인간의 마음이다'라는 문장을 가장 잘 나타냈기 때문이다. 악마의 속삭임이 관념이 되어 살인을 저지르고, 살인은 저지르고 난 후에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장면을 읽으며 악마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흔들리는지 알 수 있었다.
소망하는 민시야
제목만은 여러 번 들어본 <죄와 벌>을 드디어 읽었다. 이야기가 단순한 소설이기에 3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죄와 벌, 즉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자신의 사상에 따라 살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노파와 예상에 없던 노파의 여동생을 살해한 뒤 벌을 받는 내용이다. 여기서의 벌은 죄책감을 뜻한다. 살인을 저지르기 전에도 정신상태가 좋지 않았으나 살인을 저지른 후에는 더더욱 미친 사람처럼 변한다. 나는 이런 주인공이 너무 안타까웠다. 이렇게 기절하고 쓰러지고 고통받을 바에는 서둘러 자수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다. 주인공도 감옥에 들어간 뒤에 온전히 새로워진 나를 느끼며 더 편안함을 느끼는 것을 볼 수 있다. 죄를 지은 것 자체도 잘못된 행위이지만, 죄를 지은 뒤의 죄책감이 더 무서운 것 같다.
올바르게 사는 삶, 교양있는 삶, 지혜로운 삶은 어떤 삶일까? 라스콜리니코프가 살인을 한 이유는 돈도 있지만 자신의 신념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비범한 사람은 인류의 발전을 위해 범죄를 저질러도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을 교양있고 비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행위가 옳은 것일까?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교양있고 비범한 사람은 지혜로워야 한다. 지혜는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런데 범죄는 악한 일이다. 즉 인류를 발전시키는 사람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노파를 살해하는 게 아니라, 노파와 대화를 해야했다. 주인공은 남의 생명을 자신이 함부로 판단하는 일을 벌였다. 한낮 평범한 인간이 말이다.
삶은 어떻게 살아야하는 것일까? 주인공의 삶을 보며 이런 의문이 든다. 이 책의 결말이 이 질문에 답한다. 서로 도움을 주며 사랑해야한다. 이런 마음만이 삶을 알맞은 길로 이끈다. 자신의 이론만을 믿어 황폐한 삶을 살아가던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을 온전히 사랑해주는 소냐 덕분에 새로운 삶을 맞이한다. 나는 소냐의 마음이 정말 인상깊었다. 흔히 착한 사람은 바보라고 한다. 소냐는 바보처럼 착했다. 내가 아닌 남을 위해, 가족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살아가며 무조건적인 희생과 사랑을 준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다. 나의 이득만을 생각하며 머리 굴리는, 나만을 생각하는 동물이다. 하지만 나는 소냐의 마음을 닮고 싶다. 가장 힘없고 사람들에게 무시받는 인물이지만 소냐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고 삶을 변화시켰다. 나도 다른 사람을 사랑함으로서 나 뿐만 아니라 모두를 변화시키는 바보처럼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