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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4: 12 행하는 그 일로 - 요 14: 15 나를 사랑하면
요 14: 12 행하는 그 일로 -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
주께서는 또한 제자들에게 그들이 그의 행한 일도 행할 것이라는 놀라운 약속도 하셨고, 또 제자들이 그가 행하신 일보다 더 큰 것도 행할 것이라는 더욱 놀라운 말씀도 하셨다.
과연 제자들은 주께서 승천하신 후 나아가 복음을 전할 때 많은 기적을 행하였고, 심지어 베드로는 한 번 설교할 때 3천명의 영혼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주 예수께서 행하신 일보다 더 놀라운 일이었다.
그것들은 다 주께서 하늘에서 보내주신 성령의 능력으로 행한 일이었다. 그러한 일들은 주의 말씀의 성취일 뿐 아니라, 그의 신성을 더욱 확증하는 일들이었다.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제자들은 예수님 없이 자신들만 남겨진다면 하는 생각에서 극도로 불안했고 아직까지 예수님의 말씀에 이해가 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좀더 확실한 말씀을 주신다.
그것은 믿는 자에게 나타날 기적이 예수님이 하신 일, 그 때 그런 일보다도 더한 일들도 일어날 수 있다는 소망을 넣어주신다. 이 말씀은 사도들을 상대로 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이 일반 신자들을 염두에 두신 것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1) 이 부분(14-17장) 말씀이 사도들의 사명에 대한 주님의 임종유언(臨終遺言)과 같은 까닭이다.
* 요 14: 26 -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 요 17: 18 -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2) 이 부분 교훈의 마감이라고 할 수 있는 17장의 기도에, 주님께서 사도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면서 후대의 신자들을 사도들에게서 구분하신 까닭이다(17, 20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곧, 사도들이 그리스도께서 주신 권능에 의하여 이적을 행하며, 기타 위대한 일들을 하되, 예수님 자신이 행하신 것과 같은 정도의 것도 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2]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그보다 큰 일"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므로 성령이 오셔서 이루실 만국 전도와 구령(救靈) 사업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땅 위에서 행하신 일들은 미래의 이 큰 일들을 위한 준비였다. 신비자들은 이 구절에 근거하여, 신자들이 예수님의 행하신 이적보다 더 큰 이적을 행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땅 위에서 행하신 예수님의 일과 승천하신 뒤에 그의 하시는 일과 구분을 모르는 가운데서 일어난 오해이다.
"그보다 큰 일"은 외부적인 육신 상대의 이적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시므로 완성된 구원을 성령에 의하여 하나님의 백성에게 실시함이다.
외부적 이적은 "비유로 말씀하신" 계시(啓示)라고 할 수 있고, 성령으로 말미암은 구원실시는 "밝히 말씀하시는" 계시라고 할 수 있다.
* 요 16: 25-28 – 25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26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27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28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성령이 오셔서 사도들을 통하여 만국에 복음을 전하시는 것은, 이렇게 큰 일이다.
* 시 27: 8 -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 사 42: 6 -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 슥 9: 10 –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유브라데,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요 14: 13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사도들(신자들)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그런데, 이 말씀이 위의 12절에서 독립된 것인가? 혹은 그것의 연속인가? 이것은 하나의 난제이다.
(1) 핸드릭슨(Hendriksen)은,
이 부분 말씀이 12절 내용을 더 설명해 주는 부속 문구라고 한다.
고데이(Godet)와 즈안(Zaln)도 역시 같은 해석을 취한다.
(2) 크로솨이데(Grosheide)와 버나드(Bernard)와 렌스키(Lenski)등은,
이 부분 말씀을 또 하나의 독립적인 약속으로 간주한다. 특히버나드(Bernard)는, 13절 초두에 있는 "또한"(*)이란 헬라 원어에 근거하여 이와 같은 주장을 세웠다.
1]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 이름(ojnovma오노마) "이름, 권위, 대의"는 예수님이 떠나시고 난 후에 어떻게 예수님을 만날 것인가를 가르쳐 주고 계신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해야 할 것은
* 마 18: 5 -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 막 9: 37 -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 막 16: 17 -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 눅 9: 48 -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 눅 10: 17 -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벌써 이적과 능력이 나타남을 제자들도 경험하고 있었다.
주께서는 또 제자들에게 그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우리의 중보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담대히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고 그러면 주께서는 응답하실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그의 십자가의 공로와 의(義),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얻게 된 하나님 자녀의 특권 등으로 기도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1) 예수님의 권위(權威), 혹은 공로(功勞)에 의지하여 기도함이다.
(2) 그의 계명을 지키며, 그의 뜻대로 기도함이다.
2] 내가 행하리니,
"내가 시행하리니"란 말씀은, 아버지께서 기도 응답하심이 아들로 말미암아서 실행됨을 가리킨다(Barrett).
주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대하여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 자이시다.
그는 영원하신 하나님 아들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3]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기도의 응답은 언제나 인간의 사욕을 채우려 함이 아니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어 그에게 영광이 돌아가게 하려 함이다.
이런 기도 응답은 그리스도의 중보적 역사로 인하여 실시되는고로, 여기서 "아들로 말미암아"란 말이 쓰여 있다.
요 14: 14 내게 구하면 -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
주님은 무엇이든지 예수의 이름으로 간구하는 기도에 대하여 무엇이든지 행하신다고 약속하셨다.
1]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이것은, 윗 절에 말씀하신 약속을 거듭 말씀하여 고조하는 것이다.
"행하리라"의(poihvsw 포이에오)는 "만들다, 제조하다, 행하다, 완수하다, 형성하다"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제조하듯 만들어 내어 형성시켜 기도를 이루어주시겠다는 약속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성도는 주의 재림과 천국 소망으로 위로를 받자.
본문은 주께서 그들을 떠나신다는 말씀을 듣고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주신 위로의 말씀이다.
주께서는 제자들을 위해 거처를 준비하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실 것과 다 준비되면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셨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하늘로부터 다시 오실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재림은 끝이 아니고 천국을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그는 구원받은 우리 모두를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둘째,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이 천국 가는 유일한 길이다.
그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죄인들은 그를 통해, 오직 그를 통해서만, 즉 그를 영접하고 믿음으로만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고 천국으로 갈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이 천국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시며 구원의 진리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시다.
베드로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말하였다. (행 4: 12)
바울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말했다. (딤전 2: 5).
셋째,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신적 구주시다.
주께서는 사람들에게 친히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셨다. 그는 그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셨다.
그는 자신과 아버지를 동일시하셨고 그의 행하신 기적들이 그것을 증거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구주 예수님은 신적 구주이시다. 신적 구주 예수께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신다.
넷째, 신적 구주이신 주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의 응답을 약속하셨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그것은 항상 잔고가 충분한 직불카드와 같다. 기도는 구원받은 성도의 특권이다.
3. 진리의 영 ( 14: 15-20 )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 14: 15 나를 사랑하면 -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가리킨다. '내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말씀을 이어서 하셨는지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만을 구하기 전에 이미 일러둔 '새 계명'을 지키라는 것이다(요 13: 34-35).
제자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그의 계명을 지켜야 할 것이다(21-24절). 이제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큰 관심은 그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신약교회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1]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여기서 예수님은, 사도들더러 그의 계명을 지키라고 하신다. 신자가 그의 계명을 지킴이 곧, 그를 사랑함이다.
그런데 문제되는 것은, 이 말씀이 앞절과 관계를 가지는가 혹은 독립적인 말씀인가? 또 혹은 이것이, 16절 이하에 나오는 보혜사 약속과 관련된 말씀인가?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몇몇 학자들의 의견을 생각해 보고저 한다.
(1) 크로솨이데(Grosheide)는,
이 구절의 말씀이 독립적인 언사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 보기에는 그런 것 같지 않다.
(2) 렌스키(Lenski)와 핸드릭슨(Hendriksen)은,
이 귀절 말씀이 위에 있는 많은 말씀과 관련되었다고 생각한다. 곧, 그들은, 여기 "사랑"이란 것을 믿음(11절 끝)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계명"이란 것을 기도하라는 부탁과 같이 생각하여 윗말과 연결한다.
(3) 버나드(Bernnard)는,
이 말씀을 16절 이하의 보혜사 약속과 관련시킨다. 곧, 그는 생각하기를, 신자가 계명을 지켜야 되는데, 그것은, 16절 이하에 약속된 성령의 은혜로만 성립된다는 것이다.
(4) 다른 학자들은 이 구절을 16절 이하와 연락시키면서도 위의 버나드(Bernnard)와 달리 취급한다.
이들은, 15절과 아랫 말씀을 연결시켜 다음과 같은 뜻을 찾는다. 곧, 신자들이 계명을 지켜야 보혜사가 오신다는 것이다.
여기서 계명은 신자들끼리 서로 사랑하는 것과(34절), 합심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을 의미하였을 것이다. 신약 교회를 창립하는 오순절 성령 운동은 물론 구원사(救援史)에 속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약속 성취이다. 이 약속 성취는 인간의 주관적 조건에 매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약속 성취를 예견하시면서 사도들과 그때 신자들의 주관적 준비를 명하셨다. 예컨대, 그들에게 예루살렘에 유하며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말씀이다.
* 행 1: 4 -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그들의 기다리는 일은 바로 기도에 전력함이었다.
* 행 1: 14 -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5) 우리는, 이 문제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계명을 지키라"는 주님의 말씀은, 14절에 나온 기도하라는 부탁과 관계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기도 응답을 받으려면 주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
* 요 15: 7 -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그렇다고 해서 이 구절의 말씀이 그 아래 나오는 말씀, 곧 성령이 오시리라는 약속과 관계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그들이 주님의 계명을 지키며 기도하는 결과로 성령님이 오시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 행 1: 12-14 – 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13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 행 2: 1-4 –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지킨다"는 말은, 보배를 지키는 보관함에 대하여 사용하는 말이다. 이것은 계명을 중심에서부터 사랑하여 지킴이다.
계명 지킴과 기도 응답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가 응답 된다는 것은, 마술적 의미에서 그렇게 된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종교 윤리적 내용을 가진 것이다.
그것은 기도자가 주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는 사실에 있어야 그의 기도가 응답 된다는 것이다. 불건전한 신비주의는 계명과 율법을 무시하는 경향에 있다.
예를 들면, 재세례파에 속하는 란텔파(RANTERS)는 자기들이 모든 계명을 초월한다(계명의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뜻)고 하였다(R.A. knox. Enthusiasm, p. 173). 그들의 이와 같은 주장은, 자기 자신을 신격화(神格化)하는 참람한 행동이다.
2] 더 큰 일도 하리니 (요 14: 12-15)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무나도 놀라운 말씀을 주셨다. 이제 주님과 다시는 만날 수 없는 헤어짐에 대한 염려와 근심에 싸인 제자들에게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라고 하셨다.
우리는 이 말씀을 여러 가지 각도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는 “나를 믿는 자”란 말씀의 믿는 자의 범위는 어떤 것이냐? 하는 것이며, 다음에 “내가 시행하리니”라고 하신 말씀에서 그렇게 행하시는 일이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은 그 일을 행하시는 분이 내가 아니라 주님 자신이심을 밝힌 일이다.
또 하나는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하신 말씀으로 이 같은 일의 전제조건(前提條件)으로 주님께 구하는 기도가 따라야 한다는 사실이다.
(1) 나를 믿는 자
예수님은 교회를 위해 나타내시는 그의 위대한 역사를 “나를 믿는 자”를 통하여 이런 일을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셨다.
① 주의 이름을 믿고 주님과 연합된 성도를 말한다.
주 예수를 믿는 믿음이 없으면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이루어질 수 없기에 이런 사람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② 믿음은 주님께 대한 의뢰를 말한다.
믿음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소망이므로 주님께 대한 의뢰가 없이는 소유할 수가 없다. 이러한 믿음으로 주님을 섬겼던 바울은 이렇게 증언하였다.
* 빌 4: 1 -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③ 믿음은 약속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다.
하나님은 우리로 어떻게 자기를 의뢰하라고 하시는가? 하나님을 의뢰하는 의뢰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뢰라는 것을 보여 주신다.
* 시 119: 42 - 그리하시면 내가 나를 비방하는 자들에게 대답할 말이 있사오리니 내가 주의 말씀을 의지함이니이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으로 자기를 우리에게 나타내시고, 그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명령하시며, 그의 말씀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그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며, 그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약속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의뢰하는 일은 곧 하나님께 대한 신실한 의뢰이다.
④ 이 믿음은 주의 이름으로 구하는 기도가 포함되어 있음을 가르친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라고 하신 말씀은 “나의 하는 일도 하리라”고 하신 그 일을 이루심에 반드시 우리의 기도가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밝히신 것이다.
기도란 믿음이 따라야 하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2) 이보다 더 큰 것도 하리라.
예수님은 “또한 이보다 더 큰 것도 하리니”라는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셨다. 우리는 이 말씀을 교회사적인 측면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① 주님의 권능은 인간의 생명을 구원하시는 영적인 권능에 있다.
예수님은 이 권능을 믿는 자들에게 주신다.
* 행 1: 8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실상 복음으로 인한 구원의 권능은 예수님의 생존하셨을 때보다 그가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승천하신 후 그의 제자들에 의하여 강력하게 나타났다.
② 이 말씀에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나타나는 실질적인 권능의 역사도 포함되어 있다.
이 권능의 역사는 주로 치료의 역사로 나타났다. 예수님이 지상에서 행하신 권능은 대부분의 경우 병자를 고치시는 기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같은 치료하시는 권능의 역사가 두 가지 면으로 사도 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어 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주님의 이 말씀이 초대교회 시대에는 사도적 권능으로 나타났다.
사도적 권능이란 완전하고도 즉각적인 권능으로 나타나는 역사를 말한다.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고 있었던 사람에게 나타난 온존한 권능이라든가, 죽은 다비다를 살려낸 일 등, 성경에 나타나지 않은 사건만도 부지기수이다.
이런 사도들의 역사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바가 이루어진 것이다.
ⓑ 다른 면은 그 이후 이 같은 역사가 점차 교회의 은사적인 권능으로 나타났다.
* 고전 12: 8-10 – 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말씀에서 우리는 주님의 권능이 은사적인 면으로 변해져서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이 같은 위대하고 놀라운 권능을 행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전혀 그 근거가 사도들이나 은사 받은 성도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신 주님께 있기에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일은 분명히 영으로 다시 오셔서 우리 속에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일에 대한 말씀이다.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라고 하신 말씀에서 이 보혜사는 바로 그리스도의 영이시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 속에서 그의 전능하신 영으로 우리 육신의 연약에 얽매이심이 없이 그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그의 권능을 따라 이런 일을 능히 행하시는 것이다. (요 16: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