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에 흰 고무신
해강 김효찬
초등학교 6학년 2학기 때 있었던 일이다.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면사무소 소재지에서 약 5km 떨어진 곳에 새적골(신적)이라는 마을이 있다. 사방은 참나무와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냇가 옆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다. 티 없이 맑은 하늘과 공기가 상큼한 하늘 아래 작은 동네이다.
당시에는 버스가 없어서 집에서 학교까지가 약 5km 거리를 걸어 다녔다.
그 당시 시골에는 친구들 모두가 검정 고무신을 신고 책보자기에 책을 싸서 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때는 보이 스카우트를 했다
부모님께서 운영하던 정미소와 과수원이 있었고 고추밭과 논농사로 생활을 했기에 큰 어려움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6학년 2학기 11월 어느 날 아버지께서 5일장에 쌀을 팔아서 가족들 양말과 바지를 사 오셨는데 내 것은 흰 고무신 한 켤레였다. 내년에 중학생이 되면 읍내 아이들은 흰 고무신을 신고 다닐 테니 너도 한번 흰 고무신 신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하시며 건네주신 기억이 생생하다.
귀한 흰 고무신을 신문지에 싸서 사랑방 이불장 속에 숨겨두고 2주일 동안 가슴만 설레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하고 용기를 내어 평소보다 30분 빨리 등교하면서 흰 고무신을 신고 걸으면서 때론 달린, 행복한 등굣길이었는데 마을을 지나 우리 집 과수원 끝나는 부분에서 오른쪽 고무신이 돌에 걸려서 앞부분이 찢어지게 되어 왼쪽만 흰 고무신을 신고 오른발은 맨발로 흙을 밟으며 학교로 갔다. 걱정이 되어 혼이 날 것 같아서 수업이 끝나자마자 급식 빵을 받지도 않고 맨발로 집으로 와서 흰 고무신을 이불장 속에 다시 넣어 두었다.
며칠이 지나서 어머니께서 가족들에게 신발을 씻을 거니까 모두 꺼내 놓으라 하셨다. 못 들은 척하면서 자리를 비웠고 며칠 지나서 소 죽 끓이면서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신발이 고무니까 불에 녹여서 붙이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에 신발을 아궁이 속으로 넣어 조금씩 녹이기 시작했다. 찢어진 앞 부분이 조금씩 붙고 있을 때 신발에 불이 나서 모두 타버렸다.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리면서 남은 한쪽을 이불장 속에 숨겨 두었다.
며칠이 지나고 마침 아버지와 일하는 아저씨가 건고추를 팔기 위해 마대에 번호와 고추 근수를 매직으로 적는 것을 보았다. 기다렸다가 일이 끝난 다음 검은 매직을 가지고 와서 흰 고무신 외부를 검은색으로 칠했다. 밤에만 신으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이불장 속에 숨겨 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을 먹고 있는데 친구들이 놀러 가자고 불러서 흰 고무신 한 짝과 검정 고무신 한 짝을 신고 신나게 놀았다. 한참을 놀다가 친구 집으로 가서 방에 옹기종기 모여 대화하면서 놀고 있을 때 친구 어머니께서 간식으로 고구마를 삶아오셨는데 그때 친구 어머니께서 고무신을 가리키면서 “이 신발 누구 거니?” 하시면서 친구들 얼굴을 살피셨다. 난 창피해서 말을 못 하고 있을 때 나에게 “찬아 네 거니” 해서 “네”라고 대답을 했다. 친구 어머니께서는 “이 흰 고무신 속까지 검게 칠하고 신으면 더 좋겠구나”라고 하시며 방문을 닫고 가셨다.
난 부끄러워서 놀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조용히 생각해 보았다.
아버지께서 나를 생각해서 주신 고무신이었고 난 관리를 잘못해서 망가지게 되어 아버지의 사랑에 보답하지 못함에 대한 죄송함과 아버지의 기대에 못 미치는 행동에 대한 반성의 시간이었다. 또 친구들은 검정 고무신 신고 다녔지만 난 흰 고무신을 신고 다닌다는 미안함이 들어 ‘흰 고무신의 주인은 내가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서 처음 신어본 흰 고무신이 가끔은 떠올라 지금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하얀 미소가 되어 추억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