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나물의 특성
이 세상 산야초는 모두 제각각 고유의 빛깔과 특징을 갖고 있다. 향기가 좋고 몸에 유익한 풀꽃이 있는가 하면 적은 양으로도 인체에 해를 입히는 독성을 지닌 풀도 있다. 염소나 소와 같은 가축한테 독성 있는 풀은 안겨 주어도 그들은 넙죽 받아먹지 않는다. 산에 뛰노는 토끼나 노루와 고라니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독초를 뜯어 먹고 탈이 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 법이다.
봄날이면 근교 산행에서 산나물을 채집해 옴이 내 일상이다. 산에서 장만하는 나물거리는 여러 가지다. 엉겅퀴를 캐오고 원추리를 뜯어온다. 회잎나무 이파리를 훑으면 홑잎나물이 된다. 두릅이나 다래나무도 여린 잎을 따 데쳐도 나물이 된다. 고사리나 참취는 흔한 편이었다. 참나물이나 바디나물이나 참반디도 뜯는다. 산속에서 절로 자라는 머위도 있다. 제피나무 잎도 있다.
산나물들을 뜯으면서 몇 가지 특성을 찾아낼 수 있었다. 먼저 고립성이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등산로 주변에는 이런 산나물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인적 드문 숲속 깊숙이 들어가야 산나물을 만날 수 있다. 가시덤불과 억새 덤불을 헤집고 나아가야 한다. 손등이 긁히거나 바짓단이 가시에 걸려 올이 터지기도 했다. 산나물들은 사람 발길이 닿지 않은 외진 곳에 즐겨 자란다.
두 번째는 군집성이다. 고사리도 그렇고 취나물도 그렇다. 두릅도 마찬가지다. 대개 산나물들은 한 군데 모여 자라는 특성이 있다. 고사리는 볕 바른 억새밭을 좋아하고 두릅은 응달 돌너덜도 마다하지 않았다. 비비추나 벌깨덩굴은 나무 그늘에서 무더기로 자랐다. 습기가 많은 물가를 좋아하는 나물도 있다. 산나물은 한자리 무리 지어 자라기에 발견하면 손쉽게 뜯을 수 있었다.
세 번째는 희소성이다. 모든 산야초가 산나물이 다 될 수 없다. 초근목피로 지낸 시절부터 식용이 가능한 풀로 검증된 것은 제한적이다. 그러다 보니 수풀이 우거진 숲에 들면 많고 많은 나뭇잎이나 풀잎 모두가 나물이 될 수는 없다. 물론 산야초가 독성이 없다면 먹어서 몸에 탈이 나는 일이야 없겠지만 나물로서 가치가 떨어지게 마련이라, 산나물은 채집량이 적을 수밖에 없다.
네 번째는 연속성이다. 산나물은 대개 자라던 그 자리 다음 해 다시 자란다. 식물의 번식은 새가 옮겨주거나 씨앗이 날려 이동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작년에 고사리를 꺾었던 억새 검불 사이에 올해 다시 가보면 햇고사리가 움터 자라난다. 부지깽이나물을 뜯었던 길섶으로 올해도 가 보면 또다시 만난다. 두릅도 마찬가지다. 두릅이나 고사리는 한 해 두 번도 채집이 가능하다.
다섯 번째는 천이성이다. 이 세상 우주 만물이 고정불변은 없다. 생태계도 세월 따라 바뀌게 마련이다. 칡넝쿨이나 다래 덩굴이 덮치면 그 아래 지표면 식생은 햇빛을 못 봐 고사하게 된다. 산사태가 나거나 산불이 나도 식생은 큰 변화를 가져온다. 송전탑이 세워지기도 하고 임도가 뚫리거나 석산 개발로 인해 산허리가 잘려 나가면 예전 산나물이 자라던 자리도 위치가 달라졌다.
여섯 번째는 복원성이다. 숲은 혹심하게 망가트리지 않는다면 시간이 지나면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는 성질이 있다. 큰비에 산사태가 난다든가 산불이 난 경우에는 숲이 복원되려면 많은 세월이 걸릴 것이다. 야생 짐승이 뜯어먹거나 봄나물을 채집한 정도로는 여름이 지나면 숲은 다시 무성해지게 마련이다. 상처 입은 자연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스스로 치유되어 예전으로 돌아갔다.
언젠가 생활 속에 ‘내가 가꾸는 남새밭’과 ‘경계가 없는 텃밭’이라는 글을 남겼다. 그 글에서 등기부에 올려둔 한 뼘 땅이 없어도 내가 관리하는 텃밭은 발길 닿는 곳까지라 했다. 근년에는 거제 국사봉의 곰취도 따온다. 봄이 오면 발품 팔아 산자락을 누벼 허리를 굽힌 만큼 일용할 찬거리가 마련된다. 이렇게 고마운 자연인데 숲으로 들면 몸을 낮추어 엎드리지 않을 수 없다. 23.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