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본연의 용도는 이동수단입니다. 자동차는 100년 역사를 두고 점차 발전해오면서 진화해 왔지만, 사람이나 짐을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것이 가장 큰 역할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디자인을 또는 폭발적인 가속력을, 또는 곡선주로에서의 역동적인 주행성능에 관심을 가지고 있겠지만, 숟가락의 용도가 다양하게 쓰일 수 있어도 일반적으로 밥을 먹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자동차는 이동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동차의 형태는 예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는 것 같습니다. 크기와 종류가 다양해졌지만 기본적인 형태는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동수단으로 역할을 하기 위해 필요한 엔진과 변속기, 균형을 잡기 위한 바퀴, 승객을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탑승공간, 짐을 싣는 트렁크 등 각 역할을 맡는 부분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도로에 꽉 차 있는 자동차를 보면서, 자동차의 한계에 대해서 누구나 한번쯤 느껴보셨을 것입니다. (물론 차가 막히지 않는 상황이라면 이런 생각은 나지 않습니다)
“왜 내가 가는 길만 막히는 걸까?”
“자동차는 왜 도로로만 다녀야 하는 걸까? 하늘을 날 수는 없을까?”
“아까 다른 길로 갈 껄”
여기에 주차공간이 협소한 곳에 가면 주차를 하게 되면, 자신의 차가 마치 불필요한 부분을 가득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해결책 중 하나로 바이크가 있습니다. 꽉 막힌 도로에서 좁은 공간을 헤쳐서 매 신호마다 맨 앞줄에 서게 되는 바이크는 시내에서 운송수단으로 쓰기에 적합합니다. 하지만 바이크는 탑승 부분이 외부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날씨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으며, 안전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인들이 사용하기에는 자동차만큼 사용하기는 어렵다는 기술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최근 자동차 업체들은 이같은 본질적인 '효과적인 이동수단'에 대한 의문을 갖고, 새로운 형태의 이동수단을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이같은 접근은 일부에서 진행됐지만 기술적인 한계에 부딪혀 번번이 실패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새로운 동력수단인 배터리와 전기모터 기술이 진화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양산화를 위한 기술장벽과 '높은 가격' 문제가 해결되면서, 새로운 제품들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주요 기업들이 개발 중인 새로운 이동수단은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단거리의 1명 또는 2명이 사용할 수 있는 형태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는 현재 자동차를 대체하기에는 여전히 기술과 가격적인 부담이 있고, 시장성 자체도 기존 자동차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보조하는 형태가 높기 때문입니다.
현재 이같은 개인용 이동수단을 개발하는 업체는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업체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르노와 BMW, 미국의 벤처기업들도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 업체들이 만드는 개인용 이동수단의 형태는 다르지만, 전기를 동력으로 사용하며 한번 충전에 50㎞~80㎞ 내외를 주행할 수 있는 소형 차량이라는 점입니다.
자동차 업체들이 단거리 소형 이동수단 개발에 집중하는 이유는 앞으로 전세계 인구들이 거주하는 형태가 인구 1000만명 이상의 광역도시권(메가시티)으로 재편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만해도 지방분화를 예상했던 과거와 달리 서울이나 부산 특정 도시의 역할이 오히려 커지고 있습니다. 핵심기능이 한곳에 몰리면서 지방도시의 영향은 점차 줄어들고 상업과 문화 등 대부분 기능이 한곳에 쏠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서울만의 현상이 아니라 미국과 일본, 중국, 브라질 등 성숙시장과 신흥시장에서 모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마치 인터넷의 트래픽이 구글과 페이스북, 네이버 등에 몰리는 것처럼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도시계획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이 앞으로도 심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이 경우 도심 내에서 교통체증, 주차난 등은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삶의 변화에 맞춰 이동수단도 장거리를 책임지는 현재의 일반적인 자동차, 그리고 광역도시권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개인용 이동수단으로 나뉘어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미 엑센츄어, 딜로이트 등 세계적인 컨설팅 업체들은 메가시티로 전환에서 해결해야할 문제 중 하나로 교통 부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세계에서 가장 광역도시권은 일본의 도쿄며 관련된 인구는 약 3800만 명입니다. 두 번째로 가장 큰 광역 도시권은 인구가 약 2700만명인 멕시코의 멕시코시티 광역 도시권이며, 세 번째는 미국의 뉴욕, 인도 뭄바이, 중국 베이징 등이 있습니다. 서울도 세계에서 꼽히는 광역도시 중 하나입니다. 전체 인구의 비중으로 따지면 아마 가장 클 것 같군요.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새로운 이동수단 개발에 집중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입니다. 자동차보다 더 작고, 효율적이면서 이동수단 본연의 목적을 해결한다면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메르세데스벤츠 스마트는 이같은 광역도시와에 맞춰 개발한 최초의 상용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로와 주차장이 좁은 유럽 도시에 기존 차량보다 1/2 크기인 스마트는 새로운 이동수단을 정의하기 위해 1998년 출시됐습니다.
너무 시대를 앞서간 면이 있지만 스마트는 앞으로 복잡한 도시 안에서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이동수단의 역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마트도 기존 내연기관을 동력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자동차라는 틀에서는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전기모터와 배터리를 사용하는 개인용 이동수단은 이전에 개발됐던 이동수단과 차별화되는 차세대 모델로 볼 수 있습니다.
자동차업체들이 개발하고 있는 개인용 이동수단 중에는 이미 양산된 모델도 있습니다. 르노 '트위지'가 대표 모델입니다. 르노 트위지는 르노의 전기차 전략에 맞춰 개발된 3가지 모델 중 하나로 2인이 앞뒤로 탈 수 있는 형태입니다. 17마력을 발휘하는 전기모터와 한번 충전으로 100㎞ 가량 주행이 가능한 배터리가 탑재돼 있습니다. 최고 속도는 85km/h지만, 45km/h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배터리를 충전하는데는 일반 가정용 충전기로 3시간 30분이 소요됩니다. 트위지는 외관상 4륜 바이크에 천장과 측면 문을 장착하고 있지만 운전석 전체를 감싸지 않기 때문에 비나 눈에 노출되어 있습니다.또, 외부에 주차해놨을 경우 보안 부문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유럽 일부 국가에서 판매 중이지만 트위지는 본격적인 양산보다는 전기차 시장의 가능성을 파악하기 위한 모델로 볼 수 있습니다. 국내에도 자동차 업체가 연구용으로 일부를 들여왔습니다.
도요타는 'i-road'는 2013년 3월 스위스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된 뒤, 현재 일본에서 테스트 중인 2인승 이동수단입니다. 트위지처럼 앞 뒤로 탑승할 수 있으며, 운전석과 동승석 모두 완전히 밀폐되는 것이 트위지와 다른 점입니다. 또 3륜으로 앞에 바퀴가 2개, 뒤에 1개가 있습니다.
균형을 잡기 어려울 것 같지만 전륜은 주행상황에 따라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균형을 잡을 수 있기 때문에,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합니다. 도요타는 제네바 모터쇼에서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시범 주행을 진행했으며, 오는 6월까지 일본에서 실제 도로 테스트를 진행해 보급할 예정입니다.
300kg으로 아주 가벼우며, 탑재된 리튬이온배터리로 한번 충전에 50㎞를 주행할 수 있습니다. 제네바 모터쇼에서 발표했을 때는 2인 탑승이 가능했는데, 현재 테스트 중인 모델은 1인 탑승만 가능하며, 최종 양산 모델은 1인용 또는 2인용으로 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주행거리가 아쉽지만, 현재 바이크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적인 완성도가 높은 점, 아직 공식 가격이 나오지 않았지만, 도요타의 기존 정책을 감안할 때 가격경쟁력도 높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외에도 도요타는 FV를 개발하고 있는데 아직 컨셉트 형태 입니다.
혼다의 '유니 커브(UNI-CUB)'는 단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이동수단입니다. 작은 의자처럼 생긴 유니 커브는 이미 1세대 모델(유니 커브)이 일본 역사박물관에서 안내용으로 사용 중입니다.
2013년 11월 혼다가 공개한 유니 커브는 베타는 기존 유니 커브보다 크기를 줄인 형태로 무게가 25kg에 불과합니다. 리튬이온배터리를 탑재했으며 한번 충전으로 6㎞ 주행이 가능합니다. 유니커브는 장거리를 이동하기보다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특정 지역을 순찰하는 용도로 사용됩니다. 앞서 소개한 이동수단보다는 세그웨이와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혼다는 이외에도 MC베타라는 이동수단을 개발 중입니다.
리트모터스는 개인용 이동수단을 개발하는 수 많은 미국 벤처기업 중 하나입니다. 최근 미국내에서는 개인용 이동수단을 개발하는 업체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들은 프로토타입 또는 사업계획서를 제시하고 투자자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미국내 개인용 이동수단 기업들을 보면 인터넷 벤처 1세대를 보는 듯 합니다.
리트모터스는 바이크를 개선한 형태의 이동수단인 'C1', 접이식 전기스쿠터 'KUBO' 2종류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C1과 KUBO 모두 개발 중인 상태인데, 벤처기업이기 때문에 다른 이동수단을 만드는 자동차업체들과는 기술력의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C1의 동영상은 2011년에 공개됐지만, 현재까지 변화는 없었으며, KUBO도 양산제품보다는 연구제품에 가깝습니다.
이외에도 미국에는 현재 바이크의 엔진을 전기모터와 배터리로 바꾸는 벤처기업들이 있는데, 동력계만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완성 제품이 나와도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같은 업체들은 우리나라에서도 등장한 바 있으며, 이명박 정부에서 개발비를 받은 뒤, 대부분 사업을 접었습니다.
개인용 이동수단은 기존 자동차를 대체하는 전기차 시장과는 다른 새로운 시장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어떤 업체가 이 시장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봐야겠지만, 시장의 요구와 기술력, 가격, 관련법규 등의 여러 가지 요소의 균형을 잘 맞춰낸 제품이 등장한다면 충분히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PDA 시장이 존재했지만, 결국 스마트폰 시장은 애플 아이폰이 연 것처럼, 새로운 이동수단 시장에서 아이폰의 역할을 하는 모델이 등장하면 급속히 성공할 것이라고 전망됩니다. 마트를 갈 때, 아주 잠깐 짧은 거리에서 볼일을 보러 나가야할 때, 1톤이 넘는 차를 끌고 가는 것은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환경을 위해서도 좋은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쉽게도 국내 자동차 업체 중에서는 이와 같은 개인용 이동수단 시장에 접근하는 업체가 없습니다. 현재 자동차 시장이 충분히 치열하지만, 새로운 변화에 대비하지 못해 한순간에 주도권을 잃게 되는 현상이 여러 분야에서 반복된 것을 볼 때, 개인용 이동수단에 대한 준비도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중국 업체들의 개인용 이동수단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견제해야 합니다. 외부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국 내에서 전기 동력으로 개조된 자전거와 스쿠터는 전세계 제품을 합한 것보다 시장이 큽니다. 번듯한 브랜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비용으로 전기자전거, 스쿠터를 만들고 있습니다. EBWR(electric bikes worldwide report)에 따르면 중국의 전기자전거 총 판매대수는 1억 4000만대로 중국 인구 10%가 전기자전거를 가지고 있으며, 전세계 전기자전거 시장 9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상하이, 쩌장성, 텐진에 밀집된 전기자전거 업체들은 매년 1000만대의 전기자전거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전기자전거와 개인용 이동수단과는 차이가 있지만, 이전 싸구려 MP3플레이어를 만들던 중국 업체들이 애플이나 삼성전자의 5분의 1가격에 쓸만한 스마트폰을 만들어내는 업체로 성장한 것을 감안하면, 개인용 이동수단 시장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국 내에서는 이미 전기로 충전하고, 소비하는 이동수단 시장이 존재한다는 것이 두려운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