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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제44회 인권 주일을 맞아 김선태 주교(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는 담화문에서 “혐오가 갈수록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이주민은 우리 사회의 필수 구성원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이질적 존재나 배척의 대상으로 여겨진다”며, "끼리끼리의 선택적 공감이 아니라 예수님이 보여 주신 ‘보편적 공감’의 길로 나아가자"고 강조했다.
교회의 이러한 호소가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꽃을 피웠다. 서울 북촌 가고시포갤러리에서 12월 3일부터 14일까지 열리고 있는 ‘Journey Together’(함께하는 여정) 전시다. 이주민 자립을 돕기 위해 캘리그라피 작가 30명과 이주민 여성 재봉팀 '함께'가 손을 잡고 준비했다.
6일 열린 전시회 초대 행사에서 기획자와 참여 작가, 재봉팀 '함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혐오와 차별 대신 ‘환대와 동행’을 선택한 이들이 만들어 낸 작은 기적의 현장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동료 작가’로서 만났습니다”
전시를 기획한 김희영 작가(나무와바람, 크리스티나)는 이번 행사는 단순히 자선 행사가 아니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이주민들의 물품을 팔아 수익금을 기부하자는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들을 전시장에 초대해 직접 만든 제품을 판매하게 하고, 우리가 전처럼 후원하는 관계가 아니라, 삶의 여정을 함께 걷는 동행이 되길 바랐습니다.”
'봄틔움바람 함께'의 재봉 작품을 비롯한 전시 화랑 풍경. (사진 제공 = 김희영)
직선도 긋지 못하던 손, 희망을 짓다... 재봉팀 '함께'
전시장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알록달록한 직물 소품들은 기성 제품에 버금가는 품질을 자랑했다. 이 작품들의 주인공은 의정부교구 이주민센터 엑소더스(EXODUS) 소속 난민·이주민 여성 재봉팀 '함께'다.
이들의 시작은 미약했다. 엑소더스 봉사자인 서성희 씨(안젤라, 마두동)가 센터에 방치된 재봉틀을 발견하고, 김장섭(프란치스코), 주현영(엘리사벳) 부부에게 교육을 요청하면서부터였다.
“처음엔 막막했습니다. 자를 대고 선을 긋는 법, 가위질하는 법조차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직각 개념도, 시간 개념도 낯설어 했죠. 원래 5회 기초 교육만 하고 끝내려 했는데, 다섯 번으로 끝낼 상황이 아니었고, 2기 대기자가 있다는 소식에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김장섭 봉사자)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이주민들에게 기술을 가르치는 과정은 인내의 연속이었다. 만들어 온 제품을 다 뜯어내고 다시 박기를 수십 번. 봉사자들도, 수강생들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왔다. 하지만 서로를 붙잡아 주며 버틴 지 1년 반, 이제는 곡선 박음질과 지퍼 달기까지 척척 해내는 숙련공들이 되었다.
나이지리아 출신 난민이자 '함께'의 리더인 기프트 씨는 “처음엔 너무 어려워 그만두고 싶었지만, 남편과 동료들의 응원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며, “지금은 내가 선생님이 되어 다른 이주민들을 가르칠 수 있어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의정부교구 이주민 여성 재봉팀 ‘함께’를 일구는 사람들. ⓒ경동현 기자
김장섭 씨는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게 목적이 아니라, 이분들에게 정당한 공임(임금)을 드려 자립을 돕는 것이 목표”라며, “봉사자 셋이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로 판이 커졌지만, 하느님이 이끄시는 대로 가 보려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성장은 '즐거운 비명'인 동시에 '현실적 고민'을 안겨 주었다.
현재 '함께'의 운영은 김장섭·주현영 부부와 서성희 씨 등 몇몇 봉사자의 헌신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다. 김장섭 씨는 "봉사자 3명이 감당하기에는 이미 규모가 너무 커져 버렸다"며, "이 활동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하려면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동호회를 넘어 사회적 협동조합이나 법인 형태로 전환을 고민하고 있다"면서, "온라인 판매로 판로를 개척해 줄 전문가나, 회계 및 행정 업무를 도와줄 봉사자의 손길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이주민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시작된 이 '바늘땀'이 끊어지지 않고 더 단단하게 이어지기 위해서는, 선의를 가진 더 많은 이들의 전문적인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주민 재봉팀 '함께' 소개 이미지. (이미지 제공 = 김장섭)
각자의 ‘바람’이 모여 일으킨 거대한 ‘바람’
이번 전시에 함께한 캘리그래피(멋글씨) 작가들은 각자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사회적 약자와 연대해 온 이들이다.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연대'를 정의하며, '바람'(Hope)이라는 이름으로 각자의 바람과 소망을 아름다운 서체에 담아 표현했다.
꿈꾸는 붓의 막새바람 김한식 작가와 그의 작품 ‘새김질’. ⓒ경동현 기자
'꿈꾸는 붓'의 김한식 작가(막새바람)는 동두천 보산동에서 이주 배경 청소년들과 매주 붓글씨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이 모임을 옛 조상들이 먼 길을 가다 쉬어 가던 주막의 방, '복록방(福祿房)'에 비유했다.
"복록방은 먼저 온 사람이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자리를 내어 주는 공간입니다. 신분이 높든 낮든 서로 어깨를 맞대고 쉴 수 있었죠. 우리 아이들이 이곳에서 잠시 원기를 회복하고, 한국 사회라는 긴 여행을 떠날 자신감을 얻는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글아캘리아카데미의 이끔이 유임봉 작가과 그의 작품 '태양의 찬가'. 이 작품은 전각석에 새긴 뒤, 한지에 날인한 것이다. ⓒ경동현 기자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전각에 담아 온 '석지랑'의 유임봉 작가(하늘바람)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304명의 이름을 새기는 작업으로 시작해, 현재는 순교자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이번 출품작 '태양의 찬가'에 대해 "새부터 풀 한 포기까지, 세상 모든 피조물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 보여 주고 싶었다"며, "이주민과 난민 역시 하느님의 가장 존귀한 피조물로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고 역설했다.
더불어숲 서여회를 이끄는 구자춘 작가와 그의 작품. ⓒ경동현 기자
고 신영복 선생의 뜻을 잇는 '더불어숲 서여회'의 구자춘 사무국장(봄바람)은 연대를 '산길'에 빗대어 설명했다.
"산길은 사람이 다니지 않으면 금방 사라집니다. 처음엔 누군가 앞장서서 오솔길을 내고, 뒤이어 많은 사람이 함께 걸을 때 비로소 넓고 단단한 길이 됩니다. 이주민과 함께하는 이 길도 우리가 계속 함께 걸어야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일본 도쿄에서 온 ‘한그루’의 이끔이 이화련 작가와 그의 작품 ‘누구나 꽃’. ⓒ경동현 기자
이번 전시에 참여하기 위해 일본 도쿄에서 온 '한그루'의 이화련 작가는 “일본에서도 외국인을 배제하는 분위기가 주류인데, 한국에서 이런 연대의 장이 열린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왔다”고 말했다. 그는 “다문화 공생은 너 따로 나 따로 사는 게 아니라, 서로 손잡고 하나의 창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시의 숨은 공로자인 '아이돌봄 봉사자'들의 사연도 울림을 주었다.
자신을 '노란 나비'라고 소개한 김은숙 봉사자(크리스티나)는 이주민 엄마들이 재봉 기술을 익히는 동안 그들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그는 과거의 사회적 참사로 가족을 잃은 아픔을 지니고 있지만, 그 슬픔을 다른 아이들을 향한 돌봄으로 승화시켰다.
김 씨는 "계획하지 않았던 만남이 연결고리가 되어 여기까지 왔다"며, "나의 작은 날갯짓이 아이들에게, 그리고 우리 사회에 따뜻한 바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자신의 상처를 딛고 타인을 보듬는 그의 모습은 그 자체로 치유의 과정이자 연대였다.
“비가 개면 해가 뜨듯이”... 혐오를 넘어서는 노래
초대 행사(오픈식)가 열린 좁은 한옥 갤러리 마당은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사람들로 북적였다.
김희영 작가는 “오늘 이 자리는 우리 인생 여행길에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이 켜 든 따뜻한 불빛과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의정부교구 엑소더스 위원장 김영욱 신부(블라시오)는 “한국에서 난민 인정률은 1퍼센트도 되지 않고, 그들은 아파도 병원에 못 가고 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투명 인간 취급을 받는다”며, “재봉팀 '함께'는 그들이 우리 곁에 존재하는 이웃임을 증명하는 소중한 공동체”라고 말했다.
행사의 절정은 김영욱 신부와 참석자들이 함께 부른 노래 ‘사노라면’이었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서툰 한국어 발음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는 이주민들과 그들의 손을 맞잡은 선주민들의 모습은, 인권 주일 담화문의 ‘보편적 형제애’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화랑 입구에서 전시회 초대 행사에 참여한 '함께'의 구성원들과 캘리그래피 작가들. ⓒ경동현 기자
‘Journey Together’ 전시회 수익금 전액은 의정부 엑소더스에 기부해, 이주민들의 자립을 위해 쓰일 예정이다.
북촌의 작은 한옥에서 시작된 따뜻한 ‘바람’이 혐오와 배제로 얼어붙은 우리 사회의 겨울을 녹이고, 공존이라는 새봄을 부르는 훈풍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s://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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