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휴즈와 게리 오닐은 20년 전 포츠머스에서 미드필더 파트너로 함께 뛰던 시절부터 이어져 온 절친한 친구 사이다. 휴즈는 오닐에게 본머스 감독직을 맡겼고, 오닐은 팀을 강등 위기에서 구해냈다.
그런데 이후 휴즈는 오닐을 경질했다. 이유는 바로 안도니 이라올라였다. 축구에서는 감정이 아닌 결과가 결정을 정당화하는데, 두 사람의 친분이 있는 한 관계자는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다며 “휴즈의 판단이 옳았다”라고 말했다.
당시 본머스의 단장이었던 휴즈는 차분하게 오닐을 불러 모아 “훌륭한 활약을 펼쳤지만, 이라올라가 FA 신분이다. 그는 우리 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릴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때는 이라올라가 라요 바예카노를 떠난 후 FA가 된 2023년 여름이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역사는 다시 반복되고 있다. 이라올라는 또다시 FA가 됐고, 휴즈는 이라올라를 영입하고자 냉정하고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다. 슬롯에 대한 휴즈의 생각도 비슷했다. “수고 많았지만, 이라올라가 더 잘할 수 있어.”
이라올라가 본머스에서 그토록 뛰어난 감독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그의 첫 시즌 중반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엿볼 수 있었다. 그는 제가 만난 감독 중 가장 지적인 인물 중 한 명이었고, 조금은 특별한 사람이기도 했다.
이라올라는 원래 법학도였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던 중 3학년 때 학업을 포기하고 프로 선수의 길을 선택했다. 또한 일본의 유명 소설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열렬한 독자이기도 하다. 심지어 꿈의 직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서점 운영”이라고 답한 적도 있다.
이라올라는 흥미롭게도 과르디올라와 스페인식 포지셔널 축구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면서도 클롭을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저는 항상 게겐프레싱과 독일 감독들을 좋아했습니다. 분데스리가는 감독들이 수비 시에 매우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므로 선수들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리그입니다.”
이라올라는 “조직보다는 혼돈”을 선호한다고 말하며 “얼마나 위험을 감수할 의향이 있느냐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저는 선수들에게 ‘공을 되찾는 순간 가장 먼저 봐야 하는 대상은 9번이 아니다. 상대 골키퍼다. 바로 득점할 수 있나?’라고 말합니다.”
클롭의 영향을 받고, 클롭의 팬이 되었으며, 여전히 클롭을 그리워하는 수많은 리버풀 팬에게 이라올라의 본머스가 선보이는 거침없고 초고속 역습 축구는 반가운 소식일 것이다.
그리고 휴즈의 말은 완전히 옳았다. 오닐은 본머스를 15위로 이끌며 찬사를 받았지만, 이라올라 체제에서는 매년 순위가 상승했다. 첫 시즌 12위, 다음 시즌 9위, 이번 시즌에는 믿기 힘든 6위라는 성적을 거두었다.
이라올라의 커리어는 바로 그런 흐름을 보여왔다. 약체를 이끌고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가 이끌던 라요 바예카노는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를 꺾었고, 2부리그의 작은 팀인 미란데스를 스페인 컵 준결승까지 진출시켰다.
다만 의문은 있다. 이러한 성공이 빅클럽에서도 그대로 통할 수 있을까? 프리미어리그 중소 구단에서 성공한 뒤 이른바 Big6로 승격해 감독직을 맡은 사례들의 성적표는 절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이라올라 역시 같은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라올라는 남다른 면모를 가지고 있다. 2023년 당시 제가 그와 인터뷰했을 때, 그는 자신의 미래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어느 순간 제가 이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럴 수도 있죠. 분명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겁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제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고 싶습니다.”
이번 시즌 이라올라의 본머스는 슬롯의 리버풀보다 공격 전환 속도가 더 빨랐고, 공을 오래 돌리지 않은 채 곧바로 전진하는 축구를 구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