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러는 매우 눈에 띄는 의견 하나를 내놓았다. 벨링엄을 10번에서 선발로 나서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신 그는 로저스에게 맡기겠다고 밝혔다.
시어러의 주장은 벨링엄에 대한 평가라기보다는 팀의 균형, 선수 간 호흡, 현재 폼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최적의 미드필더 조합을 설명했다.
“제 기준에서 벨링엄은 첫 경기 선발이 아닙니다. 저는 투헬이 지금까지 잉글랜드 경기에서 잘 작동했던 조합을 선택할 것이라고 봅니다. 앤더슨과 라이스, 앞에는 로저스죠. 세 명을 기용할 것으로 예상되며 저 역시 그렇게 할 겁니다.”
벨링엄의 위상을 고려하면 상당히 논쟁적인 의견이다. 하지만 잉글랜드는 오랫동안 공격 재능을 한 팀에 모두 욱여넣으려다 균형을 잃는 문제를 겪어왔다. 투헬은 함정을 피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투헬의 스쿼드 구성은 이름값보다는 역할, 인기보다는 조합을 중시하는 방향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이 로저스의 중요성이 커진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어러 분석의 핵심은 따로 있었다. 바로 케인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시어러는 잉글랜드가 대회에서 케인의 장점을 제대로 살릴 환경을 만들지 못했다고 본다.
“우리는 몇 년 전 대회에서 케인의 최고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를 최대한 활용하려면, 이번 시즌 바이언에서 보듯이, 그의 뒤를 넘어 침투하는 선수들이 필요합니다.”
“케인은 내려와서 볼을 받고 패스를 뿌리는 데 뛰어난 선수입니다. 케인을 넘어가는 움직임이 있어야 하지만, 우리는 그게 부족했습니다. 잉글랜드가 이번 대회에서 성공하려면, 반드시 케인의 장점을 최대한 끌어내야 한다.”
로저스의 본능은 수비수 뒤 공간으로 침투하고, 공간을 공략하며, 케인이 내려오면서 만들어내는 공간을 활용하는 데 있다. 이 점이 바로 시어러가 뒤를 받치는 미드필더 조합을 확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앤더슨은 뉴캐슬을 떠난 이후 서너 단계는 더 성장했습니다. 그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며, 앞으로 더 성장할 겁니다.”
물론 잉글랜드 명단 발표는 항상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좌절이 된다. 로저스와 앤더슨이 상승세를 타고 있다면, 다른 선수들은 불확실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시어러는 명단 발표 전 인터뷰였지만, 필 포든이 제외될 가능성에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그런 결과가 나왔다.
“우리는 10번에서 매우 좋은 상황에 있습니다. 정말 뛰어난 선수 한두 명은 반드시 탈락할 수밖에 없죠. 포든은 꾸준히 출전하지 못해서 좋은 폼을 유지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포든이 제외되더라도 놀랍지 않습니다. 그의 재능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이번 시즌에는 그 모습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현재 잉글랜드의 현실이다. 재능은 넘쳐난다. 문제는 어떤 조합이 가장 잘 맞는지, 선수들의 폼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다. 이는 대부분 국가가 부러워할 고민이지만, 잉글랜드 팬들은 엘리트 선수들을 모으는 것과 실제로 우승하는 팀을 만드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른바 ‘황금 세대’ 역시 오랜 시간 이 문제로 고심했다. 그래서 시어러의 발언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그가 벨링엄의 능력을 의심해서도 아니고, 잉글랜드 최고의 재능을 폄하해서도 아니다.
단지 토너먼트 축구는 개인 기량만이 아니라, 균형, 구조, 조합으로 승리하는 경우가 많다. 시어러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잉글랜드 주장으로 뛰며 압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월드컵에 출전한 것 자체도 큰 자부심이었고, 잉글랜드 주장을 맡았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평생 기억에 남을 겁니다.”
잉글랜드는 마르세유에서 열린 튀니지와 첫 경기에서 2대0으로 승리했고, 시어러도 득점했다. 이후 아르헨티나와의 극적인 16강전에 진출했는데, 이는 지금까지도 잉글랜드 월드컵 역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 중 하나로 꼽힌다.
“대회를 그렇게 마무리한 건 아쉬웠지만, 마르세유에서 튀니지를 상대로 골을 넣었던 첫 경기 등 좋은 기억도 많습니다. 당시 월드컵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경기는 아르헨티나전이었습니다. 제가 첫 번째 키커로 나섰을 때 엄청난 압박을 느꼈죠.”
“지금도 그 모든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믿기 어렵습니다. 오언의 놀라운 골은 누구도 잊지 못하겠지만, 또다시 승부차기로 탈락한 것은 정말 아팠습니다.”
“(유로 1996과 1998년 월드컵) 후회는 없습니다. 큰 대회에서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누구도 비난할 수 없죠. 96년과 98년 모두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승부차기가 아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그게 축구입니다.”
첫댓글 벨링엄이든 로저스든 부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