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와 날씨
올겨울은 그리 춥지 않던 소한 대한을 넘겼다. 계묘년은 음력 이월이 두 번 든 윤년으로 대한 무렵 설날이 들었더랬다. 어제가 정월 초사흘이었는데 북극발 시베리아 한파가 우리나라 전역에 닥쳐 냉동고를 방불하게 한다. 엊그제는 건강 검진 이후 위장을 다스리려 복용하는 헬리코박터 제균제의 예상 못한 부작용으로 즐겨 나서던 산책은 마음을 접고 집에 머물며 몸을 추슬렀다.
어제는 강한 바람과 함께 닥친 한파로 바깥나들이는 생각조차 하질 못했다. 도서관에서 빌려다 둔 책인 세퍼드 코미나스의 ‘나를 위로하는 글쓰기’를 마저 읽었다. 저자는 워싱턴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쳤고 여러 대학과 종합병원 암 병동 및 각종 문화센터에서 글쓰기 어떻게 인생을 변화시켰는가를 강연한 이었다. 글쓰기는 내 일상에서도 스스로를 마주하고 치유하는 과정이다.
아침나절 읽은 책을 닫고는 언젠가 시도하고 싶던 한 가지 자료를 편집했다. 그것은 내가 봄날이면 근교 산자락을 누비면서 채집해 오는 산나물에 관한 내용이었다. 내가 산에 들어 뜯어왔던 산나물을 종류별로 나누어 자생지와 채집 시기와 용도에 대해 알기 쉽게 도표로 만들어 놓았다. 창원 근교 산자락에서 채집한 산나물을 열거하니 40여 종이 되었는데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아직 때가 이르긴 하다만 언 땅이 풀리기만 하면 들녘으로 나가 냉이나 쑥을 캐 우리 집 찬거리로 삼을 작정이다. 지난번 마산합포구 진전면 어느 산자락에서 봐둔 전호나물도 채집해 오면 아파트 상가 주점 아낙에게 넘겨 전으로 부쳐내 지기를 불러 모아 안주로 삼아도 된다. 여행을 즐겨 가는 이가 언젠가 떠날 여정을 미리 그려 보듯 나는 봄날에 채집할 산나물을 떠올려 봤다.
내가 자주 찾는 곳은 북면 일대 야산이었다. 천주산이 상봉으로 건너가 작대산에 이르도록 양미재와 양목이고개를 넘게 된다. 주로 두 고갯마루에 자생하는 산나물로 참취나 바디나물을 비롯해 벌깨덩굴도 있었다. 굴현고개에서 북으로 뻗어간 구룡산 기슭도 찾았더랬다. 북면 감계에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내 남새밭이 망가져 근년엔 여항산 미산령이나 서북산 감재까지 폭을 넓혔다.
설날 연휴가 끝난 일월 넷째 수요일이다. 꽁꽁 얼어붙은 날씨에 설을 쇤 직장인 아침 출근길은 몸이 움츠려질 듯하다. 설 전 여기저기서 망울을 터뜨린 매화를 봤는데 급전직하한 기온과 강풍에 꽃잎이 상하지 않을까 염려다. 나는 나대로 근교로 나갈 산책 행선지를 물색해 두었으나 날씨가 너무 추워 마음을 거두었다. 내리 연사흘을 집에서 지내려니 갑갑하긴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아침나절 몹시 추운 날씨에도 아내는 평소 다니는 절집으로 나가 혼자만 고요와 침잠의 시간을 가져 좋았다. 생활불교를 지향하는 도심 속 절에는 음력 정초면 정기 법회가 있는 듯했다. 같은 아파트단지 이웃 동에 사는 불심 깊은 한 할머니는 여든이 넘은 나이임에도 법회에 참석한다기에 강추위가 적잖이 걱정이다. 당국에서는 노인층은 외출을 자제하십사는 재난 문자가 날아왔다.
아내가 법회로 가고 나니 내가 머문 집이 절이나 마찬가지였다. 절만큼이나 조용한 집에서 며칠째 책을 펼쳤다. 이번엔 도서관 미리 대출해 둔 ‘날씨가 만든 그날의 세계사’를 읽었다. 저자는 워싱턴에서 의사였으며 역사학자로 저술 활동을 하는 로날트 D 게르슈테였다. 기원전부터 고대와 중세를 거쳐 2000년대 이후 현대사에 걸쳐 날씨와 연관된 굵직한 사건들이 기술되어 있었다.
저자는 기후가 인류 번영이나 몰락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소개했다. 중세 온난기 그린란드는 인간이 살기 알맞은 곳이라는 내용도 나왔다. 몽골제국이 일본 정복 실패는 전력 열세가 아닌 가미카제였고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할 수 있었음도 풍랑이 잠잠해진 덕분이었다. 미시적 날씨보다 거시적 개념의 기후는 인류사 고비마다 더 엄청난 파급력을 미쳤다. 23.01.25
첫댓글 자연을 거스릴수 없는,
인류의 번영과 몰락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자연.위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