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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바둑이 만해마을에서 LG배 4강을 독식하며 지난해 중국에 흘린 눈물을 보기 좋게 되돌려주던 그 다음날, 나현 5단의 한국물가정보배 우승턱을 겸한 국가대표팀 회식이 있었다. 이 자리를 함께하며 한국바둑과 신예기사들에 대해 생각해 봤다. 사진은 유창혁 감독을 비롯한 국가대표팀 가족이 마련한 축하케이크 촛불을 끄고 있는 나현 5단. |
악어는 먹이가 사정권에 들어올 때까지 몇 시간이고 미동도 않고 수면에 잠복하여 때를 기다린다. 한번의 때를 놓치면 다음 사냥감이 나타날 때까지 다시 기약없이 기다려야 한다. 사냥에 실패한 악어는 배고픔을 참고 다시 사냥에 나서면 되겠지만, 승부사에게는 이 기회가 어쩌면 단 한번 찾아온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세상만사에는 때가 있다. 때를 만나지 못하거나 때를 놓치면 다시 때를 얻기란 요원하다. 기회가 왔을 때 낚아채는 힘, 이것이 일세를 풍미하는 승부사로 올라서느냐 주저앉느냐를 가름하는 현장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1) 기사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흔히 보게 되는 세 번쯤의 전형적인 고비가 있다. 프로입단에 올인하는 연구생시절은 누구나 목숨을 걸고 공부한다. 그런데 정작 입단하고 나서는, 사실 이때부터가 진짜 정진할 때인데, 목표를 이뤘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더는 죽기살기로 공부하지 않는다. 여기가 첫 번째 고비다.
(2) 두 번째 고비는 승부세계의 된맛을 보게 되면서 맞이한다. 프로가 되면 세상 모든 것을 쥔 듯하고 거칠 것 없는 기세로 포효하지만, 막상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알게 되면 저도 모르게 주눅이 들고 시나브로 자신감도 떨어진다. 잔매도 자꾸 맞다보면 회초리를 든 시늉만 맞닥뜨려도 기겁한다. 패배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바둑이 유리한 데도 불안하고 자신의 실력을 확신하지 못해 또 엎어지는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하는 게 이때다.
(3) 세 번째 고비는 험난한 관문을 뚫고 정상에 섰을 때다. 흔히 도전하는 것보다 사수하는 게 더 어렵다고 하는 그 대목이다. 정상에 선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허탈감과 자만감, 더는 이룰 목표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밀물처럼 들이닥치는 목표상실로 천당과 지옥행 왕복 롤러코스터를 타고만 승부사 또한 한둘이 아니다. 롱런과 단명이 여기서 좌우된다.
미안한 얘기지만, 우리 여자기사 대다수가 승부사로 버티지 못하고 다른 데로 눈을 돌리게 되는 건, 1번 고비를 넘어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넘어섰어도 실력이 딸린 상태에서 입단한 상황에서 기량이 한수 위인 남자기사들과 맞장을 뜨다 2번째 고비에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잦은 패배가 승부에 대한 환멸로 이어지기는 남자 신예기사도 마찬가지이다. 이를 극복한 대표적인 사례로 최근 국수전과 렛츠런파크배에서 4강에 오른 박민규 3단을 들고 싶다. 박민규 3단이 입단 후 3년간 잠잠했던 건 애초 실력이 좀 부족한 상태에서 입단했기 때문이라는 평이 있다. 입단할 때는 실력이 좀 딸렸지만 이후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공부했고 경험이 붙으면서 어느날 갑자기 괄목상대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는 거다.

▲ 올해 단숨에 삼성화재배와 LG배 두 세계대회 결승에 오른 김지석 9단. 바둑신동 소리를 듣던 기재임을 헤아리면 11년의 기간은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아직 만25세의 나이. 물이 오른 그의 바둑이 과연 어느 정도의 업적을 이룰지 한껏 기대를 품게 한다. ‘타고난 재능’으로 영재, 천재 소리를 듣는 기사도 인간인 이상 고비와 직면한다. 요즘 최고로 잘 나가고 있는 김지석 9단, 어릴 때 조훈현 9단이 이창호에 이어 내제자로 두려고 했던 기재였을 만큼 기대가 컸던 ‘광주 신동’이었다. 14세 입단이면 늦은 것이 아니지만 10여년이 지나서야 이름값을 하기 시작했다. 입단 6년 만인 2009년 한국물가정보배를 획득하며 첫 타이틀을 딴 기간도 다른 정상급 기사들에 비하면 느렸고, 이로부터 또 2~3년이 지나서야 세계대회 8강무대에까지 어렵게 진출,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로소 올 연말에 이르러 봇물 터지듯 삼성화재배와 LG배 양 대회 결승에 올라 기염을 토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세계대회 우승이 없다.
한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그의 행마에 낙망한 조훈현 9단이(이대로 간다면,이란 전제를 달고 내린 평이기는 했지만) “국내 타이틀 한두 개는 딸 수 있을지 몰라도 결코 일인자급으로는 올라서지 못할 것이다”고 전망했던 김지석을 대기만성(大器晩成) 형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1, 2번 고비에서 오래 고전한 것만은 사실이고, 입단 10년이 지나 본령을 발휘할 수 있었던 건 절치부심의 노력이 있어서였겠지만, 어린나이에 입단한 덕을 본 운좋은 경우이기도 하다(만약 십대 후반이나 스무 살이 넘어 입단했다면 10년 기간을 놓치다 비상하긴 어려웠을 터이다). 김지석은 여전히 만25세에 지나지 않는다. 승부사의 사이클을 볼 때 이번에 김지석 9단은 세계타이틀을 반드시 따야할 시기이며(어렵게 잡은 이 때를 놓치지 말아야 연거푸 거대한 파도, 여파를 탈 수 있다), 이후 3번 항 고비를 맞을지 모르겠지만 이에 대한 처신에 따라 롱런할지 단명할지 좌우될 것이다.
이제 오늘 거론하고 싶은 대상, 나현 5단을 말할 차례가 되었다. 그 전에, 우리 신예기사들 이야기 조금-.
우리 신예기사들 중에는 영재들이 적지 않지만 기대만큼 치고 나오는 기사가 보이지 않는다. 굳이 한명을 거론한다면 먼저 이동훈 3단, 강보에 싸인 햇병아리 시절, 한국리그 선수지명식에서 차민수 감독이 주저없이 소속 선수로 호명했을 정도의 기대주였다. 그런데 입단한 지 3년이 차도록 정상급과 대등하게 싸우지 못하고 뭔가 자꾸 꼬이는 모습을 보여 답답했다. 이창호 이후 최대 재목 소리를 듣던 이세돌 9단도 입단 3년 동안은 잠잠한 바 있지만 그 시절과 이 시절의 성장속도는 확연히 다르다. 이 경우 딱 2번 항의 고비에 발목이 잡히게 될 우려가 있다. 기존의 스타일에서 한꺼풀 우화하는 진전을 보이지 못하면 답보하다 종내 처지게 되는데, 슬럼프에 빠질 수 있는 시기에 다행이 강원랜드배 명인전 결승에 올랐다. 박영훈 9단과 반집을 다투는 접전 끝에 비록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자신감을 가질 만한 계기가 되었다. 이동훈의 나이 이제 만15세다.
왜 이동훈의 이야기부터 불쑥 꺼냈는가. 나현 5단은 이동훈보다 세 살이나 연상이며 입단 또한 1년 빠르다. 2010년 입단하고 곧장 이듬해 삼성화재배 준결승에까지 광속으로 치달은 기대주였다. 요새 미래바둑을 얘기하면 어김없이 ‘양신(신민준, 신준서)’을 들먹이지만 ‘양신’과 ‘이동훈’ 이전에 ‘나현’ 있었다. 2012년에도 세계대회인 비씨카드배 본선32강에 얼굴을 내밀었고 LG배 8강에도 올랐으니 예상대로의 성장흐름이었다. 그런데 2013년부터 별 볼 게 없어졌다. 공부를 게을리 한다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자신의 재주를 믿고 언제든 해낼 수 있다는 자만에 젖어 무대 뒤로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천재 어디 한둘이던가. 이 사이 관운장, 여포 같은 대륙의 신예강자들이 분수처럼 용솟음쳤고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할 한국 신예의 선두주자 나현은 명패조차 보기 힘들었다.
어느덧 입단 5년차, 올해도 별 볼 일 없었으면 우후죽순처럼 자라나는 후배들에게 치여 영영 2번 항의 고비에 침잠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올해 한국물가정보배 우승은 천금같이 값지다. 국제 신예대항전에서 나가서도 중국 간판급 신예들을 척척 해치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중국 갑조리그에서는 ‘이세돌급’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활약(현재 5승2패)을 보이고 있다. 한국리그에서도 이런 활약을 기대하고 정관장 김영삼 감독이 파격적으로 1지명 주장으로 뽑은 것일 테다.
첫 우승까지 생각보다 늦은 감은 있지만, 19세 7개월 나이, 입단 4년 4개월 만의 성적은 많이 늦은 것도 아니다. 한국물가정보배 조 일리미네이션에서 이세돌 9단에게 쾌승을 거둔 것이나 박카스배 천원전 16강전에서 랭킹1위 박정환 9단을 주저앉히고 4강까지 쾌속행군하고 있는 것도 큰 자신감을 갖게 한 계기가 되었다.
짧든 길든 비등점까지 가열하는 데 일정 시간이 걸려 그렇지 한번 끓기 시작한 물은 폭발적인 압력을 보인다. 한국물가정보배 타이틀 하나 땄다고 나현을 비등점에 이른 기사라 말할 순 없다. 하지만 그르렁 그르렁 우렁찬 증기압 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한국바둑에서 현재 자신이 처한 위치와 역할을 잘 알고 있는 기사란 점이 고무적이다. 지금의 한국과 중국의 경쟁 판도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자신을 선배들의 뒤를 받쳐야 할 제2, 제3의 전력감으로 한시바삐 성장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한국의 정상급이나 중국의 정상급은 기량에서 큰 차이가 없지만 중국은 그 수가 많다. 한국의 정상급 기사들이 갑자기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하면 (바로 공백이라) 큰일이지만 중국은 그들을 대신할 제2, 제3의 기사들이 있다. 그게 무섭다.”
제2, 제3의 전력은 우리 신예기사들이 커버해야할 역할을 대변한 말이겠지만, 나현의 겸손함이 묻어난 말이기도 하다. 그의 속내는 이미 제1의 전력부대에 가 있는지 모른다. 만해마을(LG배)에서 실로 오랜 만에 한국바둑이 본때를 보여주었다(한국이 4강을 독식한 건 2005년 제18회 후지쓰배 이후 9년 만이다). 지난해 승승장구, 백전백승, 희희낙락하던 중국바둑이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LG배 8강에서 전멸하자 중국팬들의 탄식이 줄줄이 터져나왔고 이 중에 정작 출전선수와는 무관한 나현 5단이 거론되고 있는 게 눈에 띈다. 본시 적군의 평가가 더 정확하다지 않은가. 중국팬들은 이미 나현을 한국의 제1 주력군으로 보고 있었다.
- 小朴(박정환) 精子稀(김지석) 崔毒(최철한) 螺旋(나현)은 우리 중국기사들 앞에 놓여 있는 4개의 거대한 산이다. - 한국 국대의 책략이 주효했구먼...중국 기사들 경계해야한다.
(사이버오로 [오로광장]에 凹凸居士 님이 sina.com에서 발췌해 올린 글에서)

▲ 올 5월7일 한국기원에서 가진 국가대표발대식에서 체계적인 훈련과 준비로 반드시 중국바둑을 넘어서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는 반상의 태극전사들. 국가대표팀의 효과
‘한국 국대’라 하면 한국 국가대표팀을 말한다. 국가대표팀이 본격 기치를 든 1년 남짓 기간으로 결과를 논하기엔 성급한 면이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 1년 동안 2013년과 뚜렷한 명암대비를 보인 것이 사실이니 적잖은 공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설마 1년 사이에 천당과 지옥을 오갈 정도의 실력 향상이 있었던 것은 아닐 테고,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진 걸까?
분위기다. 연구 분위기가 달라졌고 바둑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유창혁 국가대표 감독은 이 부분을 거론한다. “국가대표팀이 창설되고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점은 공부하는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거지요. 물론 이전에도 공부를 안한 건 아닙니다만 경쟁 분위기부터가 다르고 공부하는 태도에서 차이를 확연히 느낄 정도로 달라졌다는 점이지요.”
그러니까 이런 거다. 국가대표팀이 없을 때, 그때는 끼리끼리 몇 명 모여 공부하는 연구회가 있긴 했지만 대부분 알아서 개별적으로 공부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경쟁심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특수반(국가대표팀)이 구성되고 강도 높은 공동연구와 실전리그가 이뤄지면서 뭔가 저 팀에 들어가지 못하면 급속히 낙오할 것 같은 기분(마치 남들 다 하는 과외를 우리 아이도 시키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불안감에 제비 따라 강남 가듯한 그런 분위기 ^^;;)에 더 진지한 자세로 매진하는 효과, 분명 보고 있다. 예전 ‘타도, 일본!”을 목표로 공부하던 충암연구회 때도 이런 분위기 있었다. 이런 파급효과가 기사 전반에 걸쳐 번지고 있는 것이다.
경쟁자끼리 매일 같이 하루 한두 끼 한솥밥을 먹으며 경쟁하는 처지니 내심 살벌할 것 같지만, 천만이다. 가족 같은 분위기도 그만이다. 최명훈 코치가 규율을 잡고 김성룡 코치가 즐거운 공기를 유지하니 35명에 이르는 대군단이 마치 한 부모에서 나고 자란 형제자매마냥 어울려 공부하고 논다. (프로기사는 경쟁 속성상 본시 개인사업자나 다름없는 집단인데...)
만해마을에서 우리 1진 기사들이 LG배 4강을 독식한 다음날, 각 매체의 1진 바둑기자들이 죄다 강원도 인제로 몰려가고 없는 그날(11월18일) 사이버오로의 스페어(spare) 기자인 ‘3류기자’는 렛츠런파크배 준결승 두 판 취재를 메우기 위해 한국기원에 갔다가 국대의 회식자리를 독식 취재하는 재수를 누렸다. 지난해 한국바둑이 지리멸렬하고 국가대표팀을 창설했을 때 한국바둑의 부활에 일조하는 마음으로, 사이버오로 처지에선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닌 1억원을(이 모두 오로 회원 여러분의 성의다) 선뜻 국가대표팀 후원비로 내놓은 게 고마워서 슬쩍 껴준 것이 자명했다.
회식 장소는 한국기원 지근거리인 마장동 축산시장 안 한우고깃집. 그런데 이날 회식은 나현 5단이 한국물가정보배 우승턱을 내는 자리였다. 한살 어린 동생 최정 5단이 큼지막한 케이크를 두 손에 들고 나왔고, 타이베이의 헤이자자와 미모를 겨룸직한 누님 오정아 2단이 주인공 주변에 서서 박수 칠 태세를 갖춘다. 이쯤되면 유창혁 감독이나 코치진이, 무게 잡고 앉아 한가로이 등심이나 뜯고 있을 만큼 눈치 없는 위인들이 아니다. 죄다 박수부대로 진을 쳤다. 초는 몇 개를 꽂을까요,라는 최정의 물음에 김성룡 코치가 “다섯 개!”라고 외친다. 최소한 앞으로 타이틀 다섯 개는 더 따라는 축원인데 나현은 별로 성에 차지 않는 눈치다. (고기도 얻어먹겠다, 기왕 쓰는 거 좀 더 쓰시지...^^)
자기 먹을 생각은 않고 스페어 기자 앞접시에 노릇노릇 잘 익은 고깃점을 연신 가져다 놓으며 김성룡 코치가 말한다. 감격스런 목소리로 말이다. “우리 애들 참 장하죠. 마음씀씀이도 세계최고 수준이에요. 이 모두 국대 명예를 드높이는 행동이죠. 코치인 제게 오히려 많은 가르침을 주는 아이들입니다.”
얼마전 최정 5단이 궁륭산병성배 우승상금에서 통도 크게 1천만원을 떼어내 한국기원 하훈희 부장의 병원비에 보탠 것까지 에둘러 언급하는 말이었다.
국가대표 형제자매 대가족으로부터 새삼 다시 우승축하를 받는 게 어색했는지, 생판 해보지 않은 건배제의가 어색했는지 나현 5단은 뒷머리를 긁적이면서도 힘차게 외쳤다.
“한국바둑 파이팅!”

▲ 에고~, 타이틀 따는 거보다 더 힘든 게 건배사넹.

▲ 장고를 하다 착수한 건배사는 평범한, 그러나 최고 최선의 수인 "한국바둑 파이팅!" 타이틀을 따기 전과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떤 점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더 힘들어졌다."고 말한다. 타이틀 보유자가 되었으니까 밥도 더 많이 사야할 것이고, 용돈이 예전보다 더 팍팍해진 걸 말하는 거냐고 되물으니 "그게 아니고 바둑이 더 나빠졌다."고 설명한다. 그러자 맞은편에 앉은 오정아 2단이 야유를 보낸다. "엄살은..." 이날 나현은 박카스배 천원전에서 한태희를 누르고 4강 확정을 짓고 막 달려온 참이었다.

▲ 우~승 축하합니다~!!!

▲ 한국바둑 파이팅! 나현 파이팅!

▲ 국가대표팀 회식 모습. 많이 먹고 힘 많이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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