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16:1-4
"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 "
내용분해 : A.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와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 주시기를 청함(1절)
B. 예수님께서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책망하심 (2-4절)
1. 예수님께서 일상적인 일기 변화를 예로 들며 그들이 천기는
분별하면서도 시대의 표적은 분별치 못함에 대해 책망하심 (2-3절)
2.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자신은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다고 하시며 그들을 떠나가심 (4절)
오늘도 행복한 주일 아침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2013년 마지막 날, 마지막 주일로 지키는 주일 아침입니다. 오늘도 이러한 뜻깊은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2013년 한해도 지켜 주셨고, 2014년 한해도 책임져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우리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내려 놓고,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2014년을 향해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며 한마음 한뜻으로 달려 나아가십시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아멘!!!
오늘 아침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마태복음16:1-4절 말씀으로 표적을 구하는 자들에 대한 책망의 말씀입니다. 제16-17장의 두 장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약 2년간 보내신 D.29년 초의 일로서, 3차 갈릴리 사역에 해당하는 14-17장에 이르는 기록의 연속 부분입니다. 특별히 16장에서부터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일대 전환점이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곧 예수님의 사역의 무게 중심이 다수의 군중들에게서 소수의 제자들에게로 옮겨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공생애의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자신의 십자가 수난으로 말미암아 완성될 인류 구속 사역을 자신의 부활과 승천 이후에도 계승시켜 나갈 제자들을 집중 훈련시킬 필요성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구속사역의 정점(頂點)인 십자가 수난을 1년 정도 앞둔 시점에서부터 제자들에게, 바로 자신이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야이심을 보다 명확히 계시하시며, 한편으로 아직 메시야의 사역과 그의 왕국의 본질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메시야의 (the Way of the Messiah) 과 제자의 (the Way of His Disciples) 에 대해 집중적으로 교훈하기 시작하십니다.
총 여섯 단락으로 구성된 제 16.17장의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16:1-12에서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표적을 구하는 것에 대한 예수님의 책망 및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그들의 교훈을 주의하라고 경계하시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6:13-20 에서는 유명한 베드로의 신앙 고백 (Faith Confession) 과 관련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이스라엘의 갈릴리를 떠나 팔레스틴 북서쪽의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으로 이동하신 후, 제자들의 자신에 대한 관점을 질문하십니다. ‘예수를 누구라 하느냐’ 하는 질문은 개인의 차원에서는 각 개인의 구원과 심판을 판가름하는 질문이면서, 동시에 구속사적으로는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약 1년 정도 앞둔 상태에서, 십자가 수난 이후에도 구속 사역을 계승해 나가야 할 제자들에 대한 중간 평가와도 같은 것으로서 너무나 중요한 질문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을 대표하여 예수님께서 성자요, 메시야 곧 그리스도이신 것을 고백함으로써 주님의 기대에 부응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받으시고, 이를 기초로 하나님의 선민(選民)으로서의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에 대응되는 신약의 새로운 공동체 (New Community)인 교회 설립을 예언하십니다. 계속하여 16:21-28 은 예수님의 1차 수난 예고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면 누구든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쫓아야 한다는 제자도(Discipleship) 의 핵심에 대한 교훈입니다.
17:1-13 은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 있던 때로부터 엿새 후의 사건으로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 세 제자를 따로 데리고 산에 오르신 예수님의 변형 (Transfiguration)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어 17:14-23 은 산 아래 남아있던 아홉 제자들에게로 돌아오신 예수께서 귀신들린 한 소년을 치유하시는 사건을 통해, 믿음의 능력에 대해 가르치시는 내용 및, 2차로 수난을 예고하신 내 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지막 17:24-27 은 성전세 납부 논쟁과 관련한 내용인데, 이는 간략한 에피소드이기는 하지만, 문맥적으로 예수님의 신분과 지위를 밝혀 주는 의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먼저 자신이 성전의 주인으로서 성전에 제사드리러 오는 사람들이 바치는 성전세를 내실 필요가 없는 분이신 것을 밝히셨습니다. 단 아직 메시야 사역을 완수하시기 전에 성전 관리들의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베드로에게 성전세를 납부하도록 지시하시지만, 이적적인 방법을 통해 납부하게 하심으로 제자들에게 자신의 말씀에 대해 확신을 심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예수님은 점차 자신의 십자가 수난 이후의 일에 대해서도 대비해야만 하셨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십자가 수난을 통해, 죄와 죽음 아래 있는 인류의 구속을 위한 모든 조건들이 충족되겠지만, 이미 완수된 그 사역의 효력이 전세계의 택한 백성들 모두에게 미치려면, 그의 사역을 알리고 계승할 자들이 필요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초기 단계에서부터 이미 제자들을 불러 훈련을 시작하셨던 것이며, 이제 공생애를 1년 정도 남겨둔 시점에서 제자 훈련에 사역의 초점을 맞추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 훈련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다음의 세 가지 질문으로 요약 될 수 있습니다. 첫번째, ‘예수님은 누구신가(Who He is)?’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샤랴 빌립보의 한적한 곳에서 제자들에게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과 또 제자들 자신의 관점을 질문하신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이 질문은 구원론적인 측면에서는 구원과 심판을 가름하는 기준이 되는 질문이겠지만, 한편으로 제자의 길을 걸어가는 첫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예수님께 대한 신앙 고백이 분명하기 전에도 예수님을 따를 수는 있지만, 그것은 자기 나름의 관점을 가지고 따르는 ‘무리’로서 따르는 것일 뿐입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 대한 베드로의 신앙 고백은 제자들의 평소의 신앙을 대변하는 것이지, 그 시점에서 처음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에 대한 진정한 고백은 그리스도와 그 고백을 드리는 자를 인격적으로 결속하게 해 줍니다.
두번째, ‘메시야의 길은 무엇인가(What is His Way)? 하는 것이다. 비록 예수님께 바른 신앙 고백을 하는 자일지라도 예수님의 사역의 본질에 대해서는 오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야로 알고 믿었던 제자들 역시, 심지어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가 정치적으로, 언제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것인지에 대해 관심을 가질 정도로(행 1:6) 그리스도의 사역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의 본질을 이해하기까지, 제자들은 세속적 차원에서의 권세욕이나, 제자들 상호간의 갈등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메시야의 길은 한마디로 십자가 수난과 부활을 통해, 인류 구속 사역을 성취하는 것이었습니다. 역으로 말하면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것이나, 인류 구속 사역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먼저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차례에 걸쳐 자신의 수난과 부활을 구체적으로 제자들에게 예고하셨습니다(16:21;17:22.23 ; 20:18,19). 이처럼 예수님께서 자신의 수난을 미리 알고 계셨다는 것은, 한편으로 십자가 사건이 우연히 발생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섭리에 따른 것이라는 것과, 또 예수님께서 기꺼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셔서 자발적으로 그 길을 걸어가셨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세번째는, ‘제자의 길은 무엇인가(What is His Disciples’ Way) ?’ 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두번째 질문의 다른 차원의 질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즉 제자의 길을 바로 깨닫는 것은 메시야의 길을 바로 깨닫는 것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자도의 핵심은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 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수난의 길을 알고 계셨음에도 기꺼이 하나님의 뜻에 자기를 복종시키시고 십자가를 지신 것과 그 성격상 동일한 과정입니다. 스승의 제자는 스숭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메시야의 사역의 본질을 이해시키고 그 길을 따르도록 하는 데 그토록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셨다는 것은, 한 사람의 진정한 제자를 양육하고 훈련하는 것이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길을 따르는 소수의 제자들이야말로 온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리스도께서는 신앙 고백은 드리지만, 메시야의 길과 제자의 길에 대해 그토록 깨닫지 못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안타까이, 그리고 반복하여 제자의 길에 대해 들려주고 계십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16:24).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그건 "표적이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표적을 보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님께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요청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이 어제, 혹은 오늘의 일이 아니라 이미 일년 이상 지난 일이었으며 그 기간 동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메시야 되심을 분명하게 나타내는 표적들을 수없이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표적은 믿지 못하는 자들에게 믿음을 결코 갖게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믿음이 표적을 표적으로 보게 하는 것입니다. 즉 믿음이 없는 자들은 아무리 분명하고 확실한 표적을 보아도, 그것을 표적으로 여기지 못하고 의심하지만, 믿음이 있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표적으로조차 여기지 않는 사실 속에서도 진리를 깨닫고, 그것으로 인해 더욱 큰 확신을 가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서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눅16:31)고 말씀하셨으며, 또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였던 것입니다(히11:1).
그렇습니다. 표적이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표적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표적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믿지 못한다는 말은 성립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한낱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음이 없기 때문에 표적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는 표적만을 구하는 신앙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 없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표적을 볼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신앙은 견고하고 온전하게 세워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함께 기도드리시겠습니다.
<참고 문헌>
"손에 잡히는 구약개론"IVP
"성경개관 구약편" 부흥과개혁사
"ESV스터디바이블" 부흥과개혁사
"위드바이블" 바이블넷
"옥스퍼드 원어 성경대전" 제자원 바이블네트
"구약개론"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구약총론" 생명의말씀사
"두란노How주석시리즈"두란노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