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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보성고 57회 동문회 원문보기 글쓴이: 권영목
.2020.1.22(수) 겨울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에 아차산 서울둘레길을 찾아서 서울 시내의 산책길을
트레킹하고 잘 정지된 한강을 낀 서울의 모습을 조망하면서 건강한 산행을 가졌습니다
아차산 4보루 전망대에서 용마산을 배경으로~~~추억의 포토를~~~
백년인생 멜로디를 들어며 산행을~~~
산행코스는 광나루역->아차산성공원->관리사무소=>고구려정->전망대->아차산 3보루-.아차산 4보루-
용마산정상->망우산공원->양원역 까지 즐산했습니다.
아차산 종합안내도로 공부하고 출발을~~~
아차산은 삼국시대, 백제의 도읍이 한강 유역에 있을 때 우뚝 솟은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일찍부터 이 아차산에 흙을 깎고 다시 돌과 흙으로 쌓아 올려 산성을 축조함으로써 고구려의 남하를 막으려는 백제인의 노력이 있었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맞은 편 남쪽에 있는 풍납동 토성과 함께 중요한 군사적 요지로서 백제의 운명을 좌우하던 곳이기도 하다. 아단성(阿旦城), 아차성(蛾嵯城), 장하성, 광장성 등으로 불리우기도 하여 백제, 신라, 고구려가 한강을 중심으로 공방전을 장기간에 걸쳐 벌였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고구려정까지 암릉을 오르며~~~이곳이 젤 힘든지점이지요~~~아이구~
우린 산에 오면 공기 좋고 기분이 업되어 항상 즐거운 시간이지요~~~화~~팅
솔숲에 데크계단을 오르니 운치가 제법 있네요~~~
전망대에 오르니 광진구 현대아파트 단지와 롯데타워가 멋진 송파구지역이~~~
한양 강북지역과 강남까지 서울도시는 정말로 세계적인 도시로구나~~~
하남신도시가 몇년 사이에 아파트 밀집지역으로 변모한 모습도~~~
오르다 전망대에서 저 멀리 용마산을 보고 저 봉우리를 정복하러 갑쎄~~~
용마산 넘어 지난주 산행했던 백운대 만경대와 인수봉이 멋지다
각자 우리집이 어디있지~~~ 지도 안내도로 찾고들~~~
소나무들이 제법 많은 아차산행길을 걸어보자~~~
아차산 3보루를 지나며~~~
아차산 4보루 전망대에서 하남시와 구리지역 풍경을 음미하면서~~~
한강의 강동대교와 새로 건설중인 세종시에서 포천방향 고속도로 교각을 조망하면서~~~
아차산 4보루에서 용마산을 배경으로 추억을 담고~~~
담 목적지 용마산으로~~~아직 다리힘이 좋아 달리자~~~
아차산은 많은 데크계단으로 조성되어 운치도 있고 안전에 가장 신경을 많이 고려했구려~~~
용마산을 오르며 뒤돌아보니 저멀리 지나온 아차산 3,4보루를 조망해 보고~~~
용마산 정상에 올라서~~~꼭지점을 밟고~~~
해발 348m의 용마산은 아차산의 최고봉으로 면목동 동현에 위치하고 있으며 망우리공원, 중곡동 간의 산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등산로를 통해 망우리에서 아차산성을 거쳐 어린이 대공원 후문 근처까지 이어진다
용마산을 되돌아 하산후 망우리로 가기전 풍경이 있는 아차산 레스또랑에 자리잡고 준비한 맛난 중식으로~~~고량주로 부라보
전망대에서 구리시가지를 배경으로~~~
자~아 망우리공원으로 갑쎄용~~~
이곳 삼거리는 내려가면 사가정으로 가지요
잠시 전망대에서 중랑구와 저 멀리 북한산국립공원이 펼쳐진 풍경을 조망하며~~~
북한산 삼각봉을 당겨서 잡아보고~~~
도봉산을 즐감하고~~~
불암산과 수락산을 잡아보고~~~
중랑구 신내동에 있는 봉화산을 바라보고~~~
봉화산은 높이 160.1m이며 봉우재라고도 부른다. 서울의 동북부 외곽인 중랑구 신내동과 묵동·중화동·상봉동에 걸쳐 있는 독립 구릉으로, 1963년 1월 1일에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에서 서울특별시로 편입되었다. 정상에 올라서면 북쪽으로 불암산과 도봉산·양주 일대까지 볼 수 있으며, 남산과 한강 이남지역도 조망할 수 있다
공원묘원을 지나며 예전에 유명했던 이중섭,화가,독립투사들의 묘역 이정표가 눈에 들어오네요
이중섭(李仲燮)[1916~1956]의 호는 대향(大鄕)이다. 일제 강점기 때 평양의 종로 공립 보통 학교에 다녔는데, 이 무렵 고구려 벽화가 그려진 고분에서 잠을 자기도 하면서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다. 평북 정주 오산 학교에서 화가 임용련·백남순 부부의 지도를 받으며 일제의 식민 지배에 반발하여 한글 자모로 된 그림을 그리고 이때부터 우리 민족의 한을 표현하는 소를 즐겨 그렸다. 1935년 일본의 테이코쿠 미술 학교에 유학을 갔으며, 1938년 일본의 자유 미협전에서 태양상, 1939년 자유 미술 협회전 회원이 되면서 「서 있는 소」, 「산의 풍경」 등을 출품해 각광을 받았다. 1940년에는 도쿄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최초의 미술을 통한 독립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 신미술가 협회'라는 미술 단체를 만들어 민족 미술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1945년 귀국하여 원산에서 일본인 마사코[한국명 이남덕]과 결혼하고 원산 사범 학교 교원이 되었다. 한국 전쟁 중에는 종군 화가로서 부산, 제주 등지를 전전하며 그림을 그렸는데, 가난하여 담배갑 은박지[은지화]에 그림을 그렸다[은지화는 한국 화가 최초로 뉴욕 현대 미술관에 영구 소장됨]. 1952년 극심한 영양실조에 걸린 두 아들과 부인을 일본으로 떠나보내고 혼자 남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그림과 그림 편지로 대신했다. 1955년 1월 18일 단 한 번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1956년 영양 부족과 심한 간염으로 사망하였다.
오재영(吳哉泳)[1897~1948]의 호는 준영(晙泳)이다. 1920년 9월 무장 항일 독립 단체 의열단의 단원인 박재혁(朴載赫)이 부산 경찰서장 하시모토에게 폭탄을 투척하였을 때 오재영은 박재혁이 국외에서 숨겨 온 폭탄 한 개를 맡아두었다가 의거의 공동 혐의자로 지목되어 붙잡혔다. 1921년 8월 3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이른바 「제령(制令)」 7호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대구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오재영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고, 1983년에는 대통령 표창을 수여하였다.
서동일(徐東日)[1893~1966]의 호는 춘파(春波)이다. 1923년 1월 중국 베이징[北京]으로 망명하여, 남형우(南亨祐), 배천택(裵千澤) 등이 국권 회복을 위하여 군대를 양성하고 무력으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조직한 국민당에 가입하여 재정 부장에 취임하였다. 1924년 1월 국민당으로부터 군자금 모집 밀명을 받고 귀국하여 경상북도 대구 일대에서 군자금 1,300여 원을 모집하여 2월경 베이징에 전달하였다. 1925년 1월에 재차 남형우의 명을 받고 귀국하여 군자금 모집을 전개하였다. 또 1925년 4월에는 무언실행(無言實行)을 행동 지침으로 일제 앞잡이를 처단하는 다물단(多勿團)이 조직되자 이에 가입하고 군자금 모집 활동을 계속하다가 일본 경찰에 잡혔다. 서동일은 1926년 3월 31일에 대구 지방 법원에서 이른바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공갈죄 등으로 징역 3년형을 언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연보비 전면에는 '박인환 선생(1926~1956 시인)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라고 쓰여 있고, 후면에는 '1926 강원도 인제군 인제면 상동리에서 출생 1945 광복 후 평양의학전문학교를 중퇴하고 상경하여 종로 낙원동에서 서점 「마리서사」를 경영 1946 『국제 신보』에 「거리」라는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시인으로 데뷔 동인지『新詩論』 제1집 발간 1949 김경린, 김수영, 임호권, 양병식 등과 5인 합동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간하였으며 모더니즘 시인으로 각광을 받음. 동인 그룹 '後半紀'를 발족시킴 1955 『박인환 시선집』 출간, 1956 「세월이 가면」, 「옛날의 사람들에게」, 「죽은 아포롱」 등을 씀'이라고 쓰여 있다.
망우산 일대 83만 2,800㎡의 공간에 조성된 묘지공원이다. 1933년 5월 27일부터 공동묘지로 사용되기 시작하여 1973년 3월에 2만 8,500여 기의 분묘가 가득 찼다. 이장과 납골을 장려한 결과 2005년 9월 기준으로 1만 7,041기의 묘가 남아 있다. , 오세창, 서동일 ,한용운등 독립운동가들과 방정환, 이중섭, 박인환 등 17인의 유명인사가 잠들어 있으며, 안창호 선생의 묘도 이장되기 전에는 이곳에 있었다. 산책과 조깅을 즐길 수 있는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5.2km의 산책로 곳곳에 15인의 연보비가 놓여 있다.
망우리묘역에 고이 잠던 유명인사들의 안내판에서 잠시~~~
명온공주의 묘소는 원래 고려 대학교 부근인 서울특별시 성북구 종암동에 조성하였으나 일제 강점기인 1936년 조선 총독부 고시에 따른 토지 구획 정리로 인해 망우공원묘지로 이장되었다. 남편인 동녕위 김현근과 합장하였다.
아버지는 조선 23대 국왕 순조(純祖)[1790~1834]이고, 어머니는 순원왕후(純元王后)[1789~1857] 김씨이다.
명온공주는 병약하여 혼인한 지 9년 만에 23세로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났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훈동 194-35에 있던 죽동궁(竹洞宮)에서 살았는데, 남편인 김현근이 앓고 있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무당들이 대나무 칼춤을 추며 병이 낫기를 기원했다고 해서 죽도궁(竹刀宮)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명온 공주가 살림을 차리자 1824년 9월 8일 효명 세자가 동생 명온공주 집을 방문하였고, 1826년 3월 28일 순조와 효명세자가 명온공주 집을 방문하였다.
조봉암(曺奉岩)[1898~1959]의 호는 죽산(竹山)이고,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1948년 제헌 국회 의원에 당선된 후 초대 농림부 장관이 되어 소작제를 철폐하는 등 농지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1956년 11월 진보당을 창당하여 활동하던 중 1958년 1월 13일에 간첩 혐의로 체포되어 1959년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러나 2011년 1월 20일에 조봉암은 간첩죄와 「국가 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 선고 판결을 받아 복권되었다.
지석영(池錫永)[1855~1935]은 1855년 한성부 중서훈동(漢城府中署勳洞)[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훈동]에서 지익룡(池翼龍)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의학자로 우두 보급에 힘썼으며, 한글 전용을 제창한 국어학자이기도 하다. 1908년 국문 연구소 위원에 임명되어, 이듬해 한글로 한자를 해석한 『자전석요(字典釋要)』를 지었다
차중락(車重樂)[1942~1968]은 8남 3녀 중 셋째 아들이다. 아버지는 보성 전문학교 마라톤 선수 출신으로 인쇄소를 운영하였고, 어머니는 경성 여자 고등 상업학교 단거리 선수 출신이라고 한다. 시인 김수영(金洙暎)[1921~1968]은 차중락의 이종 사촌 형이다. 록 밴드 '키보이스'의 멤버 차도균은 사촌 형이다.
차중락은 1966년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번안한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불러 크게 인기를 끌었다.
1968년 11월 공연 도중 뇌막염으로 쓰러져 사망하였다
한용운은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3·1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이다. 또, 시집 『님의 침묵』을 통해 저항문을 이끌었고 불교의 혁신과 대중화에 기여하였다. 한용운의 묘소는 독립운동가, 시인, 종교인으로서 그의 삶과 정신을 기릴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역사적·교육적 가치가 있다.
만해 한용운 묘소는 부인 유숙원의 묘와 나란히 조성되어 있으며, 2기의 봉분 앞으로 상석, 향로석, 비석이 배치되었다.
비석 앞면에 ‘만해한용운선생묘 부인유씨재우(萬海韓龍雲先生墓 夫人兪氏在右)’라고 새겨져 있어 오른쪽 묘가 부인 유씨의 것임을 알 수 있다. 비석은 1981년 12월 만해사상연구회가 세웠으며, 비문의 글씨는 근현대 서예의 대가 여초 김응현詩碑)가 있다.
1970년 3월 10일 박정희 전 대통령은 도산 안창호 선생이 이 나라 자주와 독립을 위해 바친 위대한 애국정신과 민중의 교화를 위한 교육정신을 국민의 귀감으로 삼게 하고자 도산공원을 조성할 것을 지시한다.
이에 서울시는 1973년 강남구 신사동에 약 1만여평 공원을 조성하고, 망우리 공동묘지에서 선생의 유해를 이장하는 동시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부인 이혜련 여사의 유해를 옮겨와 합장하였다. 그 후, 강남구 청담동에서 논현동에 이르는 노폭 50m 연장 3250m의 신설가로를 도산대로로 명명하였다.
공원 내에는 도산 선생 기념물로 동상 1기, 어록비 1기, 비문해설기 1기 등이 설치되어 있으며, 매년 3월 10일 이곳에서 홍사단 및 도산기념 사업회 주관으로 도산 선생 추모 기념 행사를 거행한다.
망우리공원을 뒤로하며 역사공부하고 담 목적지로 갑쎄요
망우묘지공원이 처음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1933년부터이다. 당시 묘지 조성의 목적은 늘어나는 경성부[현 서울특별시]의 택지 보급을 위해 현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의 공동 묘지를 없애고 새로운 대체 묘지를 조성하는 것에 있었다. 1973년까지 사망자 유해를 안장할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김지룡 의료도사께서 암에 대한 교육과 건강 강좌도 듣고~~~
중랑숲 근린공원을 지나 양원역에서 전철로 청량리전통재래시장 횟집으로~~~
오늘 산행의 평가와 대방어횟감에 안산즐산 축하 부라보!!!
방어는 크면 클수록 맛 좋은 생선 방어! 일정 크기를 넘어서면 맛과 향이 떨어지는 다른 어종과는 달리 방어는 체형이 클수록 맛이 있다고 하는데요
골다공증 예방, 노화 방지 (방어는 가다랑어 다음으로 비타민 D가 풍부하다. 비타민 D는 체내에서 칼슘과 인의 흡수를 도와주기 때문에 성인의 경우 골다공증과 노화를 예방한다. 불포화지방산의 산화를 방지하는 비타민 E와 니아신도 들어 있어 노화 방지 및 피부 활성화에 효과가 있다.)
닥아오는 설날 명절을 가족과 함께 잘 보내시고 담 산행에 다시 봅시다
첫댓글 대단한 친구 영목이.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까지... 다돌면 만만찮은 길이던데..
정말 보기좋으네요 새해에도 건강하고 계속 화이팅!!!
명절 잘 보내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