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하고 보니
퇴직 직전 근무지가 거제라 집을 떠나 삼 년 보내다 왔다. 집에서 익숙하던 출퇴근이 되지 않아 근무지 인근 원룸촌에 와실을 정해 아침저녁 끼니는 손수 해결하고 주말에 뭍으로 건너왔다. 주중 공휴일이나 때로는 주말도 창원으로 복귀하지 않고 거제 갯가를 트레킹하거나 산을 누볐다. 정년을 앞둔 재작년 연말 겨울방학 들면서 와실에서 철수해 민간인 신분으로 연착륙했다.
현직에 몸담고 있을 적 퇴직 이후 여가를 어떻게 보낼지는 그렇게 고민해 보지 않았다. 예상은 했지만 평생 몸담았던 직장에서 나오니 여유로운 시간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렇다고 시간을 주체 못해 허비하고 지내지는 않는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24시간인데, 나는 오히려 현직 시절보다 빠듯한 나날인 듯하다. 특히 독서와 글쓰기로 보내는 새벽과 아침 시간이 부족했다.
지난해 여름 초등 교장으로 퇴직한 동기는 그간 몇 개월 사이 시골에 전원주택을 지어 새해 들어 입주를 마쳐 자연인처럼 지낸다. 그는 현직 시절부터 퇴직 이후 주거 공간 마련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했더랬다. 친구 얘기로는 5촌 2도 생활이라 했다. 주중 닷새는 시골에서 흙과 더불어 지내다가 주말 이틀은 예전의 살던 집으로 돌아와 종전 같은 취미생활과 친교 활동을 할 것이란다.
경제적인 문제가 우선 고려 사항이지만 나는 퇴직하면서 주거 공간 변화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차를 소유하지 않고 운전도 할 줄 모르는지라 시골로 돌아감은 스스로 고립을 불러오는 일이다. 사는 동네와 낡은 아파트를 떠나지 못함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병원이 가까워야 하고 도서관과 같은 문화 시설 이용이 편리해서다. 친구와 마주 앉는 주점도 있어야 했다.
평소 병약한 아내만 병원을 자주 다니는 줄 알았는데 퇴직하고 보니 나도 병원을 찾아갈 일이 생겼다. 현직 때는 병도 붙을 시간이 없었든지 퇴직하니 시간이 나는 줄 어떻게 알고 일 년 새 몇 차례 병원을 찾았고 앞으로도 그렇지 싶다. 연말 서울로 올라가 받은 건강 검진 후속 조치로 설 직전 호흡기내과와 소화기내과를 들렀다. 흉부 엑스레이와 위내시경 재검이 필요해서였다.
호흡기내과에서 다시 찍은 흉부 엑스레이는 이상 소견이 없었고 컴퓨터 단층 촬영 결과 판독은 후일로 넘겼다. 그날 병원 들린 걸음에 후일 예약된 소화기내과 진료도 받았다. 위에서 미심쩍은 부분으로 한 달 뒤 내시경과 초음파검사를 예약하고 일월 넷째 목요일은 호흡기내과 전문의 진료실을 찾기로 예약된 날이다. 진료라기보다 전번 찍어둔 씨티에서 이상 여부를 통보받는다.
전문의 면담 시간이 오후라 아침나절 집 근처 도서관에 먼저 들렀다. 한 달 한두 차례 용지호수 작은도서관을 이용하는데 설 전 빌려 읽은 책은 반납했다. 이후 도서관에 머물지 않고 산책을 나서려고 마산합포구청 앞으로 나가 명주 갯가로 가는 농어촌버스를 탔다. 버스는 밤밭고개를 넘어 진동 환승장에 들렀다가 광암 선창을 지나 다구리에서 산모롱이를 돌아 도만마을에 내렸다.
구산면과 경계인 지방도 아래 매실나무를 살피니 꽃눈은 망울을 터뜨려 며칠째 강추위에 꽃잎이 데어 애처로웠다. 그 매실나무는 볕이 바른 자리라 해마다 대한 무렵이면 꽃망울을 터뜨렸다. 외진 곳이라 아무도 알아 줄 이가 없는데 나라도 찾아가 매실나무를 주변을 서성였다. 이후 구산면으로 넘어가 마전 포구를 지나니 갯가 노변 임시 막사에는 할머니들이 생굴을 까고 있었다.
군령포 부두를 지난 드라마 세트장까지 갔다가 명주에서 돌아 나오는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와 예약된 병원을 찾았다. 아뿔싸! 병원에서 보낸 SNS 문자를 내가 잘못 읽어 시간이 지나 진료를 받을 수 없어 다음 주 다시 가기로 했다. 호흡기내과 진료는 오전이었더랬다. 오후의 소화기내과 진료는 지난주 당겨 받았는지라 병원을 나와 아침에 들렀던 용지호수 작은도서관을 찾아갔다. 23.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