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업 호황기 훈풍에 'MASGA' 휘날린다 / 9/7(일) / 한겨레신문 ◇ 이코노미 인사이트_Economy insight 재무제표로 읽는 회사 이야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내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기치는 전 세계를 향한 관세전쟁으로 이어졌다. 미국의 정부 채무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늘어나는데도 트럼프는 대선 공약으로 감세를 내세웠기 때문에 부족한 세수를 관세로 메울 수밖에 없었다.
당선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를 상대로 터무니없는 관세율로 으름장을 놓기 시작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무의미해질수록 미국은 압박 수위를 높였다. 다행히 2025년 7월 말 관세율 15% 선에서 타결됐다. 앞으로 미국에 여러 가지 추가 투자를 해야 하고 여러 품목을 개방해야 한다는 요건도 있지만 대체로 선방했다는 평가다.
이번 관세 협상의 일등공신은 단연 MASGA(Make America Shipbuilding Great Again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다. 쇠퇴한 미국의 조선업을 다시 살리기 위해 조선 강국인 한국이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세계 조선업은 한중일 삼국지로 표현할 수 있다. 중국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세계 선박 건조의 46%를 차지하고 한국과 일본의 비중은 각각 30%, 15% 정도 된다. 중국에 물량이 몰리고 있지만 품질 면에서는 단연 한국이 1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한화오션의 변신 미국은 패권주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조선업이 쇠퇴하고 있어 해양 패권은 중국에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미국이 군함 건조나 수리를 중국에 맡길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우방인 한국과 일본에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으니 한국에는 큰 기회다.
이 MASGA 프로젝트에는 한국의 3대 조선사인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삼성중공업이 참여해 한미 정부와 함께 공동 태스크포스를 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3대 조선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기업은 한화오션이다. 2024년 이미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인수해 미 해군과 선박 정비·수리·개량 등 용역을 제공하는 MRO 계약도 체결했다.
한화오션의 전신은 2015년 분식회계 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우조선해양이다. 10년 가까이 5조원대 분식회계를 한 사실이 드러나 큰 충격을 줬다. 적자가 누적되고 재무구조도 불안해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다행히 조선업이 2020년부터 호황기에 접어들면서 한숨을 돌렸다. 2023년 5월 한화그룹이 인수해 현재의 한화오션이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창궐한 2020년 초까지만 해도 경제 불확실성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선박 발주가 급감했다. 그러나 그해 하반기부터 환경규제 대응 선박 수요가 늘면서 한국 조선업이 점차 활성화됐다. 세계 선박 수주의 절반 가까이가 중국이지만 액화천연가스(LNG)선이나 이원연료선 같은 환경규제 대응 선박에 대한 기술력은 확실히 한국이 중국보다 우위에 있다. 이런 이유로 선주들은 한국 기업을 선호했다.
조선업이 가장 잘나가던 2008년 이후 13년 만인 2021년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이 최대치를 기록하며 본격적인 호황기에 진입했다. 대장주 HD현대중공업은 목표 수주액인 89억 달러를 66% 초과하는 147억 달러의 물량을 따냈고 한화오션도 목표액인 77억 달러를 41% 초과 달성한 109억 달러를 수주했다.
이후 두 회사 모두 매년 수주액이 크게 늘면서 주문이 쌓였다. HD현대중공업의 경우 2020년 말만 해도 수주잔고가 12조 7506억원(약 1.36조엔)이었지만 2025년 1분기 말 현재 수주잔고는 49조 6336억원(약 5.3조엔)이나 된다. 회사의 연간 매출액 규모가 14조원(약 1.5조엔) 선이니 대부분 34년치 주문을 받은 셈이다. 한화오션도 8조 6405억원(약 0.9조엔)이던 수주잔고가 5년 만에 31조 402억원(약 3.3조엔)로 늘어나 3년치 주문을 보유하게 됐다. 그 사이 두 회사의 주가는 모두 5배 가까이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2030년까지 전 세계 선박의 CO2 배출량을 2008년 대비 40% 감축하자는 국제해사기구(IMO)의 IMO 2030과 같은 세계적인 환경규제로 각국의 노후 선박 교체가 본격화되면서 조선업 호황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매출이 계속 늘어나는 것은 기정사실이지만 앞으로 수익성도 더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선박의 주요 원재료인 강판 가격이 하락세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수주가 늘면서 본격적인 호황기에 접어든 2021년, 2022년에는 조선사 매출액은 증가했지만 수 천억원에서 수 조원의 적자가 나고 말았다. 톤(t)당 60만~70만원 선이던 강판 가격이 1년 만에 110만원으로 급격히 올랐기 때문이다. 원자재 가격이 쌀 때 따온 일을 처리하기 위해 비싼 원자재를 사서 투입해야 하니 수지가 맞을 리 없다.
■ 수익성까지 올랐다 다행히 지금은 t당 가격이 90만원대로 떨어지면서 수익성이 크게 개선됐다. 특히 원재료 가격이 비쌀 때 높은 가격으로 받은 주문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저렴해진 원재료를 투입하므로 손익은 당연히 개선된다. 2025년 상반기까지 한화오션은 6303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는데, 이는 2024년 1년치 영업이익 2379억원의 두 배가 넘는다. 영업이익률도 2%대였지만 지금은 10%까지 올랐다.
수주는 늘고 원자재 가격은 떨어져 태평성대를 누릴 것 같은 데다 한화오션은 MASGA로 더욱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미국도 친환경 선박 교체 수요가 많아 해군의 경우 노후 구축함 대체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2054년까지 함선 수도 297척에서 최대 381척으로 확대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함대 확충 예산만 1천조원(약 106조엔)라는 얘기가 들린다. 또 MRO 서비스 관련해서도 2024년까지 약 2조6천억원(약 2700억엔)였던 규모가 2035년에는 5조원대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와 2차전지 등의 성장이 정체된 요즘 조선이 그 틈을 메우며 우리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어 참으로 다행스럽다.